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3:16:50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생애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wiki style="margin:-10px" <tablebordercolor=#ff8700><tablebgcolor=#ff8700> 파일:에르도안 흑백 사진.png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f8700> 생애 생애 및 정치 경력 · 평가
선거 2014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 2018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 2023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사건사고 2013년 튀르키예 시위 ·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가족 베라트 알바이라크 · 셀추크 바이락타르 · 할루크 바이락타르
기타 튀르키예 · 반 케말주의 · 신 오스만주의 · 정의개발당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 }}}}}}}}}

1. 출생과 초기 생애2. 총리 재임기3. 대통령 재임기4. 위기, 그리고 부활5. 다시 위기, 미국의 경제 제재6. 2019년7. 2020년8. 2021년9. 2022년10. 2023년11. 2024년



1. 출생과 초기 생애

1954년 이스탄불 베이오을루(Beyoğlu)구 카슴파샤(Kasımpaşa)동에서 태어났으며, 양친은 튀르키예 동북부 흑해 연안의 리제(Rize)도의 귀네이수(Güneysu) 출신이다.[1] 에르도안 가문은 원래 튀르키예 남동부의 대도시 가지안테프 유지였으며 조부모 때 리제로 이주했다고 한다.[2] 카슴파샤에서 자랐으며[3] 이스탄불 이맘 하티프 고등학교(İstanbul İmam Hatip Lisesi)[4]와 악사라이 무역 전문학교(Aksaray Yüksek Ticaret Okulu, 현 이름은 이스탄불 경제 무역학 아카데미-İstanbul İktisadi ve Ticari İlimler Akademisi)에서 수학해 1981년에 졸업했으며, 18세부터 정치판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1969년부터 1982년 사이에는 카슴파샤 SK에서 축구선수로 뛰었다.[5] 1978년에 현재 부인인 에미네 귈바란(Emine Gülbaran)과 결혼해 현재 2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었다.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학했거나, 현재 유학중이다. 이후 이슬람주의 정당인 민족구원당과 복지당(Refah Partisi) 소속으로 있다가 1994년 5월 27일에 이스탄불 민선도지사[6]로 당선되었다.

1997년 12월 12일에 튀르키예 동부의 시이르트(Siirt)에서 시민들에게 한 연설이 "민중의 계급, 인종, 종교, 종파 혹은 지역차이를 선동하고 적대감을 심어주었다."라는 이유로 소송이 걸려 1999년 튀르키예 형법 312조 2항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7] 하지만 4개월 후 그는 석방되었으며, 2001년 8월 14일 정의개발당 창당에 동참하면서 입당하였다.

2. 총리 재임기

2002년 정의개발당은 34.43%의 득표로 총선에서 승리[8]했고, 정의개발당 대표로서 2003년 총리에 취임했다.

에르도안 정권은 유엔이 제시한 개발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튀르키예의 경제학자 케말 데르비시(Kemal Derviş)의 지휘 아래 일본의 경제 노하우를 베이스로 한 유엔 권고안을 잘 진행시켜, 2012년까지 10년간 64% GDP 증가, 43%의 1인당 GDP 증가를 이뤄낸다.(미국 달러의 인플레율 미반영)[9] 연간 수치로 따지면 5% 정도로 개발도상국들 중에서 괜찮은 성적을 보였다.[10] 경제 부총리 알리 바바잔(Ali Babacan)이 거시 경제를 맡아 통화 정책 등을 조율했다. 튀르키예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연간 50%가 넘어가던 인플레이션도 진정되면서 튀르키예 국채 이자율은 1.17%에 거래될 정도로 경제가 안정됐다.

에르도안은 일단 신자유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 증거로 에르도안은 2003년 집권하면서 노동법을 크게 강화했다. 주당 노동시간 기준을 45시간으로 하고, 연장근무를 연 270시간 이내로 제한해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했다. 또 인종 차별(쿠르드인 등), 성별, 종교, 소속 정당에 따른 차별을 금하고,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금지시켰다.[11] 이로서 점점 빈부격차도 완화됐고 중산층이 두꺼워졌다. 아울러 신자유주의는 개인주의와 세속성을 근간으로 하지만 에르도안은 이슬람교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튀르키예에 좀더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하고자 한다.[12]

쿠르드 분쟁에도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다른 건 몰라도 1980년 케난 에브렌의 쿠데타 집권 이후 확산된 군부의 힘을 2003년 ' 슬레지해머 군사작전계획(Balyoz Harekât Planı) 진압사건'으로 완벽히 꺾고[13],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동부지역의 PKK 영향력 확산 저지, 쿠르드 문화와 언어의 인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에 따라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정의개발당은 46.6%, 49.8%의 지지율로 승리하면서[14] 11년간 총리직을 지냈다.

집권 초반에는 반세속주의를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아흐메트 네지데트 세제르(Ahmet Necdet Sezer) 대통령[15]이 물러난 이후 부터 반 세속주의적 정책을 펼쳤다. 정의개발당 초기에는 아흐메트 네지데트 세제르가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반세속주의 법안을 내도 거부당했기 때문에 에르도안은 세제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에는 대통령이 세속주의자였기 때문에 쿠데타가 나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에르도안이 세제르로 인해 고통받았다고 후에 이야기할 정도이다. 에르도안은 세제르 재임 기간에 세속주의를 약화 시키려고 벼르고 있었고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갈등이 폭발한 히잡착용 문제는 2008년에 발생한 것이다. 사실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갈등은 2006년 후반부터 나타났다. 세제르의 임기 만기가 얼마 안 남았을 때, 튀르키예 대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지만 전통적으로 튀르키예의 대통령은 세속주의의 수호자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야당들은 죄다 베토를 행사하여 선거에 불참하여 선출을 지연했다. 야샤르 뷔윅아느트(Yaşar Büyükanıt) 전 튀르키예군 참모총장은 인터넷으로 성명을 발표해 "군대는 세속주의의 수호자로서 필요한 조치를 행할 수도 있다"라는 식의 성명을 인터넷으로 2007년에 튀르키예군 홈페이지에 게시하며 군부와 야당은 압둘라 귈을 견제했지만 결국에는 압둘라 귈은 3차 투표까지 가서 대통령이 되었다. 세속주의자들은 압둘라 귈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라면서 반정부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압둘라 귈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세속주의자의 대항은 정의개발당 해산 시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재판관 1명 차이로 해산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고 에르도안은 이 때를 기점으로 권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사법계, 군부, 경찰, 교육계를 숙청하고 자기편을 임명하면서 튀르키예 정부는 점차 에르도안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세속주의는 약해져 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지지가 높아지면서 언론통제를 가하고 은근슬쩍 이슬람주의적인 정책을 편다는 것. 사실 에르도안 집권 초기에는 언론자유도 향상되었지만 그는 권력을 위해서 점차 언론을 탄압한다. 게지 공원 개발을 계기로 세계적으로도 꽤 주목을 끌었던 2013 터키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에르도안을 둘러싼 부패 스캔들이 터지기도 하였다.

3. 대통령 재임기

내각의 임기가 끝나가자 에르도안은 2010년 국민투표[16]를 통해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꿔 실제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바꿨다. 그리고 2014년 대선에 나가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선출되고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과거 아타튀르크 이후 역대 대통령 관저로 이용되었던 찬카야(Çankaya) 관저를 신임 총리 아흐메트 다우토을루에게 줘버리고 본인이 총리 시절에 만들기 시작한 총리 관저의 명칭을 하얀 궁전(Ak saray)라고 지었다. 반 에르도안 성향의 매체에서는 Ak saray의 앞에 kaç를 붙여 Kaçak Saray(밀수 궁전)이라고 부르는 중이다. 또 튀르키예 SNS에서는 "미국은 백악관이 있지만, 우리에겐 백악궁이 있다."라는 자조섞인 조롱도 빈번하다. 참고로 튀르키예 네티즌들의 성향은 커뮤니티마다 다르지만 Ekşi sözlük, Uludağ sözlük을 비롯한 거대 커뮤니티들은 대다수가 세속주의 혹은 케말주의를 띄고 있다. 괜히 에르도안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제하려 하는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궁 건설 자체도 아타튀르크 색채 지우기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 Ak saray의 부지는 아타튀르크 농장(Atatürk Çiftlik Ormanı)의 부지를 일부 차지해서 지었다. 이 땅은 아타튀르크가 말년에 취미 삼아 농사를 지으며 휴식하던 곳으로, 그의 고향인 테살로니키의 생가를 본떠서 지은 집도 남아 있다. 아타튀르크 사후에 유언에 따라 튀르키예 정부에 기증해서 국영농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그 일부를 에르도안이 침범한 것.[17]

자신의 재집권이 헌법에 의해 가로막히자 바지사장을 앉혀 놓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반대파들에게 '튀르키예판 푸틴'이라며 조롱받고 있다.[18] 실제로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이후 서방세력의 간섭에 대항해 친러 행보를 하려고 하고 있다. # 2021년 현재 와서 보면 튀르키예에게 유리한 면이 있으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을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독일 정부 기밀 문서에 에르도안이 IS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지원한다는 글이 써있다. #

2015년 총선을 앞두고 정의개발당이 승리해 총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얻으면 헌법을 개정하여[19] 튀르키예의 정부형태를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고 자신이 실권을 가진 대통령으로 장기집권하겠다는 원대한 그림을 그렸으나, 막상 투표 종료 후 뚜껑을 열어보니 정의개발당의 득표율은 40.9%에 불과했고 2002년 총선과 달리 군소 정당이 난립하지 않아[20] 총 의석의 3분의 2는커녕 단독 과반 확보에도 실패하면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정의개발당이 야당인 공화인민당(CHP), 민족주의운동당(MHP), 인민민주당(HDP)에게 연정을 제안하려고 들겠지만 이 세 당 모두 다 웃기지 마라고 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에르도안이 의회해산권을 사용해서 조기총선을 할 경우 지지율은 또 멜트다운할게 뻔하다. 그렇다고 이 선거결과를 승복할 시 에르도안은 임기내내 손발잘린 아무 실권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고 대통령에 올라선 보람도 없어진다. 진퇴양난. 결국 선거 참패로 인해 총리 이하 내각이 총사퇴하는 형식으로 내각이 붕괴해버렸다! 이후 정부가 구성되지 않으면서 결국 조기총선 확정.

