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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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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 둥우 감독
Suzhou Dongwu FC
파일:김대의 쑤저우.jpg
<colbgcolor=#b21f25><colcolor=#ffffff> 이름 김대의
金大儀|Kim Dae-eui
출생 1974년 5월 30일 ([age(1974-05-30)]세)
경기도 화성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직업 축구 선수 ( 윙어, 풀백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수원영화초등학교 (졸업)
안용중학교 (졸업)
정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93 / 학사)
소속 <colbgcolor=#b21f25><colcolor=#ffffff> 선수 한일은행 축구단 (1997)
제프 유나이티드 (1998)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1999)
성남 일화 천마 (2000~2003)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4~2010)
홈 유나이티드 FC (2011)
감독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 플레잉 코치)
홈 유나이티드 FC (2012 / 코치)
매탄고등학교 (2014~2015)
고려대학교 (2017 / 코치)
수원 FC (2017~2019)
청두 룽청 (2021~2023 / 수석 코치)
쑤저우 둥우 (2024~ )
기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4 / 스카우트)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2017 / 스카우트)
국가대표 9경기 1골 ( 대한민국 U-20 / 1992~1993)
12경기 2골 ( 대한민국 U-23 / 1995)
13경기 3골 ( 대한민국 / 1997~2004)
종교 개신교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코치3.2. 수원 FC 감독
3.2.1. 2017~2018 시즌3.2.2. 2019 시즌
3.3. 청두 룽청 수석 코치3.4. 쑤저우 둥우 감독
4. 대회 기록5. 지도자로서의 평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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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감독. 現 중국 갑급 리그 쑤저우 둥우 감독.

2. 선수 경력

2.1. 학창 시절

화성시에서 태어나 화성 화산초등학교 2학년부터 3학년 육상 대회에 참가할 만큼 뛰어난 속도를 지닌 선수였다. 이후 4학년 수원영화초등학교로 전학가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화성안용중을 거쳐 부천정명고로 진학한 그는 한 살 월반해 1992 AFC 청소년 선수권대회에 차출돼 한국의 준우승을 이끄는 등, 두각을 보이며 여러 성인 팀과 대학 팀의 관심을 받게 된다.

박이천 당시 정명고 감독의 조언에 따라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93학번으로 입학한다. 1학년부터 주전으로 나섰으며, 199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호주에 참가해 조별리그에서 모두 출전하는 등, 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주전으로 나섰다. 또한 1996 애틀란타 올림픽을 준비하는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에 눈에 들어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에 나서는 등, 대학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하지만, 4학년 당시 올림픽 명단에 들지 못할 만큼 피로골절로 몸상태가 좋지 못했던 그는 김대의는 1997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했으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선 이 행동이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판단해 프로 자격정지 3년이라는 중징계를 내린다.

2.2. 클럽 경력

2.2.1. 한일은행 축구단

결국, K리그가 아닌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는 한일은행 축구단에 1년 계약하며 입단했다. 입단과 동시에 3월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맹활약했다. 8월 유니버시아드 준우승을 이끈 그는 차범근호에 뽑히는 등 실업계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했다.

2.2.2.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1997년 말 IMF 크리가 터져 한일은행 축구단이 해체되면서, J리그의 여러 팀들의 관심을 받았다. 결국,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로 이적하며 해외진출에 성공했다. 1997년 도쿄대첩 당시 후반 교체 투입돼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이 계기가 돼 억대 연봉을 받게 된다.

그러나, 4경기밖에 못나오는 등 활약은 그저 그랬다.

2.2.3.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J리그에 잔류할 수 있었지만, 창단 팀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으로 이적하며 실업리그로 복귀했다. 드래프트 거부로 인한 자격정지가 아직 1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대표 출신인 그에게 실업 무대는 좁았고, 팀의 전반기 우승과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등, 다시금 실업 무대를 평정했다.

