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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1955)/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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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 입문 전2. 정치 활동
2.1. 민주당계 정당 시절2.2. 국민의당 합류와 제3지대 활동2.3. 보수정당으로
2.3.1. 제36대 충청북도지사
2.3.1.1. 직무 수행 및 지지율
2.3.1.1.1. 리얼미터

1. 정치 입문 전

1955년 5월 27일, 충청북도 청주시 남문로2가(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용두사지 철당간 인근에서 중국집 주방장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5살 때 괴산군 청천면 후영리로 이주하였다. 1967년 2월 괴산 청천초등학교, 1970년 2월 괴산 청천중학교, 1973년 2월 청주고등학교(46회)를 졸업한 뒤 1973년 3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예과(73학번)[1] 입학했다. 같은 해 무관후보생에 편입되었으나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연세대학교로부터 총 2번의 제적을 당했고, 1978년 4월 7일에는 무관후보생에서도 제적되었다. 또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으로도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사이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는데, 발간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있었다.

1989년 2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개업하였다.

2. 정치 활동

2.1. 민주당계 정당 시절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때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지내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정치인 중 하나였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2]에 출마하였으나 탄핵의 역풍을 본인도 맞으면서 열린우리당 장경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같은 해 11월에 치과를 개업하여 본업이었던 치과의사로 돌아갔다. 이해박는집 홈페이지[3].

2006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려 하였으나, 박주선 의원이 전략공천되면서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당이 1%도 안 되는 득표로 참패하면서 위기의 상황을 맞았고, 당시 박상천 대표를 비롯한 세력들이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2008년 1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안산시 상록구 갑에 다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와 통합민주당 전해철[4] 후보 2명에 밀리며 3위로 낙선하였다. 당시 선거 유세를 할 때, 통합민주당 지지하면 비례는 민주당에 투표하고 후보는 나를 뽑아달라, 한나라당 지지하시면, 비례는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후보는 나를 뽑아달라며 홍보했으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앞의 내용이 생략된 영상이 유포되어 피해를 봤다.

이후 다시 기회가 왔는데, 2008년 총선 안산시 상록구 을 당선자였던 홍장표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것이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그 곳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5년 만에 국회에 돌아왔다. 2010년도 재산신고를 -8.2억으로 해서 보유재산 국회 최하위 기록을 세웠다.[5][6][7]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4선 고지에 올랐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같은 해에 있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사표를 던졌던 바 있다. '중부권 대통령론'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당 내 1차 경선에서 컷오프당하고 만다. 그러나 비를 맞으며 출마선언을 하는 영상은 당시로선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2. 국민의당 합류와 제3지대 활동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하여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총선 전 국민의당 지지율이 자꾸자꾸 하락하면서 도로 민주당으로 합류하자는 의견이 거셌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홀로 국민의당을 지키자는 주장을 펼쳤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이번에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3파전 속에서 홍장표 전 의원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게 중론이었으나, 실제로는 김영환 후보가 33.5%를 얻어 새누리당 홍장표의 32.5%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정작 당선자는 34%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 김철민[8] 안산시장으로, 당선자 김철민과 낙선한 김영환 본인의 득표수 차이는 399표에 불과했다.

2016년 5월 11일, 국민의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인재영입위원장 시절 영입한 김수민의 리베이트 건이 터지면서 시작부터 불안하게 되었다.

2016년 11월 1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야 3당이 촛불 집회 참여를 밝히자 장외투쟁을 근절키로 한 창당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사무총장 사의를 밝혔다. 시국이 시국이었던 만큼 융통성 없는 눈새스런 행동으로 보일 수 있으나, 창당 정신 운운은 표면상 이유고 실질적으론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사무총장을 원내 인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일종의 불만 표시였다.

2017년 1월 15일,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에서 3위를 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2018년 2월 13일,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 찬성하여 바른미래당에 합류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추대되었다. 당 내부에서 삼고초려에 가깝게 설득을 했다고 한다. TV 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 남경필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온 이재명을 강하게 몰아붙히고 활약하며 화제가 되었으나, 4.8%라는 선거비용 보전도 못 받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이재명 당선인과 남경필 지사에 이어 3위로 낙선하였다. 공약보다는 이재명을 어떻게든 까내리는 네거티브 위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남경필의 지지율만 조금 더 올라가면서[9] 죽 쒀서 개 준 꼴이나 다름없어진 셈이다. 게다가 권은희, 이준석이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전당대회에서마저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낙선 후 당분간은 정치 대신 본업(치과의사)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이재명이 형 이재선을 권한 남용으로 강제입원시킨 데에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 정신보건법 공동발의자로서 의사 입장에서 가족동의가 없는 공권력 동원이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19년 4월, 자신이 운영하는 치과에 경기도 사법경찰이 들이닥쳤으며[10] 병원 앞에서 이재명 지지자들이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 이에 대해 경기도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공무원들이 김영환 치과를 방문한 것은 의료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적법한 절차였으며 이재명 지지자들의 시위와 경기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반박문을 올렸다.