내각 붕괴로 튀르키예 여론상에서 에르도안은 이로서 정말 손발이 잘려나갔다. 일단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던 22시 이후 길거리 노점 술판매 금지도 어물쩍 야당이 없던 일로 했다. 사실 이런 문제로 그가 스스로 지지표를 갉아먹었다고 보는 분석이 많은데 세계적인 관광국가 튀르키예에서 이런 술판매 금지로 인하여 많은 자영업자들이 이를 갈아왔기에 자업자득이다.

4. 위기, 그리고 부활

2015년 총선에서 정의개발당이 대통령제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가져오는데 실패했지만, 연정 구성도 마찬가지로 실패해버렸다. 한편 IS 샨르우르파도 수루치(Suruç)군에서 저지른 테러로 인해 그동안 불안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던 '쿠르드 노동자당(PKK)'이 일방적으로 튀르키예 정부를 "니들 IS랑 한패지!"[21]하고 군경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를 저지름에 따라 다시금 정의개발당에 대한 지지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PKK에서 온건파들이 따로 떨어져나온 인민민주당(HDP)은 이전부터 PKK랑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에 시달려왔는데, 이번 PKK의 난동으로 더욱 더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며, 특히 HDP가 굉장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비난은 더 거세지고 있다. 각지에서 HDP 당사가 방화 등의 공격을 당하는 등의 폭력 행위가 벌어졌으며, HDP의 당 로고에 PKK라는 글자가 숨어있다는 음모론까지 돌 지경.

장기간 정부구성에 실패하는 와중에 IS에, PKK 테러에, 시리아 난민문제에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튀르키예 국민들은 경제위기에 고생하는 중이다.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1월 조기선거의 결과는 AKP와 에르도안 측에 유리하게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직 망했다고 속단하기에는 이른 것이다. 그러나 HDP의 득표율은 아직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선 기준선인 10% 이상은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고, 다른 야당들 역시 건재한지라 아직까지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AKP의 과반 차지도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그런데 조기총선 개표 결과 여론조사에서 좀처럼 45%를 넘지 못하던 AKP는 49% 득표율로 승리를 거두면서 과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CHP는 득표율을 유지했으나, HDP는 2%p, 그리고 우익 성향의 MHP는 4%p씩 득표율이 빠져나갔다. 다만 개헌선 획득은 역시나 실패. 사실 HDP 지지율이 1%만 AKP로 갔다면 개헌선이 무너질 수 있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이긴 했다.

사실 튀르키예인들이 에르도안을 뽑은 것은 일단 경제적으로 성과는 냈기 때문이다. 공화인민당(CHP)은 도시 지역,[22] 케말주의자, 세속주의자, 알레비파, 시골 지주 등이 지지한다. 튀르키예에서 세속주의 세력이라 뽑으면 튀르키예 사법부, 경찰, 군대, 교육계, 기타 공무원 계층 등이 속한다. 공화인민당은 경제정책 특성상 계획주의, 국유화 정책을 지지하는 쪽이라 재계에서 별로 반기지 않는 데다가 전 대표인 데니즈 바이칼 이후 무능력하고, (이슬람적 관점에선)비도덕적이라는 시선이 있고, 세속주의 군부의 장군이던 케난 에브렌[23] 시대 때 전두환 시절처럼 세속주의를 강요해서 세속주의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지라 여당이 되기는 쉽지 않다.[24] 또 공화인민당이 보수적인 이슬람교인을 의식해,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도 당원으로 받아주자 일부 과격 케말리스트들이 반발하는 등 정권을 잡기에는 여러가지 불리한 점들이 있다.

민족행동당(MHP)은 "튀르크 부심으로 단결하자"고, 때때로 이 단결을 위해 정의개발당 2중대를 자처한다. 심지어 강경 케말주의자들이 공화인민당에서 떨어져나가 설립한 당인 주제에 현재 민족행동당의 성향을 요약하자면 튀르크 민족주의+이슬람 평화민주당(HDP)은 쿠르드들만 찍는 당에다가 PKK와 협력한다는 낙인이 찍힌 상태라 동부지역에서만 영향력있는 당이기 때문에 AKP를 뽑는 사람이 꽤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튀르키예는 한국과 같이 과거엔 젊은층이 정의개발당(AKP)을 지지하고 노년층이 공화인민당(CHP)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았지만 최근엔 AKP지지층은 40-60대가 주류가 되었고 30대 이하 젊은층이 CHP 지지층이 되었다. 물론 과거에도 정의개발당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서 껄끄럽게 생각하는 젊은층이 상당했지만, 그보다 많은 청년층 유권자들의 입장은 "종교따윈 아무래도 좋다."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정의개발당으로 표를 주는 것이다. 위의 튀르키예에서의 이슬람vs세속주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오르한 파묵의 ""이라는 소설을 읽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특히나 오르한 파묵이 눈을 집필할 때는 이슬람계 정당인 복지당이 세속주의 원칙 위반으로 막 해산당하던 시기였고 많은 정당들이 난무하던 시기였던 데다가 경제위기, 보스니아 내전과 체천 내전 등으로 이슬람의 힘이 커지던 시기였던지라 세속주의와 이슬람의 갈등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2016년 1월 2일에는 장관급 확대 회의에서 나치 독일이 효과적인 대통령 시스템의 일례라고 밝히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 또한 최근에 공립학교를 이맘 하팁(이슬람학교)로 전환하려고 시도하는 등, 케말주의자나 세속주의자에게 보복성 정책을 펴고 있다. # 게다가 에르도안은 히잡 금지 정책을 깨고, 금요일날 공무원이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이슬람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힘이 부족해 대응하지 못하고있다. 16년 1월 18일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을 "하찮은 독재자"라고 비난한 제1야당 CHP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주말새 열린 CHP 전당대회에서 쿠르드족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에 대한 에르도안 정권의 군사탄압 행위를 비판한 학자들을 대거 연행한 사건을 거론하며 "의견을 표출한 학자들이 '하찮은 독재자'에 의해 한명씩 구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결정타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감히 어떻게 이들의 집으로 경찰을 보내 체포할 수가 있느냐. 별볼일없는 독재자여, 당신에게 명예와 자존심은 어떤 의미냐"고 자문하면서 "당신의 공정함을 계속 유지해 존중을 받던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매일 명예와 자존심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겠다"고 말했기 때문. 만일 우리나라 였다면 구속이나 검찰수사는 가지 않았겠지만 튀르키예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낮은 편이라 만일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대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다만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기소하지는 않았다.

튀르키예 NTV 방송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도 이와 별도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10만 리라(약 4000만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케말은 국회의원이라 면책특권이 있지만 집권 정의개발당이 의회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 의회 표결로 면책 특권이 박탈될 수도 있다.[25] 사실 앙카라 지방법원은 지난해 9월에도 국가 원수를 모욕했다며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게 2만 리라를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즈미르에서 여교사가 에르도안에게 '손짓'을 했다고 징역 11개월 20일이 선고되었는데, # 위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남자가 했다면 이해했겠지만 어떻게 여자가 그런 손짓을이라고 발언했다. 재판이 에르도안의 의사로 이루어졌다는걸 생각해보면 여교사는 여성이란 이유로 갇힌 거나 다름없다. 참고로 이즈미르는 정의개발당의 지지율이 낮은 지역이다. 왜냐하면 튀르키예 서부 지역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즈미르 등 서부지역은 공화인민당이 압승하는 텃밭이다. 에르도안의 이런 행동은 튀르키예 서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튀르키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에르도안 치하의 튀르키예의 민주주의 후퇴상황을 보고 우려를 표했다. #

2016년 3월 10일에는 에르도안의 부인 에미네 여사가 하렘에 대해 여성들이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시설이라고 발언하면서[26] 거센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

2016년 3월 29일에 독일 방송국에서 에르도안을 풍자한 뮤직비디오 방송에 대해 독일 대사를 불러 중단해달라고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 하지만 독일 정부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뮤직비디오 방송 중단은 못한다며 그런거로 왜 분노하냐고 대답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개헌을 통해 세속주의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다만 세속주의를 포기하게 된다면 위헌정당 해산 + 정치인생 초기화가 기다리고 있고 튀르키예 세속주의 세력이 에르도안의 탄압을 받아도 튀르키예가 쉽게 이란화 되는것은 불가능한데다, 아무리 에르도안이 아타튀르크 폄하를 해도 여전히 아타튀르크 교육은 중시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튀르키예 헌재 판결처럼 위헌정당이 날 가능성이 높다. 그때 7명이 정의개발당을 위헌정당이라 보았고 8명이 정의개발당의 행동은 위헌이나 해산하면 혼란이 온다고 판결하여 해산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대놓고 "나 위헌 정당"이라고 홍보를 하는 꼴이니... 해산에 야당 반대도 있다. 쿠르드고 공화인민당이고 민족주의 행동당이고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 정의개발당 단독 개헌은 꿈에 가깝고... 에르도안은 레임덕인 상태이다.

