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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항공운공사 Civil Air Transport Inc 民航空運公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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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TA CT |
ICAO CAT |
항공사
호출 부호 Mandarin[2] |
설립년도 | 1946년 | |
폐업년도 | 1968년 2월 16일 | |
허브공항 |
쑹산 국제공항 타이난 공항 |
[clearfix]
1. 개요
1946년 설립되어 1975년 해산한 중화민국의 항공사. 참고로 중화권에서 공사(公司)는 회사라는 뜻으로 한국에서 공기업을 의미하는 公社와는 한자부터 다르다.1946년 충칭시에서 설립되어 이후 1949년 중국항공과 중앙항공을 인수하였다 1968년 운항 중단 후 1975년 해산하였다. 설립자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중화민국 정부를 위해 일했던 플라잉 타이거즈의 클레어 셰놀트. 대만에서는 쑨원의 손녀인 쑨쑤이펀이 이 회사의 승무원으로 일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 항공사 설립 과정
2.1. 중국항공
중국항공(中國航空, China National Aviation Corporation)은 1929년 중화민국 상하이 직할시에서 설립된 국영항공회사다. 미국측 합작사인 커티스가 45%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1933년 팬암에 매각한다.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8년 임시수도 충칭으로 이전하였다. 1942년 영국령 인도로 본사를 옮겨 전시물자 수송에 나섰다. 종전후 1946년 상하이로 되돌아온다. 제2차 국공내전 기간에는 다시 카이탁 국제공항으로 본거지를 옮겼다가 1949년 민항공운공사에 인수된다.이 회사가 남긴 발자취는 다음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활약했던 이 회사 출신의 두 명의 파일럿이 만든 회사가 지금의 캐세이패시픽항공이다. 2년 후에 스와이어 그룹이 경영권을 획득하긴 했지만 캐세이패시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국민당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9년 11월 카이탁 공항에서 비행기를 몰고 북쪽으로 도망친 9명의 조종사(중앙항공 포함하여 모두 12명)와 그들이 몰고 온 비행기 그리고 홍콩과 대만으로 철수하지 못한 직원들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 중국민항이다. 그러므로 중국 3대 민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2.2. 중앙항공
중앙항공(中央航空運輸公司, Central Air Transport Co.)은 1931년 중화민국 상하이 직할시에서 중화민국 교통부와 독일의 루프트한자가 합작한 회사로 설립되었다. 루프트한자는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1941년 난징에 왕징웨이 정권이 성립되면서 당시 이 회사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충칭정부에서 적성국의 재산을 동결시켜 합작운영이 강제로 종료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쿤밍으로 본사를 옮겨 중국항공과 함께 물자수송을 담당했다.1945년 상하이로 다시 돌아왔고 미군이 남기고 간 항공기를 바탕으로 50여대의 항공기를 소유했다. 상하이로 돌아온 후 룽화비행장[3]을 근거지로 홍콩, 마닐라 등을 취항하다가 국부천대시 홍콩으로 이전했다. 자사 소속 파일럿 3명이 중국항공 파일럿과 함께 공산당에 투항한 것을 계기로 1949년에 민항공운공사로 흡수되었다. 중앙항공과 중국항공의 항공기 71대는 홍콩 카이탁공항에 묶여있다가 1952년 민항공운공사가 모두 인수하게 된다. 영국 정부는 1950년 이미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기에 홍콩에 압류된 비행기들의 소속이 문제가 되었는데, 압류는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중화민국에게 반환하는 것으로 법원의 판단이 나온다.
2.3. 실체
1949년 세 개의 회사가 합병을 하면서 팬암의 지분도 정리하고 셔놀트의 지분도 정리하여 중화민국 교통부 민항국이 소유하는 국영회사가 된다. 그러나 국공내전 패전의 여파로 이 항공사 또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 미국의 Airdale이라는 회사가 지분의 40%를 인수하게 되는데 ... 이 회사의 대주주는 바로 미국 중앙정보국이었다.이 때부터 민항공운공사의 역할은 겉으로는 중화민국의 민항기 운영사이면서 뒤로는 미국의 각종 정보 임무에 투입되는 것이 되었다. 정보요원들과 각종 비행기들이 이 회사의 소속의 파일럿과 기재로 위장하면서 한국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 참여하였다. Airdale은 나중에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로 이름을 바꾸고 인도차이나 반도를 무대로 활약한다.
1952년에는 대한민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 노선을 취항했으며 중화권 항공사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로 대한민국 노선에 취항했으며 여의도공항 시절에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취항했다.
1958년 클레어 셰놀트 사후 급속도로 회사가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뒤이어 1968년 타이베이에서 홍콩으로 가던 보잉 727기가 타이베이현 린커우향(현 신베이시 린커우구) 상공에서 추락한 사고를 계기로 여객 서비스를 중단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 패전의 여파로 태평양 회사(즉, 중앙정보국)는 이 회사와 에어 아메리카 등을 해산하기로 결정하게 되면서[4] 여객 서비스는 중화항공을 포함한 각 항공사로 넘어갔고, 화물서비스는 해산 후 미국의 플라잉 타이거즈(Flying Tigers)[5]로 남아있다가 1989년 페덱스에 인수됨으로써 29년간의 역사를 마감했다.
설립자인 클레어 셰놀트 문서의 전후 활동 기록에서 보듯이 본래 국공내전에서 중국국민당을 돕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에어 아메리카가 항공기 유지보수 회사로 타이난에 설립한 회사가 있는데, 현재도 항공기 유지 보수 등의 영업을 하고 있는 아주항공(亞洲航空, Air Asia)[6]이다.
당시 본사는 타이베이시 중산구 민안리(民安里)에 있었으며 현재 경제무역센터 빌딩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