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디바(가수)
1. 국내 최초 걸스힙합 그룹의 탄생과 전성기
1.1. 데뷔 전
1997년 5월 5일자 경향신문 중. 디바의 전신 격이었던 채리나와 비키의 듀엣 기획을 다룬 기사다. # |
탁월한 춤 실력으로 룰라에 합류해 메인 댄서였던 채리나는 1996년 자신들의 4집 "3!4!"에서 중점적인 보컬과 안무, 자신의 패션 세계를 확립하며 10대들의 우상으로서 우뚝 서기에 이른다.[1] 그 뒤 메인 보컬 김지현이 탈퇴를 선언한 뒤, 5집 앨범에서는 메인보컬까지 도맡아 호평받은 채리나는 같은 해 그룹이 해체되고[2] 기존 소속사에 혼자 남은 한국 톱 그룹의 핵심 멤버로서 이후 행보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솔로 앨범을 낼 것이라는 보도가 몇 차례 있었고, 소속사 역시 처음에는 솔로 가수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TLC를 동경했던 채리나는 힙합 그룹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3] 대성기획(현 DSP미디어), 양군기획(현 YG엔터테인먼트)의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4]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후 97년 봄에 이현도를 통해 LA에 살던 비키를 캐스팅했는데, 전술된 기사를 보면 저 때까지만 해도 듀엣으로 데뷔할 계획이 있었던 걸로 보이나 채리나가 3인조를 고집한 덕에 데뷔를 몇 달 앞두고 뉴욕 출신의 지니가 합류해 그룹이 완성된다. 지니는 95년 김성재의 크루 멤버로 연예계에 입문했고, 96년 룰라의 미국 콘서트에도 현지 댄서로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5]
1997년 한국 음악계는 걸그룹 시장 자체가 전무하던 실정이었다. 그나마 여성 그룹으로 손꼽혔던 ' 코코' ' 비비', ' 몰리' 등은 대부분 듀오 형태로 등장해 잠시 인기를 얻다가 롱런에 실패했고 지금의 K-POP 걸그룹 형태와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0세대 걸그룹으로 꼽히는 세또래 등도 80년대 말 ~ 90년대초 잠시 존재하긴 했으나 2집 이후로는 앨범을 내지 못하고 금세 사라졌으며, 디바 데뷔 직전 95년 데뷔한 ' 쎄쎄쎄', 96년 데뷔한 ' 에코' 정도만이 그나마 걸그룹의 명맥을 유지하는듯 했어도, ' 쎄쎄쎄'의 경우 조차 음악 장르가 '세미 트롯(성인가요)'쪽에 편승되어 있어서 대중들에게 제대로 인식이 된 첫 K-POP 걸그룹은 '디바'쪽이 처음이었다고 봐야 한다. 베이비복스나 이뉴 등도 현대적 장르였던 팝 음악이나 R&B를 메인으로 디바보다 몇개월 먼저 데뷔했으나 먼저 성공가도에 올라 대중들의 눈도장에 찍힌 것은 아무래도 디바쪽이었다.
앞선 사례만 봐도, 당시 여성 그룹은 남자 가수나 보이밴드처럼 팬덤 형성에 무리가 있기에 길어야 1~2집이라고 치부되었는데 채리나는 당당히 '디바'를 출범시켜서 특유의 걸크러쉬한 매력을 기반으로 수많은 언니부대를 끌게 되고 성공적인 음반 판매는 물론, 여성 그룹도 가수로서 남 부럽지 않게 당당히 성공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당시엔 마이너 장르로 취급되던 힙합까지 선택해 등장한 것은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엿볼수 있음과 더불어 대단히 파격적인 일. 한마디로 신의 한 수였던 것.
채리나와 함께 하게된 신예 멤버들은 유독 듀스하고 인연이 깊었는데, 비키는 1996년 이현도 뮤직비디오 감독이 나이트 클럽에서 비키를 마주한 뒤 "이현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해주지 않겠냐"며 픽업했다고 한다. 이후 비키[6]를 소개받은 이현도가 단번에 얼굴 작다며 춤 좀 추냐고 물은 뒤 비키를 뮤직비디오에 출연시킨 다음, 연예인 하라고 추천하면서 평소 친하게 지냈던 채리나가 여성 3인조 그룹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고 둘을 연결시켜주었다고 한다. 채리나는 성격도 취향도 잘 맞았던 비키를 한국으로 데려오면서 디바에 전격 캐스팅했다.
비키의 경우에는 집안이 어느날 망해버려서 미국에서 힘겹게 살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픽업되어 한국에 돌아와 음반 활동을 하게 된 터라, 어떠한 트레이닝도 받지 못한 상태였으며 기획사에서는 춤 연습만 시키길래 열심히 춤추고 있었는데 어느날 사장님이 비키의 노래를 들어봐야겠다며 다짜고짜 노래를 시켰다. 그러나 어떠한 트레이닝을 받지 못했던 비키는 악만 고래고래 지르며 "She's Gone"을 열창해댔고(...) 결국 사장님의 표정이 굳더니 너는 랩을 하라고 지시해서 결국 발음을 굴려가며 영어 랩을 맡게 됐다고 한다.[7] 그러나 이때 한국 가요계는 미국 유학파 출신하면 알아주던 시절이라, 본인에게는 어두운 과거임에도 방송에 나와 유학파라고 포장되고 있을때 많이 부끄러웠다고.
95년 김성재 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한 지니. 당시 17살이었다. (사진 맨왼쪽) |
마지막으로 합류한 막내 지니는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뉴욕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듀스의 김성재가 공연 차 미국에 오게되었고, 과거부터 그의 팬이었던 지니는 공연을 보러갔다가 김성재의 눈에 띄어 댄서 오디션을 보게 된다.[8] 이때 한 동작을 몇시간 내내 추는 지니의 모습을 보고 그 끈기에 반한 김성재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에 지니를 참여시켰으며 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한다. 현지 흑인 댄서들과 한국인 댄서들로 구성된 김성재의 댄서 팀은 현지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지냈고[9] 김성재 솔로 앨범 작업을 마친 뒤 국내에 귀국 했을때에도 여러 연예가 프로에서 얼굴을 비췄으며 백업댄서지만 함께 인터뷰를 하고 사진 촬영도 함께 하는등 지니 역시 거의 김성재와 한 팀처럼 활동할 예정이었던것으로 보인다. #
김성재의 생전 마지막 무대로 알려지는 생방송 TV가요 20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데뷔전 지니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 링크에 있는 영상에서 12분 10초 쯤에 비니를 쓰고 있는 사람이 지니이고 그 옆에서 팔짱 끼고 있는 사람이 비키라는 얘기가 있는데 비키는 아니고, 비키와 닮은 댄서다. 위에 있는 사진 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영상에 비키라고 오인받는 인물이지만 사진으로 보면 확실히 비키와 얼굴이 다르며 비키도 김성재의 댄서였다고 언급한적이 단 한번도 없다.[10] 안경을 쓰고 있어서 묘하게 닮아 보이는데 사진으로보면 얼굴이 다르다. 당시 김성재의 댄서팀 중 한국인 여성은 딱 지니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단발머리 댄서였고 홍보 차원에서 촬영된 다른 사진만 봐도 확실히 비키는 아니다. #
김성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갑작스레 댄서 활동이 중단된 지니는 공백기를 가지다가 이듬해 96년 룰라가 재기를 위해 미국에서 4집 작업 후 첫 공연으로 한인들을 위한 위문 콘서트를 열었을때 단발적으로 댄서로 참여했고 "3!4!"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채리나는 97년 디바 결성을 위한 마지막 멤버로 지니를 픽업했고 LA에서 채리나와 함께 온 지니를 처음 본 비키는 간지가 철철 흘렀고 너무 예뻤다고 회상한 바 있다.