결국 세속주의를 없앨 거라는 주장은 어그로일 뿐이다. 만일 했다가는 튀르키예 전체에 혼란이 일어나고 자신의 꿈인 EU 가입이 물거품이 될테니.

하지만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27]

위헌 심판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관조차도 반란 누명을 씌워 체포했기 때문이다. # 튀르키예 정부는 알프아르슬란 알탄 헌법재판관도 붙잡았으며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튀르키예 전역의 판사와 검사 약 2천 745명을 해임했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에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전 튀르키예 총리와의 불찰로 인해서 튀르키예 헌법 개헌이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가 헌법 개정을 반대했는데, 결국 에르도안의 압력에 못이겨 사퇴하고, 새 총리로 비날리 이을드름 전 교통통신해양부 장관이 65번째 튀르키예 총리로 올랐다. 비날리 이을드름은 정의개발당 창당 멤버로, 에르도안의 헌법 개정에 동의하며, 친 에르도안 세력이다. 이로 인해서 튀르키예헌법 개정이 좀 더 탄력을 받을 듯 하다. 더군다나 쿠르드 의원이 하도 PKK토벌에 소극적이자 야당과 여당이 (쿠르드 정당인 HDP를 제외하고)모두 면책특권 폐지에 동의했으니...

2016년 5월 30일에 무슬림 가정은 피임을 하면 안된다는 발언을 하면서 여성단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렀다. # 게다가 6월 6일에는 엄마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은 결함이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

2016년 7월 3일에는 튀르키예의 시리아 난민 300만명에게 시민권 부여 방침을 시사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

튀르키예 쿠데타 진압과 숙청 이후 최신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의 지지율은 무려 21%나 껑충 뛰어 67%를 기록했다. 이는 튀르키예인들이 군사 쿠데타를 얼마나 혐오했는지 알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에르도안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그가 일단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때문이지 그의 대통령중심제 개헌 등에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또 이번 쿠데타로 에르도안만 제거되면 정권이 쉽게 흔들린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비날리 이을드름 튀르키예 총리는 사실상 바지사장이었기 때문에 튀르키예 쿠데타 때 에르도안처럼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라는 무리수를 쓰지 못했다. 또 지금 사형제도 도입도 잠잠해졌고, 대통령 연임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하고 있다. 이 말은 에르도안이 지지를 받아도 그건 그의 정책에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고 개헌을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통령 연임 등의 개헌을 요구했다간 야당이 거절할 가능성이 있기에 당분간은 야당에게 립서비스하고 맞춰줄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도안은 야당 공화인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의석수를 바탕으로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연장했다. 이로써 튀르키예는 권위주의 독재로 향하게 되었다. 본래 비상사태는 10월 19일에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국가안보회의(MGK)의 건의로 3개월 연장되었다. 야당인 공화인민당은 "또 다른 쿠데타 시도"라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쿠르드계 방송사 IMC를 폐쇄했다. 생방송 중에 경찰이 난입하여 방송송출 중단을 명령했다. 당연히 IMC 직원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 비상사태로 튀르키예 정부는 20~30개의 방송사가 쿠데타에 연루되었다며 폐쇄를 명령했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어떻게 20~30개나 되는 방송사와 에르도안의 심복이나 마찬가지인 경찰, 행정부, 심지어 일반 평교사가 어떻게 쿠데타와 연루가 되어있겠는가? 오죽하면 공화인민당(CHP)는 쿠데타 피해 접수 창구까지 만들어서 접수까지 할 지경일까...

게다가 쿠르드계 정당 중 하나 인민민주당'(HDP) 공동대표 셀랴하틴 데미르타시(Selâhattin Demirtaş)와 피겐 윅섹다으(Figen Yüksekdağ) 등 HDP 현역 의원 11명을 '테러조직 연계' 혐의로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며, 페이스북 트위터도 차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그리고 EU 가입 외에 상하이 협력기구의 가입도 제안했다. # 애초에 립서비스였기 때문인지 2022년 현재는 흐지부지 되었지만... 2016년 11월 20일에 아동성폭행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유죄판결을 뒤집고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안이 추진되면서 야당의 반발과 논란이 생겼고, 이스탄불에서는 3,000명의 시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였다. #정말 너무 나쁘다. 반발이 커지자 제안된 법안은 총리가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

2016년 11월 22일에는 2029년까지 집권하기 위해 개헌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야당측에서 반발을 보이고 있다. # 게다가 MHP 대표 역시 "지금 튀르키예 헌법에는 의원내각제를 규정하고 있는데 지금 시행되는 법은 사실상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헌법을 어기지 않으려면 개헌해야 한다" 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비록 AKP+MHP의 의석이 개헌선까지는 안가도 국민투표에는 부칠 수 있다. 국민투표를 부치게 되면 에르도안에게 유리해 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에르도안은 사실상 종신 대통령을 할 수도 있게 된다.

유럽 연합 가입이 안 되면 난민이 유럽 가는길을 막지않겠다고 서방에 경고하였다 #

2016년 11월 29일에는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라는 발언을 했다. #

2016년 말에 튀르키예 정부는 2017년 여름에 제왕적 대통령제로 개헌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밝혔고 공화인민당과 인민민주당은 이에 대해 반발했다. # 또, 미국 등 연합군이 IS를 지원한다고 주장했다. #

2017년 1월 11일에 진행된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고 대통령제로 개헌하는 방안이 표결되면서 야당의원들과 여당의원들이 충돌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 # 그리고 개헌안이 1차로 통과되면서 장기 집권 시나리오에 청신호가 켜졌다. # 게다가 장기집권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그리고 국민투표가 이르면 4월에 실시될 때 통과되면 2029년까지 장기집권이 가능해져서 야당도 반발하고 있다. # 그리고 1월 21일에 튀르키예 의회는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는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거기에 야당과의 충돌도 발생되었다. #

게다가 개헌투표가 시작되기 전인 2017년 3월 3일에 에르도안의 전기영화가 상영되자 선전영화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 그리고 독일과는 개헌집회가 불허되고 에르도안이 독일을 나치에 비유하는 발언을 하자 갈등을 빚었고 동시에 독일측에서는 단교까지 거론하고 있어서 독일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 게다가 네덜란드에서도 개헌집회불허 및 튀르키예 외무장관의 전용기착륙을 불허하자 네덜란드를 향해 나치, 파시스트의 잔재라고 비난했다. # 그리고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유럽을 향해 십자군 전쟁을 운운하는 등 막말을 했다. #

결국 개헌안이 가결되었고 2029년까지 더 집권할 수도 있게 되었다. # 2017년 4월 22일 KBS1에서 방송된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에서 이 개헌에 대해 방송을 했는데, 찬성 51.4% 반대 48.6% 로 2.6%의 차이였다.[28] 그런데 관인이 없는 선거용지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투표감시단에서 지적하자 선거관리위원회는 그냥 유효한 표라고 합산했다. 투표를 참관했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50만표(약 5%)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튀르키예 선거관리 위원회는 무효화 심의요구를 반대10 찬성1로 기각시켜버리는 막장짓을 해버린다.

2017년 4월에 미국의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 미사일 공습을 지지하며 시리아 정부에 대한 추가공격과 유엔과 국제사회가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고 촉구했다.

