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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01:42:30

아드리아누/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아드리아누

1. 클럽 경력
1.1. 브라질에서 이탈리아1.2. 기적을 부르는 사나이1.3. 파르마 AC
1.3.1. 2002-03 시즌1.3.2. 2003-04 시즌 전반기
1.4. 인테르 컴백
1.4.1. 2003-04 시즌 후반기1.4.2. 2004-05 시즌1.4.3. 2005-06 시즌1.4.4. 몰락
1.5. CR 플라멩구1.6. AS 로마1.7. SC 코린치안스1.8. 아틀레치쿠 → 마이애미 이후의 생활
2. 국가대표 경력

1. 클럽 경력

1.1. 브라질에서 이탈리아

파일:아드리아누 플라멩구 2000.jpg
유망주였던 2000년 당시 아드리아누
1982년, 리우 데 자네이루 파벨라에서 태어난 아드리아누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하였고 7세 때 플라멩구 풋살팀에 들어갔다. 그가 10세였던 해에 같이 산책하던 그의 32세 아버지가 총격전에 휘말려 머리를 다쳐 몸이 불편해졌고, 이 일은 아드리아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드리아누는 11세에 플라멩구 사커 스쿨에 입단했으며 15세에 플라멩구 청소년팀에 월반하였다. 그의 집안은 빌라 크루제이로에 살만큼 워낙 가난했고,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의 할머니가 과자를 만들어 플라멩구팀 연습장에서 팔아 교통비를 마련해주었다.[1][2]

이 때부터 아드리아누는 미식축구 선수 같은 체격 때문에 레프트 윙, 사이드백으로 뛰었고 센터백으로 테스트도 받았다. 당시 플라멩구 유스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던 안데르손 바호스는 "입단 당초 아드리아누는 커다란 체격이라 역시 움직임이 둔한 듯이 보였지만, 강한 체력과 왼발의 킥력은 그 약점을 보완하고도 남을 것이었습니다. 높은 잠재능력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라며 아드리아누와의 만남을 회상했다. 아드리아누가 포워드로 출전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로부터 2년 후인 플라멩구 주베닐(U-17)팀부터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센터포워드 자리를 차지하였다. 최대 강점인 체력과 왼발 킥력이 보통 사람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플레이는 미식축구에서 저돌적인 러닝백을 연상시켰으며, 성공에 대한 열망이 봉인되어 있던 그의 재능을 일깨워준 것이었다.[3]

아드리아누는 2000년 2월 2일 Torneio Rio-São Paulo 대회에 보타포구와의 경기에서 프로무대 데뷔를 하였으며, 4일 후 같은 대회에 상파울루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2000년 6월에 2년 계약을 체결한 아드리아누는 2000년부터 2001년동안 24경기 10골을 기록하였다. 그는 2001년에 열린 FIFA U-20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루진 못 했지만 뛰어난 활약을 펼쳐 이를 본 세리에 A 명문 인테르가 2001-02 시즌에 영입하였다. 당시 아드리아누는 유망주였지만 이미 브라질 U-20 대표팀에서 카카 마이콘보다도 주목 받던 재능이었으며, 하비에르 사네티처럼 인테르 구단주인 마시모 모라티의 의견이 강하게 피력되었다.

1.2. 기적을 부르는 사나이

파일:아드리아누 피오렌티나 시절.jpg
갓 스무살이 된 피오렌티나 시절 [4]
아드리아누가 도착한 때는 페노메노의 슬개건이 효력을 잃기 시작한 부상으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2001년 여름이었다. 인테르에 입단한 그는 프리시즌 베르나베우컵 레알 마드리드 CF전부터 상대 수비수 카랑카 살가도, 이에로, 이반 캄포를 연달아 돌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카시야스를 상대로 강력한 대포알 프리킥을 넣었다. 그 장면이 일어나고 완성되지 않은 19세의 브라질 공격수는 'Nuovo Fenomeno'(새로운 천재, 즉 넥스트 호나우두)이라며 이탈리아 언론과 세리에를 위해 '제2의 호나우두'로 탄생했다.[5] 호나우두의 부상 이후 특급 공격수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마시모 모라티는 이 경기 후부터 아드리아누의 열성적인 팬이 된다. 그는 리그 3라운드 베네치아전에서 극적 결승골을 넣었지만 2001-02 시즌 전반기동안 14경기 1골이라는 부진에 빠지며[6] 겨울에 피오렌티나로 팀을 옮기게 된다.

그러나 당시 세리에 A 시절부터 자신이 왜 타고난 선수인지 보여주었는데... 유망주 아드리아누에 대한 칼럼

피오렌티나로 임대된 아드리아누는 리그 18라운드 키에보전에 데뷔를 했으며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고 팀은 2-2로 비겼다. 19라운드 AC밀란과의 홈경기에서도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1-1 극적인 무승부를 거뒀다. 21라운드 AS로마와의 홈경기에서 18분, 강력한 대포알 프리킥으로 2번째 골을 득점하였고 팀은 2-2로 무승부를 거뒀다. 23라운드 유벤투스전에서 그는 왼발로 골을 기록하였지만 팀은 1-2로 패하였다. 25라운드 베로나전에선 감각적인 헤딩골로 팀의 2-1승리를 견인하였다.

그의 피오렌티나 마지막 골은 33라운드 파르마전에서 초반 기록하였으나 팀은 디 바이오에게 막판 2골을 실점하며 패배했다.

1.3. 파르마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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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무투-아드리아누
피오렌티나에서 01-02 시즌 절반동안 15경기 6골을 기록했지만 인테르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었고, 선발 출장을 원하던 끝에 크레스포의 인테르 합류와 동시에 50억의 이적료로 파르마로 보내졌다. 이 시기에 2002 FIFA 월드컵 명단까지 탈락하며 좌절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파르마에서 이전 시즌 감독이자 아드리아누에게 있어 몇 안되는 양아버지 같은 존재인 아리고 사키를 만났다. 사키는 자신감을 상실한 아드리아누에게 용기를 줬고 나약한 승부 근성을 뜯어고치도록 만들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잊을 수 없는 은사인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을 만났고 독기를 품었으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노력의 결과는 곧장 모습을 드러냈고 02-03 시즌부터 아드리아누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으로 떠오르게 된다.

1.3.1. 2002-03 시즌

아드리아누는 아드리안 무투와 파트너를 결성, 치명적인 공격듀오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리그 첫경기 9월 15일 우디네세전에서 아드리아누는 좌측에서 날아 온 크로스를 밀어넣으며 시즌 첫 골을 신고했고 팀은 1-1 무승부를 거뒀다. 리그 3라운드 코모전에서 무투의 프리킥을 받아 강력한 헤딩골로 득점하였고 2-0으로 승리하였다. 4라운드 유벤투스 원정에서 81분 골을 기록하며 2-2 무승부를 거뒀다.

UEFA컵 1라운드 CSKA 모스크바와의 10월 3일 2차전에서 아드리아누는 30m가 넘는 거리에서 무회전 프리킥을 넣었고, 파르마는 무투의 90분 환상적인 골로 3-2로 승리하며 2라운드로 진출하였다. 11월 13일, UEFA컵 2라운드 비슬라 크라코프와의 2차전에서 아드리아누는 상대 수비진을 농락하며 선제골을 넣었으나 팀은 1-4로 패하였다.

리그 12라운드 토리노 원정에서 그는 타겟맨의 정석을 보여주며 2골을 넣었고 팀의 4-0 대승을 이끌었다. 13라운드 레지나전에서 아드리아누는 2골을 넣으며 무투와 함께 상대수비진을 초토화시켰고 2-0으로 승리하였다. 14라운드 볼로냐 원정에서 1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훌리오 크루즈에게 2분만에 2골을 실점하며 1-2로 패하였다.

이후 리그 19라운드 우디네세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파르마는 3-2 승리를 거두었다. 리그 22라운드 페루자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대포알 프리킥 골을 넣었고 2-1로 승리하였다.

