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에 개관한 메이커스페이스 공간. ( #출처) |
Maker Space / Maker Movement / Hacker Space / TechShop / Fabrication Laboratory (FabLab)
1. 소개
일반 대중에게 디지털 기술 기반 제조기기들을 유료나 무료 멤버십 또는 개방하여 자유롭게 창작, 구상, 개조 등 작업 및 어린이의 메이커 교육이 가능하게 구상된 공간의 모델. 다른 모델로는 해커스페이스, 팹랩 등이 있다. 팹랩의 경우는 뒤에 지역명을 붙여 표시하고(ex. fablab-seoul, fablab-busan), 해커스페이스의 경우 모두 명칭이 다른데 예를 들어 C-base, Noisebridge, 용도변경, 8개월 등이다.[1] 국내의 경우는 해커스페이스와 메이커스페이스, 팹랩을 구분하지 않고 메이커스페이스라고 부르고 있다.2. 설명
흔히 메이커 운동이라고 알려진 사회 운동의 일환이다. 사상적 배경으로는 공유경제 운동, 기술민주화, 마을공동체 운동 등에 기초하며, 기술적 배경으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디자인, 소프트웨어 중심의 하드웨어 혹은 오픈소스소프트웨어, 오픈소스 하드웨어, 및 공예 등을 중심으로 하며, 이런 기술들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주제들은 3D 프린터,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일렉트로닉스 등이다. 이런 제작품을 만드는 멤버 중에 일부가 기술을 상용화하기도 한다. 제레미 리프킨 등의 미래학자들의 저술을 바탕으로 하여, 데일 도허티(D.Daugherty), 마크 해치(Mark Hatch) 크리스 앤더슨(C.Anderson), 데이비드 랭(D.Lang) 등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2014년 6월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5년에는 리커창 중국 총리가 메이커 개념을 언급하면서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았다.세계적으로 메이커스페이스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각각 마을공동체 창작 활동 공간, 교육 및 강습 공간, 제조업 지원 공간으로 정리된다.[2] 처음에 서구(유럽)에서 인기를 끌 때에는 개인이나 그룹의 작업공간을 쉐어하기 위한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해커스페이스) 실제로 이런 문화적 구성은 유럽에서는 매우 흔한 형태로 북유럽의 경우 (마을공동체 주민들을 위한 창작 발명 공간 같은 역할을 하는 목공방이나 유리, 도예 공방을 자주 볼 수 있다) 80년대 말 독일에서 컨퍼런스에 참여한 북미의 프로그래머들이 이런 문화를 접하고 귀국하여 몇년 지나지 않아 북미 지역에 해커스페이스를 만들면서 미국내 문화적 확산이 일어났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산업적 해커스페이스를 표방한 테크샵(마크 해치와 몇명이 설립)을 설립하고 이 테크샵을 통해 꽤나 히트한 페블와치나 최초의 상업용 개인 3D 프린터인 싱 오 매틱 등이 성공하면서 산업적 해커 스페이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이후 일본을 거쳐 2010년대 중반~후반 무렵에 국내로 전파되면서는 점점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1인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인큐베이팅 공간의 목적으로 정부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메이커(maker)의 개념적 정의는 실로 다양하나, 메이커에 있어서 언제나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는 학습, 제작, 공유, 즐거움의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즉 메이커스페이스는 해커스페이스의 개념, 즉 커뮤니티를 주축으로 하는 공간에, 그들의 문화이자 가치인 제작과 공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간을 기본 토대로 하며, 이에 어린이들을 위한 메이커 교육 시스템을 갖춘 공간을 모두 지칭한다. 실제로 메이커스페이스는 하이테크의 공간이 아니며 되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기술 중심의 공간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자격이나 기기를 갖춰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교류와 협력, 공유를 목표로 하는 기술중심의 커뮤니티 공간이라 지칭하는 것이 더 옳다. 이는 메이커 교육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기술을 학습의 도구로 파악하고, 기술을 통해 수학, 국어, 사회를 프로젝트 베이스드 러닝(PBL) 중심으로 학습하는 방식을 포함하며, 이는 메이커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모어 패퍼트의 구성주의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에는 AI, 메타버스 등을 교구삼아 메이커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3]
앞서 제시한 내용과 달리 한국의 메이커스페이스에 대한 개념은 매우 여러가지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어서 그 목표가 불분명하고 운영 방향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다수 있다. 특히 "창의적인 제작 활동을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아 실현하되, 그 작업장의 설비는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료를 일체 받지 않으므로 메이커 운동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정부 또는 시민사회에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메이커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메이커스페이스라고 부를 수 있다."라는 개념으로 많이 설명하곤 하는 문제점이 있는데, 이는 대부분 이런 공간들을 제공하는 정부 정책에서 기인하게 된 문제이다.