참고로 지니와 채리나가 6촌 지간이라는 활동 당시 인터뷰도 있었으며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지니와 사촌지간이라고 밝혔으나 이후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어서 소속사의 언플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실제로 둘의 혈연관계는 없다고 한다. 최근 채리나의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도 이같은 질문이 있었는데 채리나는 "그때 당시 지니를 집에 데려다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친한 동생을 <사촌 동생>이라고 표현하곤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거에요"라고 말했다.
1997년 8월 24일 데뷔 직전의 디바를 취재했던 연예가 프로 |
그렇게 1집 앨범 작업이 착착 진행되던 어느 날, 지니는 언니들이 자신들을 예뻐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데뷔 전에 팀 탈퇴를 결심한다. 당시 디바로서 첫 방송 예능 녹화를 앞두고 결국 지니가 잠적해버리는 사건이 터졌다. 이 시절에는 음악 방송 데뷔가 아닌 주말예능 짜투리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이 대개 신인들의 데뷔 방송이었다.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PD에게 얼굴을 찍어둬야, 나중에 음악 방송 섭외가 들어와서 방송 활동을 할 수 있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
당시 채리나와 비키는 호화로운 집에서 같이 살며 베스트 프렌드로 지낸 반면 지니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역삼동의 여관촌에서 2달간 투숙해야 했고 이동 중간에 비키가 실수로 닫은 차문에 지니의 손이 낀적이 있었는데 고의는 아니지만 손톱이 빠져서 굉장히 아팠을 지니에게 사과 한마디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굉장히 지니를 왕따시켰다고 비키 본인이 인정했다. 지니 역시도 계속 이렇게 활동하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방송 녹화를 앞두고 잠적한 다음 잠정 탈퇴를 선언했으며 결국 소속사 직원들이 지니를 찾아와[11] 중재한 끝에 디바에 겨우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1~2집 시절 무대를 보면 묘하게 비키와 지니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12]
지니는 이후 비키와 친해질것을 미리 예견했었다고 하는데 타지 생활도 했고 공감대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이후 비키는 몇차례 지니에게 사과를 구했고 지금은 서로의 속옷까지 빨아줄 수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1.2. 1집
1997.09. 발매 디바 정규 1집 앨범 < Funky Diva> |
1집 타이틀 곡 '그래' | 1집 후속곡 '12월의 드라마' |
그렇게 3~4개월간 데뷔 준비를 마친 디바는 당초 1997년 6월에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지니의 돌연 잠적으로 발매가 미루어졌다. 이 시기에 정했던 본래 타이틀곡은 '골드(Gold)'다. 다시 지니가 돌아와 1997년 9월 초에 1집 앨범을 발매했으며 타이틀곡 '그래'가 가요톱텐에서 최고 4위까지 랭크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때는 댄스 장르를 하는 여성 그룹이 드물었기에 최소한 1위 후보까지 갈 수 있는 인기를 자랑했음에도 모든 음악 방송에서 TOP 3 안을 뚫지 못했다. 그래도 꽤 긴 시간동안 차트 상위권에서 롱런한 편이며 1위만 못했지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래'가 가요 차트 1위에 올랐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 당시 체감인기는 훌륭했는데 이상하게도 방송 차트안에는 3위 밖에만 줄창 머물러서 팬들도 의아해 했다.[13]
거기다 꼰대 기질이 다분했던 90년대 후반부 방송국의 텃세 때문에 그 이후에도 디바는 항상 방송국 PD들에게 불려가며 온갖 쓴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IMF 한파로 가요 순위 프로에 대한 방송 심의위원회가 아주 까다로웠는데 항상 디바는 유독 방송 직전에 헤어나 의상 검사를 수시로 받고 PD들한테 자주 혼나서 멤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걸스 힙합 패션을 무지 불량하게 여기던 당시 정서 탓인데, 국내 최초의 걸스 힙합 걸그룹 답게 굴하지 않고 당당한 패션과 라이브, 무대 매너를 선보여 여성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10대 여학생들의 트렌드세터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 후 이상민이 작곡한 후속곡 '12월의 드라마'로 오버랩했는데 12월 한 달간만 짧게 활동했음에도 TOP 10 안에 올려놓음으로서 신인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졌으며, IMF가 겹쳤음에도 약 30만장에 육박하는 높은 판매고를 올려 화제가 된다. 한국 음반 공식집계가 시작된 후 최초의 여성 그룹 20만장 돌파기록이었고 당시로서는 신기록이었다. 당시만 해도 걸그룹이 20만장이 넘긴 것이 큰 뉴스였기에 각종 연예 뉴스에서 다룬 바가 있다.
1집 앨범은 대중적인 성공과 더불어 음악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디바 앨범 중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채리나의 기획 의도처럼 힙합 비트를 차용했고 당시 신인 작곡가이자 훗날 브라운 아이즈의 멤버로 활동하게 되는 윤건이 타이틀 곡과 여러 곡을 훌륭하게 만들어내어 디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14] 지금까지도 디바의 최고 음악적 콤비는 채리나+윤건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또 룰라의 이상민도 주도적으로 참여해 오리지널 힙합 사운드와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은 트랙도 실려 있었다. 그만큼 최대한 힙합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을 많이한듯. 한가지 아쉬운 점은, 1집 앨범에서 두 곡의 히트 싱글이 나왔음에도 뮤직비디오가 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15]
원래는 이상민 작곡의 '골드(Gold)'를 타이틀로 염두에 뒀지만 앨범 발매 전에 백지화시킨 다음 '그래'로 결정했다고 알려진다. 1집 앨범을 살펴보면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골드'만 무대용 버전으로 편집된 음원이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어있으며 디바가 데뷔를 앞뒀을때 홍보 차원에서 보도된 신문 자료들을 봐도 타이틀 곡을 '골드'로 소개하고 있었다. 다만 이 곡은 당시 기준으로 낯선 힙합 리듬이 강했고 대중적으로 사랑받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보다 대중적인 멜로디의 '그래'로 교체했고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면서 좋은 선택이 되었다.[16] 최종 판매량은 음반산업협회 기준으로 무려 27만장이었고 단일 앨범으로는 90년대 데뷔한 걸그룹 중 S.E.S., 핑클 다음으로 높은 판매량이었다.[17] 그해 디바는 음악 시상식에서 음반 판매량 비중이 가장 많이 차지하는 골든디스크에서 인기가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3. 2집
1998.05. 발매 디바 정규 2집 앨범 <SNAPPY DIVA'S SECOND ALBUM> |
2집 타이틀 곡 '왜불러' | 2집 후속곡 'Joy' |
1집의 성공 이후 디바는 곧장 후속 앨범 작업에 돌입한다. 특이하게 보통 1집이 크게 성공하면 후속앨범은 메이저급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하기 마련이지만, 디바 2집은 데뷔 앨범 작업진 3강 구도 이상민-윤건-채리나에서 이상민만 빠지고 채리나와 윤건이 주도적으로 작업한 앨범이다. 어느정도냐면 앨범 신곡 9곡[18] 중 최준영이 작곡해 타이틀로 선정된 '왜 불러'를 제외한 7곡을 윤건이, 1곡을 채리나가 작곡했다.
