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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락호(U-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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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23 규정 신설. [2] 코로나19로 인해 대회가 2021년 7월 23일로 1년 연기되었다. [16개국] 본선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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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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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임 과정3. 활동
3.1.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3.1.1. 평가전3.1.2. 아시아 지역 예선3.1.3. 본선
3.1.3.1. 16강 조별 리그 1차전 모로코전 1:1 무3.1.3.2. 16강 조별 리그 2차전 파라과이전 0:0 무3.1.3.3. 16강 조별 리그 2차전 스웨덴전 1:1 무
4. 퇴임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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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삼락 감독이 이끈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행적을 정리한 문서.

2. 선임 과정

1989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본선 진출에 실패한 뒤 김삼락 감독은 잠시 감독 일선에서 물러나 중고등학교 축구연맹 부회장을 맡으며 행정직을 봤다. 그러던 1990년 대한축구협회가 야심차게 영입한 데트마어 크라머 총감독과 합을 맞출 감독으로 선임되어 다시 대표팀 일선에 복귀한다.

이 시기 올림픽에 연령 제한이 처음 도입되어 U-23 선수들만이 뛸 수 있던 첫 대회였고, 심지어 와일드카드도 도입되지 않았던 대회였기에 올림픽 연령대 세대들을 이끌고 5년 전 17세 이하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끈 김삼락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에 선임된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실제 김삼락 감독은 당시 불세출의 천재로 불리던 김병수를 17세 이하 대표팀에서부터 중용한 감독이었고, 그가 올림픽 대표팀에 오자 김병수 또한 잦은 부상에도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용되었다.[1]

3. 활동

3.1.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3.1.1. 평가전

1991년 1월, 스페인 테네리페 전지훈련으로 첫 훈련을 가진 김삼락호는 당시 1991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포르투갈 대회에 나서는 U-20 단일팀의 북한 지도자 안세욱 감독, 그리고 본인이 몸담고 있는 학원축구계의 감독들과 선수 차출을 가지고 중재를 하느라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특히 김승안, 강철, 곽경근 등은 청대와 올대를 왔다갔다하며 차출 논란의 중심에 서있던 선수들이었다. 그래도 김삼락호는 스페인 전지훈련 후 첫 실전인 포항제철 아톰즈와의 평가전에서 1-0 승리로 좋은 시작을 했고, 인도네시아와의 두 차례 평가전도 승리로 이끌며 옥석을 가렸다. 4월 캐나다와의 평가전에선 3-0 대승을 거뒀다.

3.1.2. 아시아 지역 예선

이후 잠실에서 열린 5월 올림픽 아시아 1차예선에서 필리핀에 10-0, 방글라데시에 6-0 승리로 좋은 출발을 했지만 태국에게 2-1 진땀승, 심지어 베트남에겐 0-1로 패배당했다.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도 0-0으로 비기며 험난한 원정 2차리그를 예고했다.

이때부터 크라머 총감독과 김삼락 감독간의 불화설이 일기 시작했다. 1991년 6월 열린 기자회견장에 크라머 총감독만이 참석하면서 불화설은 일정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어 파장은 더욱 커졌다. 그래도 이때만 해도 김삼락 감독이 직접 불화설을 해명하는 등 갈등이 더 고조되진 않았다. 6월 말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2차리그에선 다행히 중도에 기권한 베트남을 제외하고 필리핀, 방글라데시, 태국, 말레이시아에게 무실점 전승을 거두면서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크라머 총감독과 김삼락 감독은 선수 지도방식, 선수 선발 등에서 사사건건 잡음을 일으키며 불협화음을 냈고, 결국 크라머 감독은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1992년 1월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3승 1무 1패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김삼락 감독은 체면을 세웠고,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먼저 도발한 일본 벤치를 향해 승리 인터뷰에서 일본은 야구나 해라라며 당시 엄청난 유행어가 되는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노정윤, 서정원 등이 맹활약하며 대표팀 주축으로 자리잡았고, 김병수는 한일전 결승골을 넣으며 영웅이 되었다. 이후 1992년 2월 결국 크라머 감독이 중도에 물러나며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은 김삼락 감독과 김호곤 코치 체제로 치르게 되었다.
당시 경기 하이라이트와 인터뷰 영상

1992년 3월 북미 전지훈련에서 미국에게 1-3, 온두라스에게 2-0, 다시 미국과의 리턴 매치에서 2-1 승리로 2승 1패를 기록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정재권 김도훈. 5월 호주와의 두 차례 국내 평가전에서 두 경기 모두 2-1 승리를 거뒀으나 이 때 이임생이 부상으로 낙마하며 비상이 걸린다. 설상가상으로 5월 18일 열린 조추첨에서 스웨덴, 파라과이, 모로코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들과 묶여 험난한 길을 예고했다.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에선 현지 프로팀 SK 포어베르츠 슈타이어에게 1-0 승리, 오스트리아 올림픽 대표팀에게 3-1 승리를 했으나 당시 체코 2부 리그 팀이던 빅토리아 프라하에게 3-4 패배, 스페인 올대에게 2-3 패배를 당하며 수비진의 공백을 실감했다. 마지막 스페인 하부리그 팀인 스포르팅과의 평가전을 3-0으로 이기며 돌아온 대표팀은 헝가리 바츠 FC와의 2연전 최종 평가전을 1-0, 4-1로 마무리하고 스페인으로 출국해 대회를 준비했다.

3.1.3. 본선

하지만 본선에서 3전 3무로 2% 부족한 성적을 내며 결국 8강 진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1승 상대로 꼽았던 모로코와의 첫 경기에서 압도적인 경기 운영 끝에도 1-1 무승부를 거뒀고, 파라과이와도 0-0으로 비기며 조 최강으로 꼽히는 스웨덴과의 마지막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했다. 스웨덴과의 3차전 서정원이 선제골을 넣으며 8강 진출 목전까지 갔으나 결국 동점골을 허용하고 1-1로 비기면서 아쉽게 조 3위로 탈락했다.
3.1.3.1. 16강 조별 리그 1차전 모로코전 1:1 무
3.1.3.2. 16강 조별 리그 2차전 파라과이전 0:0 무
3.1.3.3. 16강 조별 리그 2차전 스웨덴전 1:1 무

4. 퇴임

결국 김삼락 감독도 이 대회를 끝으로 감독직을 더이상 맡지 않고 있다.

5. 둘러보기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작 김삼락호 비쇼베츠호



[1] 김병수는 당시 이미 정상적인 훈련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였고 1987년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김병수를 지도한 김삼락 감독이 아니었다면 사실 김병수는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될 수 없었다. 국내 대회에서도 그래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병수의 발탁이 크라머와 김삼락이 의견을 일치한 많지 않은 사례인데, 당초 극렬하게 반대한 크라머가 김병수의 첫 훈련 모습을 지켜본 뒤 바로 저 친구는 천재다라는 말을 하며 독일로 데려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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