특히 장비에 대한 것은 애초에 MIT 닐 거센필드 교수가 저개발국가에 기술의 민주화와 생활에 있어서의 기술독립을 실험하기 위한 방안으로 팹랩의 개념을 구체화 시키고 설립함으로써 확산의 기초를 다졌는데, 초기 팹랩 파운데이션은 팹랩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을 3D 프린터 및 CNC, 레이저커터(모두 CNC기기이다)의 보유와 공간의 보유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당시 상황으로 볼때 상당히 높은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닐 거센필드 교수의 연구 주제이자 연구소가 비트 투 아톰(bit to atom) 연구 그룹으로 디지털 패브릭케이션(디지털 데이터를 물질화시키는 개념)을 매우 중요한 실험요소로 보았기 때문에 이런 조건은 꽤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팹랩모델은 반대로 보급에 있어서 매우 유리하였는데, 팹랩이 애초에 확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델이었기 때문에, 모든 안전 메뉴얼 부터, 장비 리스트, 커리큐럼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북미에서 이런 제작공간의 확산을 위한 방법으로 팹랩모델을 적용하였고, 이런 모델을 쉽게 적용가능한 행정부서, 학교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이런 상황에 한국에서는 팹랩서울이 이 하드웨어적인 모델을 경기중기청을 시작으로 국내에 확산시키면서, 소프트웨어적으로는 메이커 운동의 확산도 더불어 진행하였는데, 당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라는 명목하에 이 모델을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확산하면서, 항상 그렇듯이 지방 공무원들이 선진지역 답사를 통해 시설만 확인하고 내려가서 예산을 집행함으로써 지방에서는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것은 무시되고 사라지며, 결국 커뮤니티나 사람은 없이 장비, 공간, 창업이라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현재 국내 메이커스페이스에 일반적으로 구비되는 설비들은 3D 프린터, CNC 설비, 레이저 커터, 아크 용접기, 오실로스코프 등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주민의 경우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거나 평소에 구상하던 아이디어를 여기서 현실로 옮겨볼 수 있고, 기업체의 경우 이 설비들을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어 보고 괜찮을 경우에는 와디즈나 킥스타터에 알려서 크라우드 펀딩을 모금할 수 있다. 물론 메이커스페이스가 계기가 되어 평범한 주민들이 너도나도 1인 제조업 벤처를 차릴 수도 있으며, 우리나라 정부가 메이커스페이스를 만들면서 기대하는 것 역시 이쪽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경우 사용되는 기술이 지나치게 첨단제작기술(디지털 패브릭케이션) 프로세스를 따르기 때문에, 생산에 있어서 기술의 연속적 생산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생산 프로세스상의 빈틈으로 인해 지나치게 공예적 작업 프로세스를 도입할 수 밖에 없어, 실제로는 목업이나 로우 피델리티 프로토타입을 만드는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매우 진지하게 메이커스페이스를 운영하는 그룹들의 경우 디지털 패브릭케이션을 통한 생산과 시장과의 접점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3. 역사
이 분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것은 독일의 해커스페이스이다. 1990년대에 이미 독일에서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유사한 관심사에 깊게 몰두해 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 공간에 모여서 동호인 활동을 하는 풍조가 퍼져 있었고, 그 중에서는 컴퓨터, 기술, 공학 등에서 자기들끼리 모여앉아 회로 기판을 만지작거리거나 새로운 발명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즉 해커스페이스의 기본적인 가치는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동호인 교류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이와 다소 별개로, 2001년에 MIT에서 처음으로 '팹랩' 의 개념이 나타났다. 이곳의 물리학자 닐 거셴펠드(Neil Gershenfeld)는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장비를 활용한 '세상에 모든 것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제작 강습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수강생들의 반응이 의외로 폭발적이었다. 이와 별개로 닐 거센필드는 2년 후에 학교 밖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따로 공간을 마련하여 강좌를 이어 갔으며, 이후 해외의 4개 지역에 팹랩 모델을 설치하여 저 개발국가에서의 실험을 이어 나갔다.[4] 이후 국제개발과 맞물려서 세계 각지에 보급된 팹랩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폭넓게 확산되어 2010년대 중반에 이미 50여개 국가 이상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MIT는 글로벌 팹랩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전세계의 팹랩을 운영하는 중.
팹랩 운동의 확산과 관련하여 두 지역을 거론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2011년부터 포멀랩(FormalLab)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업을 겪게 된 중장년의 성인들이 새로운 디지털 제조기술을 익혀서 다시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일종의 평생교육 차원에서 시행된 것이었다. 한편 일본의 경우 2010년부터 지식인층의 주도로 팹랩 재팬(FabLab Japan)이 시작됐으며, 주로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되었고 마을공동체의 지역적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특징이 있었다. 즉 각 마을마다 장인들이 전수해 온 노하우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지역마다 역사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제조 활동일지라도 지역별 팹랩에 따라 결과물이 특색 있게 나타나게 된 것.