2017년 4월 24일에 프랑스에서 에르도안을 막는 길은 암살이라고 발언했던 프랑스 학자를 튀르키예 정부가 고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 4월 28일에 튀르키예는 에르도안을 독재자라고 기술했던 위키백과를 차단하는 조치를 실시했다. # 그리고 법관, 군인 등 4천여 명을 해임하고 귈렌 운동에 연루된 공무원 4천 명도 해임하고 체포하는 등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 # # 게다가 짝짓기 예능이 튀르키예 관습이 종교에 어긋난다고 짝짓기예능프로그램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 그리고 유엔 인권대표는 2017년 5월 1일에 튀르키예 공직자의 무더기 해임에 대해 비판했다. #

개헌투표가 통과된 뒤, 에르도안은 정의개발당으로 복당했다. # 그리고 개헌한 뒤 한달여만에 여당당수가 되었다. # 튀르키예에서는 투옥과 해고 등을 정부측의 조치에 대해 반발한 사람들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오히려 사법당국은 강경하게 나섰다. # 2017년 5월 25일에 EU의 도날트 투스크 회장과 에르도안은 회담을 가졌으며 EU측은 튀르키예의 인권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 2017년 5월 30일에 에르도안은 정의개발당 소속 의원들앞에서 망명신청한 귈렌 조직의 송환을 촉구했고 불응한 국가들에 대해선 범죄인 인도에 비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

2017년 5월 2일에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여기서 모디 총리에게 카슈미르 사태에 대한 중재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

2017년 5월 16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였다. 회담에서 미국과의 대테러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시리아 쿠르드 반군 YPG는 테러 단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YPG 무기 지원을 반대했다.

튀르키예는 대통령 모욕죄 고소가 튀르키예 야권과 반정부인사에 이어 에르도안이 미국 전직 관료까지 모욕죄로 고소하는 일이 발생되었다. # 게다가 2019년부터는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을 제외시키고 아타튀르크 관련 교육을 축소시키는 등 원리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 #

2017년 6월 26일 명절기도에서 건강이상증세를 보이다가 이후 회복되었다. # 지난달에 공화인민당소속의 의원이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사건이 일어나자 튀르키예에서는 공화인민당의 주도로 정의의 행진시위가 커지자 튀르키예 정부 측은 긴장하고 있다. # # # 그리고 이스탄불에 도착한 뒤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와 지지자들을 포함한 200만 명이 모여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했다. # # 그리고 쿠데타 1주년을 앞두고 에르도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스탄불에서 일어났고 수십만 명이 모여서 정의를 외쳤다. #

그리고 스웨덴 의원들은 에르도안을 전범죄로 스웨덴 검찰에 고발했다. # 2017년 7월 12일에 에르도안은 국가비상사태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 그리고 EU는 진실하지 못하고 쿠데타 모의자들을 엄단하는 발언과 감옥에 있는 진짜 기자는 2명뿐이라는 해명을 했다. # 공직자 7,000명 이상이 해임되었다. #

2017년 7월 15일에 쿠데타 시도 1주년을 맞이하면서 에르도안은 연설에서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자들을 제거하겠다는 발언을 함과 동시에 사형제의 부활을 추진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 # 2017년 7월 18일에 튀르키예 법원은 엠네스티 터지 지부의 국장 등 6명에 대해 구금명령을 내렸다. # 게다가 튀르키예 정부는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동시에 지하드(!) 과목을 추가한 새로운 교과과정을 발표하면서 튀르키예의 교원단체에서 반발했다. # 그리고 새교과과정에 종교적 색채가 과도해졌다는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 그리고 2017년 7월 24일에 언론인 19명이 테러를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 게다가 하루 뒤인 7월 25일에 독일이 튀르키예를 재제하면 대가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했다. #

그리고 2017년 7월 28일에 튀르키예 법원은 튀르키예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줌후리예트의 편집국장과 대표경영자의 투옥연장을 결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 2017년 8월 2일에는 육군, 해군, 공군사령관을 전부 다 바꾸는 등 군까지도 장악하고 있다. # 그리고 지난달 15일에 에르도안은 쿠데타 가담군인이 히어로가 쓰인 티셔츠를 지목하면서 히어로라는 글자가 적힌 옷들은 판매가 금지되고 단속하고 있다. # 그리고 또 다시 언론인 35명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되었다. # 그리고 2017년 8월 14일에 튀르키예에서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이 테러혐의로 무더기로 구금되는 일이 발생되었다. #

그리고 지난달에 있었던 정의 행진을 주도했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확산되어 있다. # 2017년 8월 18일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선 독일내 튀르키예계 유권자들이 메르켈과 슐츠에게 표를 줘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 2017년 8월 28일에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을 비판했고 로힝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 지난 28일에 튀르키예의 국영채널이 공화인민당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에르도안의 조세회피처 송금 내역을 공개하려는 사이에 갑자기 방송이 끊기는 사태가 벌어지자 야당은 검열이라고 반발했고 알 권리 방해행위를 고발했다. # 거기에다 이란 제재를 위반하고 에르도안이 튀르키예 은행에 돈세탁(!)을 가담한 것도 승인했다고 이란계 튀르키예인이 미국 법정에서 밝혔다. # 그러다가 몰래 이란을 지원한 튀르키예의 국영은행부사장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지자 튀르키예 정부는 항의했고 에르도안은 조작이라고 반발했다. #

튀르키예 총리 비날리 이을드름 방한 당시 2019년부터 적용되는 대통령 중심제의 튀르키예 헌법의 모델로 대한민국 헌법을 삼았다는 발언을 하였다.

2018년 1월 2일 튀르키예의 좋은 당 대표인 메랄 악셰네르는 쇠즈쥐와의 인터뷰에서 튀르키예 대선의 공작목적으로 무장요원을 훈련하는 캠프가 운영중이라고 주장했고, 거기에다 1년 빨리 7월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최근 튀르키예는 저출산이 심각해지자 에르도안은 피임은 반역이고 아이는 셋을 낳으라는 발언을 했다. #

2018년 1월 4일에 공화인민당 소속의 베식타시 단체장이 공직을 박탈당하자 튀르키예 야당측은 반발했고, 거기에다 인민민주당 소속의 이드리스 발루켄 의원이 징역 16년 8개월 형을 선고당하면서 튀르키예내 야당들도 탄압받고 있는 상황이다. #

2018년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튀르키예의사협회에 가입한 24명이 시리아의 쿠르드 공격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구금되었다. # 그리고 이프린 작전에서 쿠르드족들을 공격할 때, IS 조직원들을 대거 동원(!)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2018년 2월 8일에 유럽 의회가 튀르키예의 비상사태를 해제하라고 촉구하자 튀르키예측은 오히려 반발했고 유럽 의회의 결과가 무의미하다고 폄하했다. #

지난 24일에 에르도안은 만6세 소녀에게 순교의 중요성을 발언했고 튀르키예에선 군국주의, 국가주의의 확산이 진행중이라서 튀르키예내 소셜미디어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그리고 에르도안치하에서 국가종무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2018년 2월초에는 악마는 왼손을 사용해서 아이들은 오른쪽을 사용해야 한다는 파트와를 내놓고 예전에는 여자들은 9세부터 결혼할 수 있다는 파트와도 내놓으면서 조롱과 비난이 커지고 있지만, 국가종무국의 성장이 커지고 있다. # 지난달 28일에 아흐메트 알탄 등 지식인 6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자 노벨상 38명은 알탄 형제 등을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2018년 3월 13일에 선거법개정이 튀르키예 의회에서 통과되자 야당의원들은 반발했고 몸싸움이 일어났다. # 2018년 3월 31일에 에르도안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열린 비엔날레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이슬람 기도문을 암송했다. # 그리고 5월 23일에 이스탄불 국제공항 자리에 국가정원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히자 야당은 반발했다. # 5월 26일에 튀르키예언론보호청의 아카르자 청장은 이스탄불에서 열린 외신간담회에서 에르도안을 독재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요구했다. # 그리고 5월 30일에 프랑스의 주간지 르 쁘엥이 에르도안을 독재자라는 제목으로 개재하자 지지자들이 파리 가판대에서 철거하라고 항의했다. #

2017년 개헌 국민투표의 가결 이후 2019년에 시행되기로 되어 있던 대통령 중심제 하의 첫 대선을 2018년 6월로 앞당겼다. 표면상 50프로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로 보인다. 공화인민당 인민민주당은 장기집권을 획책하려는 독재자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정국에서 AKP와 연대하는 극우 민족주의행동당(MHP) 출신의 메랄 악셰네르 대표가 창당한 좋은 당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데, 에르도안과 같은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우익이면서 세속주의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정의개발당의 지지율을 잠식하고 있다. 실제 5월 여론조사로는 결선투표에 에르도안과 악셰네르가 올라갈 시 0.2%포인트 차로 초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

2018년 6월 2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 국회의원 총선 통합 선거에서, 에르도안은 대선에 출마하여 53.2%의 득표율로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지었다. 또한 총선에서는 정의개발당이 42.3%를 얻었다. 또한, 11.4%를 득표한 MHP가 갑자기 정의개발당과 연정을 선언하면서 수월하게 집권하게 되었다. 인민민주당은 10.9%로 간신히 10%에 턱걸이했다. 공화인민당은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개표 결과가 조작됐다며 선거 불복 선언을 했다.

