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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보헤미아 전설상의 통치자 리부셰 Libuš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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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
리부셰 (Libuše) |
출생 | 미상 | |
사망 | 미상 | |
남편 | 프르셰미슬 | |
자녀 | 네자미슬, 라도빌, 루도미르 | |
자매 | 카지, 테타 | |
아버지 | 크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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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헤미아의 전설상의 여성 통치자이다.2. 행적
12세기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학장이자 연대기 작가이며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던 코스마스(Cosmas, 1045년경 ~ 1125년)가 집필한 <보헤미아 연대기>에 따르면, 부족민들간의 분쟁을 슬기롭게 중재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크록(Krok)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장녀 카지(Kazi)는 약초와 점술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고, 차녀 테타(Teta)는 보헤미아 전통 신앙을 도입했다. 셋째 딸인 리부셰는 막내였지만 지혜는 가장 뛰어났고, 보헤미아에서 가장 강력한 성을 건설하고 자신의 이름을 본떠서 '리부신(Libušín)'이라고 이름 붙였다.크룩이 사망한 후, 부족민들은 리부셰를 판관으로 선출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예언을 했는데 전부 들어맞았다. 한 번은 신탁의 정력이 리부신에 내려오자, 그녀는 위대한 도시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사람들에게 특정 장소에 성을 지으라고 지시한 뒤 그곳에 프라하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금속 매장지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 지 조언해주기도 했고, 사람들이 앞으로 겪을 많은 전쟁과 고난을 예견했으며, 아들의 황금 요람을 블타바 강에 가라앉히고 요람이 나타났을 때 더 좋은 때가 올 거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리부셰는 사람들간의 분쟁을 공정하게 판결해 수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부족의 남자들이 여자가 판관이라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남자를 공작으로 세우라고 요구하자, 리부셰는 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산 너머에 작은 강 빌리나(Bilina)가 있고, 그 강둑에는 스타디체(Stadice)라는 마을이 있다. 그 안에는 길이가 12보이고 너비도 같은 경작지가 있다. 이 경작지는 수많은 들판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밭에도 속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공작은 이 경작지에서 가지각색의 황소 두 마리를 쟁기질하고 있다. 황소 중 하나는 흰색 줄무늬로 띠를 띠고 있는 것 같고, 머리도 흰색이다. 다른 하나는 머리부터 등까지 모두 흰색이며, 뒷다리도 흰색이다. 자, 원한다면 내 지팡이와 외투와 공작의 옷을 가져다가 백성과 나의 명령에 따라 가서 그를 당신들의 공작이자 내 남편으로 데려와라. 그 남자의 이름은 프르셰미슬이다. 그 사람은 너희의 머리와 목에 떨어질 많은 법을 고안할 것이다. 이 이름은 '계획적인' 또는 '과도한 생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의 후손들이 이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것이다."
부족민들은 곧바로 사절단을 보냈다. 사절단은 프르셰미슬이 리부셰가 묘사한 모습 그대로 땅을 갈고 있는 것을 찾아냈다. 사절단이 그에게 공작으로 삼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프르셰미슬은 사절들에게 농민들이 먹는 음식을 대접한 뒤 자리에 앉아 지팡이를 땅에 꽃았다. 지팡이는 식사하는 동안 3개의 콩나물이 있는 나무로 변했는데, 한 새싹은 무성하게 자랐지만 나머지 2개는 말라버렸다. 사절들이 이 일이 벌어진 이유를 궁금해하자, 프르셰미슬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리부셰와 결혼하면 세 아들이 태어나겠지만 한 사람만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 후 프르셰미슬은 호화로운 말과 신발을 신었고, 좋은 말을 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출신을 잊지 않고 나무 인피로 짠 신발과 베낭을 가져다가 미래를 위해 보존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리부셰와 결혼한 뒤 세 아들 네자미슬, 라도빌, 루도미르를 낳았고, 보헤미아인들을 현명하게 다스려 야만성을 억제하고 오랫동안 유효한 법을 제정했다.
프르셰미슬의 통치는 리부셰가 죽을 때까지 평온했지만, 리부셰 사후 부족 내 여인들이 남자에게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아 블라스타라는 여인의 주도하에 비셰가르드 맞은 편에 데빈 성을 지었다. 이후 남자와 여자간의 전쟁이 7년간 벌어진 끝에 블라스타가 전사했고 남자들이 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체코의 민속학자 블라디미르 카르부시츠키(Vladimír Karbusický, 1925 ~ 2002)에 따르면, 그를 비롯한 보헤미아 역사의 신화적 인물 12명의 이름은 9세기에 보헤미아인이 프랑크 왕국에 보낸 고대 슬라브어 텍스트의 일부에서 유래했다. 이 텍스트에는 다음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카르부시츠키에 따르면,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고 한다.
현대 체코어로 변환하면 이렇게 해석된다고 한다.
krok kazi Teuthe
a libě
přemýšlej,
nezamýšlíme
na tebe
vojnu
ni zla,
kříži my se
neklaníme,
hosty vítáme.
[1]
카르부시츠키는 이 용어는 당시 프랑크족의 지도자 이름이거나 보헤미아에 거주하는 슬라브인들이 서쪽 이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