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러셀 L. 블레이즈델 (Russell L. Blaisdell) |
출생 | 1910년 9월 4일, 미네소타주 헤이필드 |
사망 | 2007년 5월 1일 (향년 96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
국적 | 미국 |
복무 | 미합중국 공군 |
군 복무 기간 | 1938 ~ 1964 |
최종 계급 | 대령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
1. 개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유모차 공수작전 이후 명령불복종죄로 조사를 하던 감찰관의 물음에
유모차 공수작전 이후 명령불복종죄로 조사를 하던 감찰관의 물음에
러셀 L. 블레이즈델(Russell L. Blaisdell, 1910년 9월 4일 ~ 2007년 5월 1일)은 1950년 12월 20일 한국 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의 진격에 직면한 서울에서 964명의 고아와 80명의 고아원 근무자들을 구출한 이른바 '유모차 공수 작전(Kiddy Car Airlift)'을 실행한 미국 공군 군목 장교이자 목사다.
1964년 대령 계급에서 예편하였다.
2. 유모차 공수작전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과 서울 수복 이후 블레이즈델 중령은 또 다른 군목인 월레스 I. 울버튼과 서울 지역의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당초 이 고아들은 서울의 한 고아원에 수용됐으나 고아가 계속 늘어나면서 블레이즈델은 멀 Y. 스트랭 하사 및 한국의 고아원 근무자들과 함께 고아 수용 시설을 설립해 1000명 이상의 고아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했다. 울버튼이 한국을 떠난 후에도 블레이즈델은 시설 운영을 계속했다.1950년 12월,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이 2단계 공세 작전으로 서울을 위협하자, 제5공군을 포함한 유엔군은 도시에서 후퇴하여 더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2월 19일 블레이즈델 중령과 스트랭 하사는 해군 LST로 인천항에서 고아를 태워 제주도로 대피시키려 했으나 선박은 도착하지 못했다. 블레이즈델은 그때 제5공군 작전국장 T.C. 로저스 대령에게 다가가 호소했다. 로저스 대령은 수송기를 편성해줄 테니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김포 공군기지에 아이들을 데려오라 했다. 시간이 촉박했던 블레이즈델은 상부의 명령이라는 가짜 임의 지시로 1000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한국인 근무자들을 미 해병대 중대 트럭 14대로 김포까지 수송했다. 두 시간 이상 늦게 김포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아들은 16대의 C-54 스카이마스터 수송기를 타고 제주도의 안전한 곳으로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제주에 고아원이 세워져 6.25전쟁 말기까지 황온순 여사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후에 서울로 다시 옮겨졌다. 블레이즈델은 나중에 해병대 트럭 징발 문제로 미 공군 군법회의에 회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