리그 23라운드 모데나전에서 아드리아누는 호나우두를 연상시키는 돌파를 보여주며 골을 넣었고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26라운드 라치오전에서 아드리아누는 92분 극적 결승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만들어냈고 관중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활약은 이어졌고 27라운드 AC밀란과의 경기에서 77분 아드리아누는 지다 파올로 말디니를 농락하는 힐킥 결승골을 넣으며 무투와 함께 밀란을 격침시켰고 엔니오 타르디니를 축제 현장으로 만들었다. 28라운드 AS로마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40분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연상시키는 대포알 프리킥 골을 넣었으나 팀은 1-2로 패하였다. 33라운드 피아첸자전에서 1골을 넣으며 3-2 승리를 견인하였다.

2002-03 시즌 파르마는 세바스티앙 프레이, 마테오 페라리, 마크 브레시아노, 다니엘레 보네라, 나카타 히데토시, 아드리안 무투 등과 함께 리그 순위 5위를 달성하였다. 무투는 21골, 아드리아누는 17골을 넣으며 둘의 시즌 총 득점은 38골이었고 이는 02-03 시즌 파르마 득점의 반절이 넘는 수치였다. 많은 클럽들이 이 공격듀오를 지켜봤으며 자본력을 갖추게 된 첼시가 무투를 2003년 여름에 영입해갔다.

2002/03 시즌: 32경기(선발 29경기) 17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8 26 2 15 1
유로파 리그 2 2 0 2 0
코파 이탈리아 1 0 1 0 0
수페르코파 1 1 0 0 0
합계 32 29 3 17 1

1.3.2. 2003-04 시즌 전반기

2003-04 시즌, 아드리아누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이 됐지만 성장 속도는 멈출 줄 몰랐다.

세리에 A 1라운드 볼로냐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강력한 중거리슛과 헤딩골로 2-2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2라운드 페루자전에서 페널티킥 골을 기록하며 팀은 3-0으로 승리하였다. 3라운드 라치오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괴물같은 골을 보여주며 파르마는 3-2로 승리하였다.

9월 24일, UEFA 컵 1라운드 FC 메탈루르흐 도네츠크와의 1차전에서 1골을 넣으며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세리에 A 4라운드 시에나전에선 1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만들었다. 5라운드 삼프도리아전에선 헤딩골을 기록하며 리그 5경기 연속골에 성공하였고 1-0으로 승리하였다. 7라운드 모데나전에서 왼발로 밀어넣으며 1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11월 부상으로 이탈한 그는 복귀 후 17라운드 우디네세 원정에서 헤딩골을 넣으며 팀은 1-1로 비겼다.

그를 지켜보던 인테르는 03-04 시즌 도중 리그에서 부진과 UCL 조별리그, UEFA컵 8강에서 연이은 탈락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고, 비에리의 기복 심한 경기력과 하락세에 고민하던 와중 의존도를 줄이고자 아드리아누를 복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인테르에서 파르마에 이적될 때 가격의 약 10배인 한화 약 495억원에 재영입된다.[7]

2003/04 시즌: 13경기(선발 11경기) 9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9 8 1 8 0
유로파 리그 2 1 1 1 0
코파 이탈리아 2 2 0 0 0
합계 13 11 2 9 0

1.4. 인테르 컴백

파르마에서 무투와 함께 가공할 유럽 최고의 공격력을 보여줬지만, 임페라토르의 짧은 전설은 인테르에서 태어나게 된다. 호나우두도 떠나버렸고, 크리스티안 비에리도 불만을 점점 표출하던 인테르를 아드리아누가 다시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인테르의 황제로 인정받으며 비록 세리에의 3인자지만[8] 스펙타큘러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활약으로 인테르를 여러 위기에서 구해내고 주세페 메아차의 수호신이란 소리까지 나오게 된다. 유명한 더비 매치인 밀라노 더비만 보아도 AC 밀란의 간판인 카카 안드리 셰브첸코와 아드리아누의 대결이라고 할 정도였다.[9]

1.4.1. 2003-04 시즌 후반기

아드리아누는 2004년 1월, 3년 반동안 296억원 가량을 받는 계약으로 인터밀란에 돌아왔고, 계약기간을 2008년 6월까지 늘리는 연장계약에도 합의했다. 그는 03-04 시즌에 파르마 소속으로 UEFA컵에 이미 출전했었기 때문에 인터 밀란 소속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주세페 메아차에 돌아온 아드리아누는 시에나전에서 49분,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토킥으로 컴백골을 신고하였고, 78분 사네티의 패스를 골로 마무리 지으며 2골을 득점하며 팀은 4-0 대승을 거뒀다.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 1차전 유벤투스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박스 안으로 들어온 로빙 패스를 센터백과 골키퍼를 제치며 왼발로 낮게 깔아차 첫 골을 득점하였고, 35분에 헤딩골까지 2골을 득점하며 유벤투스 수비진을 유린했으나 팀은 디 바이오에게 2골을 먹히며 2-2 무승부를 거뒀다. 준결승 2차전 홈경기에서 아드리아누는 7분, 상대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날아온 롱패스 볼을 뛰쳐나온 골키퍼의 발 밑으로 빼돌리는 탁월한 센스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팀은 2-2로 승부차기까지 갔고 비에리의 실축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세리에 A 27라운드 레지나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후반전 로스타임에 롱패스 볼을 제대로 처리 못한 수비의 실수를 단숨에 낚아채 득점하였고 인테르는 2-0으로 승리하였다. 29라운드 페루자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24분 상대 수비진을 피지컬, 턴, 바디페인팅으로 압도하는 화려한 선제골을 넣었고 2-1로 뒤진 86분엔 동점골까지 넣었다. 그의 활약에 힘을 받아 팀은 88분 마틴스의 결승골로 3-2 역전승하였다.

32라운드 레체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페널티킥으로 득점에 성공했지만 팀은 1-2로 패배하였다. 막바지로 치닫는 4위 경쟁에서 아드리아누의 역할은 중요해졌고 33라운드 파르마전에서 그는 자신이 얻어낸 프리킥을 엄청난 속력의 슈팅으로 꽂아 넣으며 귀중한 1-0 승리를 기록하였다.

마지막 34라운드 엠폴리 원정은 인테르의 미래에 있어 뜻깊은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아드리아누는 2골을 득점했는데, 45분 기록한 첫 골에서 그는 마치 전성기 호날두의 점프력을 보는 듯한 엄청난 제자리 점프로 헤딩골을 넣었고 엠폴리 수비수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69분 아드리아누는 인터셉트된 볼을 쇄도하며 드리블을 했고 4명의 엠폴리 선수를 상대로 절대 쓰러지지 않는 괴물 같은 밸런스를 보여주며 키퍼마저 당황시킨 골을 넣었다. 양팀의 운명을 결정짓는 엠폴리 홈에서 그의 활약으로 인테르는 3-2 승리했으며 4위를 결정지었고 동시에 엠폴리의 강등이 결정되었다.
파일:external/pbs.twimg.com/BgtIBNzIUAA5F8D.jpg
엠폴리전 헤딩골을 넣고 세레모니하는 아드리아누
03-04 시즌 나머지 반동안 아드리아누가 넣은 골 수는 12골이었으며, 후반기 활약만으로 그는 03-04 시즌 인테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물이 오른 아드리아누는 당연히 2004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 대회의 모든 수상을 싹쓸이하며 돌아왔고 그의 시장 가치는 당시 환율 2500만 유로를 넘었다.

2003/04 시즌: 18경기(선발 15경기) 12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16 13 3 9 0
코파 이탈리아 2 2 0 3 0
합계 18 15 3 12 0

1.4.2. 2004-05 시즌

2004-05 시즌을 준비하던 아드리아누는 8월 초, 친선대회 도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향년 44세에 리우 데 자네이루의 아파트에서 간부전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하비에르 사네티는 당시에 대해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브라질에서 걸려 온 전화 한통을 받았다. 그런 소리가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해본 절규였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전화를 받은 후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라며 회고하였다.