3.1. 국내의 현황
국내 최초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해커스페이스 서울로 2012년 1월 오픈(https://hackerspaceseoul-blog.tumblr.com/about)하였다.(현재 공간은 사라졌다) 그 이후 1달 차이로 대전에 '용도변경'이 개설되었으며(현재 공간은 사라졌다), 이후 청개구리 제작소(현 언메이크랩)이 생겼고, 약 1년여의 시간 이후 2013년 초에 타이드 인스티튜트의 고산 대표가 세운상가에 '팹랩 서울'을 (많은 오해가 팹랩서울을 서울시에서 설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픈하여 한국 최초의 팹랩이 되었다(현재 제작공간은 사라졌다). 이후 팹랩서울은 2013년 중반 한국의 테크샵을 표방하던 경기중소기업청의 시제품제작터의 포맷을 구축하고 개소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팹랩의 멤버였던 몇명과 대전 용도변경의 창립자가 국립과천과학관의 '무한상상실' 개관에 큰역할을 하면서, 일반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바를 서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무료 개방된 세미나실과 공작실을 제공했다(현재 과천과학관 무한상상실은 사라졌다). 애초에는 과학관 자체의 전시물 제작공간을 만들자는 의도로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당시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무한상상실에 편입되어 무한상상실 모델 중 제작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 대표되게 되었다. 이후 국가주도로 무한상상실을 설치하며, 동시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하였다. 경기도 및 대구경북 지역의 중소기업청에서 시제품 제작터 개념으로 공간을 개설했으며, 사용자에게서 이용료를 징수했다. 이 시설의 주 활용 목적은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전문가 수준의 고급 제조 장비들의 사용방법을 교육하는 데 있었다.
지역에서는 부산이 주목을 받았다. 팹랩부산으로 운영해오던 민간(현.팹몬스터)시설이 부산시와 협력하여 '메이커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확장을 하였다. 이 곳은 전국최초의 민관협력형 메이커스페이스로 주목을 받았으며 #, 서울 세운상가와 유사한 상권에 위치하여, 지역 메이커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현재 민간운영기관 이었던 팹몬스터는 중기부 전문랩 메이커스페이스 '루트'를 창업지원형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 부산시는 만들숲이라는 이름의 교육특화형 메이커스페이스로 분리하여 운영 중에 있다 #.
이후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처럼 이원화된 흐름은 더욱 분명해져 미래창조과학부가 담당하는 과학분야에서는 '무한상상실' 을 개설하면서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 등의 주민 공학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지방중소기업청이 담당하는 산업분야에서는 '셀프제작소' 를 개설하면서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시제품 제작 공간을 운영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
2010년대 하반기 들어, 정부 정책의 차원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메이커스페이스' 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메이커스페이스라는 용어는 기존의 해커스페이스나 팹랩에 어린이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과 시스템적 배려를 포함한 용어로서 데일 도허티 외 다수의 사람들이 선언한 용어로 초기에는 테크샵의 경우도 '우리는 해커스페이스이자 메이커 스페이스'라고 부연 설명해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인지에 따라 메이커스페이스로 대표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초기2016년 부터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진행하던 메이커스페이스 구축 사업을 2019년 부터 중소벤처기업부 예하 기관에서 담당하게 되었고 2018년 이래로 개설해 온 메이커스페이스는 2020년 1월경에는 이미 전국에 128개소까지 늘어났으며, 매해 60~70개소씩 신설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 중 대부분은 지역주민을 위한 창작 체험 공간으로 쓰이는 상태. 심지어 공공도서관에 메이커스페이스를 설치하는 방안도 2020년 이후로는 이미 검토를 넘어 실행 단계에 있다.
