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도대체, 원후파 출신이란 놈이 왜 녹림에 얼쩡대고 있는 거야?"
"녹림에 있어서는 안 될 놈이 녹림을 휘젓고 다니고 있거든요."
"······응, 그래 그렇지."
엉겁결에 왕삼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황호양이 다시 버럭 소리를 지른다.
"너잖아, 너!"
"그렇지, 너지. 그건··· 아놔, 이 새끼가!"
- 『녹림대제전』의 왕삼구, 황호양, 섭혼검마의 대화 중에서 발췌.
풍종호의 무협소설 『
녹림대제전(綠林大帝傳)』에 등장하는 녹림도 중 강자로 손꼽히는
녹림삼흉(綠林三凶)의 한 명이 섭혼검마(攝魂劍魔)이다. 본명은 표흑호이며,
원후파(元侯派)의 파문제자이다. 문중에서 쫓겨나 녹림에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전형적인 원후파 문도의 차림새인 흑백의 음양포, 도인의 머리 모양, 허리춤에 장검을 매달고 있다. 그가 파문된 사유인 검령비결(劍靈秘訣)을 비틀어 만들어낸 섭혼검법(攝魂劍法)은 100여 년 뒤인 『
검신무(劍神舞)』에까지 전해져 중요한 역할을 한다."녹림에 있어서는 안 될 놈이 녹림을 휘젓고 다니고 있거든요."
"······응, 그래 그렇지."
엉겁결에 왕삼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황호양이 다시 버럭 소리를 지른다.
"너잖아, 너!"
"그렇지, 너지. 그건··· 아놔, 이 새끼가!"
- 『녹림대제전』의 왕삼구, 황호양, 섭혼검마의 대화 중에서 발췌.
2. 행적
사매와 함께 사문을 나와 경험을 쌓던 표흑호는 우연히 녹림삼가(綠林三家)와 독군자(毒君子)의 싸움에 양민들까지 말려들어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개입한다. 그 결과 독군자의 독에 사매를 잃은 채 그만 부상한 몸으로 간신히 사문으로 복귀한다.[1] 이후부터 무슨 이유에선가 그는 사문의 검령비결을 뒤틀어 섭혼검법을 고안한다. 한동안 사문에는 정도(正道)의 섭혼도법(攝魂刀法)과 비슷한 사례라 속여오다 결국 들켜서 반도로 쫓겨난다. 이때 도망치면서 사형인 황호양의 배에 칼침을 놓는다.복수를 결심한 표흑호는 자연스레 녹림으로 스며들어 독군자를 추적하는 와중에 섭혼검법으로 온갖 미친 짓거리를 일삼아 삼대 흉인의 악명을 쌓는다. 그러던 차에 종적을 알 수 없는 독군자로부터 강시마군(殭屍魔君)이 약초를 구입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그는 우선 강시에 환장한 놈부터 잡으려 한다. 그렇게 격돌한 두 사람, 막상막하(莫上莫下)라 승부를 보지 못하고 서로 양패구상(兩敗俱傷) 한다. 다행히 부상으로 기절한 그를 우연히 지나가던 낙월산장(落月山莊)의 장주가 구해줘 목숨을 부지한다.
인생의 목표가 사매의 복수에서 강시마군이 강시를 만드는 것을 저지하는 것으로 바뀐 섭혼검마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섭혼검으로 은인인 매씨 부자에게 강시마군에 대한 강한 원한을 심어 산장에 함정을 갖추게 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무경이 낙월산장에 남아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그를 유인케 한다. 하지만 원하는 강시마군은 걸려들지 않고, 온갖 잡놈들만 들끓다가 화산파(華山派)를 찾아가던 왕삼구에게 걸려 들통난다.
함정의 발동으로 낙월산장이 싹 불에 타 매씨 부자는 왕가채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섭혼검마는 그래도 큰 은혜를 베푼 매씨 부자가 신경이 쓰였는지 찾아 나선다. 그래서 왕삼구와 잠깐 투닥인 뒤에 매씨 부자를 빼돌리는 것에 성공하긴 한다. 그러나 그냥 인사치레로 남긴 다시 보자는 말에 쫓아온 왕삼구에게 잡혀 그는 한동안 같이 생활하며 자주 두들겨 맞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2] 좋은 점이라고는 칼 맞은 것을 되갚으려고 짧지 않은 기간 끈질기게 추적해 온 황호양을 두들겨 패준 것 말고는 없이, 아랫사람 부리듯 왕삼구가 귀찮아하는 것을 떠맡는 약자의 서러운 생활이 이어진다.