그는 장례식을 치른 후, 바로 돌아와 8월 11일 UEFA 챔피언스리그 1차전 FC 바젤 원정에서 상대 센터백을 쓰러뜨리는 엄청난 몸싸움을 보여주며 놀라운 동점골을 넣었고 인테르는 1-1 무승부를 거뒀다. 아드리아누에게 있어 가장 애틋한 존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좌절치 않고 팀의 승리를 위해 노력해 결국 골을 넣고 세레모니까지 하였다. FC 바젤과의 2차전에서 아드리아누는 클래스를 입증하는 왼발 슛으로 2골을 넣고, 스탄코비치의 중거리골까지 어시스트하며 팀의 4-1 승리와 함께 본선 진출을 확정하였다.

세리에A 개막전 키에보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맹렬한 땅볼슛을 날렸고 키퍼가 손 쓸 틈도 없이 골대 구석에 꽂히며 인테르는 덕분에 2-2 무승부를 거뒀다. UCL 조별리그 1차전 베르더 브레멘전에서 아드리아누는 첫 페널티킥을 놓쳤으나 두번째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하였고, 89분 상대 수비수를 지켜보게 만드는 점프력으로 볼을 트래핑해 낮게 깔아차 추가골까지 득점하였다. 세리에A 2라운드 팔레르모 전에서 아드리아누는 46분 제공권을 장악하며 헤딩골을 넣었고 이후 사악한 굉음의 아웃사이드슛과 프리킥 강슛을 퍼부었으나 골대 불운과 팔레르모의 처절한 수비에 막혔으며 루카 토니의 67분 득점으로 인해 1-1 무승부를 거뒀다.

3라운드에서 똑같은 롬바르디아주의 네라주리는 인테르를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아탈란타는 파치니의 85분 동점골로 2-2의 치열한 명승부를 펼쳤으나 인테르에는 아드리아누가 있었다. 87분, 아드리아누가 치고 달린 볼은 막힐거라 예상됐으나 아드리아누는 나탈리를 나뒹굴게 만드는 괴수 같은 몸싸움을 보여주었고, 박스 근처에서 4명의 수비수가 감싸는 와중에 그의 권력으로 슈팅을 날리며 키퍼의 손을 맞고 골이 되었다. 아틀레티 아주리 홈 관중석을 도서관으로 만든 이 골은 그가 왜 황제란 별칭을 얻었는지 잘 보여줬으며 로베르토 만치니의 입가에 웃음을 띄게 만들어줬다.

UCL 조별리그 2차전 안데를레흐트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세리에A 6라운드 우디네세전은 아직도 그의 전설적 경기로 회자되고 있다. 아드리아누는 경기 초반, 비에리가 얻어낸 35m 프리킥을 강력한 인프런트킥으로 넣었다. 이윽고 두번째 골에서 인테르 진영부터 질주하며 얀쿨로프스키를 사이드스텝으로 벗겨냈고, 브라질 특유의 움직임 '징가'를 추며 최종 수비를 따돌리고 골을 넣었다. 인테르는 비에리의 마지막골까지 3-1로 승리하였다. 경기 후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스카이 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언론은 그의 활약상을 '페노메노'라 평했으며, 그의 두번째 골을 ' 호나우두'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하였다. 평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언론 <라이 스포르트>조차 아드리아누에게 평점 10점 만점을 부여하였다.

UCL 조별리그 3차전 발렌시아CF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1골 2도움을 올리며 인테르는 발렌시아를 5-1로 압도하였다. 경기 후, 다비드 알벨다는 아드리아누에 대해 "모든 능력이 완벽한 선수"라며 극찬하였다. 세리에 A 7라운드 밀라노 더비에 출전하였으나 알레산드로 네스타 파올로 말디니의 협력수비에 고전하며 양 팀은 0-0 무승부를 거뒀다. 10월 27일 7라운드 레체전부터 11월 10일 볼로냐전까지 아드리아누는 4경기 연속골을 터트렸다. 유벤투스전에서 아드리아누는 천금같은 동점골로 2-2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메시나전에서 아드리아누는 해트트릭을 달성하였고 팀은 5-0 대승하였다. 15라운드 시에나전에서 한골을 추가한 아드리아누는 득점없이 0-0으로 끝난 브레시아 전에서도 MOM을 달성하였다.

2004년 한해 동안 활약으로 아드리아누는 22세에 2004년 클럽, 국대 통합 54경기 43골을 기록하였다.[10] 2004 발롱도르 후보 6위, 2004 FIFA 올해의 선수 후보 6위에 랭크되었고, 프랑스 레퀴프 선정 '2004 가장 이상적인 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11]
파일:아드리아누와비에리.jpg 파일:아드리아누와마르틴스.jpg
비에리-아드리아누 마르틴스-아드리아누
그러나 20라운드부터 38라운드까지 8라운드나 잔부상으로 결장하며 페이스가 꺾이고 리그에서 단 2골에 그치게 된다. 후에 축구팬들은 그가 원래 기복이 심해 이랬다는 소리를 하지만, 사실을 들여다보면 시즌 전반기 혹사와 심화된 컨디션 난조였다. 아드리아누는 2002년 여름부터 매년 휴식기마다 제대로 된 장기 휴가를 지낸 적이 없을 정도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번갈아가며 많은 경기를 무리하게 소화하여 2003년 가을에 2개월 장기 부상을 겪기도 하였다. 게다가 시즌 첫 경기 UCL 플레이오프 FC 바젤전부터 리그 19라운드까지 25경기나 선발을 뛰었을 정도며, 인테르의 심각한 수비와 부진한 비에리의 빈공을 메우기 위해 엄청난 활동량과 테크닉을 발휘해야했다.[12]

그래도 UCL은 FC포르투와 16강에서 2차전만 출전하여 왼발만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팀을 8강 진출 시키는 기염을 토했다.[13] 6월 12일 코파 이탈리아 결승 1차전 AS로마 원정에서 아드리아누는 대포알 중거리슛과 헤딩슛으로 2골을 넣어 인테르의 컵대회 우승에 힘을 보탰다.

04-05 시즌 아드리아누는 리그에서 16골을, UCL에서 플레이오프 예선을 포함 10골을 기록하였고, 인테르를 UCL 8강에 진출시켰으며,[14] 반 니스텔루이에 이어 득점 2위에 랭크되었다. 클럽 42경기 28골을 기록했고, 인터밀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까지 폭발적인 활약으로 04-05 시즌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15]

흐름이 바뀌는 골은 대부분 아드리아누의 골이라 봐도 무방했고, 중요 경기에서 굉장히 강했다.[16] 그의 나이 23세였으며 2005년에 1년간 국제 공식경기 최다 득점자에게 수상하는 IFFHS 세계 최고 득점자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7위, FIFA 올해의 선수 5위에 랭크되었다.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아드리아누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본적 없는 유형의 현대적인 공격수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적시장의 몸값은 7000만 파운드(당시 1억 유로, 1300억원) 소리까지 나오게 되고 이보다 높은 가치의 선수는 호나우지뉴 밖에 없었다.

이적시장의 주인공으로 성장한 그는 04~05년동안 모든 빅클럽의 1급 타겟이 되었고 인테르는 당시 몸값 769억원의 아드리아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의 몸값을 970억원 이상까지 책정하였다. 이에 최고의 재력을 갖추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가 지단의 840억원 세계최고기록을 깨는 이적료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레알의 페레스 회장이 노린다는 루머[17]와 첼시가 7,000만 파운드를 일시불로 지급하려 한다는 루머까지 나왔고,[18][19] 레알 마드리드가 1000억원 가치에 가까운 트레이드 딜을 내놓기도 하였다.[20] 이외 유수의 강팀들이 유혹을 보냈으나, 어느 빅클럽도 그의 몸값을 지불하기 힘들만큼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마시모 모라티는 자신의 양아들이라고 천명하며 절대 내보낼 수 없다고 밝힘에 따라 잔류하게 된다.

