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筋肉火山 / Muscle Volcano> [ruby(佐々木, ruby=ささき)] [ruby(健介, ruby=けんすけ)] / Kensuke Sasaki |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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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colbgcolor=#eee> 본명 |
<colcolor=#000><colbgcolor=#fff> [ruby(佐々木, ruby=ささき)] [ruby(健介, ruby=けんすけ)] 사사키 켄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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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네임 |
사사키 벤케이 사사키 켄도 사사키 켄스키 마스크 볼케이노 파워 워리어 사사키 켄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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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66년 8월 4일 ([age(1966-08-04)]세) | |
신장 | 180cm | |
체중 | 115kg | |
배우자 | 호쿠토 아키라 |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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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스타일 | 브롤러 | |
시그니쳐 무브 |
보스턴 크랩 잇뽄제오이(一本背負いっぽん ぜ おい) {{{#!folding [스트랭글 홀드 시리즈] |
스트랭글 홀드α[1] |
스트랭글 홀드β[2] | ||
스트랭글 홀드 Ζ[3] |
피니쉬 무브 |
노던 라이츠 밤[4] 래리어트 스트랭글 홀드 γ |
별명 | 머슬 볼케이노 |
테마곡 |
Take the Dream(1998–2001) The World(2001–2014) |
데뷔 | 1986년 2월 16일 |
은퇴 | 2014년 2월 13일 |
2. 개요
3. 커리어
3.1. 신인시절
1986년 2월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교류단체인 초슈 리키가 운영하던 재팬 프로레슬링에 입단하며 데뷔한다.이후 1987년 재팬 프로레슬링의 내부 불화로 초슈 리키의 신일본 복귀파와 같이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였다.
신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마츠다 오사무, 오야 겐이치 등과 팀을 이뤄 활동을 하였다.
3.2. 해외 원정
1989년 1월, 해외원정을 시작하여 푸에르토리코에서 월드 레슬링 평의회(WWC)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두 차례 WWC 캐리비안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한다또한 캐나다에서 스투 하트의 스탬피드 레슬링 프로모션에서 활동했으며, 그곳에서 벤케이 사사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했고 .캐나다 체류 중 1989년 8월 스탬피드 국제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한다
또한 오스트리아와 독일 투어에서 사사키 켄도라는 이름으로 오토 완즈의 캐치 레슬링 협회(CWA)에서 활동을 했다.
3.3. 신일본 프로레슬링
3.3.1. 하세 히로시(1990-1992)와 팀
1990년 3월에 신일본에 복귀해, 하세 히로시와 함께 태그 팀을 결성해, 활동한다 .1990년 11월 11일 IWGP 태그팀 챔피언십에서 무토 케이지와 쵸노 마사히로 를 단숨에 꺾고 타이틀을 획득한다. 하지만 슈퍼 스트롱 머신 & 히로 사이토 에게 타이틀을 빼앗기지만 곧 바로 되찾는다 이후 스타이너 브라더스 ( 릭 스타이너 & 스캇 스타이너)와 명승부끝에타이틀을빼앗긴다
3.3.2. 헬 레이져스(1992–1996)
1992년 말 링네임을 '파워워리어'으로 바꾸면서 로드 워리어즈의 호크와 헬 레이저스라는 팀 이름으로 IWGP 태그팀 챔피언십전선에서 활약하면서 2번의 IWGP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하면서 신일본의 태그 팀 전선을 지배했다. 1992년 10월, WCW에서 출연을하여 , 1996년 12월까지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95년에 파워워리어 캐릭터를 포기하고 [5] 개인 커리어에 집중 하기 시작한다 1995년 11월 13일에 열린 WCW US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서 스팅을 꺾고 첫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6]하지만 이후 원 맨 갱 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