2.3. 보수정당으로

2020년 1월 29일, 새로운보수당 자유한국당 등 보수·중도단체가 모인 통합추진위원회에 합류하였고, 이후 정식으로 미래통합당 소속이 되면서 오랫동안 정들었던 민주당계 정당을 떠나 이제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에서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후 원 지역구이자 오랜 정치적 기반이던 안산을 떠나[11] 고양시 병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받았다.[12]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후보에게 크게 패해 또다시 낙선했다.[13] 당무감사 결과 2020년 12월 당협위원장 직에서 경질되었다. 그 자리는 다시 이동환 당협위원장이 찾아갔다. #[14]

2021년 4월 5일에는 아내와 함께 민주화유공자 자격을 반납하였다. #

2021년 7월 16일 야권 대선 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선 캠프에 직책 없이 합류했다. 김 전 의원은 "정권 교체의 문지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이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고, 그에게 독화살이 날아들고 있다"며 "지금은 윤 전 총장을 지키는 게 개혁이다. 오늘부터 이마빌딩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이후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고 이준석 당 대표와 갈등을 빚었다. 이 때부터 사실상 친윤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결국 윤석열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2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었으나, 다시 입장을 바꿔 3월 29일 충청북도지사 출마를 진지하게 고심 중이라고 하였으며, #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충북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충북지사 선거 출마 선언 후 그동안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경기도를 떠나 고향 충청북도 괴산군으로 낙향하였다.

2022년 4월 21일, 국민의힘 충북도지사 경선에서 46.64%를 득표해 박경국 전 부지사[15], 오제세 전 의원을 누르고 승리하여 국민의힘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그간 경기도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김영환 후보로서는 고향 충청북도에서의 첫 선거 도전이다. 사실 김영환 후보에게 충북은 태어나서 10대 시절을 보낸 곳이라는 점에서만 연고가 있을 뿐이고, 성인이 되고난 뒤에 상경하여 의사/ 정치 경력 모두 경기도 안산시에서 쌓은 출향 인사인지라 사실상 경기도민이나 다름없고, 지역 현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결국 공천을 받았다. 전형적인 귀향(歸鄕) 출마자인 셈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여론조사/충청북도에서 공직선거법상 규정된 여론조사를 확인할 수 있고 선거기간 내내 대체로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와 같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상대로 16%차의 대승을 거두며 충청북도지사에 당선되었다.

2.3.1. 제36대 충청북도지사

당선과 동시에 관사 입주를 하지 않고 자택에서 출퇴근하겠다고 밝혔고, 전임인 이시종 지사 시절에 매입한 아파트 관사를 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지사 관사 없이 괴산군 자택에서 매일 인수위로 출퇴근하다가, 도지사 취임 이후 도청 근처인 청주시 상당구에 사비로 자택을 구해 입주했다.
2.3.1.1. 직무 수행 및 지지율
2022년 7월 1일 취임하였으며, 민선8기 도정목표는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이다.
충북의 바다는 꿈의 바다입니다.

충북에는 바다가 없지만 호수가 있습니다.
항구는 없지만 백두대간이 있고,
배는 없지만 걸어서 세계로 난 만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민선8기 충북도정은 혁신과 창조의 가치로, 촘촘한 섬김과 봉사로, 구석구석 균형발전과 문화복지로 대한민국의 흑진주 충북을 새롭게 하고 충북도민을 신나게 만들겠습니다.

항상 ‘자기를 낮추라’라는 다산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낮은 자세로 도민을 섬기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환 충청북도지사 인사말

취임과 동시에 100만원씩 최대 60개월까지 지급하기로 했던 양육수당 공약을 철회하여 구설에 올랐다.

7월 22일, 도정의 첫 행정부지사로 이우종 행안부 지방세정책관을 임명하였다.

7월 25일, 무예마스터십 관련 예산 및 인력 지원을 중단할 것을 밝혔다. 이 때문에 예술계의 반발이 엄청났다.

7월 29일, 8월 8일부터 1주일간 '차없는 도청' 시범운영을 진행할 것을 밝혔다. 그러나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도청의 주차난에 외부 주차장까지 임대해서 빌려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통근버스를 운영하여 비어있는 도청 주차장에서 문화사업을 하기로 당초 계획을 잡았었으나, 주차장은 용도 변경 이용시 불법소지가 있다. 해당 사업에 대해 반발이 컸고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8월 29일, 경제부지사직에 공모를 거쳐 김명규 기획재정부 과장(부이사관)을 임명하였다. 민선 도정 이후 충북 최초의 40대 부지사이다

12월 16일, 8월에 진행했던 "차 없는 도청"사업의 저조한 통근버스 이용률에 도의회가 칼을뽑아 내년도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였다. 막상 사업을 진행시킨 김영환 도지사부터 통근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 사업의 설득력을 잃었다고 보고있다. #

1월 29일, 현 정부 하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

2024년 8월 19일, 제20대 국회의원 당시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수민 전 의원을 충청북도 정무부지사로 내정하였다. 기존의 정무파트 부지사는 경제부지사였던만큼 정무부지사로 보직을 환원한 뒤 국회의원 출신인사를 부지사로 기용한 것은 재선을 노리는 포석으로 보인다.
2.3.1.1.1. 리얼미터
7월 직무수행평가에서는 11위, 지지율은 49.8%를 기록하였다. 링크

8월 직무수행평가에서는 네 단계 떨어진 순위의 15위, 지지율 역시 2.3%p 가량 떨어졌다. 링크

9월 직무수행평가에서 45.5%를 기록하며 전달보다 2% 떨어지며, 도지사 중에서는 하위권을 기록하였다.