2.2.4. 성남 일화 천마

2000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돼 27살 나이에 K리그 선수가 된다. 그 팀은 바로, 당시 성남시로 막 연고 이전을 한 성남 일화 천마. 신인 시즌부터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24경기에 나서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차경복 감독이 이끄는 성남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팀은 K-리그 2000 아디다스 코리아컵, 2000 서울은행 FA컵 축구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 준우승 트레블을 기록하는 등,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팀의 K-리그 3연패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는 리그와 리그컵을 모두 포함해 38경기 17골 12도움을 기록하는 등, 팀의 K리그 수퍼컵, K-리그, 2002 아디다스 코리아컵 등 총 3관왕에 기여하며 K리그 MVP에 선정됐다.

그러나, 2003년 이성남이 팀에 합류하며 어려움을 겪었고, 선수 본인도 3골 2도움으로 부진하며 연봉 협상에서 삭감을 제안받았다. 결국, 2003년이 끝나고 FA로 풀리며 수원과 인천의 관심을 받았고, 팀과 재계약 협상에선 이견을 보여 이적이 유력해졌다.

2.2.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4년을 앞둔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료 10억과 계약기간 3년을 맺으며 자신을 대표팀에 데뷔시켰던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수원으로 전격 이적했다. 특히, 수원에서 초등학교를 나올 만큼 수원은 그에게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 등번호는 데니스가 달았던 11번.

수원에 합류한 첫 시즌에 팀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끈다. 이로써 그는 4연속으로 K리그를 제패하는 선수가 되었다.[1]

이후 수원에서 꾸준히 뛰면서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고, 2005년과 2008년에는 부주장으로 선임되는 등 충성도가 높은 선수로 뽑히면서 인기가 올라갔다. 특히 2008시즌 우승 당시 8월 말에 있었던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0-1로 패하기 직전 추가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는데 이 장면은 그 시즌 수원팬들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골을 하면 스파이더맨 가면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아들이 스파이더맨을 좋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2009년부터는 자신이 성남 시절 달았던 19번으로 등번호를 옮기며 11번을 남궁웅에게 물려줬다. 이후 2010년, 플레잉 코치를 맡았다. 여름에 차범근 감독이 팀을 떠나고 윤성효 감독이 팀에 부임한 이후 감독의 플랜에서 아예 제외됐다.

2.2.6. 홈 유나이티드 FC

2011 시즌 시작 전, 2009년까지 수원의 수석 코치였던 이임생의 부름을 받고 싱가폴 홈 유나이티드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은퇴했다.

2.3. 국가대표 경력

도쿄 대첩으로 유명한 1997년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과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뛰었다. 이후 2002년 11월에 치러진 브라질과의 평가전에도 뽑혀 뛴 적이 있다. 참고로 그는 이 때 뽑힌 선수 중 김도훈과 더불어 월드컵 본선에서 뛰지 않았던 단 둘 뿐인 선수였다.

2000년대 초중반 K-리그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이었으나 당시 국가대표팀에는 설기현, 박지성, 차두리, 이천수, 최성국, 등 그보다 어린 유망주거나 뛰어난 윙어들이 많았기에 거의 중용을 받지 못한다. 우성용, 김도훈 등과 더불어 2004년 아시안컵 예선에서 해외파 공격수들의 땜빵용으로 몇 경기 뛴 것이 사실상 유일하게 중용받던 시기이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재임 시절에는 아시안컵 예선, 동아시안컵 등에 선발로 나서게 되며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A매치 데뷔골을 넣기도 했으나, 몰디브 쇼크 이후 대표팀에서 멀어졌고, 조 본프레레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일은 없었다.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2010년부터 수원의 플레잉코치직을 수행했다. 이후 홈 유나이티드에서 은퇴 후 코치직을 1년 간 역임했다.

2013년 서정원호가 출항한 수원에 복귀하여 스카우터직을 맡았다. 이후 2014년 여름, 유스 팀 매탄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인 조현두와 보직을 바꿔 2015년까지 감독직을 맡았다. 2016년부터 다시 스카우터로 재직하고 있었지만, 매탄고 학생의 대학 진학 문제로 구단과 마찰을 빚어 팀을 떠나게 되며, 2017년 시즌 중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코치로 부임한다.

고려대에선 고연전까지 약 두 달간 몸담았다.