그리고 SNS도 이용하고 있어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으고 있고 거기에다 페리스코프도 이용하고 있다. #

2019년 3월말에 튀르키예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선거인 명단에 165세(!)의 유권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부정개입의혹이 튀르키예야권에서 제기되었다. #

5. 다시 위기, 미국의 경제 제재

그러나, 이런 부활과 달리 튀르키예 경제는 매우 나쁘며 개박살 중이다. 2018년 9월, 튀르키예는 연간 24.52%, 월간 6.30%로 15년만에 최고를 찍은 물가상승률로 허덕이고 있다. 외화부채만 해도 4667억 달러에 달해 GDP의 55%나 될 정도다.[29] 거기에 튀르키예 정부가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 목사를 체포하여 구금하고는 미국의 석방요구를 계속 거부하자 반발한 미국에서 튀르키예산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규제, 관세 2배 부과 등으로 튀르키예 리라 가치가 박살나면서 튀르키예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에르도안은 오히려 모든게 미국 탓이라고 발악하며 반미적으로 이란, 북한, 중국, 러시아와 힘을 합치겠다고 맞서지만 이런 경제위기가 계속 되면 에르도안 정권 미래도 밝아보이지 않는다.

2018년 5월 31일 대비 8월 13일 기준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는 무려 30% 넘게 폭락했고, 2017년 12월 31일 대비로는 반토막났다.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난 10월 6일에도 2017년 말보다 38%나 가치가 낮아져 있다.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튀르키예 국민들은 은행에서 돈을 찾으러 뛰어가고 있고, 2018년 10월 6일 기준 아직 에르도안이 은행들 영업정지는 시키지 않았지만 튀르키예 국내에서는 은행 영업정지 및 환전 전면 금지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연히 에르도안의 요구대로 금융시장이 통제가 안 되는 중이다.

2020년에도 튀르키예 리라화는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2018년 기준으로 또 반토막이 나고 있는 상태다. 원인은 복합적인데,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에다가, 에르도안이 EU, 미국 때리기를 하면서 기존에 맺은 조약들을 위반하거나 탈퇴하면서 서구권에서 계속해서 크고 작은 경제 재재를 먹은데다가, 또 러시아에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겠다고 하다가 나토권 국가가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 무기를 쓰는것에 빡친 미국에게 경제재재를 추가로 먹으며 리라화가 나락으로 가고있는 상황이다.

이론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주장한 에르도안의 튀르키예는 2022년 현재 부당한 정책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의 상황을 더 심각하게 겪고 있다. 물가가 미친듯이 오른 것을 은폐하고 싶은 에르도안이 통계청장을 경질해버린 것은 덤.

6. 2019년

2019년 새해 정초부터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통일사회당 정부와 후안 과이도 야권연합 과도정부 간 정치 위기가 발생하자, 에르도안은 마두로를 지지하였다.

2019년 2월 12일에 튀르키예 정부는 2016년 쿠테타 모의 사건과 관련해 1112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 검거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고 아나돌루통신이 보도했다. #

뉴질랜드에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에르도안은 유세도중에 동영상을 거론하면서 뉴질랜드에 사형제를 부활하라는 말을 하자 뉴질랜드는 반발했다. # 그리고 호주 총리는 튀르키예에 '정치에 테러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주호주 튀르키예 대사를 초치한다고 밝혔다. # 하지만 비판에도 에르도안은 관련 동영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

3월 24일에 인터뷰에서 1935년 이래 종교 시설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되돌릴 수 있다고 밝히자 논란을 빚고 있고 그리스측은 반발했다. # # 그리고 튀르키예 리라화의 가치급락을 서방의 조작이라고 반발하며 JP모건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다. # # 하지만 무리한 유동성 차단정책을 실시하자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

지방선거에서 전체 투표에는 AKP가 45%가량을 득표해 30%를 얻은 CHP를 앞섰다. 하지만 수도 앙카라 등 대도시에서는 민심 변화가 감지됐다. 경제난이 가중되자 에르도안 대통령에게서 대도시들이 먼저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도 앙카라 시장은 25년 만에 제1 야당인 공화인민당(CHP)가 가져갔다. CHP는 50.6%를 득표, 정의개발당(AKP)을 3.4%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승리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이스탄불은 혼전의 양상이지만 사실상 정의개발당이 패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 그리고 이스탄불은 공화인민당 에크렘 이맘오을루 후보가 48.80%, 여당 후보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가 48.55%를 각각 얻었다. 두 후보의 득표율 차는 0.25%p에 불과하다. 정의개발당에선 개표가 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확실하게 단언컨대 우리가 승리했다." 라고 당선사례 현수막까지 이스탄불 곳곳에 내거는 등 설래발을 치다가 공화인민당의 승리가 확실시되었음에도 현수막들을 철거하지 않고 개표 결과에 대한 이의를 제출했다. # 중앙선관위에 의해 무효처리된 표 중 상당수가 정의개발당 표인데 해당 무효처리된 표를 재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부정선거는 제놈들이 하지 내로남불이냐?" 라고 비웃는 중.

그런데 튀르키예 최고선거위원회(YSK)가 5월 6일 이스탄불 광역시장선거 결과를 무효로 결정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 결국 이에 반발한 이스탄불 시민들이 항의시위를 했다. # # 그리고 재선거에 대해 에르도안과 함께 정의개발당 정권을 창출한 주역들도 비판했다. # 하지만 좋은 당과 공화인민당의 요청에도 최고선거위원회는 요청을 거절했다. #

하지만 6월 23일 다시 열린 재선거에서 야당인 공화인민당 소속의 에크렘 이맘오을루 후보가 다시 승리했고, # 그것도 이전의 0.25% 격차보다 훨씬 큰 격차인 약 8%의 격차로 정의개발당 후보에 압승해서 큰 망신을 당했다. 이스탄불 재선거 이후 국제시장환율도 요동치기 시작해 달러당 6리라까지 치솟던 튀르키예 리라 환율이 순식간에 5.80 밑으로 떨어졌다. 당시 공화인민당을 지지하는 이스탄불 시민들이 단체로 휴가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바람에 여행사들이 업무혼란을 겪을 정도로 이번만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세속주의자들의 의지가 거셌다. 에르도안은 "그저 광역자치단체장을 뽑을 뿐", 혹은 "시장이 야당이라도 구청장이랑 도의원들은 여당인데 혼자서 뭘 어쩌겠다는거냐?" 라고 애써 정신승리로 일관하다가 결국 선거 다음날 트위터 및 공개연설로서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

결국 정의개발당 창당 주역인 알리 바바잔 전 부총리가 탈당하게 된다.

2019년 10월 30일 미국 하원에서 아르메니아 학살을 종족학살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에 대한 큰 모욕이라며 비난했다. #

12월 10일에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카타르의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라고 밝혔다. #

7. 2020년

2020년 2월 시리아 내전의 패색이 짙은 반군 세력을 지원하고 쿠르드를 제압하기 위해 파병했다가 러시아군[30]이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버리는 바람에 시리아 국경 근처의 이들리브의 전투에서 형편없는 성과를 보이는 중. 튀르키예는 명색이 NATO라고 서방 여론의 지지와 함께 파병에 힘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빼려 하고 있고, 윗문단만 봐도 미국이랑 사이가 나쁘다는 게 함정. 미국산 전투기를 100대나 사겠다고 계약했다가 러시아산 대공미사일도 들이겠다고 개기다가 전투기 계약이 파토났는데 그 와중에 러시아와의 외교도 거하게 말아먹어서 미러 양국에게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 게다가 튀르키예 쿠데타의 핵심 세력이 튀르키예 공군이라서, 에르도안이 쿠데타를 진압한 후 베테랑 조종사들을 정치적으로 숙청시킨 상황이라서 공군력도 제대로 쓰기 어렵게 됐다.

이는 튀르키예의 난민 문제도 상당 부분 엮여있는데, 시리아에서 나오는 난민의 1차 종착지가 무조건 튀르키예인데, 문제는 튀르키예에서 난민을 모두 수용하기 매우 곤란하고 유럽 역시 난민 문제로 골치를 한번 썩혀서 수용할 의사가 없는 상황인데, 시리아 정부에서 내전의 끝장을 보려고 이들리브의 전역에서 맹공격을 가하고 있어 난민이 폭증하고 있는 것도 한 몫 하긴 한다. 그러나 유럽은 러시아·이란·튀르키예 3자가 맺은 소치 협약을 먼저 어기고 시리아에서 똥을 싼건 너희면서 왜 우리한테 손을 뻗냐는 입장.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군이 시리아군의 공세를 사실상 멈춘 건 사실이다.

3월 4일에 공화인민당의 엥긴 외즈코치(Engin Özkoç) 의원이 에르도안을 비판하자 여당의원과 야당의원들 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

코로나19가 튀르키예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에르도안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

튀르키예 의회가 법원에서 테러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야당 의원 3명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

7월 2일에 튀르키예 최고행정법원에서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환원하는 것을 2주뒤에 결정한다고 밝히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 ## 그러나 비판에도 불구하고 7월 10일 하기아 소피아 모스크 환원을 확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위는 또 그대로 인정하라고 주장하여 유네스코와 동방 정교회의 비난을 받았다. # 하기아 소피아가 모스크로 바뀐 7월 24일에 에르도안은 하기아 소피아에서 예배를 했다. #

튀르키예에서 LGBT 퍼레이드가 에르도안 정권에 의해 몇년동안 취소되고 있고 정치인들의 LGBT에 대한 혐오 발언이 늘어나면서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드라마에 게이 캐릭터가 나왔다는 이유로 튀르키예에서 넷플릭스측에 압력을 가한 일이 발생했다. #

게다가 소셜미디어 법안이 의회에 통과되어 검열 강화에 들어간다. #

8월 5일에 이스탄불에서는 수백명의 여성들이 튀르키예 정부에 여성 폭력을 금지한 이스탄불 협약을 유지하고 가정폭력을 근절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

8월에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하에 외교관계를 맺자 에르도안은 반발해 아랍에미리트와의 외교 중단을 검토하기로 했다. #

8월 28일에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계속해온 변호사가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터지자마자 에르도안은 트위터를 통해 아제르바이잔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튀르키예군 파병 의사도 있다고 밝혔다. 트위터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튀르키예에게 경고했고 튀르키예측은 반발했다.

