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4:29:04

소련 장관회의

소련 인민위원회의에서 넘어옴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내각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상징 <colcolor=#000,#fff> 국기 · 국장 · 국호 · 노동자 마르세예즈 · 인터내셔널가 · 소련 찬가 · 낫과 망치 · 붉은 별
정치 정치 전반 · 소련 공산당 · 소련 공산당대회 · 크렘린 · 레닌 영묘 · 크렘린 벽 묘지 · 소련 최고회의 · 소련 장관회의 · 헌법
블라디미르 레닌 · 이오시프 스탈린 · 니키타 흐루쇼프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 유리 안드로포프 · 콘스탄틴 체르넨코 · 미하일 고르바초프
최고지도자( 서기장) · 국가수반 · 대통령
군사 소련군( 장비 · 소련 육군 · 소련 해군 · 소련 공군 · 소련 방공군 · 소련 전략로켓군) · 스타프카 · 소련 국방장관 · 스페츠나츠 · 정치장교 · 바르샤바 조약 기구 · 열병식
소련의 핵개발( RDS-1 · 차르 봄바 · 세미팔라틴스크) · 소련군 vs 미군 · 소련군 vs 자위대 · 대외전쟁
치안 체카 · NKVD · KGB
경제 경제 · 경제사 · 소련 루블 ·
인문 민족 · 언어 · 종교
역사 역사 · 러시아 혁명 · 러시아 내전 · 신경제정책 · 대숙청 · 독소 폴란드 점령( 카틴 학살) · 대조국전쟁 · 소련-일본 전쟁 · 냉전( 6.25 전쟁 · 스푸트니크 쇼크 · 쿠바 미사일 위기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 · 소련 존속 여부 국민투표 · 8월 쿠데타 · 소련 붕괴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외교 외교 · 미소관계 · 소련-유고슬라비아 관계( 티토-스탈린 결별) · 중소관계( 중국-소련 국경분쟁 · 중소결렬) · 나치 독일-소련 관계( 독소 불가침조약) · 독러관계 · 북소관계 · 한소관계 · 소일관계 · 소련-몽골 관계 · 소련-대만 관계 · 친소 · 소비에트 제국 · 브레즈네프 독트린 · 인테르코스모스
문화 문화 · 사회주의 리얼리즘 · 사미즈다트
막심 고리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미하일 숄로호프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스트루가츠키 형제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 · 아람 하차투리안 · DDT(밴드) · 키노
교육
요리
공휴일
우주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 반작용 추진 연구 그룹 · 세르게이 코롤료프 · 블라디미르 첼로메이 · 유리 가가린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 알렉세이 레오노프
스푸트니크 · 소유즈 우주선 · 보스토크 계획 · 보스호드 계획 · 살류트 프로그램 · 미르 우주정거장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 소유즈-아폴로 테스트 프로젝트 · 인테르코스모스
}}}}}}}}}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3대 국가기관
소련 공산당대회 소련 최고회의 소련 장관회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행정부 역사
인민위원회의 장관회의 내각[1]

1. 개요2. 구조
2.1. 상무회(Президиум)2.2. 행정각부
3. 역대 주석


파일:senatskaya-bashnya-kremlya.jpg
파일:1BDE2FCC-6B37-427C-8AD3-D7459C05A9BC.jpg

소련 장관회의가 개회되던 건물인 모스크바 크렘린 대회궁전(Сенатский дворец). 붉은 광장에서 레닌 묘 바로 뒤에 서 있는 건물이며 특유의 돔과 그 위에 붉은색 깃발은 소련 정부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러시아 연방에서 정부청사 및 대통령 관저 등 정부 주요 시설로 쓰고 있다. 당연히 밖에서만 구경이 가능하고 내부 출입은 불가능하다.

