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상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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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 문서에는 상명대학교 역사를 정리해두었으며 2020년 상명대학교 요람과 그 밖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성했다.2. 1930~50년대
2.1. 상명고등기예학교
상명고등기예학교 |
상명실천여학교 수업장면 |
1937년 12월 1일, 상명대학교의 모태가 되는 상명고등기예학원이 종로구 중학동 14번지에[1]에 세워졌다. 동경여자고등기예학교(오늘날의 도쿄 성우아카데미)에서 유학한 배상명 설립자가, 서울에도 수예를 가르치는 기예학교를 설립한것이다.
2.2. 상명실천여학교
상명실천여학교 1 |
상명실천여학교 2 |
2.3. 재단법인 상명학원의 설립
상명학원 80주년 |
1953년에는 상명학원 재미재단이 설립되었다. 명예 이사장으로는 당시 신시내티 대학교 총장이던 월터 C. 랭삼(Walter Consuelo Langsam). 이사장으로는 한국 YMCA 총간사를 지낸 조지 A. 피치(George Ashmore Fitch)[3]
3. 1960년~1980년대
3.1. 상명여자사범대학
상명여자사범대학 로고 |
상명여자사범대학 모습 |
상명여자사범대학 입구 |
1965년 3월 5일에 상명여자사범대학[4]이 개교하였고, 1965년에 세검정 홍지동에 신축교사를 착공하였다. 착공 시작 후 1년이 지난 1966년 9월 1일에 신축교사[5]로 이전하였다. 초대학장으로 배상명 설립자가 취임하였다. 처음 입학 당시에는 가정교육과 30명, 미술교육과 30명, 체육교육과 30명으로 총 90명이 입학을 했다. 1967년에 국어교육과, 외국어교육과 영어전공을 신설하였고 이후에도 새로운 과를 만들어 입학생들을 모집했다.
3.2. 상명여자대학
상명여자대학 천안캠퍼스 설립 |
1983년 3월 1일에 사범대학에서 일반대학으로 전환하여 상명여자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사실 이때 이미 교육부에 종합대학교 승격을 신청했으나 반려되었다. 1985년 3월 1일에는 오늘날의 제2캠퍼스인 천안캠퍼스가 설립되었다. 여자대학교 최초의 지방캠퍼스로, 청주여자사범대학이 일찌감치 서원대학교로 남녀공학화 되었기 때문에 충청권 유일의 여자대학이기도 했다. 1986년에 설립자 배상명이 별세했다.
3.3. 상명여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로고 |
천안캠퍼스를 설립하면서 대학 규모를 불린 상명여자대학은 1987년 3월 1일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종합대학교로 승격됨에따라 상명여자대학에서 상명여자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1987년과 1988년에는 재단의 비리들(2억원가량의 횡령. 신입생과 편입생 부정입학. '대천땅'(오늘날의 상명수련원) 매입 논란)에 항거해 학내 민주화 투쟁이 벌어졌다. 중간고사 거부와 밤샘농성등의 거센 투쟁에, 당시 방정복 총장이 사퇴를 하고 교수직선제를 통해 신임 총장을 선출했다. 그러나, 이 신임 총장은 임기를 만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방정복 총장에게 다시 자리를 넘겨줬다. 때문에 방정복 총장의 복귀에 대한 반대 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4. 1990년대 ~ 현재
4.1. 상명대학교
상명대학교 로고 |
2017년 서울·천안 통합 캠퍼스 체제가 되어, 수도권과 지방 중소형 대학에서 수도권 대형대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캠퍼스간 학생들의 복수전공과 매우 제한적으로(일반 편입학 정원의 10%로 한해서 캠퍼스간 전과생을 뽑는다. 참고로 상명대는 편입학 정원이 적은 편이다) 전과가 가능해졌다.
[1]
과거
한국일보 중학동 사옥이 있던 곳.
[2]
학원설립 기념행사가 이 해에 맞추어 개최된다.
[3]
선교사 가문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돕는등 독립운동 활동을 막후에서 지원한 인물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4]
상명여자사범대학이 사실상의 상명대학교의 직계전신이기 때문에, 대학설립 기념행사가 이 해에 맞추어 개최된다.
[5]
4층 건물이고 670평 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