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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2:29:32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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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그리스어 Α΄ ᾽Επιστολὴ πρὸς Κορινθίους
라틴어 Epistula I ad Corinthios
영어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한자(한국어) 가톨릭: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코린토一書)
개신교: 고린도前書
중국어 간체자: 格林多前书
정체자: 格林多前書
일본어 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一(コリントのしんとへのてがみいち)
기본 정보
저자 사도 바울로
기록 연대 AD 약 56년경
분량 16장
수신자 코린토 교회
바울로 서간 (코르푸스 파울리눔Corpus Pauli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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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간 기록 연대 기록 장소
바울로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0년경 고린토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4/55년 즈음 봄 에페소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55/56년 가을 마케도니아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55년 가을 에페소 또는 마케도니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56년 봄 고린토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60년경 로마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61년경 로마
바울로 학파의 일원 ( 디모테오?)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70년경 소아시아 남서부 (아마도 에페소)
바울로 학파의 일원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80–90년 소아시아 (에페소?)
바울로 학파의 일원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1세기 말 마케도니아 또는 소아시아
바울로 학파의 일원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100년경 에페소
익명 (바울로의 저작으로 오해됨)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80–90년 로마 또는 제국의 동쪽
문헌: 우도 슈넬레,『신약정경개론』(대한기독교서회, 2023), "제2장 바울서신", 41–280; "제5장 제2바울서신", 511–638; "제6장 히브리서", 639–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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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발신인과 기록연대3. 쓰게 된 동기와 목적4. 구조와 내용5. 신학적 중요성6. 주요 내용들
6.1. 상급 심판6.2. 상을 받기 위해 힘쓰라6.3. 사탄에게 넘겨 구원을 받게 함6.4. 13장(사랑장)6.5. 이상한 언어 (방언)6.6. 여자는 교회에서 말을 하지 마라6.7. 죽은 자들을 위하여 받는 세례6.8. 성찬식의 제정 이유6.9. 판단6.10. 부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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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장 13절 ( 공동번역 성서)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0장 31절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53권 중 46번째 권.

신약성경의 한 권으로 신약에서 사도 바울로가 쓴 서신 중 2번째로 배치된 서신이다.

개신교에서는 '고린도전서'라고 부르고, 천주교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또는 '코린토 1서'라고 부른다.

2. 발신인과 기록연대

발신인은 사도 바울로이며, 기록장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였던 에페소인데, 16장 8절에서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이곳 에페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라고 기록 장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16장 19절(곧 아시아의 여러 교회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아퀼라와 브리스카가 자기 집에 모이는 교회와 함께 주님의 이름으로 특별히 문안합니다.)에도 기록장소와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아퀼라와 브리스카가 거주 하던 곳이 에페소라고 사도행전 18:24-26절에 나와있는 것으로 보아 본 서의 기록 장소가 에페소임을 알 수 있다.

기록연대는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다. 다만 바울로가 코린도 교회의 어려움을 당시 코린토 교회의 대표자들을 통하여 듣고 서신을 적은 것을 고려할 때, 기록 연대는 A.D. 55년 전후로 보인다.

3. 쓰게 된 동기와 목적

바울로는 본 서신을 과거와 현재의 교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기 위하여 썼다. 글로에의 집에서 바울로는 당시 고린토 교회에서 발생한 신학적, 실제적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주려 하였고, 이 편지에는 당시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에 보여준 사랑이 나타나 있다.

바울로가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1장 11절과 16장 17절을 통하여 두 가지로 나타난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의 보고를 통하여 제기된 고린토 교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인데 고린도 교회 안의 내분(1-4장),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들(5장), 법정에서 다른 성도들과의 다투는 비그리스도교적 행위(6장) 등을 다루고 있다. 7장 이후에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에 대하여 두 번째 답변이 나오는데, 혼인(7장), 우상의 제물과 관련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문제(8-10장), 예배와 관련 된 행위들에 대한 문제(11-14장), 그리스도의 부활 및 육체의 부활에 대한 문제(15장)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런 동기와 목적으로 바울로는 에페소에서 고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쓰게 되었다.