1. 개요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 Council of Ministers of the USSR / 소련 장관회의, 각료회의[2], 대신회의[3]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 Правительство СССР — является высшим исполнительным и распорядительным органом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власти СССР.
- 소련 장관회의, 즉 소련 정부는 소련 국가권력의 최고 집행 및 처리 기관이다.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образуется Верховным Советом СССР на совместном заседании Совета Союза и Совета Национальностей в составе Председателя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первых заместителей и заместителей Председателя,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председателе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 комитетов СССР.
- 소련 장관회의는 연방회의 및 민족회의의 합동회의에서 소련 장관회의 주석, 제1부주석 및 부주석, 소련 장관(각료), 소련 국가위원회 주석을 구성원으로[4] 하여 소련 최고회의에 의해 조직된다.

В состав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входят по должности председатели Советов Министров союзных республик.
- 연방구성 공화국 장관회의 주석은 그 직무상 소련 각료회의의 구성원이 된다.

По представлению Председателя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Верховный Совет СССР может включить в состав Правительства СССР руководителей других органов и организаций СССР.
- 소련 장관회의 주석의 제안에 따라 소련 최고회의는 소련의 다른 기관 및 조직의 총책을 소련 정부의 구성원으로 가입시킬 수 있다.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слагает свои полномочия перед вновь избранным Верховным Советом СССР на его первой сессии.
- 소련 장관회의는 새로 선출된 소련 최고회의의 제일차회기에서 그 전권이 이양된다.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ответствен перед Верховным Советом СССР и ему подотчетен, а в период между сессиями Верховного Совета СССР — перед Президиумом Верховного Совета СССР, которому подотчетен.
- 소련 장관회의는 소련 최고회의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그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또한 소련 최고회의의 폐회 중에는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에게 보고할 의무를 진다.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регулярно отчитывается о своей работе перед Верховным Советом СССР.
- 소련 장관회의는 그 활동에 관해서 소련 최고회의에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소련 헌법(1977년 브레즈네프 헌법) 제 128 ~ 130조.

명칭만 보면 장관들이 모이는 회의 혹은 국무회의 정도로 보이지만 소련 행정부이자 내각이다. 소련 정부를 칭하면 이 장관회의를 말하는 것임을 헌법에 명기하고 있다. 소련 장관회의는 소련 최고회의의 권한에 속하는 제문제가 아닌 한 소련의 관할에 관계된 국가관리를 해결할 권한을 가진다. 장관회의는 소련 최고회의의 휘하기관으로, 장관회주석 등의 각료는 최고회의에서 임명되었다. 소련 최고회의, 소련 최고법원과 함께 3대 헌법기관이며 장관회의 주석은 소련의 총리에 해당하지만 공산당 1당 독재국가인 소련에서는 국가운영에 대해 정부 입장의 장관회의 외에도 당 정치국에서 업무를 처리하였다. 정치국의 실권자들이 모인 서기국의 서기들은 각자의 전문분야와 부서를 가지고 이들을 감독했으므로 장관들도 서기국의 감독을 받았다. 이에 따라 서기국의 수반인 서기장이 소련의 최대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구조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당권의 정점인 서기장 외에도 최고회의 주석과 장관회의 주석이 반드시 등장하게 되어 있는데 엄연히 국가권력의 최고기관이기 때문이다. 장관회의(Совет Министров)는 소련 뿐 아니라 연방의 각 공화국들도 가졌다. 따라서 전연방을 어우르는 행정부소련(СССР)이라는 말을 붙여야 정확하다.

러시아 연방공화국 초기에 볼셰비키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소비에트의 권력 장악을 옹호했지만, 막상 10월 혁명이 끝나자 멘셰비키나 사회혁명당 등 반볼셰비키파가 가득한 소비에트와 그 소비에트 하부에 구성될 중앙집행위원회 대신 인민위원(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이라는 이름의 장관들로 구성된 '인민위원회(Совет Народных Комиссаров)'를 내각으로 두었다.[5] 그것이 이어지다가 1946년 3월 15일 인민위원회를 장관회의로 개칭하고 인민위원은 장관(Министр)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한 마디로 국제적인 명칭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인민위원부'의 명칭을 가진 정부 기관은 전부 (部)[6]으로 변경되었다. 예를 들자면 내무인민위원부(НКВД) → 내무부(МВД).