3.3.3.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7–2001)
1997년은 사사키의 해 였다1997년 8월 G1 클라이맥스에 참가 8월 3일, 결승에서 텐잔 히로요시를 꺾고 우승했다.1주일 후, 야마자키 카즈오와 함께 IWGP 태그 팀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결국 이달 말에는 장기 집권을 하고있던 하시모토 신야를 꺾고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거머쥐며 한 달 만에 3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이후 이뤄진 타이틀 방어에서 무토 케이지와 쵸노 마사히로를 모두 꺾고 3연패를 달성함으로써 헤비급에서의 우세를 굳혔다.이후 1998년 4월에는 후지나미 타츠미에게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빼앗겼다.1999년 3월에는 코시나카 시로 선수와 함께 IWGP 태그팀 챔피언십을 한번더 획득한다
이후 텐류 겐이치로를 꺾으면서 두번째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한다 .2000년 8월 다시한번 G1 클라이맥스에 참가 결승에서 지난해 우승자인 나카니시 마나부를 꺾고 두 번째 G1 클라이맥스 우승을 차지해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한 상태에서 2번째로 우승을한다[7]
2000년 10월 9일, 전일본 vs.신일본 에서 카와다 토시아키와 명승부 끝에 패한 후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포기했다.이후 공석이 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걸린 토너먼트 결승에서 카와다 토시아키를 꺾고 타이틀을 되찾았다.2001년 3월에는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스콧 노턴에게 빼앗기고 2002년 말에는 회사 경영진과 결별해 탈단을 하였다
3.4. Fighting World of Japan Pro Wrestling (2003–2004)
2003년 초, 자신의 멘토인 초슈 리키가 세운 Fighting World of Japan Pro Wrestling (WJ))에 함께 참전한다
이후 WMG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지만, 재정 문제로 그와 초슈와 갈등을 격으면서 프리랜서로 전환을 한다
3.5. 프리랜서(2004–2014)
3.5.1. 신일본 프로레슬링 (2004–2005)
WJ을 떠난 이후 2004년, 프리랜서로 신일본에 복귀했다.
복귀전에서 2004년 레슬링 월드에서 엄청난 혈투끝 에 나가타 유지에게 패했다.이후 나카니시 마나부와 호흡을 맞췄. 태그 팀을 결성했고 스콧 노튼, 텐류 겐이치로 등과 정기적으로 팀을 꾸렸다.
3월 12일 도쿄에서 열린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서 텐잔 히로요시 꺾고 타이틀을 획득한다
하지만 이노키즘으로 인하여 2주 후에 밥 샙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이후 제자인 나카지마 카츠히코 를 소개하고 켄스케 패밀리를 결성해, 신일본의 선수와 팬의 지지를 되찾으려고 하는 구원의 스토리를 시작했다.8월에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G1 클라이맥스에 진출했지만 마지막 날 텐류에게 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10월, 다시 팬의 지지를 받고 , 후지타 카즈유키 에게 도전 하여 불과 2분 29초에 꺾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되찾았다.이번 승리는
사사키와 아내 호쿠토 아키라가 무대 뒤에서 사사키에게 준 트로피를 파괴하고 후지타가 MMA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부러 우승컵을 내렸다고 비난한 것에 의해 정당하게 항의했지만 켄스케는 타나하시 히로시와 스즈키 미노루를 상대로 두 차례나 벨트를 방어한 뒤 텐잔에게 타이틀을 내줬다.
11월 텐잔에게 타이틀을 내준 이후, 초슈 리키가 백스테이지로 복귀하면서 신일본을 다시한번 탈단 이후 다시는 신일본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다
3.5.2. 전일본 프로레슬링 (2005–2008)
신일본 복귀 후 프리랜서로 다시 전일본 에서 활동을 시작해 2004년 챔피언 카니발에 출전해 결승에 진출하지만 결승에서 무토 케이지에게 패하여 우승에 실패한다 .2004년 내내 가끔 출연했던 사사키는 2005년 초 전일본에 풀타임으로 이적했다.