2집 앨범 타이틀곡 ' 왜 불러'는 최준영 작곡가가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영감을 떠올려 만든 곡이라고 하며 당시 초고음 댄스곡을 만들기로 유명하던 최준영이 극강의 고음을 자랑하는 곡을 선사하는 바람에 여러 라이브 방송에서 채리나가 멱살 잡고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왜 불러'는 발매되자마자 1집을 뛰어넘는 히트를 기록하는데 유승준의 '나나나'와 같이 인기가요에서 한달간 1위 후보를 하다가 1998년 7월 첫째주에 새로운 1위 후보였던 김민종을 꺾고 디바 활동 최초이자 유일한 1위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인기 그룹 반열에 올랐다. 후속곡이었던 'Joy' 역시 '왜 불러'의 인기를 이으면서 상당한 사랑을 받았고 10위안에 랭크됐다. 2집 앨범은 1집에 이어 20만장 돌파에 성공했고 최종적으로 23만장(음협기준)의 판매량을 올렸다. 여담으로 본래 후속곡은 '비애천의(悲愛天義)'로 예정됐었으나 후속곡 활동시기가 초가을이 될 무렵이어서 선선한 계절감을 고려해 'Joy'로 결정했다고 한다.[19]
한편 2집 활동 때부터 채리나의 몸상태가 급격하게 안좋아졌는데 활동 당시에 몸 상태가 워낙 안좋다보니 방송에서는 위궤양 판정을 받았다고 얘기했으나, 사실 채리나는 디바 1집 활동 직후 위암 초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첫 수술을 마친 다음 무리하면 안된다는 의사의 조언에 디바 활동을 그만둘까 했지만, 자초지종을 모르는 팬들이 어깨너머로 활동을 관둔다는 얘기만 듣고 극구 반대했고 결국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2집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1998년 2집 활동 당시 채리나와 어머니를 주제로 제작된 MBC 다큐멘터리 당시 힘겹게 활동을 이어가던 채리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20] |
그래서 2집 활동 기간 내내 음식도 제대로 못먹어가며 활동하는 모습이 여러 인터뷰 등을 통해서 보여졌고, 워낙 동정받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위암 판정을 받은 사실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가 몇년이 지난 후에야 인정했다. 이 시절 무대를 보면 채리나의 표정이 매우 안좋아보일때가 여럿 있는데 한 라이브 방송에서는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지만 꾸역 꾸역 활동을 이어갔고 약 2년 정도 위절제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활동했다.
한편 2집 앨범은 1집 시절과 연장 선상에 있는 걸스힙합 패션을 선보였지만 노래 장르는 완전히 한국적 댄스곡이었으며 힙합의 색채가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희석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파워풀한 댄스와 랩을 섞어 힙합 그룹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대중적인 느낌의 밝은 힙합 패션을 선보여 대중적으로 디바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시기가 되었다. 이해에 처음으로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에 선정되었으며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엔딩을 장식하거나 스페셜 방송에 초대되는 등 가요계 정상 그룹으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2집 앨범의 히트 이후 디바는 대만 활동을 선언해 현지에서 여러 가수들과 콘서트를 했고 인기도 높아서 국빈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아예 대만 시장을 공략한 영어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Dream'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대만 등지에서 발매되었으며 한국에서 발매한 히트곡들을 영어로 녹음하기도 했고 신곡 'I'll Get Your Love'는 타이틀로 지정되어 뮤직비디오도 존재했다. 한국에서는 뮤직비디오 방영과 소기의 언론 홍보외에는 거의 프로모션이 없었음에도 'I'll Get Your Love' 노래는 알게 모르게 알려져서 인지도가 있다.
대만 앨범 타이틀 곡 'I'll Get Your Love' | '12월의 드라마' 영어 버전 뮤직비디오 |
1.4. 3집
영어 앨범을 발매한 뒤 막내 지니가 공식적으로는 영주권 문제로 팀을 돌연 탈퇴했으며 3집 앨범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도 지니가 왕따당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멤버들 오피셜로는 그런 언급을 한적이 없으며 비키가 지니를 왕따시켰다고 한 시기는 1집 제작 전, 데뷔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 시절에도 지니가 왕따 때문에 탈퇴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3집 활동 당시 디바의 오프라인 행사를 뛰었던 팬이 쓴 후기글을 보면 채리나가 팬들에게 지니가 4집때 돌아올거라고 얘기해줬다는 글도 있었는데, 이후 힙합 혼성그룹 유니티[21] 출신의 이민경이 채리나의 제안으로 영입되었다.[22] 그리고 2022년 디바가 완전체로 출연한 '신과 함께' 방송에서 지니는 당시 영주권 문제와 학업 문제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아쉽게도 활동을 잠시 포기한거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로써 3집때 지니의 탈퇴는 왕따가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간 것이 확실해졌다. 어쨌든 당시 팬들은 무척 당황했다고.[23]그렇게 잠시 새롭게 재편된 디바는 3집 앨범 'Millennium'을 발매하여 복귀한다. 인기 멤버였던 지니의 탈퇴로 어수선한 시기를 겪었지만, 새멤버 이민경의 귀여운 외모와 탄탄한 실력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고, 99년 초 이들의 뮤즈였던 TLC가 'Fanmail' 앨범으로 쏘아올린 사이버틱한 힙합을 오마쥬한듯한 컨셉과, 음악적으로 트렌드를 따려가려는 노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채리나가 주도해서 프로듀싱 했기에 아예 앨범 총괄 프로듀서에 '채리나'의 이름만 올라가 있는 위엄을 보이기도.
타이틀 곡의 본래 제목은 'Yo Yo'였지만 당시 신화가 2집 앨범 후속곡으로 내놓은 'Yo!'와 혼동될 것을 우려, 발매 직전에 노래 제목을 '고리'로 수정했고 'Yo Yo'는 부제로 옮겼다. 역대 디바 뮤직비디오 중 최초로 해외에서 촬영했는데 태국 올로케이션으로 유명감독 홍종호가 메가폰을 잡아 화제가 됐다. 이들은 그전까지 절대 안입던 치마를 입고 활동에 나섰으며 2집 때처럼 순위가 높게 올라가지 못했지만 당시 유일하게 차트제를 운영했던 SBS 인기가요에서 4위권을 유지하는 등 선전했다.