2004/05 시즌: 42경기(선발 37경기) 28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0 26 4 16 1
챔피언스 리그 7 7 0 7 3
코파 이탈리아 3 2 1 2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3 1
합계 42 37 5 28 5

1.4.3. 2005-06 시즌

UCL 플레이오프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에서 1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에 일조하였다. 세리에 A 개막전 트레비소전에서 왼쪽 측면에서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스탄코비치와 다비드 피사로의 패스를 골로 연결시키며 해트트릭을 완성하고 3-0으로 승리하였다. 그는 9월 말, 2010년까지 기간을 연장하는 재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시즌부터 그의 경기력 기복이 심해지기 시작하였다.[21]

리그 2라운드 팔레르모전부터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우디네세전 등에서 1골도 득점하지 못하는 득점력 난조를 겪었고, 9라운드 AS 로마전에서 2골을 넣었으나 팀의 3-2 패배를 피할 수 없었다. 이후 10라운드 삼프도리아전부터 메시나전까지 리그 4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다. 더불어 합숙 전날 나이트클럽에서 늦은 시간까지 밤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진데다 틈만 나면 소속팀 합류 시간에 늦으며 팀의 베테랑인 베론은 그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판했으며,[22] 그는 자친토 파케티 회장과 면담하였다.[23] 그는 부진한 평판을 UCL 조별리그 아르테메디아 브라티슬라바와 레인저스를 상대로 해트트릭과 1골을 기록하며 만회하였다.
파일:아드리아누 베론.jpg
아드리아누-베론
득점 페이스를 회복하는 듯 보이던 아드리아누는 리그 14라운드 아스콜리전부터 칼리아리전까지 6경기 동안 7골을 넣었다. 특히 15라운드 AC 밀란과의 밀라노 더비에서 프리킥으로 마틴스의 골을 도우고, 페널티킥 골과 경기 종료 직전 비에리의 마크를 무력화한 극적인 헤딩 결승골까지 2골을 기록하며 3-2 명승부를 연출하였다.

그러나 리그 20라운드부터 리그 7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며 기복이 심하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무렵 호나우두의 전 부인 다니엘라 시카렐리와 임신설이 이슈되기도 하였으나, 25라운드 유벤투스전 이후 저조한 득점력, 만치니 감독과 다툼으로 인해 비난은 더욱 거세지게 되었다. 경기력에 대한 아드리아누의 부담감은 감정으로 이어져 26라운드 리보르노전에서 상대 수비수 그란도니의 뺨을 때려 2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비디오 분석으로 철회되었다.

연이어 사건이 터졌다. 챔스 16강 아약스전을 앞두고 밤 늦게 술을 들이키는 장면이 TV 화면에 찍힌 것이다. 최악의 모습은 UEFA 챔피언스 리그에도 이어졌고, 16강 아약스 2차전까지 16회의 빗나간 슈팅을 날리며 무효 슈팅횟수 1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한 달후, 챔피언스 리그 8강 비야레알을 상대로 두 경기에서 아드리아누는 1골을 넣는데 그쳤고, 2차전 비야레알 원정에서 리켈메에게 관광 당한 인테르와 함께 언론, 팬들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2차전 비야레알 원정의 하프 타임에 베론이 아드리아누의 목을 잡는 장면이 포착된데다, 라커룸에서 주먹다짐을 벌인 사실이 전해졌고, 언론에 불화설을 지피며 결국 베론의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 귀향의 단초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드리아누는 리그 30라운드 이후 만치니감독 외 동료 선수들과 지속적인 언쟁을 벌이며 5경기나 결장되었다. 그는 갖가지 언쟁으로 간사한 언론의 집중 표적이 되었는데, 공개적으로 "인테르에서 나를 쫒아내려는 '아르헨티나인 마피아'가 있다"라며 베론을 향해 비난을 가하고, UOL 에스포르테와 인터뷰에서는 "내가 좋은 컨디션일 때는 인터 밀란이 팀에 대해 좋은 말들만 하기를 요구해서 난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 나를 변호해주는 팀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불행히도 클럽이 언론을 통제할 수는 없어 내가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라며 파장을 커지게 만들었으나, 해당 보도는 오해라며 논란을 잠재우는데 나서기도 하였다.[24][25][26] 보름 후, 그는 인테르에 남는다며 불화설을 일축하였으며, 브라질 대표팀에 소집된 이후 대표팀에서는 마음이 편하다는 인터뷰를 남겼다.[27] 부적절한 아드리아누 발언에 열받은 베론은 남미지역 일간지를 통해 "그는 자신이 벌써 호나우두 호나우딩요처럼 최고의 선수인줄 착각하고 있다"라며 일침을 날렸다.[28]

인테르는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를 우승하였고, 칼치오폴리 이후 스포츠 법원의 판결과 이탈리아 축구 협회의 징계에 따라 05-06 시즌 스쿠데토를 탈환하며,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탈락의 설움을 씻어냈다. 그러나 이 시즌 인테르 최다 득점자이자 주인공은 시즌 21골의 훌리오 크루스였고, 아드리아누는 리그 13골, UCL 6골로 시즌 19골만을 기록하며 아쉬운 시즌으로 혹평받았다. 그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부진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추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2005/06 시즌: 47경기(선발 42경기) 19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0 27 3 13 3
챔피언스 리그 9 8 1 5 1
코파 이탈리아 5 4 1 0 2
수페르코파 1 1 0 0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1 1
합계 47 42 5 19 8

1.4.4. 몰락

파일:external/img.sportalkorea.com/SK00705_20100421_040101.jpg
몸 관리 실패로 나락에 빠지기 시작하다
아드리아누의 또 다른 전설은 월드컵에서 떨어진 후인 2006-07 시즌부터 시작되며, 멘탈[29], 밤의 황제, 술드리아누, 탕아 등의 별명을 획득하며 부처 메이커로 자리잡는다. 걸핏하면 나오는 돌출행동 및 팀 이탈 등으로 든든한 지지자들을 부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인테르의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

당시 인테르는 미하일로비치, 베론, 마테라치, 레코바, 즐라탄, 크루스, 비에라 등등 다혈질로 유명한 선수들도 주장 사네티와 감독 만치니, 무리뉴 아래 똘똘 뭉쳐 플레이하는 팀이었다. 아드리아누는 이런 팀에서조차 난장판을 벌인 것이다.

월드컵 칼치오폴리 이후 게을러지기 시작했고, 그 공백도 리그 내 라이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오면서 존재감이 엷어졌으나, 즐라탄이 아드리아누의 잔류와 공존을 원했기 때문에 06-07 시즌[30]과 08-09 시즌에는 전세계 팬들에게 각인 되어있는 아들탄 조합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보여준 출전 경기 수가 드물어 축구팬들에겐 게임에서나 보일법한 조합이라 불리웠으나 이름값답게 나올 때마다 보통 이상은 해줄만큼 시너지가 좋은 조합이었고, 리그 중하위권 팀을 상대로는 공포의 듀오였다. 물론 아드리아누의 선수생활 태도와 연이은 구설수로 출전이 줄어들며 많은 모습을 보이진 못한 조합이다.[31]
파일:2006-2007 인테르 아드리아누 크레스포 이브라히모비치.jpg
06-07 세리에A 17연승 당시 공격진
2006-07 시즌, 아드리아누는 즐라탄, 크레스포와 함께 호흡을 간간히 맞추며 인테르의 공격을 도왔고, 리그에서 5골 11도움으로 어시스트 최상위권에 위치되는 나름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기대치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득점력이었고, 2006년 3월 29일 비야레알전 후부터 12월 22일까지 200일이 넘는 무득점 행진과 함께 점점 망가지는 몸파티 사진 유출 등 구설수가 쌓여만 갔다. 이러한 행적으로 2006년 황금 쓰레기통 상(비도네도르)을 수상하는 불명예까지 안게 되고,[32][33] 인테르가 아드리아누를 현금을 얹어 메시와 트레이드하는 제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축구 역사가 뒤바뀌어버릴 루머까지 나오기도 하였다.[34] 2007년 2월 들어서는 3경기 연속골을 집어넣으며 폼 회복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이트클럽 폭행 사건으로 또다시 구설수를 적립한다. 자세한 내용

