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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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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창당 과정
2.1. 잔류파 중심 국민의힘2.2. 이준석 신당 개혁신당
3. 창당 이전
3.1. 2023년 11월 이전3.2. 2023년 11월3.3. 2023년 12월
4. 창당준비위원회 발족 이후
4.1. 2023년 12월4.2. 2024년 1월
5. 창당 이후
5.1. 2024년 1월5.2. 2024년 2월5.3. 2024년 3월5.4. 2024년 4월 총선5.5. 2024년 5월5.6. 2024년 6월5.7. 2024년 7월5.8. 2024년 10월

1. 개요

개혁신당의 행적을 다룬 문서.

2. 창당 과정

2.1. 잔류파 중심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가 탈당하자 탈당하지 않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힘은 비주류가 탈당하기 열흘 정도 남은 시점 김기현 대표가 사퇴하고 비주류가 탈당하기 전날인 12월 26일에 한동훈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 12월 29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 친윤, 범친윤, 구민주계, 친안, 그리고 비윤의 일부인 오세훈계 친홍은 잔류를 선택했다.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한 친유계 김웅은 탈당의 명분이 없음을 이유로 잔류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 공관위가 정식 출범한 후 지역 당협들을 패싱하면서 용산발 내리꽂기식 낙하산 공천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들이 점입가경인 상황이고 특히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서 공동 인재영입위원장인 이철규 前 사무총장이 공관위원에 합류하는 등 총선국면에서 공천과 관련한 각종 요직들을 담당하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이철규 의원이 사실상 최후의 윤핵관이라는 평들이 잦은 상황에서 전국 각지에서 공천과 관련된 파열음이 더해질수록 추가 탈당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또한 어느 세력과 연대하느냐도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비주류계열이 탈당하여 개혁신당으로 결집하면서 비주류의 세가 크게 줄어들어 이른바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주류세력의 세가 강해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명절 직후부터 국민의힘 단수공천 라인업이 속속 공개됨에 따라 상기 우려했었던 소위 노골적인 낙하산공천이 상당히 절제되면서 당내 공천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1차 공개 라인업에 용산출신 인사는 단 한명도 없었으며 3차까지 공개된 와중에도 용산 출신의 텃밭 지역구 단수공천은 하태경 의원이 수도권 출마 선언으로 비워준 해운대 갑 지역구의 주진우 前 법률비서관 뿐이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논란이 불거지자 불출마를 선언했고 위에 언급된 천안 을에 대한 논란의 경우는 경선을 치르도록 결정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또한 김태호, 조해진, 서병수의 낙동강벨트 및 험지 출마 요구에 해당 인사들이 당의 요청을 별다른 잡음 없이 수용하면서 일단락되었고, 공천 심사 컷오프 판정을 받은 김성태의 경우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날선 비판을 펼쳤지만 이내 결과에 승복하면서 당의 승리에 힘을 보태겠다 선언했다. 부산 중구,영도구에 7선 도전을 깜짝 선언했던 김무성 前 의원 또한 "부산 중·영도구에 등록한 후보들을 한 달간 지켜보니 모두 훌륭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되어 이제 제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당의 승리를 위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 "한 달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 오던 중 공관위에서 시스템 공천을 정착시켜 잘 진행이 되고 있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같은 당 내 공천 흐름에 화답하면서 공천 신청을 철회하였다.

한편 민주당은 문재인 前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우리는 '명문정당' 이라는 워딩이 무색하게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향해 "윤석열 정권 창출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친문계 의원들로 촉발된 공천갈등이 발생하자 국민의힘 당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을 넘으면서 크로스를 일으켰다. 물론 정권심판론이 사그라들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한동훈 지도부의 우려했던것 보단 다소 절제된듯 시스템공천이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는 의견들과 한편으론 핵심 텃밭 지역구인 강남3구나 TK는 공천작업을 최후반부로 미루거나 현역의원의 제3지대 유출을 과도하게 의식한 탓에 인재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다만 그 이후 현역인 홍석준,여론조사에서 앞서던 유경준, 이창근 등을 컷오프시키면서 이런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2.2. 이준석 신당 개혁신당

파일:개혁신당 창당대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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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전 대표와 천하람 전 당협위원장 등 국민의힘 탈당파 일부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다. 향후 다른 신당세력과 통합할 가능성이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탈당후에 동시기에 탈당한 이준석계 핵심인 천아인 개혁신당을 창당하였으며 창당 후에는 제3지대[2]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도 시사되고 있다. 2024년 1월 20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였고 24일에는 한국의희망과 합당하였다.

12월 27일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준석 전 대표와 12월 29일 탈당한 천하람, 이기인, 1월 5일 탈당한 허은아 전 의원이 함께했다.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은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80여명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1월 20일, 공식적으로 창당되었다.

1월 31일, 한국의희망과 합당하며 원내정당이 되었다.

2월 9일, 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과 신설합당했다.

