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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22:12:02

빈 스컬리

빈 스컬리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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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스컬리 하이메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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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빈 스컬리
헌액 연도 1982년
헌액 방식 포드 C.프릭 상[1]

파일:MLB 로고.svg 201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역사적 공로상
마리아노 리베라
(2013)
빈 스컬리
데릭 지터
오타니 쇼헤이
(2021)

<colcolor=#FFD700>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
이름 <colcolor=#FFD700> 빈 스컬리
VIN SCULLY
분야 라디오
입성날짜 1982년 6월 9일
위치 6675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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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A9C><colcolor=#FFFFFF>
파일:0B87A77E-7CE9-45DB-85CD-90FF07E1B2E6.jpg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o. 🎙️
빈센트 에드워드 "빈" 스컬리
Vincent Edward "Vin" Scully
출생 1927년 11월 29일
뉴욕 주 브롱스
사망 2022년 8월 2일 (향년 94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히든 힐스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학력 포덤 대학교
경력 브루클린-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캐스터 (1950~2016)
수훈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2016)
종교 개신교

1. 개요2. 생애3. 빈 스컬리가 중계한 특별한 경기들4. 기타

[clearfix]

1. 개요

It's time for Dodger baseball!
이제 다저스의 야구 경기를 함께할 시간입니다!
[2][3]
미국의 前 스포츠 캐스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전담 캐스터로 일했다. 브루클린 시절이던 1950 시즌부터 무려 89세가 된 2016 시즌까지, 장장 67년 동안 현역으로서 방송 마이크를 잡았다. 미국 스포츠 중계 캐스터 중 특정 팀 최장 기간 중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말 그대로 야구 중계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2. 생애

1927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났다.[4] 가난한 어린 시절에는 잡역부, 우편배달, 식당청소 등의 일을 하면서 8살 때 스포츠 캐스터의 꿈을 가졌다고 하며,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잠시 야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5] 모교인 포덤대학에서 학교 라디오를 통해 교내 방송 캐스터이자 스포츠 기자로 활약했으며, 사실 야구중계가 아니라 풋볼중계를 먼저 시작했는데 CBS 라디오 스포츠에서 대학풋볼을 중계한 것이 시초. 그리고 23세 되던 해인 1950년에 브루클린 다저스의 TV와 라디오 중계를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대학시절까지 다저스의 철천지 원수인 자이언츠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1936년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 양키스에게 18-4로 진 자이언츠가 불쌍해서.
파일:csj3fz9.jpg
빈 스컬리의 대학 졸업사진.

그 외 사진들

스컬리가 방송일을 시작했을 때엔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였다.[6] 웬만한 팀의 감독이나 코치, 심지어는 레전드로 불리는 올드 스타들도 스컬리 앞에서는 꼬꼬마다.[7] 그럼에도 여전히 또렷하고 정확한 발음과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한 표현력으로 화면을 보지 않고 귀로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현장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스포츠 중계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발음도 거의 교과서 수준이다. 그런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 몇몇 한국인들은 스컬리의 중계를 처음 듣고 중계가 지루하다, 졸리다 등등의 이유로 푸념하곤 한다(...).[8] 영어 좀 듣는 한국의 MLB 팬들 중에서도 홈런 나왔을 때 "See Ya" 라는 추임새를 넣는 양키스의 마이클 케이[9]나 "You can put it on the boar----d. Yes!"라고 외치고 경기가 승리로 끝나면 "Yes, Yes, Yes"를 외쳐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켄 해럴슨(Ken Harrelson) 스타일의 중계를 좋아하는 사람들(혹은 양키스 팬이나 화이트삭스 팬들)도 같은 이유로 스컬리의 중계를 깐다.[10][11] 마치 MLB라면 당연히 홈팀의 분위기가 좋을 때 호들갑을 떨면서 톤을 높이는 그런 스타일의 편파 중계를 해야 하는 것처럼. 스컬리가 그러지 않는 이유는 밑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중계 철학이 달라서이다.

풍부한 경험과 엄청난 독서량으로 유명한 빈 스컬리는 야구 내외적으로 전문적이고 잡다한 지식을 통해 선수들의 기록, 잘 알려지지 않은 백그라운드 스토리, 신변잡기 같은 사소한 것부터 셰익스피어같은 대문호의 문구가 나오거나, 몇몇 상황을 뮤지컬에 비유하기도 하는 등 역사, 문화, 예술 각종 분야 이야기를 60년이 넘는 내공을 통해 총망라해서 풀어낸다. 간혹 야구 외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이야기한다라는 불만도 있지만, 이런 것을 하나하나 캐치해서 듣고 있으면 지루해질 틈이 없다.