2006/07 시즌: 30경기(선발 19경기) 6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3 14 9 5 11
챔피언스 리그 3 1 2 0 0
코파 이탈리아 3 3 0 1 0
수페르코파 1 1 0 0 0
합계 30 19 11 6 11

호나우지뉴가 월드컵 이후로 나이트클럽 단골에 과음 등을 일삼은 것은 유명하지만 아드리아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했다. 정신적인 혼돈에 향수병마저 시달리자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과 인테르 수뇌부는 그의 심리 재활과 약물 치료를 위해 브라질로 보낸다. 이때 아드리아누를 가엽게 여긴 호나우두가 적극 옹호하자 화가 난 만치니가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며 주변인들이 설전을 벌이는 형국까지 펼쳐졌다.[35][36][37] 고향에 가면 아무래도 나아지겠지 싶어 취한 조치였고, 실제로 몸을 다시 만들며 상 파울로에서 임대 신분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한 후, 반 시즌 동안 29경기 17골을 기록하여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8-09 시즌, 상 파울로에서 복귀한 뒤, 만치니 감독이 경질되고[38] 주제 무리뉴 감독이 들어온다. 이 시즌에 아드리아누는 세리에 A의 3골을 비롯해 시즌 22경기 7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최대 문제는 기본적인 사생활에 있었고, 여전히 못 고쳤다는 점이었다. 이탈리아로 돌아오자 다시 본격적인 난장판이 시작된다. 폭식하는 버릇은 재발하였고, 이 무렵 애인이었던 조안나 마차도한테 차여 우울증은 갈수록 심해졌지만, 동정표를 주기엔 도가 지나쳤다. 몸 관리는 점점 소홀해져 체중이 100kg을 넘을 뻔 하고, 주구장창 술을 마시고 훈련마저 빠지기 일쑤였다. 초딩도 아니고 독감이라는 핑계로 빠진 적도 있었고[39], 취기가 남은 채로 훈련장에 출근하고 쫓겨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40] 이 와중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뜬금없이 시비를 걸고 난투극을 벌이는 사건까지 생겼다.[41] 물론 한 덩치하는 그가 맞아서 정신 차릴 리가 없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의 마음과 심리상태는 피폐해진지 오래였다.

놀랍게도 불성실한 선수를 엄청 싫어하기로 소문난 무리뉴 감독이 아드리아누를 갱생시키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아드리아누 본인도 무리뉴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때 아드리아누만 이런 게 아니라 훌리오 크루스도 갖은 민폐를 끼쳤지만 크루스는 그래도 무리뉴에게 사과하고 갱생에 성공했다. 사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아드리아누를 쉽게 내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인테르의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가 강력하게 실드를 쳐주고 있었다. 과거 호나우두의 장기 부상 때에도 무던히 인내를 발휘했지만 이번엔 스케일이 달랐다. 호나우두는 선수생활이 위태로운 부상을 당했을 때도 열심히 재활했지만 그에 반면 아드리아누는 막장이었다.[42]

모라티 구단주는 "아드리아누에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지금은 굉장히 힘든 때이다", "처음 올 때도 부진했지만 파르마에서 그랬듯이 부활할 것이다" 등 계속 두둔했으며 무리뉴 감독도 이런 모라티의 설득에 아드리아누에게 기회를 끝까지 주려고 했다. 물론 인테르의 동료들도 아드리아누가 재기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응원해주었다. 특히 막스웰, 하비에르 사네티 등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 아드리아누가 남아주길 원한다고 했을 정도는 희망고문이었다.

잉여인간으로 한해를 보내고, 대망의 2009년 4월 브라질 대표팀 월드컵 예선에 나갔다. 그리고 밀라노로 만시니, 막스웰, 세자르 등은 돌아왔는데 아드리아누가 없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알아봤더니 가족과 지내고 있다고. 에이전트는 주중 아드리아누가 돌아온다 했지만, 시간을 끌다가 돌연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잃었습니다'라고 휴식 선언해버렸다.[43][44]
파일:아드리아누 돌연 휴식 선언.jpg
갑작스런 휴식 선언
사태가 이쯤 되자 모라티 구단주도 붙잡지 않기로 결심하고, 상호해지에 합의해 방출한다.[45] 그렇게 아드리아누는 세바스티안 다이슬러처럼 조기 은퇴한 비운의 천재가 될뻔했으나... 그는 브라질의 플라멩구에 입단한다. 그럼 상호해지할 때 받은 돈은? 당연히 먹튀했다.[46] 결국 인테르의 간판 스타였던 아드리아누는 인테르를 포함하여 세리에 A 팬들에게 '기적의 사나이'에서 '최악의 선수'로 전락하였다.

2008/09 시즌: 22경기(선발 17경기) 7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12 9 3 3 3
챔피언스 리그 7 5 2 2 0
코파 이탈리아 3 3 0 2 0
합계 22 17 5 7 3

1.5. CR 플라멩구

파일:adriano-flamengo-2009.jpg
선수로서의 마지막 활약 시기
이제 선수로서 끝난 줄 알았지만, 그나마 남은 클래스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였다. 가자마자 훈련에 무단 불참할 만큼 신뢰가 안 갔지만,[47] 아드리아누는 플라멩구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리그 득점왕 + 리그 베스트 11 + 리그 우승 업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 둥가는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아드리아누를 탈락시킨다. 브라질 축구가 아니라는 비난조차 들을 정도로 브라질 팀에 조직력을 강조한 감독인만큼 썩어빠진 근성으로 팀 분위기나 깨는 선수는 질색이었으니 당연했다.[48]

그리고 빈자리는 아드리아누에 비하자면 한낱 1부 리그 주전 선수에 불과했던 루이스 파비아누가 메꾼다.[49] 이후 아드리아누는 틈틈히 유럽으로 복귀한다는 뉘앙스를 던졌고, 유럽으로 복귀하면서 그 많은 팀 중에 하필이면 AC 밀란으로 복귀하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폭풍처럼 비난 받았다.

2010년 봄, 플라멩구의 마르코스 브라츠 단장이 밝히기로는 알콜 중독까지 재발했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50]

1.6. AS 로마

파일:external/nst.sky.it/sensi_adriano_presentazione_roma_ap.jpg
그러더니 AS 로마로 진짜 돌아왔다. 인테르팬은 얼굴도 보기 싫겠지만 모라티 구단주는 "아드리아누가 로마에서도 잘 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대인배임을 인증했다.

아드리아누의 전성기 기량을 생각해보면 탁월한 영입일지도 모르지만, 여태까지 저지른 짓들을 보면 아무리 자금이 딸려도 너무나 무리한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라니에리 감독도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아드리아누가 또 사고를 치면 '남은 주급없이 방출한다'는 조건을 걸고 있기에 딱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과연 재기하여 토티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 자리에 오를지, 아니면 변함없는 밤의 황제로 끝날지는 모두 아드리아누 자신에게 달렸다. 일단 본인은 갱생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호나우지뉴가 밀란에서 열심히 다이어트할 때 아드리아누 본인은 꼴랑 1킬로그램을 뺀다. 게다가 시즌이 시작하기 전, 부상으로 한 달간 못 나온다고 한다. 로마는 급한 김에 비슷한 스타일의 마르코 보리엘로를 밀란에서 임대 영입했다. 하지만 2010년이 다 가도록 체중 감량 실패, 부상으로 벤치 신세에 오히려 보리엘로가 주전으로 떠올랐고 아드리아누는 벤치에 앉아 있기도 힘겨운 시즌을 보내면서 22%의 득표율을 기록, 12%로 2위에 오른 아마우리를 제치고[51] 최초로 비도네도르 3회 수상자가 되었다. 게다가 부상 회복을 위해 돌아간 브라질에서 음주 운전까지 저질렀다고... 답이 없다.[52]

그래도 변함없이 징징거리는 중에 보다 못한 호나우두가 '그냥 브라질로 돌아오라'고 인터뷰에서 언급도 하고 아드리아누 본인도 '이런 식이면 나가겠다'고 호소를 해보았지만 라니에리 감독은 '불만 있으면 브라질로 돌아가라'라고 못 박아서 한동안 얌전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콰밥만훈과 함께 엮여서 오호대괄호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저들을 아드리아누에 견주는 게 굴욕일 정도이다[53]. 적어도 이들은 먹튀라고 욕은 먹었어도 다른 팀으로 이적하여 그 오명을 씻으며 맹활약하고 있으니 말이다. 만시니만 빼고...최근엔 한 것도 없는 주제에 또 부상으로 한달 끊었다. 게다가 몸무게가 105kg[54]으로 세리에 A에서 가장 무거운 선수로 기록되었다.

