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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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大 韓 獨 立 萬 歲일제강점기부터 광복 때까지 쓰인 한국 독립운동 구호이자 표어.
2. 설명
3.1 운동과 6.10 만세 운동의 구호로 유명하다. 3.1 운동 초기에는 ' 조선독립만세'가 더 많이 쓰였다. 1897년 대한제국 건국 이래로 대한 및 한국 명칭이 일반화되었으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제국은, 대한제국에 대한 격하 작업을 통해 대한 및 한국이라는 용어를 금지하는 한편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대해 전 국호인 조선으로 통칭하는 등 대한제국이 잊혀지도록 철저히 작업하였기에[1] 일제강점기 9년동안 민중들에게는 대한이 금지되고 조선으로 불려졌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대한독립만세'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1897년 대한제국은 물론이고 1907년에는 대한매일신보, 1909년 대동공보 등 신문에서 '대한민국', 여러단체의 기념사 등에서 '황제 만세, 대한민국 만세'라 외치는 등 대한민국도 쓰이고 있었기에[2]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이나 대한 국호는 상당히 잘 알려져 있었고 이를 다시 쓴 것이다.
3.1 운동 시기 ‘조선독립만세‘가 아닌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대표적인 집회로는 1919년 4월 12일부터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이승만의 주도로 진행된 한인자유대회를 들 수 있다.
이후 점차 ‘대한독립만세‘라는 표어가 널리 퍼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3.1 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의 목표는 옛 조선왕조의 부활이 아닌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국으로 빠르게 패러다임이 전환되었고, 특히 3.1 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공식적인 표어로 채택하여 대내외에 선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임시정부 산하의 한인애국단, 한국광복군 등 독립단체들은 사실상 모두 '대한독립만세'를 표어로 사용하게 된다. 물론 임시정부의 강령이나 지휘체계를 따르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는 다른 독립운동 단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계속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조선)독립만세'는 대표적인 불온표어였기 때문에 신문지상에서는 몇 글자가 검열 때문에 지워져 '○'와 같은 기호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만세’, ‘대○독립만세’처럼.[3]
3. 여담
2019년 3.1절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 대한, 민국, 독립, 만세 폰트가 나왔다.KBL의 어록 제조기로 유명한 유도훈 감독이 리바운드 싸움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만세 부르듯 손만 들고 있던 선수들을 향하여 '리바운드만세 부르냐? 대한독립만세야?'라며 인용하여 선수들을 질책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