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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 |
나고야 구장 ナゴヤ球場 |
|
개장일 | 1948년 12월 2일 |
소재지 |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시 나카가와 구 |
홈구단 |
주니치 드래곤즈 (1948~1996) 주니치 드래곤즈 2군 (1997~현재) |
크기[1] |
좌우 - 100m 중앙 - 122m 펜스높이 - 4.8m |
잔디 | 천연잔디 |
수용인원 | 4,883 명 |
[clearfix]
1. 소개
주니치 드래곤즈 2군 구장. 과거엔 1군 홈구장이었으나 나고야 돔이 건설되어 1군이 홈구장을 그곳으로 옮긴 후 2군 구장으로 용도가 바뀌었으며 인근에는 주니치의 신인 선수들을 위한 기숙사도 있다.2. 역사
2.1. 주니치 스타디움의 건설
1938년 창단된후 고라쿠엔 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등을 전전하며 경기를 치르던 주니치 드래곤즈는 정식으로 자신들의 본사인 "주식회사 주니치 드래곤즈" 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야구장 건설을 추진한다. 군수 공장 부지였던 현재의 위치에 야구장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건설을 시작한지 2개월 후인 1948년 12월 2일에 2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조 야구장인 주니치 스타디움(中日スタヂアム)을 완성하게 된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옛 홈구장인 "클리블랜드 스타디움"을 참조해서 건설되었다.역사적인 첫번째 경기는 12월 2일, 개장 기념 경기였던 일본프로야구 동서대항전이었고 이날 오사카 타이거스의 외야수 후지무라 후미오가 좌측 펜스를 넘기는 나고야 구장 제 1호 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니치 드래곤즈의 1군 홈구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1997년 나고야돔이 완성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2.2. 불길에 휩싸인 주니치 스타디움
주니치 스타디움은 목조 건축물이었고 외야에는 화재를 대비해 양동이와 빗자루가 곳곳에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1951년 8월 19일 오후 4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3회 말 드래곤즈 측의 공격을 진행하던 중 담뱃불로 인해 내야 지정석에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후 바람에 의해 외야와 내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오후 5시 40분에 화재 진압을 하였으나 구장은 전소하고 말았으며 구장 내부의 드래곤즈 구단 사무실, 인근의 유명 건설회사 쿠마가이구미의 사무실, 경륜장, 주택 4개, 공장 3개도 이 화재에 휘말려 전소하고 말았다.
사망자가 4명, 부상자가 318명이나 되는[2] 대참사였으며 야구장이 완전히 불에 타버리면서 화재 이후 주니치 구장이 재건되기 전까지 드래곤즈 측의 홈경기는 아이치현내 여러 야구장을 전전하면서 진행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재건 이후인 1990년 9월 11일에도 또다시 담뱃불로 인해 우측 외야(정확히는 조명 부근에 있던 쓰레기 집합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땐 천만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지만 화재 때문에 우측 외야에 있던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3. 재건
화재사고 이후 철근 콘크리트로 야구장을 건설해야 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화재 발생 3개월 후인 11월 15일, 기존 야구장 위치에서 약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신축 야구장 건설이 시작되어 다음해인 1952년 4월 5일에 완공되었다.1953년 6월 20일에는 코라쿠엔 구장, 한신 코시엔 구장,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 이어 일본에서 4번째로 조명시설이 완공되었으며 1955년에는 외야 스탠드를 증축해 관중수용량이 3만 5천명으로 늘어났다.
1973년, 구장 운영권을 가지고 있던 주식회사 주니치 스타디움이 주니치 스타디움 사건[3]에 휘말려 160억엔의 빚 때문에 파산신청을 하게 되면서 구장 운영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구장 자체를 폐쇄까지 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으나 주니치 드래곤즈가 직접 구단 운영을 대신하기로 하면서 위기를 모면, 이후 주니치 구단만의 힘으론 구장 경영이 어려워 다른 회사들의 지원을 얻기 위해 1975년 10월 1일에 드래곤즈의 모기업인 주니치신문을 비롯해 토요타 자동차 그룹, 나고야 철도, 주부전력 등 나고야 지역 회사들이 공동출자해 "주식회사 나고야 구장"이 설립되면서 구장 운영이 정상화되었고 이때 구장 명칭이 현재의 나고야 구장으로 개칭되었다.