2020년 10월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 이후 프랑스 정부가 정교분리법 강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튀르키예 정부는 이를 비판했다. # 또한 에르도안은 에마뉘엘 마크롱을 직접 언급하며 자신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이슬람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 "마크롱은 무슬림과 무슨 문제가 있나? 그는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는 독설까지 날렸다. # 에르도안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유럽연합,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EU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판했다. # 그러자 에르도안은 " 유럽 지도자들은 나치와 연계된 파시스트들"이라며 인신공격을 가했다. 기사 프랑스와 튀르키예간의 갈등이 커지자 샤를리 엡도는 에르도안을 조롱하는 만평을 공개했고 #, 튀르키예 정부는 이를 비난하며 법적, 외교적인 행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

2020년 10월 31일 새벽에 튀르키예- 그리스 지중해 연안 지역에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하여 급속도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발생하여 튀르키예 쪽으로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진으로 인해 그리스 총리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와 서로 지원의사를 표명하고 "두 이웃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돕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삶에 있어 대부분의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라며 오랜만에 훈훈한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튀르키예 리라화가 급락하자 중앙은행 총재를 전격 교체했다. #

키프로스섬에는 2개의 국가가 있으며 북키프로스도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31]

11월 22일 에르도안은 자국을 유럽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12월 10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승전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

12월 20일, 연설에서 튀르키예를 위협하는 자는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8. 2021년

튀르키예 건국 100주년을 맞아 달에 탐사선을 보낸다고 발표했다.

여성을 가정폭력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스탄불 없는 이스탄불 협약 내부는 물론 유럽연합에서도 비판 수위를 높였다. # 이에 여성단체에선 항의시위를 했다. #

해군 제독 10명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운하 건설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가 구금됐다. #

4월 6일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EU와 튀르키예 간 정상회담에서 튀르키예측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샤를 미셸 남성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자리만을 준비한 것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여성이라고 무시한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시위대 강경 진압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의 동예루살렘 권리를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 #

2021년 5월 튀르키예 마피아의 유명한 보스인 세다트 페케르가 정의개발당의 고위급 정치인들과 에르도안 정권의 측근들의 각종 부정부패,범죄를 폭로해서 또 다시 큰 스캔들에 직면하고 있다. 기사, 기사2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에 새 모스크가 세워졌고 개관식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참석했다. #

튀르키예 정부가 귈렌의 조카를 체포했다. #

2021년 6월 15일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도시 슈샤를 둘러보고 일함 알리예프와 같이 아제르바이잔과의 동맹을 선언했다. 기사

이스탄불 협약에 탈퇴한 것에 대해 튀르키예 여성들이 항의시위를 했다. #

여성단체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 정부는 7월 1일부로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했다. #

튀르키예 SNS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23살의 여성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성 박물관 안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 다만 해당인물의 인스타그램이 여전히 살아있고, 후속기사가 없는걸로 봐선 흐지부지 끝난듯하다.

튀르키예에서 네티즌들이 튀르키예를 돕자(#HelpTurkey) 해시태그를 붙이자 튀르키예 검찰이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며 조사에 나섰다. #

에르도안 대통령이 현 세계 질서를 비판하는 저서 더 공정한 세상은 가능하다를 출간했다. #

튀르키예내에서 K팝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소문이 나오자 튀르키예내에선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

7월, 8월, 9월에는 아프리카 5개국을 방문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통령을 만나 회담을 가졌다. #(튀르키예어)

2021년 9월 30일에 키프로스의 외무장관이 에르도안 대통령이 신오스만 제국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2021년 10월 23일, 튀르키예의 반정부 인사 석방을 요구한 10개국의 대사에 대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지시했다. # 그러다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10개국 대사 추방 명령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

튀르키예 정부가 금리인하를 계속 유지한다고 밝히자 리라화가 최저치를 나타냈고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

9. 2022년

1월 1일부터 튀르키예 정부는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을 이유로 전기료와 천연가스 가격을 인상했다. #

19년만에 튀르키예의 물가상승률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

2022년초에도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젤린스키 대통령을 초청해 분쟁 해결 중재에 나선다고 밝혔다. # 전쟁이 터지자 양국의 입장을 고려하며 미국과 EU를 대신하여 서로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5차 협상을 개최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 또한,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와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한 돈바스 지역의 지위 등 영토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가 유연한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거나 현 상황에 대해 푸틴 대통령에게 무리한 야망에서 벗어나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하는 등 # 양측 모두를 설득하는 중이다. 타국들과 달리[32] 우크라이나, 러시아 양쪽 모두를 달래고 질타하는 중립적인 면모를 보이기에 국제적으로 고립상태가 되어버린 푸틴 대통령에게 약간이라도 신뢰를 받아 상호 대화가 가능하면서 유일하게 현실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은 현 시점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 뿐이다.

양다리 외교를 통해 미국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에서 S-400 미사일을 도입하는 한편[33], 반대로 러시아의 적대국인 우크라이나에게 크림반도와 관련하여 우크라이나 귀속을 주장하던 크림 타타르인들[34]의 석방을 러시아에 요구해 관찰시켰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튀르키예산 드론을 판매하여 러시아의 전차부대가 드론에 파괴되어 쓰디쓴 피해를 입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게다가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의 인도주의 지원을 돕기 위해 러시아 군함의 흑해 통과를 봉쇄했다. [35] 이쯤 되면 대체 어느 쪽 편인지 세계 지도자들 중 제일 알 수 없는 사람

지난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19년 만에 최고치인 36.1%에 달한다고 발표한 통계청장을 경질했다. #

에르도안 대통령이 튀르키예의 기본적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TV 프로그램 등 미디어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

에르도안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을 비꼰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에게 국가원수 모욕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

튀르키예의 고물가로 인해 튀르키예를 떠나는 의사들이 늘어났다. #

2022년 들어 2023년 6월 23일의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야당 후보들에게 결선투표에서 오차범위 밖으로 밀린다는 조사가 계속되고 있어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떨어진 리라화의 가치와 고물가 등 경제적인 불만이 주요 원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세계적 인플레이션 등의 영향도 있지만, 에르도안의 경제학에 반하는 금리정책 등의 영향도 크기 때문에 해결의 의지조차 의심되는 중.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하여 보수층에 구애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대표적으로 ‘터키(Turkey)’라는 국명을 현지어 국명으로 ‘튀르키예인의 땅’ 이라는 뜻의 ‘튀르키예(Turkiye)’로 변경하거나 쿠르드인 난민을 받아준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 국명 문제의 경우 영어로 “Turkey”가 칠면조, 실패작 등의 의미가 있어 불만이 많았던 만큼 내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영국,미국 등 영어권을 포함해 세계 각국이 기존 표기를 변경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 거기다가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율이 무려 85%나 되는 무지막지한 비율이라 초비상이다.

7월 8일 한국시간 오후 6시 29분경, 당일 발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살 사건에 대해 트위터로 테러를 규탄하고 깊은 슬픔을 느끼며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

9월 17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상하이 협력 기구 가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에르도안이 볼프강 쿠비키 독일 부의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 에르도안의 난민 정책을 비판하며 "Kanalratte(하수구 들쥐)"라고 비난했다는 점이다.

12월 14일, 에크렘 이맘오을루 이스탄불 도지사에게 징역형과 정치활동 무기한 금지가 선고되었다. #

12월 29일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펠레의 사망을 추모하였다. #

10. 2023년

2월 6일, 가지안테프 지진과 관련해 1주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였다. #

지진 발생 이후 부실한 대응으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지진 발생 35시간 이후에야 대책에 나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일 뒤에서야 민심 달래기용으로 현장 방문에 나선 것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또 튀르키예는 지난 20년간 6조원 규모에 달하는 지진세를 걷어왔는데, 정작 지진세가 적절히 사용되지 못하여 부실공사가 판을 쳤고 이것이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작 에르도안 대통령과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세 사용 내역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어 세금 횡령에 대한 의혹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 반대하는 야당인 공화인민당, 인민민주당, 좋은 당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지역들[36]에는 구호물품을 고의적으로 늦게 보내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어 곤경에 처하고 있다. 그러고서는 "이번 참사는 막을 수 없는 재해였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튀르키예 국민 대다수의 분노를 사고 있으며[37] 더 나아가 가짜 뉴스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튀르키예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접속을 막아버린 것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실시간 정보를 차단한다며 불안감을 형성하고 불만 여론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나오고 있다.