4. 구조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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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9)
1) 발신자: 바울로 + 소스데네
2) 수신자: 고린토 교회의 교인들
3) 내용: 고린토 교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바울로의 하느님에 대한 감사 및 축복의 말들 (1:1-9)

2. 본론 1부 : 분열에 대한 답변 (1:10-4:21)
3. 본론 2부: 간음과 성도들과의 소송 그리고 성적 부도덕에 대한 답변 (5:1-6:20)
3. 본론 3부: 각종 질문들과 관련된 답변 (7:1-16:24)
3. 결론 (16:5-24)
1) 개인적인 부탁들과 권면들 (16:5-18)
2) 마지막 문안 인사 (16:19-24)

5. 신학적 중요성

본 서는 당시의 이교와 초기 기독교와의 다른 점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차이점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로, 교회 윤리, 교회 질서 확립, 교회와 사회의 교류 및 관계, 예배 관련 예식, 성만찬에 대한 실제적 교훈들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당시 초창기 교회의 형성과 발전, 교리적 내용, 역사적 내용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예식, 은사에 대한 실질적 내용이 나타나 있다.

6. 주요 내용들

6.1. 상급 심판

도대체 아폴로는 무엇이고 바울로는 무엇입니까? 아폴로나 나나 다 같이 여러분을 믿음으로 인도한 일꾼에 불과하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주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나는 씨를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중요할 것이 없고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하십니다.
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은 동등한 사람이고 각기 수고한 만큼 삯을 받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들이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능숙한 건축가가 되어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짓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가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기초 위에다가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어떤 사람은 보석으로, 어떤 사람은 나무로, 어떤 사람은 마른 풀로, 어떤 사람은 짚으로 집을 짓는다고 합시다.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서 각자가 한 일이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그 진가를 가려줄 것입니다.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고린토 1서 3장 5-15절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닦아놓은 신자들은, 나중에 심판대 앞에서 자신이 하느님을 위해 수고한 것들에 대해 검증받게 될 것인데, 하느님을 위해 수고했었던 일 중에 큰 믿음을 발휘하여 쉽지 않은 것에 순종했었던 것에 대해선 그에 대한 상급을 받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하여는 상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믿기만 하고 아무렇게나 살면 상급은 못 받지만 구원은 받는다는 말이 결코 아닌데,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는 고린토 1서 15장 2절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닦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6.2. 상을 받기 위해 힘쓰라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고린토전서 9장 24-25절 (공동번역성서)

바울로는 고린토전서에서 썩어지지 않을 하늘의 상을 바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늘의 상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이기적인 동기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하늘의 상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천국에서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상급을 바라는 신앙생활은 교만하고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사랑 안에 깊이 거하는 거하는 상급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오히려 하느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는 최고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16] 권장할만한 것이다.

6.3. 사탄에게 넘겨 구원을 받게 함

그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어 그 육체를 멸망시키도록 판결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날에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토 1서 5장 5절)

전후 문맥을 보면,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것은 음행한 신자를 교회에서 쫒아낸다는 의미인데, 사탄에게 넘어가도 구원은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에서 쫓아내서라도 그 사람을 회개하게 만들어 그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한다는 말이다.

6.4. 13장(사랑장)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17]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토전서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있고,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유익을 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믿음이 강한 사람과 믿음이 약하거나 없는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과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과 사회적 위치가 낮은 사람 등등의 관계에서는 서로 간에 이질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특히 위화감을 줄 수 있는 측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여 스스로를 낮추며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지 않는 이상, 그 관계는 서로에게 불편함만 주는 관계가 되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추종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개신교에서는 13장의 온전한 것이 오면 성령의 은사들이 없어진다는 내용을 근거로 들어, 지금은 성경이 완성됐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가 없다는 주장이 있으나,[18] 성경이 완성됐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아시듯이 사람들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 오는 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라는 의견이 더 많다.

