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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흥화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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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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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 경희궁 흥화문 | 경희궁 숭정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호 | |
경희궁 흥화문 慶熙宮 興化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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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서울역사박물관)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
수량 / 면적 | 건물 1棟, 토지 303.1㎡ |
지정연도 | 1974년 1월 15일 |
건축시기 | 광해군 8년 (1616년) |
소유자 (소유단체) |
서울특별시 |
관리자 (관리단체) |
서울역사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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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흥화문 |
[clearfix]
1. 개요
경희궁의 정문이다.2. 역사
1618년( 광해군 10년)에 경덕궁(현재 경희궁)을 창건할 때 지었다. 이후 경희궁에 크고 작은 화재들이 일어났음에도 흥화문은 건재하여 약 300년 간 그 자리를 무사히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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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일제강점기 흥화문 정면[1] |
경희궁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은 원래 궁궐의 동남쪽 모퉁이, 지금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 동향하여 서 있었다. 수선전도에 따르면 종로- 새문안로로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다 1915년 도로공사로 남쪽으로 이전되었으나, 현재 복원된 흥화문은 원래와 달리 남향으로 되었다.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오른쪽에 개양문(開陽門), 서쪽에 숭의문(崇義門), 북쪽에 무덕문(武德門)이 있었다. 조선지도와 흑백사진으로 만나는, 조선시대 흥화문 건립부터 일제강점기 이동, 현재자리로 이건까지 이야기
2026년 이후에는 돈의문 복원사업과 맞물려 본래 위치를 되찾게 될 전망이다.
3. 구조
-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겹처마 우진각지붕이다. 흥화문은 건립 당시에는 다른 궁궐의 정문과 같이 중층으로 세울 것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인경궁(仁慶宮)의 정문이 층문(層門)이어서 단층으로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경덕궁이 애초에 일시적으로 화재나 유행감염병 등을 피할 때 잠깐만 거처할 피우처(避寓處)였기 때문이다.
- 흥화문의 초석과 기둥은 원형이며, 가운데 기둥 열 3칸에는 문짝을 달았다. 문틀 위에는 홍살을 달았고,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다. 천장은 가운데 칸은 연등천장, 좌우 협간은 우물천정으로 되어 있다. 지붕마루에는 취두 · 용두 · 잡상 등이 올려져 있다.
4. 여담
- 현판 글씨는 조선시대 당시부터 쭉 명필로 인정받아, 밤에도 그 글씨가 빛을 발산한다하여 경희궁을 "야주개 [4] 대궐" 이라고도 불렸다. 현판의 글씨는 '이신'이라는 대신이 썼다고 한다. [5]
[1]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 링크에서 사진 다운로드를 할 수 있다.
[2]
서울고등학교의 전신 중 하나이다. 공식적으로 서울고는 경성중학교 시절을 자교의 전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성중학교가 있던 경희궁 자리에 들어선 것은 오늘의 서울고등학교다. 서울고등학교의 교지 등에서 '경희'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
대신 신라호텔에는 흥화문을 복제하여 영빈관(迎賓館)이라고 쓰인 현판을 부착한 새 정문을 세웠다.
[4]
夜照峴-야조현, 밤에도 빛이 비치는 고개
[5]
다만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에서 보이는 현판과는 글자의 간격이나 크기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이에 따라 현재의 현판은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