장관회의는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취임하자 최고회의의 휘하가 아닌 대통령 휘하의 소련 내각(Кабин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으로 변경되었고, 장관회주석은 직함이 '소련 총리'(Премьер-министр СССР)로 변경되었지만 당시 소련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여서 1991년이 되면 이미 국가기능이 상실될 지경에 처하자 내각도 해체상태가 되었다. 소련 내각은 1991년 8월 24일 소련 국민경제긴급관리위원회(Комитет по оперативному управлению народным хозяйством СССР), 1991년 9월 5일 공화국간경제위원회(Межреспубликански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комитет ССС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국가간경제위원회(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комитет СССР) 등등의 이름으로 변경되며 표류하다가 최종적으로 1991년 12월 25일 업무가 중단되었고 소련은 망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연방에서도 내각(Кабинет Министров)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2. 구조

소련 장관회의는 행정부로서 소련이라는 광대한 나라를 관리해야 하다 보니 시작부터 관리기구는 매우 복잡하게 짜여져 있었다. 인민위원회(СНК) 시절에는 국유화로 인한 국민경제회의가 인민위원회의 휘하로서 통합된 공동체(콜호스, 콤비나트 등)들을 관리했으나 1932년 최고국민경제회의가 폐지되고 인민위원부가 설립되었다. 인민위원부는 초기에는 중공업, 경공업, 목재공업의 3개로 출발했으나 1956년 말이 되면 공업 관련 부서만 하더라도 31개나 되었다.

소련의 각 들은 다음의 구분을 가졌다. 다른 기관을 통하지 않고 소련 장관회의의 직접적 지도를 받는 경우(전연방성)와 각 공화국 내에도 장관회의가 따로 있어서 소련 장관회의에 종속된 관계인 경우(연방공화국성)가 있었으며 소련 장관회의에서는 관리하지 않고 각 공화국 장관회의에만 속한 경우(공화국성)가 있었다. 스탈린 사후에는 이러한 편제의 개혁이 이루어져 1957년 5월에 부분별로 묶어 편성되었던 이러한 시스템을 제거하고 지역주의에 입각하여 산업관리기구를 재편하게 되었다. 국민경제회의는 부활하였고 같은 부문의 기업이 각 지구의 국민경제회의의 관할 안에 속하게 되었으며 1962년 12월에 이르면 경제관계로 묶인 성(묶음)은 전부 정리되었다. 그러나 당시 각 지역별로 산재된 국민경제회의는 105개 이상이었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횡행하여 중앙통제력의 상실로 따로 놀게 되자 그 권한과 경계에 곧 너프가 시작되어 1963년에 47개로 감소했다.

이런 국민경제회의체제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실각 및 삽질 이후 문제점이 크게 지적되어 1965년 9월 새 장관회의 주석인 알렉세이 코시긴(Алексей Н. Косыгин)에 의해 대개혁이 실시되었다. 지역분권적 관리방식을 폐기하고 다시 성(묶음)을 부활시켜 부문별 원칙에 따른 경제관리제도가 채용되었다. 이는 1977년 헌법 개헌 이후에도 유지되었고 일부 부들은 새로 추가되기도 했다. 각 중앙행정기관(부)가 아닌 부속기관, 즉 국가위원회(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омитет)의 수장도 각료가 된다.

2.1.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Для решения вопросов, связанных с обеспечением руководства народным хозяйством, и других вопросов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правления в качестве постоянного органа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действует Президиум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в составе Председателя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первых заместителей и заместителей Председателя.
- 인민 경제의 지도와 보장에 관련된 제문제 및 기타 국가관리의 제문제의 해결을 위해 소련 장관회의의 상설기관으로서 소련 장관회 주석, 제1 부주석, 부주석으로 구성되는 소련 장관회의 상무회가 활동한다.

