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선거심사위원회 위원장 (1948) | ||||
초대 김용무 |
|||||
선거위원회 위원장 (1948~1960) |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장 (1960~1963) | ||||
초대 노진설 |
제2대 조용순 |
제3대 김두일 |
제4대 고재호 |
제5대 이갑성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1963~현재) | |||||
초대 사광욱 |
제2-4대 주재황 |
제5대 김중서 |
제6대 강우영 |
제7대 윤일영 |
|
제8대 이회창 |
제9대 윤관 |
제10대 김석수 |
제11대 최종영 |
제12대 이용훈 |
|
제13대 유지담 |
제14대 손지열 |
제15대 고현철 |
제16대 양승태 |
제17대 김능환 |
|
제18대 이인복 |
제19대 김용덕 |
제20대 권순일 |
제21대 노정희 |
제22대 노태악 |
}}}}}}}}} |
역임한 직위 | ||||||||||||||||||||||||||||||||||||||||||||||||||||||||||||||||||||||||||||||||||||||||||||||||||||||||
|
<colbgcolor=#ffffff><colcolor=#000>
대한민국 제5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김중서 金重瑞 | Kim Joong-suh |
|||
출생 | 1919년 6월 30일 | ||
함경남도 정평군 | |||
사망 | 1996년 3월 13일 (향년 76세) | ||
재임기간 | 제5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
1981년 4월 23일 ~ 1984년 7월 1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fffff><colcolor=#000> 부모 | 아버지 김상요, 어머니 박정덕 | |
형제자매 | 2남 2녀 중 차남 | ||
배우자 | 장희순 | ||
자녀 |
슬하 3남 1녀 장남 김정국[1] 차남 김정권(이화여대 경영대학장 역임) |
||
학력 | 보성전문학교 (법과 / 졸업) | ||
경력 |
법관 시보 서울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부산지방법원장 부산시 선거관리위원장 서울민사지방법원장 광주고등법원징 대구고등법원장 대법원판사 제5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대법원 판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2. 생애
1919년 6월 30일 함경남도 정평에서 아버지 김상요와 어머니 박정덕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938년 함흥 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함흥법원 견학을 갔다가 검은 법복(法服)의 판사에게서 "너희들도 공부를 열심히 해 법관이 돼라"는 한 마디를 듣고 법관을 지망, 이후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하여 1943년 졸업했다.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30세의 나이로 합격하였다. 1949년 법관 시보로 시작해 1950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1959년에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4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1972년에 부산지방법원장이 되었다. 1973년 부산시 선거관리위원장을 겸했다. 1975년 서울민사지방법원장이 되었다. 1977년까지 서울민사지방법원장을 하면서 소액사건을 한 달 내에 끝내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사법서사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사법서사 사무소를 통합해 공존할 수 있게 했다.
1976년 광주고등법원장, 1980년 대구고등법원장을 지냈다.
1980년 9월 11일 대법원 판사(지금의 대법관)로 임명되었다. 1981년 4월 23일부터 1984년 7월 1일까지 제5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였다.
1984년에 대법원 판사직과 중앙선거관리원장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서울공증인사무소'에 몸을 담았다. 35년 5개월이란 긴 세월 동안 판사 생활만 했기 때문에, 변호사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1992년에 광화문 법무법인 공증인으로도 활동하였다. 학교법인 고운학원(皐雲學園)과 학교법인 성보학원(成保學園) 이사를 지냈다.
특히 행정소송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논문으로 '행정소송의 판례'가 있다.
1960년 녹조소성훈장, 1984년 청조근조훈장을 수상했다.
모태신앙의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서울시 종로5가에 위치한 연동교회의 장로로 봉사하였다.
1996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향년 77세).
[1]
장손녀 김지은 검사(사법시험 제48회, 연수원 제38기), 차손녀 김지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