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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1:32

금천교(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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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영제교
景福宮 永濟橋
창덕궁 금천교
昌德宮 錦川橋
창경궁 옥천교
昌慶宮 玉川橋
덕수궁 금천교
德壽宮 禁川橋
경희궁 금천교
慶熙宮 禁川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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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왕궁의 금천교.png
<colbgcolor=#bf1400> 조선 왕궁의 금천교. 위쪽 왼편 사진부터 오른쪽으로 경복궁 영제교, 창덕궁 금천교,
아랫쪽 왼편 사진부터 창경궁 옥천교, 덕수궁 금천교, 경희궁 금천교이다.
1. 개요2. 이름3. 목록4. 구조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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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왕궁 다리.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돌다리이다.

금천 풍수지리적인 이유[1] 외부와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물론 실제 궁궐 외부의 경계는 궁문 궁장이지만, 잡귀를 쫓아내고 또 외부인이 에 들어갈 때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의미로 금천을 상징적인 경계로 둔 것이다.

2. 이름

보통 '금천교'로 부르나, 이름이 따로 있는 다리들도 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永濟橋)',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玉川橋)'이다. 다만, 이 다리들도 보통명사인 금천교로 불리기는 했다.

한자 표기도 다양했다. 《 조선왕조실록》와 《 승정원일기》을 보면, '錦川橋', '禁川橋', '金川橋'를 사용했다. 그 중 '錦川橋'는 주로 조선 전기 경복궁과 창덕궁의 금천교를 가리켰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명종 때 까지만 나왔고 《승정원일기》에서는 영조, 정조 시기에 7번 정도 나온 것이 전부이다. '禁川橋' 표기는 광해군 시기부터 보이며 이후 고종 때까지 사용하였다. '金川橋' 표기는 광해군 효종 시기에 잠깐 쓰였으며 자주 사용하는 표기는 아니었다.

3. 목록

경복궁의 경우는 중문 정전 정문 사이에 금천이 있으며, 창경궁의 경우는 중문이 없기 때문에 정문과 정전 정문 사이에 있다.

4. 구조

5. 여담


[1] 궁궐의 앞쪽에 을 흐르게 하여 풍수에서 가장 좋다는 배산임수를 구현하였다. [2] 전통 건축에선 홍예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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