소련 헌법(1977년 브레즈네프 헌법) 제 132조.

소련 최고회의처럼 장관회의도 평시에는 상무회에서 업무를 전담했다. 다른 장관들은 자기업무 감독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최고회의나 공산당대회처럼 상무회나 중앙위원회 의원을 따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장관회주석과 부주석 등 핵심 각료들이 구성하는 기관이다. 이 때문에 '장관회의 상무회'라고 따로 칭하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 인원은 30여 내외를 오락가락하지만 정부 규모에 따라 줄거나 늘어난다. 대한민국이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 그만이지만 소련 장관회의는 아래에서 보다시피 장관회의 인원수가 100명이 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넘어서 나름의 필요가 있는 기관이었다.

2.2. 행정각부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인민위원회

1917년 11월 8일(율리우스력 10월 26일)에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 제2회 전러시아대회가 채택한 「인민위원회의 설립에 대해」의 포고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기관으로서 육해군 대위원회와 함께 상공, 사법, 체신 , 노동, 외무, 식량, 재무, 교육, 철도, 내무, 농업, 민족문제[7]의 12개 인민위원부가 설립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인민위원회

1922년 12월에 발표된 「소비에트 연방의 결성에 관한 조약」의 제11조에서는 최초의 소비에트 연방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기관으로서, 국민경제최고회의와 함께 외무, 육해군, 상업, [[철도운수, 체신, 노농감사, 노동, 식량, 재무의 9인민위원부를 두었다. 이들은 1924년 1월에 정해진 연방헌법의 제8장에 따르면 전연방단위에만 놓인 5인민위원부(외무, 육해군, 대외무역, 철도운수, 체신)와 각 공화국마다 놓인 4인민위원부(노농감사, 노동, 식량, 재무, 그리고 국민경제최고회의)의 2종류로 나뉘었다.

1936년 12월에 개정된 스탈린 헌법에서는 전 연방단위에만 놓이는 것으로 국방, 외무, 대외무역, 철도운수, 체신, 해운, 중공업, 군수공업의 8인민위원부와 각 공화국마다 두는 것으로 식품공업, 경공업, 임업, 농업, 양곡·축산, 재무, 국내무역, 내무, 사법, 위생의 10인민위원부가 있었다.

1946년 3월 15일의 법령에 의해, 전연방, 공화국, 자치 공화국 단위의 모든 인민위원부는 부(部)로, 인민위원은 장관(міністр)으로 개칭되었다.

소련 말기인 1982년 기준. 소련 장관회의는 1946년부터 소련 최고회의의 선거 주기에 맞춰서 보통 4년에 한번씩[8] 총 11회 조직되었으며 마지막 조각은 1989년 6월이었다. '소련 내각'으로 변경된 후에는 1991년 1월 1일에 처음이자 마지막 조각이 있었다. 당연히 소련 장관회의는 조직될 때마다 장관의 숫자를 포함하여 정부기관의 변동이 존재한다. 이 중 국방부를 포함한 일부 부처는 민간인도 아니고 정치장교도 아닌 현역 장성이 장관을 맡는 경우도 있었다. 부처 목록 출처

소련 인민위원회
소련 장관회의 부속기관 소련 장관회의 인원이 100명이 넘는 이유는 장관웨이브[9]