태국 현지 올로케 촬영으로 제작된 3집 <고리> 뮤직비디오 |
채리나가 3집 당시 에피소드로 자주 꼽는 얘기 중 하나가 바로 컨셉에 관련한 얘기인데, '고리'의 초기 컨셉은 자켓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악세서리 헤드폰 컨셉이었고(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패션 아이템이었다.) 너무 예뻐서 멤버들이 아주 마음에 들어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켓 사진도 다 촬영하고 뮤직비디오 촬영 날짜까지 잡힌 상황에서 엄정화가 3집 앨범으로 컨셉했는데 동일한 헤드폰을 차고 나와서 결국 기존 컨셉을 철수시키고 튜브로 변경해야 했다. 이것을 두고 여러 설이 존재했는데 "저 헤드폰이 최초로 엔터계에 알려진 모 패션쇼에서 두 가수의 코디가 동일한 영감을 얻어 겹쳤다"등등의 얘기가 있었다. 채리나는 이것을 두고 "우리(디바)쪽 스타일리스트의 실수였을수도 있고 한마디로 겹친거다" 언급한 바 있다.
인기 멤버의 갑작스러운 탈퇴, 타이틀 곡의 제목과 패션도 겹치는 바람에 철회 시키는 등 여러모로 준비 과정부터 어수선했던 3집 앨범은 멤버들도 썩 좋은 시기로 기억하지 않고 있다. 2009년 현장토크쇼 택시 방송때도 히트곡을 불러달라는 MC들의 요구에 1~2집 노래를 부른 다음 3집 노래를 불러야 할 차례가 오자 멤버들이 "3집 Down 됐다"라고 말하며 3집 곡은 부르지 못하고 결국 실소를 터뜨리기도. 당시 10대였던 이민경은 인기 멤버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터라, 안좋은 댓글들을 보고 상처를 받았고 그것을 20년 넘게 가슴속에 묻어둔것이 최근 방송을 통해 밝혀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리'는 좋은 음악 퀄리티로 가요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으며 괜찮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당시 룰라 6집 앨범으로 인해 앨범 시기가 여러가지로 밀리던 와중에 계속 딜레이하던 대만 활동을 더는 미룰수 없어서 활동을 일찍 접어야 했고 마지막 방송을 기점으로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좋아하면 다 그래'를 후속곡으로 일주일간 더 선보인 뒤 활동을 종료했다.[24] 그 외에도 'Never say goodbye'는 고별 무대 등에서 짤막하게 선보였고 또다른 수록곡인 '느껴봐'로도 활동한 바 있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고리'보다 '좋아하면 다 그래'가 더 인기가 좋은 편이다. 채리나 역시 앨범 발매 당시에 이 곡을 가장 좋아한다고 뽑았기에 이 노래를 타이틀로 했다면 더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지배적.[25] 3집 음반 판매량은 15만장 가량 팔려 음악방송 프로모션이 비교적 짧았음에도 꽤 잘 나간 편에 속했다.
1999.06. 발매 디바 정규 3집 앨범 |
3집 타이틀 곡 '고리' | 3집 후속곡 '좋아하면 다 그래' |
3집 활동이 끝나기가 무섭게 디바는 이상민 휘하의 패밀리 그룹 브로스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이때 지니가 브로스 활동에 합류하며 다시 국내 무대에 복귀했다. 당시 보도자료에서는 지니가 디바와는 별개의 아티스트로 참여했지만 브로스 앨범의 수록곡 중 참여 뮤지션들을 가사로 랩으로 옮긴 'Zen'을 살펴보면 "비키 민경 리나 지니 디바 브로스로부터 탄생되어 영원하고 있다"라는 가사가 있어 이 당시 내부에서는 이미 지니의 복귀가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4.1. 채리나가 디바에서 탈퇴한 이유?
3집 활동 이후 룰라가 재결성하면서 팀의 중축이자 사실상 에이스였던 채리나가 탈퇴했고, 이 과정에서 이상민은 당시로서는 신인이었던 모델 장윤주에게 채리나의 빈자리를 메꿀 멤버로 컨택했으나 장윤주가 고사했다.[26] 또 샵의 초기 멤버였던 랩퍼 오희종[27]에게도 컨택이 갔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채리나 탈퇴 이후 4인조로 재편될 계획이 있었던 것인지, 공개 오디션 모집 및 그룹 재편 계획이 언론에도 보도됐었으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무산되었고 이때 팀 이름을 디바스(Diva's)로 바꾼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 계획도 무너진다.그리고 브로스 활동때 다시 국내에 귀국해 디바로서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 브로스에 참여했던[28] 지니가 다시 디바 멤버로 복귀하면서[29] 결국 지니, 비키, 이민경 체제로 재정비되었다. 새로운 체제로 재편되면서 기존 기획사 서울 인 프로덕션[30]과 재계약하지 않고 이상민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고 김균민이 대표이사로 앉아있던 기획사 A&B 엔터[31]로 이적하여 새로운 디바 활동을 준비하게 된다.
채리나가 디바에서 탈퇴를 공식선언한 것은 2000년 8월이며, 당시 채리나의 공식 탈퇴 이유는 룰라와 디바 활동을 함께 이어가는게 힘들었으며, 후에는 전문적인 댄서와 프로듀서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채리나가 솔로 가수로 재데뷔하면서 탈퇴 이유가 불화가 아니냐는 의혹성 기사가 제시되었고 여러 루머가 돌았다. 대표적으로는 4집을 오리지널 멤버 채리나, 비키, 지니로 내고 이민경은 A&B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샤크라 또는 월드뮤직의 신인 샵으로 보낸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민경이 디바 잔류 의사를 내비쳤고, 미국에서 돌아온 지니도 복귀해야 했으며, 채리나도 룰라에도 합류해야 했으므로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채리나가 물러났다는 루머가 있었다. 이는 채리나와 디바의 기존 멤버들이 크게 다퉜더라면 4집의 프로듀서가 이상민일리도 없었기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했다.
2018년에 채리나가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비화를 자세히 밝혔는데 사실 디바 2집 활동이 끝난 직후, 룰라 스탭들이 다시 모여 재결성을 논의하러 찾아오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채리나는 디바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그 모습을 안 좋게 본 룰라 스탭들이 채리나에게 쓴소리를 하는 바람에 결국 룰라에 합류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이에 한참 활동을 이어가야 했던 디바 멤버들을 두고 룰라 활동에 몰두하는 모습에 서로 오해를 빚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서로 지내면서 서운했던 감정들이 하나하나 터지면서 결국 갈라서게 되었고, 마침 이 때의 채리나는 항암치료도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때를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회상했다.[32] 채리나는 인스타 라이브에서 디바 멤버들이 자신에게 속상해하는 것을 백번 이해한다고 말했고 이 이후 이민경 외에 비키, 지니와의 교류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때만 해도 개인활동을 하면 배신한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가요계가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안타깝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다만 알려진 것처럼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느니, 사이가 매우 안좋다는 얘기는 소문일 뿐이며, 채리나가 솔로로 데뷔할 당시 1집 앨범 Thanks to에 추억의 디바 멤버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고 연락은 하지 않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은 어색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33]
그리고 2020년 7월 라디오 "오후의 발견 이지혜입니다"에서 채리나가 "디바"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채리나는 디바 곡 중에서 3집의 "좋아하면 다 그래" 를 명곡으로 뽑았다. 이 중에 이지혜가 3집멤버는 비키와 이민경인데 둘이 연락하냐는 질문에 채리나는 이민경과는 연락을 하지만 비키와는 연락을 안하는 모양.[34] 비키와는 사이가 부드럽지는 않다고 언급하였지만 그렇다고 으르렁 대는 사이는 아니라고 하였다.[35] 하지만 그 뒤에 비키를 정말 많이 보고싶다고 언급하였다. 아무래도 세월이 많이 지나면 나쁜 기억은 없어지고 좋은 기억이 남는다는 이지혜의 말에 채리나도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22년 4월 채리나의 SNS에서 지니와 이민경과 같이 만남을 가졌으며, 같은 해 7월에 슈퍼콘서트에 지니와 이민경, 그리고 원년멤버였던 채리나도 포함해서 디바로써의 무대를 선보였다.