3.2. 수원 FC 감독

파일:Screenshot_2018-06-02-22-04-47-1.png
大義(대의)를 위한 대의 OUT

이 짤이 수원 FC에서의 김대의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3.2.1. 2017~2018 시즌

2017년 10월 조덕제 감독의 후임으로 수원 FC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비록 시즌도 거의 다 끝났고 수원 FC의 승격 가능성도 물건너간 뒤라 별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팀의 현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남은 2경기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2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수원 FC 팬들에게 다음 시즌을 기대할 수 있게 하였다.

이후 2018 시즌을 준비하며 이관우, 김성근 등을 영입하며 수원 삼성 출신들로 코치진을 조각했다.

하지만 4월 21일 광주 FC전 충격의 5:0 패를 시작으로 리그 5연패와 6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부진을 이어갔으며, 리그 하위권으로 처지자 6월 2일 아산 무궁화전에서는 팬들이 김대의의 퇴진을 촉구하는 걸게를 내걸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반기에 급반전을 보여주었는데 6월 6일 15R 부천전 1:4 패 이후 16R부터 25R까지 7승 2무 1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세우며 최하위권에서 4위까지 급등했다. 특히 7월 21일 아산전 0:1 패를 마지막으로 8월 모든 경기를 무패로 장식했다.

그러나 이후 26R부터 31R까지 6연패를 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보여주었고 결국 시즌을 7위로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아쉽게 마치게 되었다.

수원 FC 팬들은 내셔널리그부터 오랜 시간 팀을 이끌어왔고 1부리그까지 경험한, 한 마디로 팀의 역사인 조덕제 감독의 후임이 조 감독이 사퇴했을 때와 별다를 게 없는 성적으로 내년에도 팀을 맡는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또한 김 감독은 물론 이관우, 김성근으로 구성된 코치진까지 수원 삼성 출신이라 구단의 색깔이 모호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수원FC 팬들은 "이 팀이 수원 삼성 2군팀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던데, 진짜 그렇게 돼가는 거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3.2.2. 2019 시즌

2019시즌에도 가까스로 유임되었으며, 리그 개막후 2연패를 당하며 불안한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안산 그리너스와의 리그 3라운드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고 상승세였던 대전 시티즌과의 리그 4라운드전을 통해 리그 2연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9라운드 6위에 그치고 있으며 작년보다 나아진 것 없이 여전히 조직력은 찾기 힘들고 개개인능력으로 풀어나가는데 급급하다. 본인이 원하는대로 이적시장을 계속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하나 제대로 보여주는게 없기에 팬들의 불만은 폭발직전까지 갔지만, 5월 5일 서울 이랜드전을 시작으로 5월 25일 대전 시티즌전까지 구단 최초 리그 4연승을 거두면서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19시즌에도 수원 FC가 자랑하던 막강한 공격 축구를 펼쳤는데, 많이 사용한 포메이션은 4-1-2-3로서 플랫4에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격적인 선수들에게 공격적인 역할을 맡겼다.

쓰리톱에 선 선수들은 제각기 다른 장기들을 뽐내게 했는데, 치솜은 중앙과 측면을 모두 휘젔고 다녔고, 김병오는 특유의 강한 피지컬을 이용해 드리블을 즐겼다. 김병오의 경우엔 측면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안병준과 아니에르는 중앙에서 해결사 역할을 했다. 특히 안병준의 경우, 높이를 이용한 공격이 일품이었다.
2선에 위치한 주장 백성동은 위 세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백성동은 중거리슛, 드리블, 패스 등을 자유자재로 해가면서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내고, 공간을 창출했다.
수원FC는 공이 살아있는 상황 뿐 아니라, 세트피스 상황 역시 잘 이용했다. 킥이 좋은 백성동, 키가 큰 조유민과 안병준을 이용해 약속된 플레이를 잘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 전술에 대한 팬들의 평가는 냉정했는데, 치솜, 아니에르, 김병오, 안병준, 백성동 등 화려한 선수진을 보유했음에도, 선수들 간의 호흡을 통해 골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개인능력에 의존해서 골을 만들어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 치솜의 개인능력에 대한 의존이 너무 심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한 탓에 세부 전술없이 선수 개개인능력에만 의존하는 소위 선수빨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실제로 수원FC는 치솜이 뛰지 않은 세 경기에서 단 한점도 득점하지 못하는 등 이러한 한계가 금방 드러났으며, 공격은 강하지만, 수비는 약한 팀의 특성상, 기복이 많았다. 잘 할 때는 정말 잘했고, 못할 때는 정말 못하는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수비 불안을 도무지 제대로 개선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김대의 시절 수원의 수비가 부진한 이유는 지역방어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지역방어에 미흡했기 때문에 상대 공격 시 오프사이드 트랩을 제대로 설치하기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또한 지역방어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클리어링이 어색했다.