결국 로마에 가서도 성격을 못 고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코리치안스로 이적하면서 브라질 무대로 돌아왔다.

1.7. SC 코린치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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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도 부상으로 6달이나 쉬다가 복귀해선 4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는 부진을 보인다.

게다가 2011년 12월 23일에는 장난으로 총을 쏴 여자를 부상시켰다는 총기사고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기사

2012년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호텔에 감금되어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있다.[55] 와중에 커피잔에 술을 몰래 타마시다가 걸렸다는 해괴망측한 소문까지 들리는 중...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 코리치안스로 이적해서도 여전히 버릇을 못 고치고 또 쫓겨났다.

2013년 말엔 소속 팀 없이 개인 훈련에 매진하기도 하였다. 현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있다.

축구 팬이라면 그 시절의 짧은 임팩트보다는 그 이후 길게 늘어진 온갖 막장 행보는 잊지 못 할 것이다.

1.8. 아틀레치쿠 → 마이애미 이후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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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와 다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훈련 불참으로 또 쫓겨났다. 아드리아누의 현역생활은 사실상 희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갱단과 마약거래에 연루되어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방출 뒤 자택에서 근신중이라고 한다. 이후 프랑스 리그 2 소속 르 아브르 AC와 계약 협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다시 축구 생활을 이어 갈 것이라고 보았으나...

2014년 11월 4일 마약 조직과 거래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브라질의 주요 언론들은 현지 검찰의 말을 인용해 “아드리아누가 리우데자네이루 검찰에 기소됐다”고 크게 보도했다. # 최대 징역 10년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2부 리그 르 아브르로 복귀를 한다는 기사가 나왔었으나 구단 측이 자금 부족을 이유로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입단이 불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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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16년 1월에 미국 프로축구 4부 리그 격인 NPSL(National Premier Soccer League)의 마이애미 유나이티드 FC에 입단[56]하며 겨우 소속팀을 찾았다.

그러나 2016년 여름,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이때 국내기사에 브라질의 빈민촌에서 살고 있다라는 기사가 올라왔으나 어렵게 생활한다는 정보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향인 리우 데 자네이루 빈민가에 친구에게 놀러간 것으로 추측되는 본인의 SNS에 업로드된 사진이며 SNS만 찾아봐도 얼마나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랜만에 주세페 메아차를 방문한 아드리아누
2016년 12월 22일,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 인테르vs라치오 세리에 경기 의전으로 방문하여 서포터즈와 오랜만에 인사하였다. 기사

한동안 무적 상태로 인해 잠정 은퇴인줄 알았으나 2017년 10월 11일 브라질 언론 매체 'globo'와의 인터뷰에서 현역 유지를 선언하였다. 내년 1월에 훈련장으로 돌아갈 것이며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그의 과거 행적을 알고 있다면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 기사


2017년 12월 27일, 지쿠, 호마리우, 다비즈 등의 과거 스타들이 출전한 플라멩구 자선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살은 많이 빠진 상황...그리고 연말, 현역 복귀가 임박했다는 기사가 국내에도 올라왔다. 기사

2018년 2월 중순 현재, 1월부터 몸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황을 알리는 영상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중이지만, 훈련 영상만 보아도 폭발력은 둘째치고 프로다운 경기력도 보장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파라나엔시 시절과 마이애미 시절의 행적 때문에 절대 방심은 금물. 프로 리그에서 떠난지 공백이 3년이 훌쩍 넘었으며, 2월 17일 생일로 나이가 어느덧 36세다. 여전한 멘탈 클래스를 보여줄지, 아니면 프로 선수로서 재기에 성공할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3월 24일, 인테르 훈련장에 오랜만에 방문하여 선수들과 만남을 가졌고 마우로 이카르디, 하피냐 아우칸타라, 다우베르트 엔히키 등과 사진 촬영을 하였다. 외관상으로 보기에 상당히 후덕해서 몸 만들기는 지지부진한 걸로 보인다.

2018년 12월 27일, 지쿠, 카카, 알다이르, 줄리우 세자르,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등이 참여한 자선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12월 DAZN과 인터뷰 기사 1, 기사 2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아직 은퇴하지는 않았다며 여지를 남겨 두었다.

2.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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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호나우두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확신되던 선수였다.

국제대회 정복하던 아드리아누

2.1. 데뷔 초기

아드리아누의 첫 국제무대 경험은 1999년 뉴질랜드에서 열린 U-17 세계 선수권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한골도 득점하지 못했고, 결승전에선 후반 교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드리아누는 이후 무서운 속도로 반등하였고 2001년 1월, 에콰도르에서 열린 U-20 남미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하였다. 이어서 6개월 후인 2001년 여름, FIFA U-20 월드컵에도 출전한 아드리아누는 8강에서 탈락하였지만 6골로 득점 2위에 오르며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아드리아누의 첫 성인대표팀 데뷔전은 2000년 11월 15일, 18살때 월드컵 예선 콜롬비아전이었다. 강인한 체격에 브라질리언답지 않게 파워풀한 플레이를 즐기는 공격수는 브라질 팬들에게 반가운 시선을 받진 못하였다. 그들이 원하는 이상향인 펠레, 지쿠, 호마리우 같은 작은 거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아누는 이후 유럽 무대에 진출하였고, 파르마에서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2003년부터 브라질 세대교체 일환의 중심이었다. 2003년 6월 11일, 친선경기 나이지리아전에서 아드리아누는 키퍼가 펀칭한 크로스 볼을 쇄도하며 오른발 강슛으로 집어넣었고, 이 골은 팀의 3번째 골이자 그의 데뷔후 첫 골이었으며 브라질은 3-0으로 승리하였다.

아드리아누는 2003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린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호나우두를 대신해 호나우지뉴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그는 1차전 카메룬전에 출전하였지만 졸전 끝에 66분 교체되었고 팀은 0-1로 패배하였다. 다음 경기 미국전에서 아드리아누는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팀의 결승골까지 득점하였고 1-0 승리를 거두었다. 3차전 터키전에서 아드리아누는 전반에 수비라인 오프사이드를 교묘하게 침투하며 로빙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풀타임 출전에 팀은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브라질은 비록 대회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아드리아누는 2골을 넣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2003년 11월에 생긴 부상으로 2004 CONMEBOL Men Pre-Olympic Tournament를 놓쳤다.