2. 새롭게 재정비된 디바
2.1. 4집
2000.11. 발매 디바 정규 4집 앨범 <naughty diva> 자켓 사진. |
4집 타이틀 곡 'Up & Down' | 4집 후속곡 '이 겨울에' |
그렇게 앨범 발매 전까지 디바의 위기론이 대두되었지만 4집 앨범이 발매된 후, 1집 이후 오랜만에 다시 손을 잡은 이상민의 신선한 프로듀싱과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한 이혜영의 독특한 센스로 탄생한 타이틀 곡 'Up & Down'이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SBS 인기가요에서 1위 후보까지 올랐고 다른 방송사에서도 10위 권 안에 들면서 선전했다. 당시 'Up & Down'은 우리 나라 가요 중 BPM이 가장 빠른 곡이라고 홍보되기도 했다.[36]
당시 스타일리스트 이혜영은 "야 니들 컨셉은 미친X 컨셉이야~"라며 엄청나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여 화제가 많이 됐다. 비키의 경우 1집 때 하려다 실패한 드레드 헤어를 제대로 선보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라고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당시만 해도 불호가 많아 방송국 스탭들이나 관객들이 자주 기겁했다고 한다. 무대에 올라서면 다들 "쟤들은 뭐지"하는 눈길로 쳐다보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당시 컨셉 중, 이민경의 티아라 왕관이 10대들 사이에서 핫한 잇템으로 떠오르기도 했다.[37]
또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 ' Diva Diva Diva'의 경우 별다른 멜로디나 가사 없이 옥타브를 올려가며 괴성을 지르는 충격적인 트랙인데 워낙 충격적이라 넷상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고, 모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어그로 꾼이 항상 어그로 성글에 맥락없이 이 노래를 BGM으로 깔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또 'Tune Sisters'라는 곡에서는 오토튠 가수들을 풍자하기 위해 녹음된 곡이며 연예방송 리포터 조영구가 섭외되어 만들어진 노래라기 보다 토크 트랙에 더 가까운 곡이다. 타이틀 곡도 개성있었지만 수록곡도 모험심이 강했던것을 보면 당시 새롭게 재정비된 디바가 자신들만의 길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눈에 띄는 앨범이다.
뒤이어 내놓은 후속곡 '이 겨울에'[38] 역시 10위 권 안에 들면서 히트를 쳤고 지금까지도 겨울에 라디오에서 가끔 흘러 나오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활동곡 두 곡이 히트함에 따라 디바 역대 앨범 중 최초인 삼속곡(트리플 싱글) 'Crazy'를 선보여 2주간 짤막하게 활동했다.[39] 4집 앨범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린 디바는 그전의 위기론을 말끔히 씻고 새로운 라인업으로 또다른 디바의 역사를 쓰는것에 성공했다. 이 앨범은 11만장 가량의 판매량을 올려 전작에 비해 큰 하락없는 고른 판매량을 기록했다.
2.2. 5집
4집 활동 종료 이후 'Up & Down'의 파격적인 컨셉의 부담을 느낀 디바는, 4집 활동 당시에도 인터뷰에서 친하게 지내던 '샵'과 같이 대중적이고 부담없는 댄스 장르를 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었다. 그래서 리더였던 비키는 총대를 메고 프로듀서였던 이상민을 찾아가 "컨셉이 좀 아닌것 같다."라고 말하자 이상민은 단칼에 "그럼 하지마"라고 정리하는 바람에 헤어졌고 각자의 길을 갔다고 한다.[40]그렇게 이상민과 결별한 뒤 발매한 5집에서는 쿨의 히트곡을 만든 박해운이 프로듀싱을 맡은 복고풍 댄스곡이었던 5집 '딱이야'를 선보였으며 디바 멤버들의 바람대로 기존의 강렬했던 컨셉을 배제하고 보통의 댄스 그룹처럼 신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당시 이슈감이 딱히 없었던 나머지 소속사 사장은 언플을 위해 1집때 삭발 했던 비키를 보고 다시 머리를 깎으라는 지시를 해서 비키가 삭발 헤어를 돌아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41]
5집 타이틀 곡 '딱이야' | 5집 후속곡 'D.V.D' |
이때 성시경[42]과 비키의 열애설이 나기도 했는데 2022년 성시경과 비키가 함께 출연한 모 예능 토크쇼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비키가 iTV 인천방송의 음악방송 MC를 맡던 시절 실제로 성시경의 무대를 보고 MC는 안보고 무대만 뚫어지게 볼 정도로 많이 좋아했고 5집 인터뷰 당시 농담조로 '요즘 성시경씨가 좋다'고 툭 던진게 열애설로 번져 기사화가 크게 됐었다고 전했다. 이 사건 이후 성시경의 매니저가 비키와 마주치기만 하면 성시경을 감싸 안고 자리를 피하며 과잉 보호하는 바람에 딱 한번 악수까지 하고 다시는 사석에서 보지 못했다는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타이틀 곡인 '딱이야'는 모든 음악방송 차트 10위 안에 진입하면서 인기 자체는 좋은 편이었지만 갑작스럽게 힙합 컨셉을 배제하고 대중적인 스타일로 복귀했던 탓에 기존 팬덤이 상당히 떨어져 나갔다. 디바만의 개성이 사라져버린 탓에 힙합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앨범 자체도 그 전의 힙합, 랩 분위기에서 드라이브하면서 듣기 좋은 희망차고 신나는 트랙들이 즐비해 그 전의 강렬한 느낌에서 많이 순화된 모습이었다.
이상민과 결별하면서까지 이미지 변신을 감행했지만 대중들이 원하는 디바의 모습과 본인들이 원하는 모습의 차이가 컸던 탓에 팀 컨셉은 희미해져가고 아이러니하게 대중적인 인기는 슬슬 떨어지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5집 활동 막바지에 후속곡 'D.V.D'로 짧게 활동한 뒤 멤버 지니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대중들의 디바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었다. 이때 디바에게 여자 DOC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가요계의 악동 이미지가 생겨나기 시작...