6.5. 이상한 언어 (방언)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이상한 언어, 즉 방언은 외국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배운 적 없는 외국어로 말할 수 있는 은사이다. 그러나 고린토전서에서 말하는 방언은 이와는 다르다.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고린토전서 14장 2절)

사도행전의 방언은 외국인이 알아들으라고 하는 말이지만, 고린토전서의 방언은 알아듣는 사람이 없고 하느님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성령의 은사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분명히 있는 것인데, 고린토전서의 방언이 외국어라면 알아듣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얻으려고 기도하십시오. 만일 내가 이상한 언어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것은 내 심령뿐이고 내 이성은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고린토전서 14장 13-14절)

또한 고린토전서의 방언은 말하는 본인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방언 통역의 은사를 통해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다.
율법서에 "'내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자들의 혀와 외국인의 입술을 빌려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끝내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언어는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능력의 표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능력의 표입니다. 만일 온 교회가 모여서 저마다 이상한 언어로 말하고 있을 때 보통 교인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온다면 그들은 여러분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고린토 1서 14장 21-23절)

이사야서 28장을 보면 하느님이 부패한 유대교 사제들에게 "사울라사우, 사울라사우! 카울라카우, 카울라카우! 즈에르삼, 즈에르삼!"이라는 언어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말로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울로는 이사야서 28장 11-12절을 인용하며 방언은 부패한 유대교 사제들 같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말한다.[19] 따라서 고린토 1서의 방언은 외국인들이 알아들으라고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을 의미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6.6. 여자는 교회에서 말을 하지 마라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여자가 교회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수치가 됩니다. (고린토 1서 14장 34-35절)

현대 사회에서 가장 언급하기 불편한 성경 구절이다. 오늘날까지 보수파에서 여성목사ㆍ여성사제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근거로 삼는 구절이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3장 28절[20] 등을 볼 때, 기독교가 여성을 하찮게 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디모테오전서 2장 11-14절[21]에도 고린토 1서 14장 34-35절과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두 가지 나온다. 첫번째는 여자가 남자를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에서 하와가 먼저 뱀에게 속아 아담까지 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울로 서신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위계질서를 잘 지킬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는 미개한 것으로 취급되는 노예제의 경우도, 바울로 서신이 쓰여졌을 당시에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에 가까웠기 때문에, 바울로는 노예제를 하느님이 허락하신 제도라고 보고 성도들에게 노예제에 순종할 것을 명령했다. 다만 바울로는 요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무자비하고 비인격적인 노예제를 옹호한 것이 아니고, 오늘날 일반적인 회사의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의 관계 같은, 상전과 종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했다.[22]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는 것이 하느님이 허락한 남녀간의 질서이기 때문에,[23] 바울로가 여자를 하찮게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한 것이고, 이것이 첫번째 근거이다.

바울로는 두 번째 근거로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을 말하고 있는데, 선악과 사건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주장의 관련성을 풀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와가 뱀에게 속은 것 같이, 여자는 남자보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잘 휘둘려 미혹되기 쉽고, 아담이 하와의 말에 넘어간 것 같이, 남자는 매력을 느끼는 이성의 말에 쉽게 넘어가므로, 교회 안의 여자들이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교회 안의 남자들까지 그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애초에 여자는 교회 집회에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로의 이와 같은 주장은 현대 사회에서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크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성경적 근거와 현실적 이유는 있었던 셈이다.

성서비평학계에서는 14장 34절, 35절 자체가 후대에 가필된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일부 서방교회 사본에 이 부분이 현대의 위치가 아닌 14장 끝부분에 있다는 것이 근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현존하는 모든 사본에 고린토서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으며, 바울로 본인이 직접 단 주석일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그리고 필립비서를 보면 바울로는 교회에서 여자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허용한 전력이 있다. 이 구절 하나만으로 바울로가 여성차별주의자였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6.7. 죽은 자들을 위하여 받는 세례

그런데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만일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고린토전서 15장 29절)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등에서 이 구절을 근거로 죽은 이후에도 구원의 기회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기독교 교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24][25] 지옥에 떨어진 이후에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본다. 일반적인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구절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잘못된 신앙관을 가진 자들도 부활을 믿는다며 부활이 실제임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가톨릭에서는 연옥의 간접적인 근거로 해석하기도 한다.

6.8. 성찬식의 제정 이유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린도전서 11:19~29, 개역개정)

이 문맥의 의미는 예수께서 죽기 전에 마지막 만찬을 한 것을 상기시키며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대목.