2.2. 2004 코파 아메리카

아드리아누는 2004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물이 오른 아드리아누는 이 대회부터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생겨버렸다. 득점을 책임질거라 생각됐던 스타팅 멤버 9번 루이스 파비아누가 대회에서 단 2골에 그치는 상황이 일어나며, 브라질 축구협회로부터 외면받게 된 것이다. 아드리아누의 포스에 유망주였던 프레드까지 등장하며, 루이스 파비아누는 이후 2005 컨페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때도 대표팀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아드리아누는 칠레와의 첫경기에서 63분 출전하였고, 팀은 1-0 승리하였다. 2차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그는 위협적인 슈팅 등 매서운 공격을 보여주며 해트트릭을 기록하였고 브라질은 4-1로 승리하였다. 3차전 파라과이전에 90분 출전하였지만 팀은 1-2로 패배하였다. 그는 8강 멕시코전에도 출전하였고 경기를 지배하였다. 매서운 돌파로 브라질의 1번째 골인 알렉스의 페널티킥을 만들어낸 아드리아누는 낮게 깔리는 중거리슛을 날리며 팀의 2번째 골을 득점하였고, 침투 패스를 받아 키퍼를 따돌리며 3번째 골까지 득점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팀의 4번째 골인 올리베이라의 득점에서 힐패스로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며 브라질의 경기 득점에 모두 관여하는 스펙타클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4강 우루과이전에서도 아드리아누는 46분경 동점골을 기록하였고 팀은 1-1 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였다.

결승전에서 숙명의 라이벌인 아르헨티나를 만났고, 아드리아누는 위협적인 커브슛과 상대 선수 4명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중앙 돌파까지 보여주었으며, 1-2 상황에서 93분경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기적같은 동점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은 승부차기 4-2 승리로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확정지었다. 경기가 끝난 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은 아드리아누를 우승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아드리아누는 대회 MVP와 6경기 7골로 득점왕[57]을 싹쓸이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이룩했고 '호나우두의 후계자'란 수식어를 얻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축구 칼럼니스트들은 "아드리아누는 힘, 위치선정, 공간장악력 등 모든 것을 갖춘 뛰어난 공격수이다. 이탈리아가 아닌 PL에서 뛴다면 더 적합한 선수."라며 그의 능력을 한껏 치켜세우기도 하였다.[58]

코파 아메리카 이후부터 아드리아누는 기량이 저하되던 호나우두를 대비해 대표팀에 중용되었다. 2004년 9월 5일, 월드컵 남미예선 볼리비아전에서 아드리아누는 호나우지뉴의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하며 팀의 3번째 골을 기록했고 브라질은 3-1로 승리하였다. 10월 9일, 베네수엘라전에 교체 출전하였고 키퍼와의 1:1 상황에서 득점하며 팀의 마지막 골을 기록하고 5-2로 승리하는 등 월드컵 예선에서도 활약하였다.

2.3.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파일:아드리아누컨페드트리플크라운.jpg
국제 대회를 정복하던 아드리아누
아드리아누는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하게 되었고 호나우지뉴, 카카, 호비뉴와 함께 막강한 공격진을 구축하였다. 당시 2005 컨페드컵은 4년 주기로 바뀐 첫 컨페드컵이었으며, 개최지도 굉장히 가까운 독일이었기 때문에 출전국의 명단 수준도 1군급으로 제출될만큼 흥행한 대회였다. 그는 이 대회에서도 주인공이 되었다.

아드리아누는 1차전 그리스전에 출전하였고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41분에 중거리 골을 기록했는데 경이로운 커브슛이었고, 이 장면은 아직까지 그의 대표되는 중거리 슛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아드리아누는 2차전 멕시코전에도 출전했으나 브라질은 멕시코 최고의 공격수였던 보르헤티한테 헤딩골을 실점하며 패배하였다. 아드리아누는 3차전 일본전에 62분 출전하였고 브라질은 호나우지뉴, 호비뉴의 연속 골로 2-2 무승부를 거뒀다.

4강에서 메르테사커, 후트, 포돌스키, 보로프스키 등 젊은 피가 대거 등장한 독일을 만났지만 브라질엔 아드리아누가 있었다. 이 경기는 그만을 위한 독무대였고, 전차군단의 강한 피지컬과 탄탄한 조직력을 압도적인 피지컬과 섬세한 볼터치로 파괴하는 모습은 대회의 백미였다. 그는 21분경 장거리 프리킥으로 득점하였고, 후트에게 힘으로 도전하며 호나우지뉴의 페널티킥까지 얻어주었다. 2-2로 흘러가던 76분, 아드리아누는 메르테사커와 후트를 따돌리며 왼발로 낮게 차넣었고 브라질의 3-2 승리 확정과 함께 MOM에 선정되었다.[59]

결승전 상대는 다시 만난 아르헨티나였고, 경기가 있기 얼마 전 월드컵 지역예선과 청소년 대회에서 패배했기에 중요한 설욕의 기회였다. 이 경기에서 아드리아누는 아르헨티나를 난타해버렸다. 아드리아누는 전반 11분만에 에인세의 태클을 뛰어 넘고 번개 같은 슈팅을 꽂아버렸다. 이후 카카, 호나우지뉴, 본인의 헤딩골로 대미를 장식하며 브라질은 4-1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전세계 축구팬들이 이 파워포워드의 강력함에 열광했으며, 그는 리켈메, 발락 등을 제치고 5경기 5골로 골든볼골든슈까지 수상하며 국제 대회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60][61]

아드리아누의 물 오른 득점 감각은 2004~05년 국가대표팀 23경기 19골이란 어마무시한 기록을 만들어냈고, 2006 월드컵을 앞두고 스포츠 전문 베팅 업체인 <bwin>은 독일 월드컵 득점왕 후보 배당률에서 아드리아누의 득점왕 등극 가능성을 9-1로 발표, 출전국 스트라이커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62]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도 활약한 아드리아누는 남미 예선 칠레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2006 독일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짓기도 하였다.

2.4. 2006 독일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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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월드컵 브라질 판타스틱 4
아드리아누는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하였고 호나우지뉴,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카카는 월드컵 시작 전부터 ' 판타스틱 4'라고 불린 마방진으로 모든 축구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63] 그는 1차전 크로아티아전에 90분 출전하였고 카카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2차전 호주전에서 그는 호나우두의 어시스트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의 아내가 월드컵 도중 아기를 출산해서 그는 아기를 위한 세레머니를 하였는데, 아기를 출산한 아내가 호나우두의 전 애인이라고 한다. 아드리아누는 16강 가나전에서 전반 5분경, 환상적인 스크린 플레이로 카카의 스루패스를 호나우두의 1:1 마무리로 연결하였고 45분경엔 골까지 넣었다.[64] 그러나 8강 프랑스전에서 교체출전하였고 브라질은 지네딘 지단의 어시스트를 받은 티에리 앙리의 결승골로 1-0 패배하였다. 대회 내내 슈팅을 5번 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부진으로 아드리아누는 여러 언론 매체에 기대 이하의 경기으로 혹평받았다.

2.5. 그 이후

2006 월드컵 이후, 아드리아누는 전세계 팬들에게 의구심을 들게 하였다. 둥가 체제로 전환된 브라질 대표팀에서 방탕하고 나태한 아드리아누의 자리는 없었고, 2007년 2월 6일 포르투갈과의 친선전 이후 그는 1년 넘게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였다. 1년 3개월 이상 지난 후, 상파울루에서 활약과 인터 밀란으로 돌아와 훈련에 복귀하며 일련의 도약을 선언한 아드리아누는 2009년 초까지 대표팀에 9경기 차출되었지만 예전의 파워풀한 선수가 아닌 사고뭉치였고, 2010년 3월 2일 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를 마지막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23인 최종명단과 백업 선수 명단에서 파비아누, 그라피테 등에 밀리며 셀레상에서 아드리아누의 자리는 사라지게 되었다.