2.3. 6집
6집 타이틀 곡 'Action' | 6집 후속곡 '바람 바람 바람' |
2002년 디바는 4집 시절 작곡진과 함께 다시 의기투합한 6집 'Action'[43]을 발매했다. 퀄리티는 준수했으나 한국 음악 트렌드와 조금 동떨어지는 곡에, 뮤직비디오도 없이 홍보한 결과[44] 전처럼 큰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고 이 시점부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다기 보다 행사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면서 메인스트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오히려 이때부터는 행사의 여왕으로 떠올라 밤무대(업소) 행사를 마다하지 않고 하루에 전국을 U턴하고 올 정도의 엄청난 행사를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현찰로 몇천만원이 있을 정도의 수익을 벌었다고 하며, 아마 디바 멤버들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절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앨범 성적이 전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디바의 이름 값이 있어서 차트에서 중위권을 유지하긴 했고 후속곡인 '바람 바람 바람'으로 짤막하게 활동한 뒤 6집 활동을 마감했다. 비키는 Mnet에서 '비키의 막강생밤'을 진행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몇번 선보인 발라드 '지켜준다더니'는 입소문을 타고 타이틀곡 보다도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이 겨울에'를 연상시키는 곡으로 차라리 이 곡을 메인으로 밀었다면 반응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호평받았다. 그 외에도 'Only One', 'Jam Tonight'등도 눈여겨볼만한 트랙이며 앨범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앨범 타이틀 곡 선정 당시에는 'Action', '지켜준다더니', '바람 바람 바람', 'Jam Tonight' 총 네 곡이 경합을 벌였다고.
3. 그룹의 활동 후반기, 그리고 잠정 해체
3.1. 7집
7집 타이틀 곡 'Hey Boy' | 7집 후속곡 'Amoremio' |
2003년에는 지니가 또 다시 음주운전을 하면서 결국 디바는 그 해에 복귀하지 못했으며, 베스트 앨범을 발매한 뒤 기존 기획사 잼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BM뮤직으로 이적하여 2004년에 드디어 외국 작곡가의 곡을 받아 7집 타이틀곡 'Hey Boy'[45]와 후속곡 'Amoremio'[46]를 선보였다. 'Amoremio'는 음원에서는 비키의 목소리가 없지만 방송에서는 이민경의 일부 파트를 비키가 대신 불러 비키 파트가 생겼고 살짝 편곡을 더해 앨범 음원과는 다른 음원으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가요계는 이미 댄스곡보다 소울과 발라드 음악이 더 강세를 보이면서 댄스곡의 발매가 크게 줄었고, 걸그룹 시장은 침체되던 상황인 데다가 디바의 경우 걸그룹이라 불리기엔 너무 오래된 데뷔일 등의 문제로 높은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그래도 타이틀곡인 'Hey Boy'는 유일하게 차트제를 운영한 생방송 음악캠프에선 10~20위권에 들었으며, 디바 팬들에게는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음악적인 평가도 좋은 편이어서 지금도 간혹 명곡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원래 후속곡은 앨범에 수록된 'Get the Party'로 준비했고 안무 연습 장면이 만원의 행복에서 잠깐 나왔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Amore Mio'가 선정되었다. 7집 활동 중후반부에는 데뷔 후 첫 전국 콘서트가 결정됐고 강원래가 안무 연출로 참여한다고 했었지만 이것 또한 무산되었다.
이 노래에서 남자 댄서의 급소 부분을 손으로 움켜쥐며 터트리는 듯(?)한 노골적인 안무가 있었는데 당연히 지상파에서는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려서 지상파 무대 때는 안무를 수정했다. 디바는 당시 이 퍼포먼스에 대해 외설적인게 아니라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멋있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3.2. 8집
8집 타이틀 곡 '웃어요' | 8집 후속곡 'My Style' |
마지막 앨범이었던 8집 '웃어요'는 온라인 음원 순위에선 소소하게 선방했고 케이블 음악 방송에서는 10위권 내외의 성적을 거두었다.[47] 8집은 방송 프로모션이 워낙 적어서 당시에도 팬들이 아쉬움 섞인 목소리를 많이 냈었으며 후속곡 'My Style'은 아예 메인 음방에 단 1회도 출연하지 않는 유령 활동이었다. 케이블 방송 위주로 몇번 나오다가 후속곡 활동이 끝났다.
8집 전 공백기가 길어서 해체설이 났었는데 8집을 발매하면서 해체설은 오보였지만 이 앨범의 반응이 앞으로의 활동 여부를 결정한다고 인터뷰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8집 앨범은 디바를 다시 메인스트림에 올리는 데에 실패했고, 결국 세 멤버는 기존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되었다. 다만 앨범 반응이 아주 저조하지는 않아서, 디바라는 그룹을 이 앨범을 통해 알게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워낙 당시에도 장수 그룹이었기에 꾸준히 유입팬들이 있었던 모양. 거기다가 멤버들도 제일 예뻤을 시절이었기 때문에 비주얼적으로도, 음악적 기량도 여전했다. 다만 멤버들은 지금와서 보면 멋있게 마무리 지은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계약종료 시기, 멤버 이민경이 솔로 전향을 위해 재계약을 고사하며 탈퇴했고 남은 2인이서 군대 위문공연이나 각종 행사를 조촐하게 다니면서 2007년까지 활동을 이어갔지만 결국 수입이 저조해 9집 앨범 제작이 무산된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8집 활동 이후 소속사에서 자체적으로 또 한번 베스트 앨범이 발매될뻔했지만 백지화 되기도 했다.
참고로 8집 앨범으로 컴백할 당시 유행하던 후드 집업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음악 방송 녹화를 하고 있었는데 음악 방송 PD가 이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면서 리허설 도중 음악을 끊어버렸고, 이에 분개한 비키가 직접 PD를 찾아가 항의했다고 한다. 사실 비슷한 시기 이효리도 비슷한 스타일로 무대에 오른적도 있었는데 유난히 불량한(?)이미지로 평소에도 제재를 많이 받던 와중에 이런 차별 행위가 드러나 비키도 못참고 터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방송가에서는 비키가 PD를 폭행했다는 말도 안되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고.
4. 해체 이후
- 채리나는 간간히 방송 활동을 하고 있으며 룰라 멤버로서 하는 편이다.
- 비키는 거의 은퇴한 뒤 2009년에 결혼해 1남 1녀를 뒀으며, 슈가맨 출연 이후 드문드문 예능 게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다.
- 지니는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 3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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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결혼해 1녀를 뒀으며, 2016년 2월에 이혼했다.
음악의 신2에서 같은 아픔(?)을 겪은 탁재훈의 드립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2019년에는 복면가왕에 출연했다.
4.1. 슈가맨 출연
2016년 4월 5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희열팀 슈가맨으로 등장했다. 슈가송은 'Up & Down'. 또한 걸크러쉬의 시조새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히트곡 메들리를 선보이며 레전드급 게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48]슈가송 'Up & Down'에 대해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한다. 최대 히트곡인 '왜 불러'를 부르지 않아서인 듯하나, '업 앤 다운'은 이 멤버 체제로 냈던 첫 곡이었고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채리나 골수팬이 아닌 지니, 비키의 팬들 사이에선 Up&Down 을 디바의 대표곡으로 여기는 편이다. 4집은 공방 참여팬들도 이전 활동때 만큼 활발하기도 했다.[49]
나중에 비키는 슈가맨이 디바의 마침표였다고 언급했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간간히 무대활동 하기도 한다.