6.9. 판단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1코린 2,15, 가톨릭 새번역)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1코린 10,15, 가톨릭 새번역)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1코린 4,5, 가톨릭 새번역)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4장 5절, 개역개정)

고린토전서에서 사람들에게 하라고 하는 판단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게 생각하여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신교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역성경에서는 문맥상 감정적인 비난이나 심판 등을 의미하는 것도 판단이라고 번역해놓아서, 개역 성경을 읽다보면 어느 구절에서는 판단을 하라고 하고 어느 구절에서는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하여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다만 원어상으로 고린토전서 4장 5절과 10장 15절은 똑같이 'κρίνω'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4장 5절에서는 'κρίνω'를 하지 말라고 하고 있고 10장 15절은 'κρίνω'를 하라고 하고 있다. 마태오의 복음서 7장 1절은 'κρίνω'를 하지 말라고 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이런 것들은 문맥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에 해당하고,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판단은 기독교 쪽에서 주로 정죄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감정적인 비난을 의미한다.

6.10. 부활 문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3~8(개역개정)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린도전서 15:12(개역개정)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29~31(개역개정)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5:35~38(개역개정)





[1] 예를 들자면, 십일조를 내는 것, 기도로 병이 고쳐질 수도 있다고 믿는 것, 불신자는 전부 지옥에 간다고 믿는 것처럼 상당수의 기독교 신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조차 비신자들에게는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의 광신적인 믿음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천국 불신지옥' 캐치프레이즈가 비신자들로부터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2] 앞으로 해야 할 일과 장차 있을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축의 비유와는 달리, 앞에서 나온 농사의 비유는 전부 과거형으로 서술되어있기 때문에, 이 두 비유는 비슷한 말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3] 앞의 비유에서 말하는 싹이 자라난 상태, 즉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선 상태를 말한다. [4] 큰 믿음을 발휘해 쉽지 않은 것에 순종했던 것을 말한다. [5] 교회에서 내쫓기면,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6] 여기서 바울로는 신앙이 있는 배우자가 가져야 할 원칙을 정해주었는데 절대로 먼저 이혼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후자에서 나온대로 안믿는 배우자 측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 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라고 한 점이다. [7] 바울로는 우상은 사람이 만든 조형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므로 이러한 신앙이 견고히 서있는 사람에게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장애가 안된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이러한 신앙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로 인한 오해를 품거나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지 않기를 권고한 것. [8] 이 당시 시장에서 우상숭배에 쓰였던 고기를 파는 경우가 많았다. [9] 다시 말하면 음식의 출처 여부를 먼저 묻지 말라는 말이다. [10]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된 것을 말한다. [11] 11장 15절에서 긴 머리가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결국 이 부분은 긴 머리를 하지 않은 여자는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2] 가톨릭에선 부적절한 성찬 참여를 모령성체로 해석하기에 영성체 전에 고해성사를 볼 것을 강력히 권면한다. [13] 진실된 믿음으로 예수를 주라고 말하는 것을 말한다. [14] 모든 것을 믿고 바란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항상 의심하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거룩한 열망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15] 성도가 뿌리는 씨는 믿는 자의 육신을 의미하며, 성도가 씨를 뿌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의미한다. [16] 율법학자 한 사람이 와서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마태오의 복음서 12장 28-30절) [17] 모든 것을 믿고 바란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항상 의심하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거룩한 열망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18] 개신교 밖에서는 애초에 이단취급 받는 주장이다. [19] 별 언어적 의미가 없는 방언을 인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방언기도가 마귀가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한 영의 기도라는 의견이 많다. [20]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21]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다음에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22] 남의 종이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의를 다하여 자기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눈가림으로만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기쁘게 섬기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종이든 종이 아니든 각기 주님께로부터 그만한 상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주인 된 사람들도 자기 종들에게 같은 정신으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종들을 협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나 여러분에게 주인이 되시는 분은 하늘에 계시며 또 그분은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대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에페소서 6장 5-9절) [23] "남편 된 사람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를 모질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골로사이서 3장 19절)" 등의 구절들을 볼 때, 성경은 남자가 여자에게 막 대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있지 않다. [24] 또 음란한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먹은 에사오 같은 불경스러운 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시오. 아시다시피 에사오는 그 후에 자기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애원했지만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자기가 저질러놓은 일을 돌이킬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17절) [25]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루가의 복음서 13장 24-2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