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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05:53:06

시게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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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 왕국 발티 왕조 3대 군주
Sigeric | 시게리크
제호 한국어 시게리크
라틴어 Sigeric
생몰 년도 미상 ~ 415년 8월 22일
재위 기간 415년 8월 15일 ~ 415년 8월 22일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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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고트 왕국 3대 군주. 아타울프 암살을 사주한 뒤 왕위에 올랐으나 7일만에 살해되었다.

2. 행적

아타울프에게 주살된 시루스의 형제라는 것 외에 그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역사가 M. 로사리오 발베르데는 그가 알라리크 아타울프가 속한 발티 왕조에 반대하는 로소몬 씨족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반면 아나 M. 히메네스는 발티 왕조의 혈통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5세기의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왕조의 혈통은 서고트 왕국이 자리잡게 한 테오도리크 1세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아타울프는 지난날 알라리크와 자신을 죽이려 했고 413년 갈리아에서 요비누스의 최측근을 맡으면서 갈리아에 정착하려는 것을 방해한 시루스를 주살했다. 그러면서도 시루스의 세력을 숙청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시게리크는 형을 죽인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했고, 마침 서로마 제국 호노리우스와의 협상에 연연하며 풍요로운 아프리카로 진출하지 않으려 하는 아타울프에게 불만을 품은 고트족 귀족들을 포섭했다.

415년 8월 14일, 아타울프는 바르셀로나의 궁정 마구간에서 말을 보살피던 중 두비우스 또는 에버울프라는 이름의 하인에게 살해되었다. 다음날 지지자들의 추대로 서고트족의 왕이 된 그는 아타울프가 첫번째 결혼을 통해 낳은 다섯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했으며, 아타울프의 두번째 부인이자 로마 제국의 공주 갈라 플라키디아를 학대했다. 그는 갈라에게 말을 탄 자신을 뒤에서 따라가며 성벽 출구에서 도심까지 12마일을 걸어가게 했다. 이는 로마 제국이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개선식을 개최하는 것을 따라한 것이었다.

그러나 415년 8월 22일 왕위에 오른지 7일만에 아타울프를 추종하던 이들에게 살해되었고 왈리아가 새 왕으로 선포되었다. 왈리아는 서로마 제국과 평화 협정을 맺은 뒤 갈라 플라키디아를 로마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