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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No.35 | |
<colbgcolor=#000000> 사이키 히로토 才木 浩人 / Hiroto Sai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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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98년 11월 7일 ([age(1998-11-07)]세) |
출신지 | 효고현 고베시 니시구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고베시립 스마 쇼후 고교 ( 神戸市立須磨翔風高等学校) |
신체 | 189 cm / 88 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16년 드래프트 3위 (한신)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스 (2017~) |
연봉 | 2024 / ¥ 50,000,000 |
등장곡 | - |
[clearfix]
1. 개요
한신 타이거스 소속의 우완 투수.2. 프로 입단 전
한신의 연고지인 효고현 고베시 출신으로, 초1때 포수로 야구를 시작했다. 투수로 전향한 건 중2 때였으나, 고교 어디서도 스카우트를 못 받아서 집 근처이자 친형의 출신고교였던 고베 시립 스마 쇼후 고교[1]로 진학했다. 고1 때부터 벤치에 앉더니 고2 때는 에이스가 되어 고시엔 효고현 준결승까지 팀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대회 출전은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이 때 포심 최고구속이 148km/h를 찍으며 프로 스카우터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고지 팀 한신 타이거스의 지명을 받았다. 입단 동기로 오오야마 유스케[2], 하마치 마스미, 이토하라 켄토 등이 있다.2.1.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는 35. 2017년엔 2군 경기를 주로 뛰면서 경험을 쌓았고, 시즌이 거의 끝나가던 2017년 10월 5일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8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군에 데뷔했고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데뷔 첫 홀드까지 기록했다.2018년엔 1군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였다. 스프링캠프 및 오픈전에서 가능성을 보이며 개막 엔트리 합류가 전망되었으나 끝내 불발되었고, 본인의 시즌 첫 경기는 5월 9일 도쿄 돔 전통의 일전이 되었다. 그 경기에서 구원으로 나와 1이닝 무실점을 했으며, 5월 20일 나고야 돔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프로 처음으로 선발로 나와 마쓰자카 다이스케랑 맞대결을 했으나 1-6으로 팀도 본인도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1주일 후인 5월 2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프로 첫 승에 성공했다. 이 날 기준 만 19세 6개월으로, 10대 한신 투수가 프로 첫 승을 전통의 일전에서 뽑은 사례는 구단 역사상 최초였다. 이후 교류전 기간 동안 잠깐 말소됐다가, 다시 1군에 올라와서 주로 구원 투수로 활동했다. 6월 30일 메이지진구 야구장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원정 경기에서 당일 선발이던 이와사다 유타[3]가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빈볼을 던져 퇴장을 당하자 긴급 투입되어 6이닝 1실점 무자책으로 프로 2승째를 획득했다. 시즌이 거의 망해가던 9월 이후로는 후지카와 큐지를 대신해 셋업맨으로도 활동하는 등 1군 첫 시즌에 여러 보직을 경험했다. 최종 22경기 14선발 6승 10패 1홀드 82이닝 46실점 42자책점 ERA 4.61, WHIP 1.45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9년에도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시작했으나, 캠프 연습경기 및 오픈전에서 전적이 영 좋지 못해 2군으로 내려가게 됐고, 결국 또 개막 엔트리 합류는 이뤄지지 않았다. 4월 24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승을 기록하는 등 나름 잘 던지나 했으나, 5월 12일 고시엔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5이닝 5실점 난타를 당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2군으로 내려간 후 5월 19일 2군 히로시마 도요 카프 경기에서[4] 선발로 나와서 첫 타자 코조노 카이토만 겨우 아웃 처리하고 팔꿈치에 불편을 느껴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 뒤로는 기나긴 토미 존 서저리와 그에 따른 재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활치료로 어찌 해 보려 했으나 그걸론 부족했고 결국 2020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이에 따라 2020, 2021 모두 1군 공식전 등판은 없었다. 그 동안 육성 선수로 신분이 변경되며 등번호도 121으로 변경되었다.
2022년 고치현 아키시에서의 2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했고, 사회인야구 팀인 시코쿠 은행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에 복귀했다. 2군에서 150km를 찍는 등 재활이 잘 되었음을 보여준 후, 5월 6일, 기나긴 재활을 끝내고 지배하 등록이 되었다. 이에 따라 등번호도 기존에 자신이 쓰던 35를 다시 달았다. 7월 3일 1군에 복귀하여 주니치 드래곤즈 원정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고,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따냈다.[5] 이후로는 2주일에 한 번 꼴로 선발로 나서며 니시 준야, 후지나미 신타로 등과 함께 6선발 역할을 하며 팀의 극적인 가을야구 진출에 기여했다.
2023년에는 1군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다. 4월 9일 고시엔 야쿠르트 전에서는 7이닝 11K 1실점이라는 괴력투를 시전하며 탈삼진 단독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 이후 페이스가 처지더니 4월 30일 진구 야쿠르트 전을 끝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그러다 교류전 전에 복귀한 이후로는 준수한 4~5선발 급으로 던지고 있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 전에서는 사사키 로키를 상대로 데뷔 첫 완봉을 해내기도 했다.
2024년에는 5월 중순까지는 무라카미 쇼키와 함께 선발진에서 제 몫을 하고 있고 5/25기준 5승 1패 방어율 1.76을 기록하고있고 피안타율도 고작 0.182밖에 되지 않는다.
3. 플레이 스타일
평균 147~153km/h, 최고 157km/h의 패스트볼과 평균 133 ~ 137km/h의 포크볼을 던지는 투피치 피처. 189cm라는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공을 최대한 앞에서 던지다 보니 포심은 알아도 치기 힘들 정도로 구위가 뛰어나다. 세컨피치로 구사하는 포크볼도 포심의 위력에 한 몫한다.
4. 여담
- 목표로 삼은 투수는 자신과 비슷한 장신 투수인 후지나미 신타로.
- 중학생 시절 한신 타이거스의 명투수이자 현 오릭스 버팔로즈 플레잉코치 노미 아츠시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투구폼에 대해 극찬을 했다고 한다.
- 고교 시절엔 야구부 외에도 학급에선 반장까지 맡을 정도의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
[1]
야구 명문 사립고교가 아니라 단순 공립 고교다.
고베 시영 지하철
세이신·야마테선
묘다니역 인근에 있다.
[2]
1순위로 지명을 받았다. 지명 당시엔 당연히 말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론 성공이었다.
[3]
이 때만 해도 선발로 많이 나왔으나 2019년 이후 중간계투로 전환했다.
[4]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 원정 경기였다.
[5]
이 날 자신의 입단 동기
오오야마 유스케와
하마치 마스미도 공수 양면에서 사이키를 도왔는데, 오오야마는 결승 2점짜리 홈런(오오야마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쳤고 하마치는 1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