1987년에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현대화 작업을 했으며 이후 1997년 나고야 돔으로 이전할 때까지 계속해서 홈구장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나고야 돔으로 이전하기 전 이 구장에서의 마지막 홈경기였던 1996년 10월 6일 경기에서 숙명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패하며 요미우리에게 11.5게임차를 뒤집는 역전 우승을 허용하며[4][5] 요미우리 선수들의 헹가래와 축하가 끝난 뒤에야 나고야 구장과의 작별인사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센트럴리그 우승 경쟁의
2.4. 2군구장으로 활용
1997년 2월, 나고야돔이 완공되면서 주니치 드래곤즈 1군은 홈구장을 나고야돔으로 옮겼으며 "주식회사 나고야 구장" 도 나고야돔까지 운영하게 되면서 본사명을 주식회사 나고야돔으로 변경했다. 사명은 바뀌었지만 나고야돔뿐 아니라 나고야 구장의 운영권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2군 구장으로 변경된 후 과도한 구장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점진적으로 부분 해체 및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외야, 내야를 대폭 축소하고 그라운드 확장을 해서 한때 3만 명을 수용했지만 현재 4,800명을 수용하는 소규모 구장으로 변모했다.
3. 기타
- 도카이도 본선 오토바시역에서 내려서 갈 수 있다. JR 도카이는 JR 화물이 가지고 있던 나고야미나토선상에 ' 나고야큐조세이몬마에역'이라는 임시승강장을 만들어서 나고야 착발 임시열차를 운행하기도 했다.
- 외야 펜스 뒷편에 신사가 설치되어 있는데 야구장이 만들어진 연도에 만들어진 오래된 신사이다. 명칭은 심플하게 구장신사(球場神社).
- 과거엔 골프연습장, 축구장등으로 활용되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2군 구장으로써의 기능만 활용하고 있다.
- 1992년 미국 영화 '미스터 베이스볼'에서 나고야 구장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6]
- 1991년 한일 슈퍼게임 때 우리나라 프로 올스타팀과 일본 올스타팀의 6차전이 여기서 열렸다. 경기는 7회까지 1-1로 팽팽하게 맞섰지만 8회 노무라 켄지로에게 역전홈런을 맞으면서 1-2로 한국의 석패.
- 킨테츠 버팔로즈가 일부 홈 경기를 이곳에서 개최했던 적이 있다.[7]
[1]
1998년 개보수 이후 기준이다. 보수 이전엔 좌우 91.4미터에 중앙 118.9미터, 펜스높이 2.1미터였다.
히로시마 시민 구장과 거의 같은 규격이라서 나고야 돔 이전 주니치도 공격야구로 유명하던 팀이었다. 1998년에 2군의 나고야 돔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그라운드를 확장해 나고야 돔이랑 동일한 규격으로 맞추었다.
[2]
여담이지만 이 날 나고야 구장을 방문한 관객 중엔 후에
주니치 드래곤즈의 레전드로써 활약한
타카기 모리미치도 있었다.
[3]
주니치 스타디움 회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자살한 사건. 이후 사업 확장 과정에서 사기에 휘말려
야쿠자와 엮이게 되었고 이 야쿠자들이 협박으로 고액의 어음을 강매시킨 것이 거액의 빚을 지게 된 원인으로 밝혀졌다.
[4]
요미우리 팬들은 이 사건을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표현을 따서 '메이크 드라마'로 기억한다. 다만 요미우리는
당해 일본시리즈에서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끌고
스즈키 이치로가 활약하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4승 1패로 패퇴했다.
[5]
다만 여기서 역전을 당한 대상은 주니치가 아닌
히로시마 도요 카프였다. 주니치는 이 시즌 동안 거의 2위를 유지하다 후반부에 카프의 DTD와 요미우리의 약진이 동시에 벌어지는 사이에 틈새에 끼어 역전 우승을 노렸으나 끝내 요미우리의 상승세를 이기지 못했다.
[6]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하던 야구 선수가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하여 야구를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다룬 코미디 영화이며
톰 셀렉이 주연한다. 일본 야구팀 감독을 맡은 배우는
타카쿠라 켄이다.
[7]
사실
킨테츠 버팔로즈는
모기업의 운행지역(
오사카부,
나라현,
교토부,
아이치현,
미에현) 중 일부인
아이치 현으로
연고지 이전을 하려고 했지만,
나고야의 터줏대감의 반대로 단념하고, 그 대신에 홈 경기의 일부를 이곳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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