놀라운 것은 80이 넘은 연세에도 한번 경기 시작 마이크를 잡으면 몇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중계를 한다는 점과 그 동안에 옆에 해설자 따위는 두지 않고 1회초부터 경기 종료까지 오로지 혼자서 모든 상황을 다 중계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중계가 가능한 것은 스컬리가 1950년대 라디오 시절부터 마이크를 잡아오면서 방송 중계 스킬을 갈고 닦아 온 덕분이다. 그 시절에는 TV중계라는 것이 드물었으므로 방송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표현력과 발음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다만 너무 억양이 너무너무 차분한 나머지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긴 하다.[12] 그 전설적인 9회 백투백투백투백 홈런 + 연장 끝내기 투런으로 다저스가 승리한 2006년 9월 18일 경기에서도[13]침착한 목소리로 해설하던 것만 보더라도... 그래도 인상적이기는 했는지,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끝내기 홈런이 나오자 "Unbelievable!" 을 외치긴 했으나, 홈런만 쳐도 괴성부터 지르는 다른 팀 아나운서 같았으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빌리버블 다음에 구장이 떠나갈듯한 환성이 울려퍼지고 카메라가 관중석을 돌아가면서 비춰주는데, 한 1분 30초정도 말 없이 조용히 있다가 마지막 클로징 멘트로 "By the way, I forgot to tell you. The Dodgers are in first place.(아, 한 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LA 다저스가 선두로 올라갔군요.)" 라고 쿨하게 한 마디 하고 방송을 마무리하는 센스까지, 차분하면서도 분위기를 살리는 그만의 중계 방식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이다. # 그런 중계 스타일뿐만 아니라 더운 여름에도 목 관리를 위해 중계부스에 에어컨을 틀지 않을 정도로 중계 외적으로 프로 의식도 상당하다고 한다.

나이가 있어서 홈 경기와 서부지구 내의 샌디에이고나 샌프란시스코 등 근거리 원정, 그리고 특별히 플레이오프 때만 원정을 다닌다. 나이와 건강 때문에 2000년대 말부터 계속 은퇴설이 나오기도 했고, 2012년에는 시즌 초 지독한 독감에 걸려서 홈 개막전을 놓쳤다가[14] 4월 15일 재키 로빈슨 데이에 맞춰 겨우 복귀한 일도 있었다. 일단 2012년 다저스가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칼 크로포드 아드리안 곤잘레스, 조시 베켓을 데려오는 빅 트레이드를 성사하면서 강해진 전력에 자신도 고무되었다며(...) 현역 연장을 선언하면서 2013년에도 다저스의 중계 캐스터로 남게 되었다.

2013년 시즌 중에도 LA 타임즈의 기사를 통해 시즌 막판 팀의 대분전에 고무된 듯 중계를 하는 것에 신이 나있다며 2014년에도 다저스의 중계를 계속 할 것이라는 의향을 내비쳤다. #

중계 커리어가 스컬리보다는 짧지만 비슷한 급으로 존경받던 인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속 아나운서 해리 칼라스가 있었다. 칼라스는 2009년 4월 13일 다저스의 홈 개막전에서 스컬리가 시구한 날 필리스의 워싱턴 내셔널스 원정경기를 준비하던 내셔널스 파크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스컬리는 경기 도중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애도하였다. ESPN에서 칼라스의 추모 기사를 낼 때 스컬리와 인터뷰를 했는데 2008년 필리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보고 간 것이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편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중계팀에도 존 밀러라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캐스터가 있는데, 이분은 SF 자이언츠의 중계 뿐만 아니라 ESPN에서 명예의 전당 2루수 조 모건과 함께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 전국방송을 20년간 중계하면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스컬리처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들이다.