하지만 합당 직후부터 일부 논란이 있는 진보진영 인사들을 이낙연 대표 측이 포용하려 들자 이에 이준석 공동대표 측이 반발하면서 내홍이 격화되고 있다. 게다가 친유 출신의 개혁보수 성향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추가 탈당자가 나오기를 기대했으나 민주당이 공천 갈등을 겪는 반면 국민의힘의 공천은 안정화되는 거대 양당의 공천 흐름의 정황상 보수 진영의 현역의원은 단 한명도 없고 현역의원들 4인 모두 민주당 출신들로만 채워지면서 사실상 비명계 인사들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이준석계는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허은아 인재영입위 공동위원장은 "이전엔 전화는 받아주셨는데 이젠 콜백도 없는 상태"라며 하소연했다. 또한, 제3지대 합류 가능성이 점쳐졌던 이언주의 경우는 민주당으로 복당했고, 권은희의 경우는 아직 구체적인 행보 전략을 보류하고 있고 이미 현역의원 신분을 던졌기 때문에 당의 선거 전략상의 변수를 만들 지위를 잃은 상태다. 지지율도 처음에는 8-10% 정도까지 나왔으나, 국민의힘 공천이 안정화된 이후 보수 이탈표가 다시 국힘으로 모이게 되면서 현재는 3-5% 정도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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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당 이전

3.1. 2023년 11월 이전

3.2. 2023년 11월

파일:이준석신당.png 파일:이준석 신당 지지율.png

3.3. 2023년 12월

}}}||

4. 창당준비위원회 발족 이후

4.1. 2023년 12월

4.2. 2024년 1월

파일:개혁신당 현충원.jpg
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는 개혁신당 구성원들

5. 창당 이후

5.1. 2024년 1월

5.2. 2024년 2월

5.2.1. 통합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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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024년 3월

5.4. 2024년 4월 총선

5.5. 2024년 5월


파일:개혁신당 등원.jpg

5.6. 2024년 6월

5.7. 2024년 7월

5.8. 2024년 10월



[1] 윤석열 국민캠프에 참여했던 이력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용산발 공천파동의 안전지대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2] 새로운미래, 미래대연합, 한국의희망, 새로운선택, 반윤 [3] 이준석은 이미 바른정당- 바른미래당을 통해 제3지대 정당의 실패를 겪어봤기 때문에 제3지대 정당 창당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바른정당 시절 예산이 부족하여 자전거로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던지라 결국 미래통합당으로 바른정당 시절 인사들과 함께 합당하는 길을 택했다. [4] 3개월짜리 당대표 발언 등이 나오며 이준석을 내쫓은 주체가 윤석열임이 명백해졌다. [5] 이 때 이준석계인 천하람이 신당설이 좀 일찍 터졌다고 우려한 적이 있어서 탈당, 창당 시나리오는 이미 그리고 있었다고 해석된다. [6] 다만 이쪽은 대선이라 사표방지 심리를 고려해야 한다. [7] 이준석 본인이 노원구 병 출마를 고집하기도 하는지라 지역구 출마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8] 그래서인지 이준석이 신당을 창당하고 나서 대구에 출마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9] 유승민을 대표하는 슬로건이었다. [10] 이는 하태경 최재형의 종로 지역구를 뺏으려들며 피바람이 불고, 자신이 아니면 국힘에서 누구도 당선되지 못한다는 주장에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11] 이준석 지도부 당시에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지도부를 지키려했던 유일한 최고위원이었다. [12] 다만 이 중 허은아는 현역 비례대표 의원인 걸 감안하면 의원직이 상실될 문제이므로 현재로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13] 12월 27일은 이준석이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 발족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지 12주년이 되는 날이다. [14] 바른정당의 가칭이었던 개혁보수신당의 창당 선언일이기도 하다. [15] 어디까지나 신당을 지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향일 뿐, 정당 지지도는 아니다. [16] 주소가 개혁신당.kr에 도메인을 숨기지 않았고, 여의도 재건축 조합 채널 당직자의 실수로 미리 유출되었다. [17] 김준일은 이외에도 한 비명계 인사가 이낙연 신당에 합류하려고 탈당을 준비하였으나 원칙과 상식의 견제로 불발되었다는 의견 역시 덧붙였다. 그정도로 현재 비명계와 이낙연의 주도권 싸움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 이날 이준석 위원장을 포함하여 새로운미래의 이낙연 전 총리, 한국의희망의 양향자 대표, 새로운선택의 금태섭 공동대표까지 총 5개의 제3지대 정당이 모였다. [19] 추가로 이낙연과 미래대연합의 김종민 의원과는 출범식 직전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회동을 가졌다. [20] 일각에서는 합당 가능성이 가장 높은 양향자 대표의 한국의희망의 보조색이 주황색이기 때문에 당색을 주황색으로 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21] 합당 발표일 저녁 이준석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이면 합의가 있으나, 대외 공개는 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22] 다만 이준석 대표가 요구한 것은 별도의 당원자격심사를 거치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미래측에 배복주에 대한 의견입장을 내달라는 것에 가까웠다. [23] 전 울주군의원( #) [24] 화성시 을은 민주당 텃밭 지역으로 첫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가 46.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23.1%로 2배 차이를 보였다. 총선 직전까지 이준석이 이긴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준석은 차이를 좁혀가며 드라마틱한 당선을 이루어냈다. [25] 정치인이 5·18 민주묘지 내 안장된 모든 열사 묘를 참배한 일은 이 날이 최초이다. [26] 한 비석당 2번의 절을 올리는데, 세 인사가 합해 2000배 이상의 절을 올렸다. 여담으로 이준석은 며칠 전 어린이 돕기 3천배 정진법회에 참석해 3시간동안 큰절을 올렸였다. # 이 때문에 몇 번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27] 5·18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주로 5180원 혹은 5만 1800원 등의 후원금이 이어졌다. [28] 참고로 22대 국회 개원하고서 한 달 동안 대표발의한 법안이 없었던 정당은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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