1월 16일 삼관 헤비급 챔피언인 카와다 토시아키 에게 도전했지만 타이틀 획득에 실패를 한다 이루 2005년 챔피언 카니발에 출전해 결승에서 자말을 꺾고 챔피언 카니발을 제패했다.7월 26일, 제자인 나카지마 카츠히코는 VOODOO-MURDERS를 꺾고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쉽을 획득한다 .켄스케(옛 '파워워리어' 캐릭터)와 로드워리어 애니멀이 9월 1일 디퍼 아리아케에서 팀을 이뤄 야시와 곤도를 물리쳤다.11월 19일,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에 다시 도전 , 이번에는 코지마 사토시 에게 패했다.2006년 7월, 부상으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게 되어, 나카지마 와 함께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쉽을 내려놓는다
이후 2007년 1월에 복귀를 하였다.2007년 8월 26일, 스즈키 미노루를 꺾고 삼관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2007년 10월 18일 카와다 토시아키를 상대로 첫 방어를 하였다 10월 18일 나카지마 가쓰히코 가 2007년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에서 부상을 당한 후 카와다가 대타로 합류를 하여 결승에 진출하지만 12월 9일의 코지마 사토시 와 스와마 와의 결승 결정전에서 패했다.[8]
2008년 3월 1일 코지마 사토시를 상대로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방어에 성공했다. 4월 5일부터 4월 9일까지 코라쿠엔홀에서 열린 2008년 챔피언 카니발에 5회 연속 참가하여 1승(조 도어링과의 대결), 1패(스즈키 미노루와의 대결), 2무(스와마, 니시무라 오사무와의 대결) 후 승점 4점으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2008년 4월 29일, 카니발 우승자 스와마 에게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빼앗기고, 6월에 탈단을 한다
3.5.3. 프로레슬링 노아 (2008–2013)
2005년 프로레슬링 노아에 데뷔해 데스티니2005년 7월 18일에 코바시 켄타 와 벌인 시합에서는 무려 300발이 넘는 춉이 나왔고,5분동안 춉만으로 정면승부를 하는 명경기를 펼치지만 결국 패하고 만다.
2008년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빼앗긴 뒤 프로레슬링 노아로 건너가 켄스케 오피스를 운영하면서 정규 홈 프로모션을 하겠다고 밝혔다.2008년 9월 6일, 모리시마 타케시를 꺾고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해, 일본 3대 메이저 단채에서 메인 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최초의 레슬러가 되었다.2009년 3월 1일,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아키야마 쥰에게 빼앗겼다.2009년 9월 21일, 모리시마와 팀을 이루어 사이토 아키토시, 바이슨 스미스로부터 GHC 태그 팀 타이틀을 획득. 이후 2009년 12월 6일에 타케시 리키오와 모하메드 요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이 후 정규 태그 파트너 모리시마 타케시와 팀을 이루어 1월 9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되는 2010년 글로벌 태그 리그에 참가했다.모리시마와 함께 A블록 우승자인 타카야마 요시히로 와 사노 타쿠마에게 패해 합계 4점으로 리그를 마쳤다. 3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프로레슬링 노아의 2010 글로벌 리그에도 참가했다.리그 기간 중 그는 아키야마 준을 이기는 성과를 보이지만 최종 우승자인 다카야마 요시히로 에게 패해 합계 7점으로 끝났다.
3.5.4. 다이아몬드 링 (2005–2014)
2005년, 자신의 에이전시 「켄스케 오피스」를 설립을 하였으며, 부인인 호쿠토 아키라가 경영하고 있다. 켄스케 사무소에서는 제자인 나카지마 카츠히코가 다른 단체, 특히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프로레슬링 노아를 견학했다.2006년 9월, 켄스케 오피스는 글로벌 프로레슬링 얼라이언스(GPWA)의 멤버로서 발표하였다.2007년부터, 켄스케 오피스는 독자적인 흥행을 기획해, 스즈키 미노루, 아키야마 쥰, 텐류 겐이치로, 타카야마 요시히로, 키쿠타로, 모리시마 타케시, 켄타, 캣피시맨등이 흥행에 나서고 있다.2012년 1월, 켄스케 오피스는 다이아몬드 링으로 개명.현재, 다이아몬드 링은 프로레슬링 NOA의 개발 구역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몇몇 선수들이 흥행에 나서고 있다.