2014년 7월 29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경기 도중에 중대발표가 전광판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스컬리가 2015년에도 중계를 담당할 것이라는 뉴스다. 이 뉴스는 류현진 푸이그, 터너 세 선수가 각각 한국인, 히스패닉, 미국인들을 대표해 3개국 언어로 읽어주었다. 다저 스타디움에 있는 관중들도 스컬리 옹의 현역 연장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15]

2015년 8월 28일(현지시각), 2016년에도 다저스 경기를 중계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의 후임은 미국 대학 농구 및 미식축구 중계에서 명성을 쌓은 조 데이비스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다저스는 그를 위해 현지시간으로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올시즌 마지막 홈 3연전을 Vin Schully Weekend로 지정하고 마운드도 그의 퍼스트 네임인 VIN을 그려 놓고 그의 은퇴를 성대하게 치러 주었다. 그러나 스컬리의 방송 커리어가 거기서 끝난 건 아니었다. 스컬리의 마지막 방송은 2016년 10월 2일, 스컬리 본인을 야구의 세계로 인도한 팀이자 다저스의 숙적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이다. 67년동안 다저스 팬과 고락을 같이한 전설의 마지막 방송을 위한 최적의 상대다. 적지인 AT&T 파크에서도 스컬리의 은퇴를 안타까워하는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 동안 스컬리의 중계를 들어왔을 수많은 팬들에 대한 감사의 작별인사 후에 67년에 걸친 방송 커리어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So this is Vin Scully, wishing you a very pleasant good afternoon wherever you may be. (여러분이 어디에 계시든 매우 즐거운 오후가 되셨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캐스터 빈 스컬리였습니다.)"

야구중계의 전설이 67년에 걸친 방송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멘트 치고는 너무도 평범해보이는 이 한 문장은, 평소에 스컬리가 낮 경기를 마무리할 때 쓰는 멘트이며 은퇴경기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하는 스컬리의 방송철학이 압축된 마지막 한 마디라고 하겠다.
파일:Sandy-Koufax-Tommy-Lasorda-Vin-Scully-Ring-of-Honor-.jpg
[16]
2017년 5월 3일(현지 시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 전에 스컬리의 'Ring of Honor' 입회식이 열렸다.(이날 경기는 제프 사마자에게 8이닝 동안 11K를 헌납하며 1대 4로 졌다.) 다저스타디움 한켠에 붙어있는 영구결번들 옆에 스컬리를 기념하는 기념판(라디오 마이크 모양)을 부착했다. 스컬리 옹은 이날 행사를 '마지막 환호'라고 표현하며 "더 이상 다른 필드 위 행사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며 오늘이 자신이 필드에서 소개되는 마지막 행사라는 뜻으로 말했다.
파일:636290063259582175-vin-scully.jpg


하지만 그런 말이 무색하게도 다저스가 호성적을 거두며 29년만에 월드 시리즈에 오르자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년 월드 시리즈 2차전에 모습을 드러내 시구에 참여했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여러 모로 다저스가 신경써서 준비한 이벤트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는데, 스컬리 옹이 마운드에 올라 포수가 필요하다고 하자 1981년 월드 시리즈 MVP 스티브 예거가 등장하고, 이내 스컬리 옹이 시구를 하나 싶더니 갑자기 어깨 회전근에 문제가 생겼다(...)[17]며 불펜에서 좌완 투수를 호출하자 1981년 신인왕 사이 영 상 수상자인 "El Toro"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유유히 나타나 시구를 했다. 그리고는 세 명이 함께 모여 스컬리 옹의 시그니처 멘트인 "It's time for Dodger baseball!"을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


2022년 8월 2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4세.[18] 그래도 다저스와의 인연을 맺은 뒤 7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모두 보고 눈을 감게 되었다.[19]

3. 빈 스컬리가 중계한 특별한 경기들


1950년대 이후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던 수많은 스타들이 스컬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플레이를 했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수많은 명승부들이 스컬리의 입을 통해 전파를 탔다. 스컬리가 중계한 퍼펙트 게임만도 무려 4번. 그 중에는 월드 시리즈 유일의 퍼펙트 게임인 돈 라슨의 게임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행크 애런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깨는 715호 홈런을 친 경기도 스컬리가 중계했다. 그리고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의 생애 첫 노히트노런도 그가 직접 중계했다.

젊은 시절에는 다저스 중계 뿐만 아니라 월드 시리즈 중계도 알바로 뛰곤 했다. 1986년 월드 시리즈 빌 버크너의 알까기라든가 1988년 월드 시리즈에서 나온 커크 깁슨의 끝내기 홈런[24] 등 주옥같은 명승부들이 스컬리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었다. 야구 중계만 한 것도 아니고 미식축구 중계도 해서 NFL 역사상 손에 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인 The Catch도 그의 입을 통해 전파를 탔었다.