해외에서는 공공도서관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2015년 이전부터 연구해 왔고, 기존의 커뮤니티 수준에서 정보의 평등한 소비라는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는 도서관에서 제작과 관련된 문화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기술의 민주화를 표방하는 메이커 문화 확산에 있어서도 매우 적합한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북미에서 컴퓨터 교육의 공간이었던 도서관의 컴퓨터들이 지나치게 낙후되면서, 컴퓨터가 있던 공간들을 리뉴얼하면서 메이커 스페이스로 변경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와 달리 유럽의 경우, 특히 북유럽은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하는 공방이 예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미에서 주장하는 메이커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국내에서도 도서관에 메이커스페이스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상황이 북미와 달라 청소년회관 등의 장소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애초에 메이커스페이스는 어린이 교육 시스템을 추가한 개념이기 때문에, 메이커 스페이스의 설치와 함께, 메이커를 키우는 방법, 즉 영메이커라는 용어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메이커 교육을 수행하는 방안을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2015년 오바마 정부에서 적극 추진하였으며, 영메이커라는 용어는 이 시기에 만들어져서 확산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2020년대 들어서면서는 아예 전국 지자체들마다 안 하면 그게 이상한 정책이 되었고, 대충 아무 지자체 이름이나 함께 넣고 구글링해 보면 관련보도를 찾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행 3년차에 이른 만큼 전국적인 성과평가의 단계에 들어서 있으며, # 공간 관리 및 운영의 책임을 대학교에서 감당하는 협업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
4. 문제점
"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메이커스페이스 운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타트업 지원 역량이 예상보다 저조하다는 것이다. 상기했듯이 대부분의 신설 공간들은 주민 창작 활동으로 쓰이는데, 일종의 마을공방 비슷한 개념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수공예를 하거나 액세서리를 만드는 데 그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창업 아이디어 계발에서 상품 생산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전문적인 제조 컨설팅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아마추어 성격이 강해진 것. 특히나 큰 문제로, 설령 시제품을 제작해서 어찌어찌 크라우드 펀딩 단계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메이커스페이스의 역량은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 지적된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상품의 양산 단계에서 메이커스페이스는 사실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소비자의 호응을 얻어서 대량생산을 시작한다 해도, 메이커스페이스로 스타트업을 차린 생산자들의 역량으로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여기저기 발품을 팔면서 생산을 호소하는 을이 될 수밖에 없고, 을이 되다 보니 결과물의 질도 낮아져서 소비자들을 실망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값비싼 디지털 장비만 잔뜩 비치하느니, 차라리 대량생산을 위한 금형 틀을 비치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메이커스페이스는 '제조실험'을 실행할 수 있는 공유공간을 의미하며, 그 기능은 각 메이커스페이스의 마스터(운영자)와 이용자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곳은 수공예품 혹은 소량제작 제품 등을 만드는 지역공방으로 운영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금형제작 및 양산 등을 염두에 둔 시제품을 제작, 개발하는 전문랩이 되기도 한다. 어떠한 형태로 운영되고,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불문하고 창작활동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공유 작업공간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이론적으로 메이커스페이스라 할 수 있다.
다만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메이커스페이스 지원 정책은 4차산업혁명 등을 골자로 기술창업 촉진, 연구인프라 활성화, 즉 전문랩 혹은 마스터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품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공유연구시설개설을 지향함과는 대조적으로[5], 대개 지역공방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내 메이커스페이스는 이러한 정부정책 및 기대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 이는 국내 메이커스페이스 운동의 근본적인 맹점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어느 시점에서는 대량생산을 해야 할 때가 오는데, 메이커스페이스는 '시험 삼아 만드는' 사람들을 돕는 데에는 강하지만 '작정하고 잔뜩 만드는'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게 된 것. 메이커스페이스의 근거가 되는
제레미 리프킨의 '생산의 한계비용 제로사회' 라는 개념 역시, 미래가 점차 그 쪽으로 갈 거라는 메가 트렌드를 예측했을 뿐이지, 지금 당장의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외에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중앙정부 및 지자체들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던 메이커스페이스 사업들이 줄줄이 올스톱된 상황이다. # 사람이 모여야 뭘 할 수 있는데, 사람이 모이질 못하니 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 이미 너무 많은 예산을 지출했기에 이런 쪽에까지 남겨 줄 예산도 없을뿐더러, 비대면으로 뭔가를 제작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여러 모로 난감한 상태.
5. 예시
전국 메이커스페이스를 모두 모아볼 수 있는 사이트
[1]
애초에 해커스페이스는 2006년 폴 뵘이라는 멤버가 이런 공간들의 목록 위키(Hackerspaces.org)를 해커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제작하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일종의 대명사로 굳어지게 되었다.
[2]
경우에 따라 '일반랩/전문랩', '공공형/교육형/기업형', 'Zero-to-Maker/Maker-to-Maker/Maker-to-Market'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3]
실제로 더 기술중심의 공간은 해커스페이스이다. 해커스페이스는 어른들만 사용하는 공간으로 기술적 난이도가 긱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
[4]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보고서에서는 당시 인근에 거주하던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강좌를 들으면서 취미 삼아 액세서리를 만들다가 이를 계기로 과학분야로 진학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5]
실제로 정부정책 상 전문랩만을 모집 및 지원하는 것은 아니나, 박근혜정부 당시 '4차산업혁명'을 필두로 연관 정책으로써 메이커스페이스 설립 지원을 시작했으며 주요 언론사 등에서 비판하는 내용 역시 이러한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국내 메이커스페이스의 일반적인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