2014년 2월 11일, 다이아몬드 링 이벤트의 메인 이벤트에서 나카지마 카츠히코한테 첫 패배를 당했다. 이틀 뒤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레슬링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다이아몬드 링에는 나카지마 카츠히코 1명만이 남았고, 카지와라 사토시가 탈단을 하며 키타미야 미츠히로가 프로레슬링 노아에 합류했다.
4. 논란
4.1. 일본 프로레슬링 똥군기의 끝판왕
레슬링 업적으로만 놓고 보면 분명 레전드 반열에 들어갈 선수이고 일본의 예능이나 방송에 나올때는 선한 미소를 보여주고 자상한 이미지로 포장했지만 그 실체는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역대급을 넘어 올타임 넘버원 수준의 똥군기의 화신이었다. 오죽하면 WWE에서 똥군기로 악명을 떨쳤던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 크리스 벤와 & 빌 디못 조차도 켄스케에 비하면 착해보일 정도라고 일프팬들조차 인정할 정도. 심지어 역시 일프계에서 똥군기나 악습으로 악명이 높았던 초대 타이거 마스크(사야마 사토루) & 마에다 아키라나 악습에 임금체불등 부조리로 악명을 떨친 오니타 아츠시 조차도 켄스케 보다 아래로 여길 정도.숙소 규칙에도 없는 신입부터 3년차까지는 자위 금지라고 장난을 치질 않나. 단체로 식사중에 후배들에게 주목하라고 하고는 내가 이 흰색컵을 들고 있지만 내가 이걸 검은색컵이라고 하면 너희들도 당연히 검은색이라고 대답해야 하며 반론을 제기하고나 토를 달 경우 그자리에서 면상을 갈기겠다고 하질 않나. 후배 레슬러가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차들이 씽씽 달리는 8차선 도로에 집어던지고는 그 후배에게 주워와보라며 킬킬대는 등 그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 마카베 토우기도 신인시절 이 인간때문에 말도 못하게 고생했고 고통을 참으며 꿈인 프로레슬러를 해야 하나 이렇게 당하느니 저 인간을 칼로 담가버리고 레슬링 판을 떠야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 망나니스러움으로는 만만치 않았던 스타이너 브라더스의 릭 스타이너조차 마카베가 당하는 걸 보고 괜찮냐며 걱정했을 정도다. 이건 그 릭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인데 정작 그렇다고 충격으로 동료들을 상대로 악랄한 짓을 하는걸 관둔건 아니었다는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심지어 어지간하면 혼네 다테마에로 대변되는 일본인 특유의 어지간히 잘못한거 정도는 넘어가주는 사회 분위기와 이지메 조차도 예능 개그소재로 쓸 정도의 일본 사회속에서 동시기에 활동한 동기나 후배는 물론 선배들조차도 켄스케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서 너무 심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을 정도. 심지어 켄스케를 비판한 동기나 선배들중에는 본인도 똥군기 논란이 있었던 선배들이 꽤 있을 정도.