이미 만수르 야와시 같은 야권 유력 대권 주자에게 지지율에서 큰 차이로 밀리고 있는 에르도안의 입장에서, 5월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4월 25일 저녁 한 생방송 인터뷰를 예정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시작되었고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에르도안이 쓰러지자 질문하던 기자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방송 카메라는 흔들리며 주변에서 놀라는 비명소리까지 들렸다. 이로 인해 광고화면으로 전환되었고 시간이 꽤 지난 후 인터뷰가 재개 되었고 에르도안은 "(본인이) 장염에 걸렸다" 사과했으나 그의 얼굴 혈색이 매우 나빴으며 생방송은 조기 종료되었다. 이에 대해 에르도안이 심장마비 등 심각한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대통령실 공보국장은 이를 부인했다. 매일경제, 연합뉴스

대선 여론조사 공표 금지 이전 마지막으로 나온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에 5% 차이로 밀리고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1차 투표에서 패배할 가능성도 생겨, 에르도안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선거 직전 급하게 선심성 공약을 대량으로 발표하며 표심 진작에 나섰다.

다수의 여론조사에서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게 밀리는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개표 결과로는 약 49%의 득표율로 1차에서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4.4% 이상의 우세를 점한 것으로 나타났다.[38] 1차 투표에서 50%를 못 넘기는 바람에 2차 투표에서 다시 승부를 가르게 되었지만, 시난 오안의 표가 다수 에르도안에게 향할 가능성이 높음을 감안하면 결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리고 결국 에르도안은 2차 결선투표에서 승리하게 되며 재임하게 됐다.[39] 에르도안의 재임에 일부 서방언론에서는 "종신집권의 길이 열렸다."고 평할 정도로 에르도안이 독재로 갈 가능성을 우려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종신집권의 길까지 열리며 정권연임에 성공하자 서방 세계는 뒷목을 잡게 되었다. 왜냐하면 에르도안의 집권은 즉 더욱 강화되는 이슬람주의 +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로의 속행을 뜻하는 것이며, 나토 멤버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제재할 때도 참여하지 않았던 에르도안의 튀르키예였기에, 서방 세계와의 마찰과 신경전이 계속 예고된 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SNS를 통해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반면 러시아의 푸틴은 친우가 승리한 것에 축하한다며 서신을 보냈다. 에르도안이 재임하자마자 당연히 나토 관련으로 충돌이 발생했다.

스웨덴의 NATO가입에 튀르키예의 찬성만이 남은 상황에서 미국은 F-16 판매 허가를 딜을 먼저 타진하면서 줄다리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스웨덴 가입 승인을 하면 F-16 판매 승인 해준다."며 전제조건을 걸지만 에르도안은 "너네들이 먼저 F-16을 판매하면 승인하겠다."며 서로서로 먼저 내놓기를 바라는 상황이다.[40] 한편 스웨덴 역시 튀르키예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반테러법을 제정하는 등 나토 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기집권이 성사되자 친러행보를 멈추고 서방과의 관계를 다시 개선하기 시작했는데 첫 단추로 중재국으로써 마리우폴 전투 당시 붙잡힌 우크라이나 군 포로들을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와의 협의도 없이 신병을 인도하였고 이후 스웨덴의 NATO 가입 조건으로 튀르키예의 EU 정식가입을 허가해주는 것으로 고수해왔으나 갑자기 NATO 정상회의에서 찬성으로 급 선회하였고 미국 의회 또한 F-16 튀르키예 판매 안건을 올린 것을 보면 F-16을 수입하는 조건으로 스웨덴 가입 승인 노선으로 바꿨다.

또한 그동안의 금리 인하 기조를 깨고 친시장정책으로 선회, 금리를 8.5%에서 15%까지 650bp를 한번에 올렸다. 다만 서방의 애널리스트들은 최소 17%에서 20%까지는 올렸어야 한다며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전환만으로도 상당한 외화를 터키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EU가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인지 터키와 가장 적대적인 그리스를 방문하여 관계 개선을 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 28일, 박진 대한민국 외교부장관과 면담을 갖고,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의 튀르키예 방문을 요청했다. #

9월 21일, 기준금리를 5% 인상해 20년만에 최고치인 30%까지 끌어올렸다. 대선 이후 금리를 올렸음에도 튀르키예의 물가상승률이 60%에 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10월 23일, 튀르키예 대통령실은 "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명한 스웨덴의 나토 가입 관련 비준동의안이 의회에 제출됐다"라고 알렸다. 의회에서 동의안이 가결되면, 헝가리의 동의만이 남는다. 이에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한다. (튀르키예) 의회 절차가 이제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곧 스웨덴은 동맹국이 될 것"이라며 "(튀르키예 의회의) 비준을 위한 신속한 표결을 바란다"라고 밝혔다. #

11. 2024년

튀르키예가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을 공식 탈퇴했다. #

5월 13일, 그리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뜬금없이 튀르키예에서 1000명 이상의 하마스 대원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참모진은 황급히 뒷수습에 나섰고 로이터 통신에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의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뜻”이라고 변명했다.

5월 17일에는 1997년 쿠데타로 친이슬람 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관계자들을 사면했다. #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 대표의 건의를 수용한 것으로 이탈한 민심을 다잡기 위한 일종의 통합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초청으로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