4.2. 슈가맨 출연 이후
슈가맨에 나온 이후 단체로 이상민의 음악의 신2에 출연했다.2016년 10월 3일 DMC 페스티벌-레전드 토토가에 출연하여 '딱이야', '왜 불러', 'Up & Down'을 불렀다. 그리고 그 후 디바로서 여러 번의 무대를 갖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1년,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영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Up&Down과 이 겨울에 무대를 오랜만에 선보였다.
2022년 채널S '신과 함께 시즌3'에 완전체로 출연해 입담을 뽐냈다. 영상1 영상2 영상3 영상4 영상5 영상6 영상7 영상8
2022년 7월에 민경과 지니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듯한 게시물을 인스타에 올렸다.
4.3. DMC 페스티벌 - 레전드 토토가 논란
무대 직후 원년 멤버 채리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인간적으로 디바 노래를 나와서 부를꺼면 내 목소리는 좀 빼고 왜불러를 부르던가, 립싱크를 할꺼면 돈 들여서 다시 편곡 작업해서 부르던가 불쾌하다"며, "내 목소리는 나오는데 다른 이가 입을 뻥긋하고 있다. 진심 코미디. 2집 앨범 씨디음향 그대로 잘 들었다"는 글을 남겨 논란이 되었다.[50]물론 사적으로 이야기하면 됐지 SNS에서 모처럼 무대에 오른 전 멤버들을 디스를 해야 하냐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채리나에게도 적지 않은 비난을 했었다.
하지만 해당 방송에서는 채리나의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와 이민경이 그대로 립싱크하는 모습이 나와버린 상황이다. 사실 '왜 불러'가 디바 커리어 중 최고 히트 곡인 만큼 안 부를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원년 멤버 채리나 입장에서는 본인 노래다.[51]
물론 디바 3집 때 이민경과 채리나가 함께 멤버로 있었지만, '왜 불러'를 부를 당시에는 채리나는 있었으나 이민경은 없었으므로 당연히 이를 보고 채리나가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떠한 말도 없이 전 멤버의 목소리가 들어간 98년도 음원 그대로 틀어 공연한 것은 전 멤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한 부분이 맞다. 따라서 같이 활동했던 지니, 비키의 노래이기도 한 만큼 사전 합의까진 아니더라도, 현 디바 멤버들이 처신을 잘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인지 논란 이후 ‘왜 불러’는 무대에서 더 이상 부르지 않고 있다. 2021년 12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때 4집 활동곡인 ‘UP & DOWN’과 ‘이 겨울에’를 불렀으며 ‘왜 불러’는 부르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6년 후인 2022년 7월에 슈퍼콘서트에 디바가 무대에 오르는데, 지니와 이민경은 물론 원년 멤버였던 채리나도 같이 무대에 오른다. 이전 셋이서 미우새에 함께 출연한 건 보면 어느 정도 갈등이나 오해가 풀린 것으로 보인다.[53]
이후 2023년 12월 19일 놀던언니에서 지니가 게스트로 출연하였는데[54] 채리나와 지니가 밝힌 바로는 자주하는 무대가 아니여서 깊게 신경을 쓰지못해 녹음을 하지 않았다고 했고, DMC페스티벌때 멤버들은 부끄러워서 부르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본 지니의 반응은 '아, 이언니가 화났구나'였다고. 이후에 지니, 이민경과 다시 만날때 많이 울었다고 한다. #
4.4. 2022년 타임캡슐 콘서트, 채리나의 복귀
어느날 디바의 두 멤버(지니, 민경)와 채리나가 함께한 사진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고 타임캡슐 콘서트 출연을 위해 깜짝 재결성이 되었다고 밝혔다. 개인적인 사유로 불참한 비키를 대신해[55] 채리나가 합류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조합의 디바가 탄생되었다.콘서트에서 채리나 탈퇴 후의 디바 히트곡(딱이야)과 이민경이 합류하기 전의 히트곡(그래, Joy, 왜 불러)를 선보여 팬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줬다.
[1]
대표적으로
이효리가 데뷔 전 채리나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직접 싸인을 받게 되자 너무 좋아서 울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2]
이후
이상민은 음반 프로듀서로, 김지현은 배우로 전향했으며
절대 이름을 언급할 수 없는 그 분은 2인조 남성 듀오
플레이어를 결성하여 활동한다.
[3]
힙합을 너무 좋아해 레게를 하던 룰라 멤버로도 합류하지 않으려 했다. 이상민이 "먼저 유명해지면 나중에 니가 하고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된다"며 설득했다고.
[4]
DSP는 핵잠수함
김준희와의 듀엣을, YG는
철이와 미애의 미애와 듀엣을 제의했다.
[5]
룰라가 미국 콘서트 일정 중 촬영한 3!4!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6]
영상 1분 37초 쯤 이현도의 왼쪽에 있는 금발의 숏컷이 비키다.
[7]
물론 정식 앨범에는 보컬도 하고 있지만 상당히 보컬 실력이 미흡했다.
[8]
김성재가 외모가 뛰어난 지니를 보고 "너 춤 좀 추냐?"하면서 제안 했다고 하고, 오디션 아닌 오디션을 합격한 뒤 바로 2~3일만에 한국으로 갔다고 한다.
[9]
이 때 김성재가 무대의 완벽함을 위해 댄서들을 혹독하게 연습 시켰고, 지니는 김성재의 팬이라 김성재의 이니셜로 된 순금반지까지 착용할 정도였는데 김성재의 혹독한 연습에 너무 힘든 나머지 반지를 빼서 던져버렸다고 한다.
[10]
전술된 내용이지만 자신의 연예계 입문을 96년 이현도 뮤직비디오 때문이라고 언급한것만 봐도 95년 김성재의 솔로 활동과는 전무하다.