후배에 대해 구타나 기합등을 살벌하게 시키고 악질적인 장난질을 서슴치 않는등 아무리 일프계가 똥군기는 기본이라 여겨지던 시절에 저런 소리를 들었다는건 켄스케가 너무나 선을 많이 넘었던게 맞는거 같다. 켄스케와 맞먹는 무지막지한 후배 쥐잡듯 잡은 선수는 오하라 미치요시(小原道由) 정도
레슬링 업계 동료들과 일본의 프로레슬링 팬들은 어떻게 저런 악명 높은 사사키 켄스케가 일프계의 악질적인 똥군기 타파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력한 호쿠토 아키라와 어떻게 결혼했는지 강한 의문을 가질 정도. 더군다나 호쿠토는 한창 뜨기 시작하던 무렵 이를 시기하고 견제하던 선배들에게 시달리다 경기 중 고의로 파일 드라이버를 세게 찍어 심한 목부상을 당한 대표적인 똥군기 피해자였다.
저런 실상이 알려지고 사무라이TV나 일본의 방송국 예능에서 사람좋은 모습으로 포장하고 나온 그를 떠올리며 사이코패스 같다며 소름이 돋았다고 말하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일본 방송의 몰래카메라 격 프로그램에서 참가한 배우를 실제로 폭행하고 난장판을 쳐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진걸 보면 태생자체가 폭력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볼수 있다.
한편 이후 북미에서 빌 디못이 WWE 트레이너로서 수련생들한테 가혹행위를 저지른 것이 알려져 해고되는 일이 생겼을때 디못이 착해보일 정도로 심한 케이스인 켄스케가 거론되기도 했었다.
5.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keep-all"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그랜드 슬램 ]⠀ {{{#!wiki style="margin:-5px 0 -5px" |
{{{+1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1|{{{#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그랜드 슬램 달성자}}}]]}}} | ||||
사사키 켄스케 (Kensuke Sasaki) |
타카야마 요시히로 (Yoshihiro Takayama) |
무토 케이지 (Keiji Muto) |
코지마 사토시 (Satoshi Kojima) |
나가타 유지 (Yuji Nag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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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명 | |||||
같이 보기: 후보 선수 |
- ⠀[ 슈퍼 그랜드 슬램 ]⠀
- ⠀[ 울트라 그랜드 슬램 ]⠀
- ||<-1><tablebordercolor=#d81820><tablealign=center><bgcolor=#000000> {{{+1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3|{{{#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울트라 그랜드 슬램 달성자}}}]]}}} ||
나가타 유지
(Yuji Nagata)총 1명
- ⠀[ 주니어 그랜드 슬램 ]⠀
- ⠀[ 주니어 슈퍼 그랜드 슬램 ]⠀
- ||<-1><tablebordercolor=#d81820><tablealign=center><bgcolor=#000000> {{{+1 [[그랜드 슬램(일본 프로레슬링)#s-2.5|{{{#ffffff 일본 프로레슬링 주니어 슈퍼 그랜드 슬램 달성자}}}]]}}} ||
타나카 미노루
(Minoru Tanaka)총 1명
}}} ||
역대 G1 클라이맥스 우승자 | ||||
1996 | → | 1997 | → | 1998 |
초슈 리키 | → | 사사키 켄스케 | → | 하시모토 신야 |
1999 | → | 2000 | → | 2001 |
나카니시 마나부 | → | 사사키 켄스케 | → | 나가타 유지 |
역대 신춘 배틀로얄 우승자 | ||||
2006 | → | 2007 | → | 2008 |
아라시 | → | 사사키 켄스케 | → | 압둘라 더 부처 |
역대 챔피언 카니발 우승자 | ||||
2004 | → | 2005 | → | 2006 |
무토 케이지 | → | 사사키 켄스케 | → | 타이요 케아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 ||||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3) |
→ |
사사키 켄스케 (2004) |
→ |
코지마 사토시 (2005)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 ||||
2000년 10월 9일 |
신일본 프로레슬링 | 사사키 켄스케 vs _카와다 토시아키_ | ||
2005년 7월 18일 |
프로레슬링 NOAH Destiny |
사사키 켄스케 vs _코바시 켄타_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수훈상 | ||||
2007 | → | 2008 | → | 2009 |
마루후지 나오미치 | → | 사사키 켄스케 | → | 스기우라 타카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