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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3:31

Steel Division: Normandy 44/롬멜의 서커스

Steel Division: Normandy 44
추축국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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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Panzer 'ROMMEL'S ZIRKUS'
병과: 기갑사단
지휘관: {{{#!folding [ 에트가허 포이흐팅거 (펼치기 / 접기) ] 포이흐팅거는 능력있는 포병 장교였지만 기갑사단에 관한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는 나치 고관과의 연줄로 기갑사단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베테랑인 포이흐팅거는 네덜란드, 벨기에, 소련에서 포병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고위 나치 인사들과 친분이 있던 그는 1943년 그 친분 덕분에 재창설된 제21기갑사단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기갑전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는 사단 소속의 베테랑 연대장들에게서 사단 운영에 대한 모든 것을 새로 배웠습니다.
D-Day 당일 해변에 있던 그의 사단만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지만 포이흐팅거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참모들 몰래 파리로 가서 정부와 밤을 보냈던 겁니다!
노르망디로 허겁지겁 달려온 그는 인근 부대와 협조하기를 거부하고 단편적이고 헛된 반격을 벌인 후 포위망에 갇힐 것을 두려워해 자신의 사단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1][2]

}}} ||
덱 용량: 36
A - 정찰단계 B - 전초단계 C - 전투단계
분당 85P 분당 120P 분당 125P

1. 개요2. 운용3. 사단 구성
3.1. 정찰(Recon)3.2. 보병(Infantry)3.3. 전차(Tank)3.4. 지원(Support)3.5. 대전차(Anti-Tank)3.6. 대공(Anti-Air)3.7. 포병(Artillery)3.8. 항공(Air)

1. 개요

1943년 튀니지에서 전멸한 정예부대 제21기갑사단은 프랑스에서 생존자와 동원 부대, 노획한 프랑스 장갑 차량의 개량형을 모아 재창설 되었습니다. D-Day 당시 해변 근처에 있었던 이 부대는 연합국 침공에 즉각적인 반응과 반격 작전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갑사단이었습니다.
땜장이
제21기갑사단은 경기병 부대로, 페이즈 A에서는 프랑스제 구식 기병전차와 소수의 특별 제작 차량을 동원하기에 강합니다.
페이즈 B에서는 힘이 빠지지만, 페이즈 C에서는 소수의 쾨니히스티거를 믿어볼 수 있습니다.

Steel Division: Normandy 44 독일 국방군 제21기갑사단 문서.

본래 제21기갑사단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에르빈 롬멜의 지휘아래 활약한 사단이었지만 1943년 5월 13일 북아프리카 전역이 종결되는 날 포위되어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포위되기 전 유럽으로 겨우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부대원들[3] 을 모아 다시 사단을 재집결한 것이 이 게임의 제21기갑사단. 재건 작업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돌격포대대 지휘관인 알프레드 베커 소령이 있는데, 민간 공학자 출신이었던 그는 전쟁 초기 연합군(주로 프랑스군)이 버리고 간 차량들을 개조해 수많은 차량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닛 중 프랑스제 차량을 개조한 마르더 계열 등의 돌격포나 자주로켓포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4]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의 저자이자 아프리카에서 예하 기갑수색대대를 지휘했던 롬멜의 참모진 중 한명이자 전후까지 살아남아 1997년에 타계한 독일 국방군 출신 전후 생존자이자 전쟁사학자, 기갑수색대 대령 한스 폰 루크가 잠시동안 소속되어 노르망디 전역의 굿우드 작전 등에서 활약하였다.
두번째 캠페인인 대서양 방벽의 주인공 세력이다. 가상 시나리오인 대서양 방벽 캠페인에서는 지휘관인 포이흐팅거가 도망갔음에도 휘하 야전군 사령관들의 지시 아래 신속하게 움직여 연합군의 압도적 화력지원을 뚫고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괴멸시킨다는 대체 역사물의 정점을 보여준다.사실 한스 폰 루크 대령이 다 해먹은 거라고 하더라