[11]
2009년
라디오스타에서 이상민이 당시 지니가 공항에서 전화와서 관두겠다고 했다 말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12]
특히 데뷔곡 '그래'의 경우 1절이 끝나고 비키와 채리나가 랩하는 부분에서도 지니는 뒤에서 혼자 서있고 비키와 채리나는 어깨동무를 하며 사이좋게 랩을 하고 있기도. 후속곡 '12월의 드라마'에서는 세 멤버가 어깨동무하는 안무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지니는 채리나 옆에 있고, 비키와는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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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남성 가수 파워가 더 강력했던 시절이라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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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 채리나의 절친 에스더가 코러스로 참여했다. 타이틀 곡 '그래' 도입부의 애드립 및 수록곡 전반의 고음 애드립은 거의 다 에스더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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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요 잡지에서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탓에 찍지 못했다고 하는데 타이틀을 급하게 교체하고 활동을 급하게 시작하느라 그랬던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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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SBS의 TV 가요 20에서 잠시 차트에 '골드'가 올랐고 VJ
조여정이 '디바의 새 노래'라고 소개한 것으로 보아 본래는 '골드'로 후속곡 활동할 계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 활동은 무산되고 최종적으로는 '12월의 드라마'가 후속곡으로 낙점되었다. 데뷔 무대에서 '골드'의 도입부 비트에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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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당시 걸그룹 중 확고한 No.3로 여겨지던(일명 S.E.S-핑클-베이비복스 라인) 베이비복스의 경우에는 단일 앨범 최다 판매량이 24만장(2002년 스페셜 앨범)이다. 물론 베이비복스는 뜬 시점이 디바보다는 조금 늦은 99년부터였고 그 이후에는 음반 시장이 슬슬 붕괴되던 시점이라 판매고가 그룹의 위치보다는 낮은 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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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수록곡은 11곡이지만, 마지막 10번 트랙과 11번 트랙은 1집 수록곡 "원"과 "비몽"을 리믹스해 재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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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의 러닝타임이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인데, 당시엔 요즘과 달리 노래는 당연히 3분이 넘어야 한다는 통념이 있던 시절이라 방송 활동할 때에는 전주를 길게 하고 랩파트가 추가된 방송용 음원을 사용했다. 1절 끝나고 나오는 앨범 음원 상의 남자 랩 구간도 채리나가 재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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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 50초 경을 보면 위궤양에 걸려 고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듯이 위암 판정 직후였으며 채리나가 동정받고 싶지 않아 했기에 위궤양에 걸렸다는 식으로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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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의 디바 이적과 남자 멤버들의 군 입대 등으로 2집 준비 도중 해체. 남자 멤버 중 1명이
북치기 박치기로 인기를 얻었던 래퍼
후니훈(본명 정재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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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은 유니티 멤버들에게 미안해서 처음에는 합류를 거절했지만 이후 유니티 멤버들에게 얘기했을때 오히려 응원해줬고 유니티 제작도 이민경의 형부였기에 얘기가 잘 돼서 디바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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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6집 활동 끝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비키, 지니, 채리나 셋이서 3집을 낼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지니가 뿅하고 사라져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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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후속곡 '12월의 드라마'도 음악 방송별로 한번씩만 출연해 '좋아하면 다 그래'의 출연빈도와 거의 같았지만, 1집은 9월초 발매되어 12월까지(세달 반) 한 반면, 3집의 경우 6월 말 컴백하여 9월 초중순까지만 방송했기에(두달 반) '고리' 활동 자체가 짧아서 전체 활동도 짧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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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타이틀 곡으로 이 곡을 염두에 뒀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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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장윤주는 디바 해체 후 2008년이 되어서야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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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희종은 건강악화와 가족들의 반대로 탈퇴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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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당시 브로스 프로필을 보면 디바와는 별개로 솔로 아티스트로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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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채리나가 나가고 이민경이 들어왔다고 착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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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의 전 기획사이자 디바 1~2집 소속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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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샤크라 1집, 룰라 7집 음반 등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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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도 소속사와의 계약 때문에 3집 앨범을 내야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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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구전처럼 전해지는 얘기지만 디바가 4집으로 복귀했을때 이민경이 지니와 채리나가 전화 통화를 해서 화해했다고 전한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아주 긴 기간동안 소원해졌다가 2022년이 돼서야 이민경, 지니, 채리나 3인이서 모인 모습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여줬고 완전히 화해했음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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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리나曰:민경씨와는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요. 비키씨와는 연락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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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가 첨언하기를 안 친한건 아니지만 결이 다른 사이인 듯 하다고 이해한다고 함. 그러면서 서지영에게 사랑하고 보고싶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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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 힙합 듀오
m-flo의 곡인 "
ten below blazing"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다만 들어보면 이 곡에서 힌트는 얻었을지 언정 표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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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도 S.E.S. 유진, 베이비복스 간미연등이 티아라 왕관을 차고 나온적이 있었고 이민경의 티아라 역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 시절 걸그룹 비주얼 센터들이 한번씩 꼭 거처가는 아이템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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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아이드걸스가 2007년 나르샤, 미료만 참여한 Somewhere Over The Rainbow Vol.6 - Soul Romance Into The Rainbow 수록곡으로 리메이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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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3집에서도 'Never say goodbye'와 '느껴봐'로도 활동한 바 있지만, 고별 무대에서 짤막하게 선보인 게 전부라 이 때가 실질적인 첫 삼속곡 활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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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음악의 신 2 디바 출연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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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때 비키가 드레드 헤어를 하려다 망치고 머리를 밀었는데 두상이 예쁘다는 평을 받아 본인도 별 거리낌 없이 리더로서 용감히 삭발했다고 한다. 한밤의 TV연예에서 비키가 삭발하는 장면을 취재했는데 이를 본 MC 김정은이 비키는 두상이 이뻐서 삭발을 해도 너무 잘 어울린다며 칭찬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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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시경은 이제 막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었고 1집 앨범을 발매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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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트레이너로 유명한 가수 박선주가 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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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속사 잼 엔터테인먼트 측 보도자료를 보면 뮤직비디오 예산 1천만원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내용이 있다. 대신 한국 영화 '로드무비'의 장면들을 재편집해 수록곡이었던 지켜준다더니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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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외국곡 수입의 경우 '리메이크'처럼 표기하는 경우가 있어서 외국곡 리메이크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디바가 오리지널 원작자다. 데모 제목은 'Can't Let Him Go'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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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후속곡은 Get The Party였지만 서울 지명인 압구정이 나온다고 방송 불가 처분으로 인해 해당 곡으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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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웃어요' 활동 당시에 지상파는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다. 인기가요는 네티즌 송을 선정하는 방식이었으며 뮤직뱅크는 순위제가 없었고 MBC 쪽은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으로 인해서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 휴지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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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최대 히트곡인 왜불러로 섭외 들어와서 당시 리더 였던 채리나에게 출연 요청이 들어와 다른 맴버랑 상의하고 출연 결정한다고 제작진에게 전달하고 채리나가 다른 맴버랑 연락을 하니 채리나랑 같이 활동을 안 한지 오래 되어서 좀 어색하다고 연락을 받고 채리나는 출연을 고사하고 4집~8집까지 같이 활동한 비키, 지니, 민경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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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놀던언니에서 채리나가 밝힌 바로는 채리나도 디바 멤버로 섭외가 들어왔었으나 비키, 지니, 이민경으로써 활동한 것이 더 길어서 출연을 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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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채리나는 놀던언니에서 많이 미안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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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노래라고 볼 수도 있지만, 2집 프로듀싱은 위의 설명대로 채리나와 윤건이 했으며, YouTube등의 영상을 보면 사실 노래도 채리나가 거의 하드캐리 하다시피 했다. 채리나로써는 나름 황당할만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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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공적인 사유이며 사적으로는 민경과 채리나는 아직 친한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7월
이지혜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채리나가 출연해 디바 멤버들 중 '민경'과는 연락을 이어가고 있으나 '비키'와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민경과 채리나는 3집때 같이 활동했다. 그러던 2022년 4월에 채리나와 이민경은 물론 지니까지 사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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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었던 왜불러를 부른것은 물론이고 채리나 탈퇴 후의 노래인 딱이야를 채리나가 직접 비키 파트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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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리나는 놀던언니의 고정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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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 역시 채리나와 갈등이 풀렸는지 서울 레트로 슈퍼 콘서트에는 비키도 응원 차 방문해 4명이 함께 한 사진이 채리나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