3. 역대 주석

굵은 선은 서기장 겸임.
소련 인민위원평의회(Сове́т наро́дных комисса́ров) 의장
블라디미르 레닌(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 1922년 12월 30일 ~ 1924년 1월 21일[10]
알렉세이 리코프(Алексей Иванович Рыков) 1924년 2월 2일 ~ 1930년 12월 19일
뱌체슬라프 몰로토프(Вячеслав Михайлович Молотов) 1930년 12월 19일 ~ 1941년 5월 6일
이오시프 스탈린(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1941년 5월 6일 ~ 1946년 3월 15일
소련 장관회의(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주석
이름 집권 기간
이오시프 스탈린(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1946년 3월 15일 ~ 1953년 3월 5일[11]
게오르기 말렌코프(Георгий Максимилианович Маленков) 1953년 3월 5일 ~ 1955년 2월 8일[12]
니콜라이 불가닌(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улганин) 1955년 2월 8일 ~ 1958년 3월 27일
니키타 흐루쇼프(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Хрущёв) 1958년 3월 27일 ~ 1964년 10월 15일
알렉세이 코시긴(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Косыгин) 1964년 10월 15일 ~ 1980년 10월 23일
니콜라이 티호노프(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Тихонов) 1980년 10월 23일 ~ 1985년 9월 27일
니콜라이 리시코프(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Рыжков) 1985년 9월 27일 ~ 1991년 1월 14일
소련 총리(Премьер-министр СССР)
이름 집권 기간
발렌틴 파블로프(Валентин Сергеевич Павлов) 1991년 1월 14일 ~ 1991년 8월 22일
소련 국민경제긴급관리위원회(КОУНХ СССР) 위원장
이름 집권 기간
이반 실라에프(Иван Степанович Силаев) 1991년 8월 24일 ~ 1991년 12월 26일


[1] Кабин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실제로 의미가 그냥 소련 내각이다. 이 때부터는 소련 최고회의의 휘하가 아닌 소련 대통령 휘하로 바뀌었다. [2]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언론에서 각료회의라고 칭하는 일이 대다수였고 가끔 각료평의회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각료란 내각의 구성원을 의미하므로 장관회의, 대신회의, 각료회의 모두 내각이라는 뜻이다. [3] 일본에서는 장관을 '대신(大臣)'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다. 특히 러시아어 원서 번역본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보통 일본어 중역본을 썼기 때문에 지금도 '소련 대신회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중국에서는 '부장회의(部長會議/部长会议)'라고 한다. [4] 대략 전부 합쳐서 100여명 정도다. [5] 인민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 바로 블라디미르 레닌. 보통 그의 직급이 수상으로 번역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러시아어로도 '인민위원회 위원장(Председатель Совета Народных Комиссаров)이라는 말은 길기 때문에 인민위원장(Предсовнарком)으로 줄여쓴다. [6] (省)으로 번역해도 된다. 실제로 한국 기준으로는 ''지만 일본어 중역본일 경우 '성'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전연방성, 연방공화국성 등의 묶음과 각각의 중앙행정기관구분하기 위해 따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서에서도 그렇게 한다. [7] 민족문제인민위원은 그 유명한 스탈린이었다. [8] 이오시프 스탈린 생전엔 그딴 거 없었으며 1953년에서 1954년의 지도부 혼란기에는 1년만에 새로 조직되기도 하였다. [9] 사실 공산주의 국가 특성상 모든 국가적 역량/산업이 국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은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삼성, 현대, LG 등의 무수한 기업들이 운용하는 각종 계열사들(전자, 경/중공업, 건설 등)을 모두 국유화하고 정부에서 굴린다고 가정해 보면 답이 나온다. 더군다나 소련의 국가 규모도 규모인지라... [10] 소련 최초의 정부수반으로 대개 인식된다. 러시아 혁명(2월 혁명 및 10월 혁명)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이끌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РСФСР)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고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설립시킨다. [11] 소련 장관회의가 생기기 전, 1941년 5월 6일부터 이미 소련 인민위원장이었다. 즉 직함만 바꾼 것. [12] 스탈린의 후계자였지만 서기장은 아니었다. 임시 최고지도자를 장관회의 주석으로 보낸것이다. 서기장 자리는 흐루쇼프가 바로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