[1] 아드리아누 - 몬스터의 진실 <월드사커 다이제스트> [2] 아드리아누 이야기 <LifeBogger> [3] 아드리아누 - 의혹의 스트라이커 <월드사커 다이제스트> [4]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리스티안 비에리, 아드리아누, 다비드 트레제게,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안드리 솁첸코, 에르난 크레스포 [5] 호나우두, "아드리아누의 '새로운' 현상? 함께 하는 동안 모든 걸 전수해줄 거야" <Inter.it> [6] 당시 인테르는 마시모 모라티의 굉장한 욕심으로 FW 포지션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의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호나우두, 비에리, 모하메드 칼론, 하칸 쉬퀴르, 니콜라 벤톨라. 하필 부진에 허덕일때 호나우두가 복귀했으니 밀려나는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7] 소유권 분담과 파비오 칸나바로 이적의 연관으로 파르마의 실수령액은 절반 정도에 가깝다. [8] 당시 유벤투스나 밀란의 스쿼드를 보면 수긍될 수 밖에 없다. 두 구단에 비해 미드필더 진이나 수비진이 상대적으로 가벼웠고, 벤치 또한 라이벌들에 비해 너무 가벼웠다. 밀란의 공격수 후보엔 필리포 인자기, 욘 달 토마손, 아모로소 등이 버티고 있었고 유벤투스 또한 델 피에로와 아드리안 무투 등 세리에 정상급 선수들이 후보에 득실거렸는데 인테르는 기껏해야 유망주 수준이였던 오바페미 마틴스나 재능이나 클래스는 확실하지만 유리몸이였던 알바로 레코바나 희대의 먹튀 반 더 메이데가 대기하고 있었다. [9] 혹은 레전드급은 말디니와 사네티의 대결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10] 2000년대 초반은 지금 메날두시대처럼 1년 통산 골수가 40골을 넘어가는 공격수가 많은 시대가 아니었다. 이 기록은 당시 내로라하던 공격수 호나우두, 안드리 셰브첸코, 뤼트 판니스텔로이의 기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이보다 높은 기록은 47골의 티에리 앙리뿐이었다. [11] [유럽리그] 셰바, 아드리아누 '우린 최강 콤비' <MBC SPORTS+> [12] 비에리는 이 시즌 기량 저하로 방출되다시피 나가며 AC 밀란과 계약하였다. [13] 아드리아누, 왼발 하나로 해트트릭 <오마이뉴스> [14] 당시 논란이 있던 8강 2차전이었는데 후반전에 아드리아누가 부상 아웃되었고 캄비아소 헤딩골의 석연찮은 취소, 이에 폭발한 인테르 울트라스들이 홍염을 투척하는 와중 디다의 머리에 맞추는 사고가 일어나며 인테르의 몰수패로 끝난 막장 8강이었다. [15] 바르셀로나 소속 호나우지뉴, 에투와 AC 밀란 소속 셰브첸코, 그리고 PSV의 박지성. 최종 수상자는 호나우지뉴. [16] 오죽하면 당시 인테르가 보여주던 나쁜 수비력과 맞물리며 아드리아누가 골을 넣은 경기는 비긴다는 말까지 나돌았으며 호나우두는 "아드리아누는 승리할 수 없는 팀에 있어서는 안된다" 라고 인테르를 디스하기도 했다. [17] 아드리아누, 2005년 페레스 회장의 꿈 <레알매니아> [18] 첼시, 아드리아누에 7천만 파운드 파격 제안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 [19] The Players' Tribune과 인터뷰에서 사실이라 밝혔다. [20] 레알, 아드리아누 영입에 1천억원 베팅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21] 나중에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버지의 죽음 후 알콜중독에 빠졌다고 한다. 주변의 친구들과 술, 여자에 빠져서 술취한 상태로 훈련소에 도착했다고한다. 밀란은 아드리아누를 감싸고 돌았지만 잘못된 자기관리를 이어간 선수가 얼마나 나쁜 커리어를 기록하는지 알게되는 부분이다. [22] 이때 아드리아누와 주먹다짐까지 오고갔다는 설이 있다. 이 시즌이 끝나면서 인터밀란과의 계약이 종료되자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23] 아드리아누, "모두 내 잘못" 회장에 사과 <스포탈코리아> [24] 아드리아누, 소속팀 인터 밀란에 불만 토로 <스포탈 코리아> [25] 아드리아누, "인터 밀란 맹비난 보도는 오해" <스포탈 코리아> [26] 피사로, 아드리아누 비판 대열 합류 <스포탈 코리아> [27] 아드리아누, '대표팀에서는 마음이 편해' <MBC SPORTS+> [28] 베론, "아드리아누는 과대평가되었다" <사커라인> [29] 매번 재기에 성공할 것 같이 보여지다가 망하는 무한 루프를 보여주는 심각하게 약한 정신력 때문에 생긴 별명. 이젠 아드리아누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30] 초반은 부상으로 이탈, 후반은 태도 문제로 인한 결장. [31] 06-07 시즌부터 슬슬 멘탈이 터지기 시작하여 크레스포와 크루스가 번갈아가며 주전을 꿰어찼다. [32] '부진' 아드리아누, 여자들과 파티 사진 유출 <MBC SPORTS+> [33] [밀라노통신] 카사노-아드리아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스포탈 코리아> [34] 伊 언론 '인테르, 메시↔아드리아누+1082억' 보도 <MBC SPORTS+> [35] 호나우두, '아드리아누에게는 도움이 필요' <MBC SPORTS+> [36] 만치니 감독 "호나우두, 뭘 모르면 가만히나 있어" <골닷컴> [37] 레코바 "아드리아누, 이제 스스로 일어서야" <골닷컴> [38] 세리에A에서는 4년 연속우승을 이끌었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연속으로 16강에서 무너지며 물러났다. [39] 인테르 의심 "아드리아누, 꾀병 아냐?" <골닷컴> [40] 성난 무리뉴 감독, "아드리아누, 돌아가" <뉴시스> [41] 2017년 인터뷰에서 밝혀졌지만 즐라탄도 이미 아드리아누의 정신적인 혼돈을 알고 있었다. [42] 인터 밀란의 '아드리아누 달래기' 계속될까? <데일리안> [43] 아드리아누 은퇴 선언 "열정을 잃었다" <골닷컴> [44] '잠시만 안녕'을 선언한 아드리아누 <엑스포츠뉴스> [45] 인테르 회장 "아드리아누의 선택을 존중해" <골닷컴> [46] 아드리아누, 인테르와 계약 해지 합의 <골닷컴> [47] ‘문제아’ 아드리아누, 브라질서도 팀 훈련 무단으로 불참 <스포탈코리아> [48] 호나우지뉴 탈락 같은 경우는 둥가 감독이 꽤나 욕먹었지만, 아드리아누 만큼은 누구나 수긍했다. [49] 물론 파비아누가 전성기 아드리아누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속팀이나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덕분에 인지도는 꽤 높은 편이다. [50] 플라멩고 '아드리아누, 알콜 중독 재발 했다' <베스트일레븐> [51] 참 굉장한게...아마우리는 2010년 1년동안 리그에서 한 골밖에 못넣었다! [52] 아드리아누, 브라질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 <OSEN> [53] 비도네도르 기준이면 콰레스마가 1위 한번, 2위 한번 차지한 것이 끝이다. [54] 타겟맨답게 189cm로 키는 큰 편이지만 축구선수란 걸 감안하면 정말 심각하다. 디디에 드록바가 189cm에 91kg,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195cm에 95kg이다. [55] 아드리아누, 살좀 빼!...호텔에 감금 <골닷컴> [56] 해당 기사에는 NASL소속 마이애미 유나이티드라 써져 있지만 명백히 오타다. 아드리아누가 입단한 클럽은 4부 리그 NPSL 소속 마이애미 유나이티드 FC다. [57] 2위 그룹은 킬리 곤잘레즈, 사비올라, 카를로스 부에노의 3골. 더군다나 7골 중에 PK골은 단 1개도 없었다. 말그대로 원맨쇼를 보여준 것. 거기에 1959년 대회에서 8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펠레 이후 45년 만에 단일 대회에서 7골 이상을 기록하였다. [58] 아드리아누 전성시대 도래 <MBC SPORTS+> [59] 유럽 축구 '침몰'의 날 <SBS 뉴스> [60] 브라질, 아르헨 대파…컨페드컵 우승 <SBS 뉴스> [61] '더 이상 제2의 호나우두라는 말은 필요없다.' <연합뉴스> [62] 독일 월드컵 이 선수를 주목하라:아드리아누(브라질) <경향신문> [63] [춘하추동] 마방진(魔方陣) [64] 여담으로 이 골이 브라질의 월드컵 통산 200번째 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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