흔들리는 수비를 다잡기 위해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하며 다양한 실험을 했지만 디테일이 없는 수비 전술에 선수들에게 혼란만 야기했다.

승부처였던 10월 눈에 띄게 힘이 빠지면서 6경기 3무3패의 부진에 빠졌는데, 특히 이 시기에 부상에서 갓 회복한 송수영, 안병준, 이종원 등의 선수를 R리그 출전 없이 곧바로 실전에 투입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 문제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으며, 충분한 체력훈련 없이 여름철을 맞아 시즌 중후반 부진의 빌미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사는 등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결국 리그 3경기를 남겨두고 승격 마지노선인 4위 안산과 승점이 10점 차이로 벌어지면서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또다시 실패하였다.

결국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2019시즌 종료를 앞두고 경질설이 불거지기도 했고, 경질설 직후 열린 광주 FC와의 34라운드에서 3:0로 완패하면서 순위가 8위로 떨어지는 등 프로화 이후 최악의 성적이 지속되자 분노한 팬들이 김대의 감독의 퇴진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

결국 자진 사퇴 형식으로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3.3. 청두 룽청 수석 코치

파일:ㄷㅇ2022-02-12 203249.png

2021년, 고대 선배이자 수원 삼성 시절 동료인 서정원 감독을 보좌할 수석 코치로 청두 룽청에 합류하게 되었다. #

2022 시즌 막판 서정원 감독이 몸살을 앓자 직접 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2023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했으나, 2023년 8월 개인사로 청두 구단과 결별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3.4. 쑤저우 둥우 감독

2024년 2월 16일, 중국 갑급 리그 쑤저우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난 시즌 갑급리그(2부리그)에서 강등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던 쑤저우는 2024년 7월 기준 16개 팀 중 4위에 올랐으며, 6~7월 사이 치른 리그 7경기에서 5승 1무 1패를 기록해 김대의 감독은 6월 갑급리그 ‘이달의 감독상’을 받았다.

갑급리그는 대부분 팀이 외국인 공격수의 마무리에 의존하는 롱볼 축구를 구사하는데 김대의 감독은 최대한 콤팩트하게 볼을 연결하고 좌우 전환을 많이 하는 축구를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

4. 대회 기록

5. 지도자로서의 평가

수원 FC에서 김대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아무것도 몰랐던 초짜 감독이라는 데 있으며, 과거 선수 시절의 명성으로 지나치게 프로 구단 감독이라는 자리를 일찍 맡은 대표적인 사례다.

애초에 그는 선수 인생을 마무리한 뒤 유소년 선수 지도나 스카우트 몇 년 해 본 것이 전부인 프로팀 감독 경력은 고사하고 지도자로서의 경험조차 부족했기에 그런 그가 프로팀에서 성인 선수들을 이끌어 당장 성적을 뽑아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그러다보니 미숙한 점이 많았고 자신의 철학이나 팀컬러를 구축하지 않고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한 채 무색무취의 팀컬러로 경기에 임하는 무리수를 두었으니 성공하는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다시 서정원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를 하고 중국 2부리그 쑤저우 감독으로 부임한 직후에는 일단 강등권 팀을 상위권에 올려 놓으며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자신의 철학과 역량을 구축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6. 관련 문서



[1] 같이 이적해서 4연속 우승을 같이 한 박남열(7회 우승)도 있지만 박남열은 경기를 뛰지 않고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