[1] 따라서 실제 출신지는 이스탄불이지만 튀르키예 호적법상 에르도안의 본적은 리제로 되어있다. [2] 여담으로 에르도안은 2003년 총리 시절 조지아를 방문했을 때 자신의 가문은 바투미에서 리제로 이주한 조지아인 출신이었다고 언급했다가 나중에 이를 부인하였다. [3] 그가 축구팀 카슴파샤의 강력한 서포터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때 여기서 축구선수로 13년간 뛰기도 했다. 그래서 카슴파샤 홈구장 이름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다. 그리고 카슴파샤 서포터들은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의 콘크리트 지지층 중 하나다.(단, 2013 터키 시위 때 카슴파샤 서포터들도 에르도안 퇴진을 외친 경우가 있어서 여기에도 소수 반 대통령, 반 집권당층이 있기는 있다.) 때마침 최근 카슴파샤가 쉬페르리그 중상위권성적에 이전같으면 하기도 힘든 꽤 쏠쏠한 영입도 곁들이니 향간에서는 정권의 뒤봐주기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오는 중. [4] 1946년 이스메트 이뇌뉘 정부시절 세속주의 정부와 이슬람 세력 간의 합의로 세워진 학교이다. 모스크에서 아잔을 통해 기도시간을 알리는 직함인 뮈에진(Müezzin)이나 종교지도자인 이맘이 되기 위해서는 이 학교를 졸업해야만 한다. 과거에는 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었지만, 에르도안이 대학진학이 가능하도록 바꿔버렸다. 사실, 세속주의 엘리트들은 이맘 하티프 고등학교 졸업자를 은근 차별했다. 에르도안도 이맘 하티프 학교를 다닐 때 차별받았던 경험이 있다. 사실 이맘학교라고 해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다른 튀르키예 일반학교들처럼 고등교육과정을 필수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대학진학에 제한을 받았던 것은 어찌보면 차별인 셈이다. 이맘 하팁 학교는 이슬람 학교라고는 하지만, 튀르키예 초중고등과정 필수이수과목인 세속주의와 아타튀르크주의를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며, 튀르키예법상 남녀분리교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맘하팁 또한 남녀공학+합반이다. [5] 카슴파샤는 이 당시 3부리그와 아마추어리그를 넘나드는 클럽이었다. 하지만 한때 튀르키예 쉬페르 리그 초창기(정확히는 쉬페르리그 2년차에 가입) 멤버 중 하나였고, 2012시즌에 다시 복귀해서 현재 쉬페르 리그 중상위권까지 올라왔다. [6] 이스탄불은 자체가 도로 되어있으며, 튀르키예에는 도지사가 관선도지사(Vali, 국가가 임명해 파견)와 민선도지사(Belediye Başkan)로 나뉜다. 마찬가지로 작은 행정구역에도 관선군수와 민선군수가 따로 존재한다. [7] 당시 문제가 되었던 구절은 그가 읽은 지야 괵알프(Ziya Gökalp)의 시를 읽은 것이다.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Minareler süngü, kubbeler miğfer, Camiler kışlamız, mü'minler asker, Bu ilâhi ordu dinimi bekler, Allahu Ekber, Allahu Ekber. (첨탑은 총검, 돔은 투구, 모스크는 우리의 요새, 신실한 교인들은 군인이라, 이 기도를 군단은 바란다. "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하지만 이 시는 1912년 발칸 전쟁당시 오스만 군인들을 위해 쓴 시인 <Asker Duası(군인의 기도)>라는 시로써 애국심을 고조하기 위한 목적이지 이슬람주의와는 관련없는 시이다. 즉 의미를 곡해해서 낭독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8] 당시 정의개발당의 득표율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여러 정당이 난립한 가운데 득표율 10%를 넘긴 당은 정의개발당과 공화인민당 단 두 곳뿐이었고, 10% 미만을 득표한 정당은 의석을 얻을 수 없는 튀르키예 봉쇄조항때문에 무려 46%의 표가 사표가 되어버리고 정의개발당은 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가까운 363석 차지하는 초압승을 거두었다. 여기서 더 끔찍했던 건 의석수를 조금만 더 얻을경우 국민투표없이 헌법을 마음대로 개정가능한 의석수(550석 중 367석)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불과 4석 차이로 저지된 것이 그나마 다행인 셈. [9] 반세속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기에 경제적인 면에서 통제정책을 펼 거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사실 특이할 것도 없는 게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전반기까지의 미국 공화당의 노선을 보면 낙태와 동성결혼을 완강히 거부하고 공공의료보험같은 기본복지조차도 나태해진다면서 반대하는 정책을 주창하면서도 경제정책면에서 매우 자유를 중시하는 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다. [10] 의외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개발도상국들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의외로 4% 정도이다. 특히 튀르키예의 경우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해서 더 발전되었었기에 5% 정도면 상당히 선전한 편이다. [11] Turkish Labor Acts chapter 1. i 예외 조항 f.the employer must not make any discrimination between a full-time and a part-time employee or an employee working under a fixed-term employment contract (contract made for a definite period) and one working under an open-ended employment contract(contract made for an indefinite period). [12] 사실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에르도안은 대채적으로 알려진 신자유주의보단 신보수주의에 가깝다. 신보수주의는 경제적으로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따르지만 사회적으로는 권위적인 보수주의를 따르는 사상이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국 로널드 레이건 영국 마가렛 대처 그리고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있으며 에르도안은 그중에서 행보로나 성향을 볼 때 피노체트에 가깝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이 잘 돌아가는지 감시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며 만일 악영향이 나타나면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하기도 한다. [13] 단 이 사건은 아래에 나온 것처럼 에르도안이 꾸민 조작사건으로 결론났다. [14] 지지율은 계속 높아졌지만 2002년만큼 야당이 난립하지 않아서 의석수 자체는 과반은 유지했으나 조금씩 줄어들었다. 정의개발당 문서에 보면 선거 결과가 있다. 참고하면 좋다. [15] 앙카라 법대 졸업, 헌법재판소 소장, 제 10대 튀르키예 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는 강력한 세속주의자이다. 2014 대선 때는 세속적인 정당이 없다며 투표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2007년에는 튀르키예의 세속주의가 어떤 세력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말했다. 물론 당연히 그 세력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을 중심으로 한 정의개발당임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세제르는 그 세력에 대해 정확한 언급을 피했는데, 아무래도 튀르키예 내부의 정치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인 듯. 튀르키예의 대통령은 법률거부권이 있기 때문에 에르도안의 정책을 거부할 수 있었고 그는 재임 내내 세속주의의 방패 역할에 충실했다. 그의 재임기간에 대통령궁에서는 히잡을 쓸 수 없었으며 심지어 총리 아내가 파티에 들어갈 때 히잡을 쓰지 못하게 했고 결국 총리 아내는 파티에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이다. [16] 2010년에 헌법 개정 투표를 했다. 결과는 51%로 찬성이 되어 개정이 되었다. 이를 통해 에르도안은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이후 계속 지속되던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어 2014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다. 서부 지역은 반대했고 동부 지역은 거의 찬성했다. [17] 아타튀르크 농장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유기농 요구르트와 유제품들이 유명한데 튀르키예 전국의 국영상점과 일부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8] 친 이슬람교 성향인 에르도안과 달리 푸틴은 공식적으로는 세속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그런데 푸틴의 통합 러시아당 정권도 속을 들여다보면 러시아 정교회의 지지를 받고 있고, 그로 인해 보수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어서 그게 그거다. [19] 위 각주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정당이 총 의석의 3분의 2 이상. 즉 367석 이상을 차지하면 국민투표 없이도 헌법 개정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그 당이 무슨 짓을 해도 제도적으로 제지하거나 견제할 수 없다는 뜻. [20] 애초 여론조사에서는 쿠르드계의 인민민주당이 득표 기준선인 10%를 넘을지 불확실했으나, 막상 개표해 보니 인민민주당이 동부 지방에서 승리를 거둬 전국 기준 13%나 득표하면서 원내 진출에 성공했고 그만큼 정의개발당 의석도 줄어들었다. 쿠르드족이 많이 사는 동부의 경우 튀르크 민족주의 성향이 있는 공화인민당 민족주의운동당의 지지율이 원래부터 매우 낮았기 때문에 그 빠진 지지율이 거의 다 정의개발당 지지율이었다는 것은 덤. [21] 정확하게 말하면, PKK는 명분으로 튀르키예군이 반IS전선에 개입하지 않는다를 내세웠는데, 당시 IS는 튀르키예국회에 의해 2013년에 테러단체로 지정된 상황이었으나 튀르키예 내에서의 활동은 없었기 때문에 개입할 이유가 아직은 없었으며 나중에는 에르도안이 튀르키예군에게 IS 소탕을 제시했다. [22] 다만 도시 지역에서도 빈민가 지역은 AKP의 지지율이 높다. [23]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킨 장군으로 이들의 후예가 지금의 MHP이다. [24] 정작 공화인민당도 이 시절 정당 정화조치로 해산당했다. 나중에 90년대에 재창당하지만... [25] 웃긴 건 1930년대 튀르키예가 이 모습이었다. 공화인민당 하의 아타튀르크 시대의 튀르키예에선 의회는 사실상 공화인민당의 허수아비였다. [26] 진짜 말도 안되는 헛소리다. 하렘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오히려 여성을 굉장히 억압하는 시설이다. [27] 여담으로 원수 같던 러시아가 오히려 도와줘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막았다. # 덕분에 친 러시아적 행보를 보인다. [28] 사실 이 정도의 차이면 국민의 의견이 반으로 나뉘었다고 보인다. [29] 이것도 튀르키예의 국영언론에서 발표한 수치인데 실제 튀르키예의 외화부채는 이보다 더 많은 70%에 육박한다고 한다. # [30] 미국이 발을 빼는 중동 지방에 러시아가 들어온 것은 첫 번째로 러시아와 비슷한 산유국들인 중동의 경제가 러시아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단순히 경제만 가까운 게 아니라 지도만 봐도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워서 중동의 안보가 러시아 안보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그러니 중동의 안정되는 게 유리한 러시아는 군대를 파견해서라도 안보와 정치적 안정을 지킨다는 선택을 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는 것. 독재국가 지원은 덤 [31] 2021년 현재 튀르키예는 키프로스에 대해 북키프로스 튀르키예공화국만을 승인하고 있으며, 남쪽은 그리스의 괴뢰국이라며 승인을 철회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발언은 남키프로스를 국가로 인정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32] 프랑스의 마크롱도 중재를 시도했지만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친서방으로 우크라이나의 편을 들며 대러시아 제재에도 동참하는 중이기에 푸틴도 마크롱의 중재 시도를 받아는 주지만 전혀 신뢰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다. [33] 이는 이후 러시아가 튀르키예의 흑해 봉쇄와 우크라이나에 드론 수출 등으로 피해를 본다지만 여전히 튀르키예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신뢰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튀르키예는 S-400을 도입한 대가로 나토 회원국이자 초기 공동개발국으로서 F-35를 도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에도 F-35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퇴출당했으며 그 덕분에 F-35 100여대 도입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송두리째 날아갔다. 튀르키예에서 막대한 손해를 치러가며 러시아 무기를 구매해준 것이기에 러시아도 튀르키예를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34] Mejlis Akhtem Chiigoz, Ilmi Umerov라는 크림타타르계 인물들로 2017년 반러 시위 주동으로 크림반도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에르도안이 러시아에 요청하여 징역을 사는 대신 튀르키예로 송환하기 위해 석방됐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로비를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35] 엄밀히 말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병력을 둘 다 진입하지 못하게 한 것이지만 해당 시점에서 우크라이나는 유의미한 해군병력이 없으므로 이는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6] 아다나, 하타이 [37]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당시 집권여당의 무능함에 질린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무능한 여당은 물러가라. 우리가 집권하면 지진 잘 관리하겠다." 하며 나선 게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이고 이후 정권을 잡고 나서 지진이 여러 차례 있긴 했지만 사고 수습, 피해 보상, 이후 지진 대비에 대해서는 전 정부보다는 확실히 잘 대처했다. 이건 에르도안 반대파도 대부분 군말없이 인정하는 바이다. [38] 야권 단일 후보로 나온 클르츠다로을루는 약 4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39] 에르도안이 승리한 이유는 과거 찬란한 영광이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내세운 것이 제대로 통했으며, 야당 후보인 클르츠다로울루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평. [40] 미국으로써는 줄타기 외교는 물론 친러성향이 짙은 에르도안을 신뢰하기 힘든데다가 에르도안 성격상 미국이 먼저 판매하면 그 보상으로 스웨덴 가입을 허용하기 보다는 받자마자 입을 싹 닦고 이를 악용해 더 뜯어먹으려고 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