10월 직무수행평가에서는 12위로 세 단계 오른 순위를 기록, 지지율은 3.1%p 올라 48.6%을 기록했다. 링크

11월 직무수행평가에선 한 단계 떨어져 13위, 지지율은 46.8%을 기록했다. 링크

이후 12월에는 1.1% 올라 47.9%를 기록했으며, 2023년 1월에는 5.6%가 더 올라 53.5%를 기록했다. 링크 순위는 10위로 최민호 세종시장과 동률이다.

2023년 2월에는 2.3%가 오른 55.8%였으나 지지율을 보였으나 2023년 3월에는 상기한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라는 발언과 산불 술자리 논란의 악영향인지 7%가 급락한 48.8%로 떨어지게 되었다. #충북 #충청인 #뉴스1

5월부터는 리얼미터에서 10위 미만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지지율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지지율은 알 수 없으나, 지역 언론인 중부매일에서 15위 43.7%라며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김영환보다 순위가 낮은 사람들은 이태원 압사 사고 여파로 지지율이 급락한 서울특별시장 오세훈과 옛날부터 비호감 이미지가 강했고 전임 시장 지우기가 노골적인 대전광역시장 이장우 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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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3학번인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1954년생일 수도 있다. 아니면 조기입학을 했을 수도 있다. [2] 원래 선거구명은 '안산시 갑'이었으나, 2002년에 안산시 일반구 상록구 단원구가 생겼고, 많아진 인구로 인해 상록구와 단원구 모두 갑과 을 2개 씩의 선거구를 제작하였다. [3] 지역구인 상록구가 아닌 단원구에 있다. [4] 이후 전해철은 19대 총선에 이 곳에 재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20대 총선과 21대 총선도 모두 당선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다만 부채액이 많아서 -8.2억인 것이고, 이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을 공시지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신고해서 1억 원 정도로 신고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를 거하게 망해서 수십억대의 부채가 또 추가. [6] 2008년 기준으로 최하위자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 대선자금을 선관위에서 환급받기 이전이어서 -120억 원을 신고했다. 이후 선거비용을 환급받으면서 30억대로 재산이 다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가 1억 438만 원, 2010년에 김영환 전 의원이 -8.2억원, 2011년에 자유선진당 김창수 전 의원이 1억 500만 원을 기록하여 최하위를 기록했다. [7]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기준으로 김영환 부부의 재산은 5억 4천만 원이었다. 다만 이것도 함정이 있는 게 부동산과 예금 등의 자산을 합쳐서 70억원이 나왔고 부채가 무려 65억 원에 달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선거비 보전도 못 받고 낙선한 것과 총선 출마를 위한 일산 아파트 구매 등이 부채 증식의 가장 큰 원인이다. [8] 여담으로, 본인을 꺾고 당선된 김철민은 과거 새천년민주당 시절 본인 소속 지역구 안산 갑( 상록구) 조직에 속해 있었고, 김철민이 지구당 부위원장을 역임했었다.(당시 지구당 위원장은 현역 의원이었던 본인이 당연직으로 맡았다) 그 후 김철민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공천을 못 받으면서 출마가 일찌감치 좌절되었다. [9] 남경필이 보수 정치인임에도 제법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김영환과 정치적 스펙트럼이 겹치던 상황이었다. [10] 병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린 것이 의료법 위반이란 이유였다고 하며, 예고나 전화 연락이 없었다고 하지만, 바이럴 마케팅 문제 때문에 모니터링을 하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 정도 사안으로 경기도 사법경찰이 치과에 들이닥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면 정치 보복으로 볼 여지도 있다. [11] 홍장표 전 의원이 이 동네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어 경선이 필요했는데, 결국 김영환을 비롯한 바른미래 - 새보수계 정치인들을 원래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대거 떠나보냈고, 김영환 본인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12] 황교안 체제의 막장 공천에 힘입어 2018년 이래로 지역구를 맡았던 이동환 당협위원장만 억울하게 출마를 못 하게 되었다. 이 동네 현역 국회의원이던 유은혜 부총리의 평판이 나빴고, 이동환 당협위원장이 도시계획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 점을 공략했더라면 승산이 있었으니 잘못된 공천을 한 셈이다. [13] 여기에다 토론은 전반적으로 유리하게 잘 이끌어 놓고서 정작 일부 토론 내용에서 홍정민 후보를 상대로 나이가 어리다는 되도 않는 네거티브로 꼰대질을 해버린 모양새가 되어버리면서 토론회 이후의 평가가 좋지 못했다. [14] 이후 이동환은 고양시장으로 당선되었고, 김영환은 고향으로 낙향해서 충북지사로 당선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셈이었다. [15] 행정안전부 1차관을 지낸 인물로 2018년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충북지사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