4. 기타

파일:external/mlblogsdodgersphotog.files.wordpress.com/42101s42.jpg


[1] 캐스터에게 수여하는 상. [2] 2013년까지 다저스의 전담중계 방송사는 KCAL9과 Fox 산하의 PRIMETICKET이 맡고 있었을 때도, 2014년부터 운영중인 타임워너 계열의 다저스 전담 중계방송국인 '스포츠넷 LA'에서도 어떤 방송사에서 중계를 하든간에 스컬리 옹이 중계하는 날의 방송 첫마디는 이거다. 스컬리의 시그니쳐격 대사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해서 종종 시구를 하러온 사람들이 이 대사를 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다. 2013년 소녀시대 티파니 다저 스타디움에 와서 이 말을 했다. [3] 양키스 지역방송 아나운서인 마이클 케이의 경기 시작 전 멘트인 "It is time for baseball!"도 그에게서 따왔다고 밝혔다. [4] 아이러니하게도 뉴욕 양키스의 연고지다. [5] 대학 시절에 예일 대학교와 맞붙기도 했는데, 당시 예일의 1루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였다고 한다. [6]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South Korea를 언급하면서 했던 말이 전쟁 이야기였다(...) 물론 북한의 대남 도발사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을 보면 시국이 수상하긴 하지만서도... [7] 감이 안 올 사람들을 위해서 덧붙이자면 이 분의 어린 시절에 베이브 루스 루 게릭현역으로 뛰고 있었으며, 사회인으로서 방송을 시작할 때가 조 디마지오의 말년이자 테드 윌리엄스의 전성기였고, 이 분과 비슷한 시기에 커리어를 시작한 동년배급이 미키 맨틀 요기 베라다. 이제는 기록 필름으로나 남아있는 전설적인 스타들의 현역시절의 모습을 직접 보신 분이다. 심지어는 이 분이 방송일을 시작했을 때 사이 영 타이 콥이 생존 중이었고, 1862년생 코니 맥이 현역 감독으로 애슬레틱스를 지휘하고 있었다. 또한 똑같이 다저스의 영원한 레전드로 평받는 토미 라소다 감독과 1927년생 동갑이다. [8] 오히려 스컬리 옹의 중계는 듣기 굉장히 편하다. 발음과 억양이 표준적이고 말의 속도도 빠르지 않고 문장 내에서 구절 별로 적절하게 끊을 때 끊고 이어나갈 때 이어나가고 있으므로 영어 리스닝 초심자에게도 편하게 들리는 편이다. 스컬리 옹의 영어가 리스닝이 안 된다면 다른 캐스터의 영어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9] 현재는 미국 ESPN 중계진으로 뛰고 있다. [10] 아무래도 한국 프로야구 경기 중계 스타일인 드라마틱한 순간에 감정을 실어 코멘트를 하는 이른바 한명재, 권성욱, 정우영 스타일의 중계를 선호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라기엔 MLB도 상당수 지역 방송 캐스터들이 감정을 실어서 중계한다. [11] 정작 켄 해럴슨 본인은 빈 스컬리의 팬이기도 해서, 마지막 중계 때 헌정 메시지를 보냈다. # 원문은 It's our national pastime, and you have been our spokesman for a very long time. [12] 이 점은 스컬리 본인의 중계철학과도 관련되어 있다. 스컬리 옹은 브루클린 다저스의 마이크를 잡던 시절부터 자신을 채용한 선배 아나운서인 레드 바버(Red Barber)에게서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는 자신이 중계하는 팀의 치어리더가 되어서는 안 되며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청취자들에게 최대한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임무이다."라고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고 또한 그러한 철학을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실천해 온 것이다. 그래서 스컬리 옹의 중계방송은 경기를 하는 양 팀에 최대한 공평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소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대신 상대팀 팬들에게도 공정한 중계라고 호평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다저스의 분위기가 좋을 때 약간 목소리가 기분 좋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13] 당시 4점차 리드 상황에서 존 애킨스가 올라와 제프 켄트 J.D. 