묵은 원한이 많아 가는 곳마다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는 왕가채, 두목인 왕삼구는 친형들을 죽게 만든 원수를 잡기 위하여 독군자와 강시마군이 필요해지자 그들을 힘으로 굴복시켜 따르게 한다. 섭혼검마도 같은 녹림삼흉의 일원으로 원한도 잊고··· 그들과 친구처럼 어울리며 활발히 음마문(陰魔門)의 태상장로를 찾는 일을 돕는다. 대신 삼흉은 원하는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왕삼구로부터 얻기로 한다. 처음에는 음마문의 제자 제무상과 여러 거점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는 하는데, 원수의 행적을 알 수 없어 왕삼구는 개방(丐幇)의 방주 무정신개(無情神丐) 백무흔과 세 장로의 도움까지 얻는다.
원수도 잡고 녹림백팔두(綠林百八頭)가 주최하는 녹림대회장에서 왕의 위엄까지 과시한 왕삼구는 태대노인(太大老人)을 비롯한 쫓아오는 자들을 변용으로 따돌린다. 약속대로 기련산맥에서 그와 다시 만난 녹림삼흉, 먼저 강제 각성을 겪은 강시마군이 원하는 강시를 독군자의 도움을 얻어 제련한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둘의 실수가 얽혀 전혀 예상 못 한 독을 뿜는 괴이한 강시가 나온다. 이 마물(魔物)을 왕삼구로부터 태극무상(太極無相)[3]을 배운 섭혼검마가 막아선다. 그렇지만 혜광검(慧光劍)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여 완전히 봉쇄하지는 못한다. 이번에도 왕삼구는 일만 벌여놓고 뒤처리는 나 몰라라 한 채 사라진다. 어쩔 수 없이 섭혼검마가 계속 주변에서 머물며 강시가 나오려고 할 때마다 막아서야만 하는 파수꾼이 되고 만다.
후대인 『검신무』에서는 섭혼마협(攝魂魔俠)으로 불린다. 그가 남긴 유업과 검법을 이은 이가 청성육검협(靑城六劍俠)의 넷째인 무룡성이며, 그 뒤를 이은 삼대가 바로 도운연이다. 섭혼검마와 무룡성도 벨 수 없어 유업으로 남겨야만 했던 그 독철시(毒鐵屍)를 약관 무렵의 도운연이 부수고 검신(劍神)의 길로 나아간다.
3. 무공
- 검령비결(劍靈秘訣): 사매와 무림 행보를 했다고 하므로, 2단계 음양검(陰陽劍)까지 이뤘음을 예상할 수 있다. 본 편의 끝에서 왕삼구의 도움을 얻어 강제로 3단계 혜광검(慧光劍)를 엿보지만, 검법을 비트는 것이 습관화되어 완전한 혜광검을 이루지는 못한다.
- 섭혼검법(攝魂劍法): 독군자의 사람을 독인(毒人)으로 만들어 조종하는 독심화(毒心華)의 제혼술(制魂術)에서 마교비전의 흔적과 큰 위험성을 느낀 표흑호가 환롱진(幻籠陣)의 공효를 얻을 수 있도록 검령비결을 비틀어 만들어 낸 검법이다. 그렇기에 마경(魔境)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섭혼의 효능이 검법에 녹아 있어 새가 나는 것을 잊게 하고, 개가 무는 것을 잊게 하며, 배고픈 이가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먹는 일을 잊게 한다. 심지어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친형제도 순식간에 원수로 뒤바꾸는 것은 물론 오랜 시간 꾸준하게 단련한 무공 고수가 결코 잊을 리가 없는 기예를 잊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교(魔敎)의 절기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와 같은 마경에 빠지는 위험성은 검법을 펼치는 자도 다름이 없어 능히 사로(邪路)의 검법이라 부를 만하다. 아니 검법을 펼치면 펼칠수록 더 깊은 마경에 빠져 들게 돼 더욱 위험하여 섭혼검마와 무룡성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검신무』의 하후염은 검신의 경지에 빠르게 이를 수 있게 일부러 이 섭혼검법을 도운연에게 가르친다.[4]
[1]
본 편에서 당가채의 이가주 당중효의 입에서 드러난 검마의 과거이다. 아마도 이 일로 그가 미치는 게 개연성에 맞는 듯싶으나, 엉뚱하게도 독군자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닌 강시마군이 제련하려는 강시를 막으려는 것으로 목적이 뒤바뀐다. 글의 심각한 오류로 나중에 사매를 죽인 독군자와 친구처럼 지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나온다.
[2]
다음번에는 동생들을 건드릴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왕삼구는 귀찮았어도 쫓아간다.
[3]
천지무성(天地武聖)이 천지간의 이치를 따지고 따져서 태극도(太極圖)에 응용해 만들어낸 검식(劍式).
[4]
입마경(入魔境)을 다스려야만 신화경(神化境)을 이룰 수 있는 만큼 제자가 죽을 수도 있는 도박과도 같은 일을 실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