드루에게 백투백을 맞았고, 이에 경기를 지키기 위해 트레버 호프먼이 올라왔으나 러셀 마틴과 말론 앤더슨에게 백투백을 맞으면서 전설적인 백투백투백투백 홈런과 블론 세이브가 기록되었다. [14] 이 사례는 1977년 CBS에서 PGA 마스터스 골프를 중계하는 일정 때문에 다저스 홈 개막전 중계에서 빠진 지 35년만에 스컬리가 다저스 홈 개막전을 중계를 빠진 사례로 기록되었다. [15] 발표자 3명 이외에 현장에 있던 드류 뷰테라, J.P 하웰, 디 고든, 미겔 로하스가 춤을 추면서 기뻐했다. [16] 참고로 블루커튼을 걷고 있는 사람은 왼쪽이 샌디 코팩스, 오른쪽이 토미 라소다이다. [17] 이것 외에도 온갖 드립이 터졌다. 아내와 캐치볼을 연습했다는 등, 이 시구를 위해 일주일을 연습했다는 등, 관중들이 "Scully! Scully!"를 연호하자 나는 스컬리가 아니라 포수가 필요하다고 한다거나, 포수 스티브 예거에게 내 패스트볼은 구속이 내 체인지업이랑 비슷해서 구분이 안 될테니 주의하라고 너스레를 떠는 등... 그렇다고 마냥 개그만 친 것은 아니고 천국 어딘가에서 재키 로빈슨, 듀크 스나이더, 로이 캄파넬라, 길 호지스 등 세상을 떠난 다저스의 레전드들이 월드 시리즈 시구자가 누구인지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라며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18]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 중이었다. 양 팀 중계진들은 나란히 그를 추모했다. [19] 2년 뒤인 2024년 다저스가 8번째 우승을 거두고 처음으로 스컬리 옹의 영전에 커미셔너 트로피를 바치게 되었다. [20] 이 경우는 행크애런의 715호 홈런을 다저스가 얻어맞은 불운(...) 덕이기는 했다. [21] 세어 보면 알겠지만 중계한 4번의 퍼펙트 게임에서 다저스의 성적은 1승 3패다. 즉, 자신의 팀이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꼴을 3번이나 목격하셨다. [22] 한만두가 나온 날이다. [23] 그래서 합작 노히터로도 인정받지는 못했다. 승리든 패전이든 노히터로 인정받으려면 규칙상 9이닝 이상을 완료해야 한다. [24] 다만 커크 깁슨은 다저스 소속이었던데다.이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으로 다저스와 신경전 벌인거보면 아이러니 이 경기가 행크 애런의 715호 홈런 경기처럼 다저스 경기였기 때문에 어차피 중계할 경기가 아니었냐라는 지적도 있는데 다저스 홈경기라서 중계를 한 게 아니라 이 당시에는 스컬리 옹이 시즌이 끝나면 당시 월드 시리즈 중계권을 가지고 있던 NBC에서 전담 아나운서 역할을 하시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이 월드 시리즈 때 스컬리 옹의 TV중계를 듣는 상황이었다. 위에서 나온 빌 버크너의 알까기도 마찬가지로 다저스와 상관없는 두 팀이 붙었지만 역시 월드 시리즈 전담 아나운서로서 중계를 했기 때문에 스컬리 옹이 중계를 했던 것이다. 한편 이 콜은 스컬리 옹의 85세 생일을 맞아 진행된 역대 스컬리옹 최고의 콜 투표에서 62%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에 선정되었다. 커크 깁슨의 월드 시리즈 끝내기 홈런 영문 위키피디아 개별 항목에 스컬리 옹의 중계 멘트가 있다. 참고로 2위는 25%의 득표율을 기록한 빌 버크너의 알까기 에러. [25] 참고로 스티브 라이언스는 지상파 FOX 토요일 전국 중계의 서부지역 경기 해설도 담당했기 때문에 미국의 야빠들에게는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나 평은 좋지 못하다. FOX 항목에 나오는 전국 중계임에도 불구하고 본분을 망각하고 주책맞은 편파해설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이다. 별로 실력도 없으면서 방송국 간부들과의 친목질로 자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정도. 그리고 지상파 FOX의 중계에서 히스패닉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결국은 지상파 중계에서 잘렸다. [26] 그래서 이 시기에 다저스에 재적했던 최희섭 서재응은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를 했다. [27] 이 때 허구연 해설이 친히 다저 스타디움에 가서 해당 경기를 생중계했으며, 빈 스컬리 옹 역시 자신이 중계하면서 This game is being televised back to S.Korea, as you can well imagine it(여러분께서 예상하시는 대로 이 경기는 대한민국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28] 정확히 1년 7개월 후, 그는 아내 곁으로 먼 길을 떠났다. [29] 당시 NCAA 중계로 집중하고 있을 때 음성메시지를 남겨달라는 설정을 걸어놓아 실제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중계 종료 후 그의 휴대폰에 남겨진 음성메시지를 듣고 그대로 얼어버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