2. 운용

A 페이즈가 프랑스제 노획전차들로 구성되어있지만 서포트 차량유닛이 정말 강력하게 편제되어있다. 1,200m의 사거리를 지닌 S307 PaK 2대를 가용할 수 있으며 20mm 기관포를 장착한 SdKfz는 다수가 모이면 엘리트 보병과 경차량까지 쉽게 갈아낼 수 있는 강력한 차량이다. 이 둘을 엮어서 초반 스팸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연합군의 초반 기동스팸 담당이 보통 프랑스라면 추축군은 바로 이 21사단이다.

아니면 A 페이즈에서 한 줌의 기갑척탄병과 PaK 43, 4호 전차 C형, 노획전차로 버티다가, B 페이즈부터 2성짜리 4호 전차 G형, 슈투파(브룸베어) 등을 증원하고 대망의 C 페이즈부터 티거 2를 불러오고, 부르프라멘 40(일명 '워킹 슈투카')를 불러와 쑥을 재배할 수 있다.

기갑전력 페이즈 C에 교도기갑사단처럼 킹타이거가 있는데, 특이하게 초기 물량인 포르셰 터렛을 장비한 P형이라 교도대의 H형보다 전면 방어력이 살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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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단 구성

3.1. 정찰(Recon)

사용 가능 슬롯수: 6

3.2. 보병(Infantry)

사용 가능 슬롯수: 6

3.3. 전차(Tank)

사용 가능 슬롯수: 7

3.4. 지원(Support)

사용 가능 슬롯수: 6

3.5. 대전차(Anti-Tank)

사용 가능 슬롯수: 4

3.6. 대공(Anti-Air)

사용 가능 슬롯수: 4

3.7. 포병(Artillery)

사용 가능 슬롯수: 6

3.8. 항공(Air)

사용 가능 슬롯수: 3

[1] 롬멜의 참모로써 제 21 기갑사단에서 복무한 독일 국방군의 전후 생존자들 중 한 명인 한스 폰 루크(최종계급 대령)의 회고록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의 내용에서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포이흐팅거의 이러한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직무유기한 것에 대해 매우 비판하고 있고 지휘관의 책무를 강조하는 서술이 되어 있다. [2] 실제로도 한스 폰 루크는 포이흐팅거를 자기 과시욕에 빠져 사는 인간의 전형이었고 직무유기를 밥 먹듯 했다며 증언하였다. 즉 겉으로 상관 대우를 했으나, 속으로서는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3] 당시 롬멜의 참모진 중 한명이자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의 저자인 한스 폰 루크도 이 부대원들 중 하나로, 튀니지 전선에서 21 기갑사단 예하 기갑수색대대 지휘관으로 전투를 지휘하던 중에 영국군의 M3 그랜트 중형전차 중심의 기갑부대와의 전투에서 허벅지에 영국군이 사격한 M2 중기관총의 탄을 정통으로 피격당하는 큰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포로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묘사에 따르면 내 오른쪽 다리에 강력한 무언가가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서술되어 있으며 출혈로 인해 잠시 쇼크 상태에 빠진 후 후송되었는데, 군의관의 말로는 우측 대퇴부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났다고 한다. 이후 본토로 후송되어 병원선에서 이탈리아 왕국군측 의료진에게 1차적으로 사막의 환경 덕에 악화되어 썩어가는 상처 부위를 절개하고, 본토에서 집중적인 재활 치료를 받은 이후 겨우겨우 전선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4] 한스 폰 루크의 서술이자 당시의 상황에 따르면 그는 파리 시내의 호치키스 사의 공업사에서 막대한 양의 전투 차량용 차대를 찾아내어 이러한 신무기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하였고,1944년 노르망디에서 롬멜과 자신같은 야전군 사령관들 앞에서 시연하였다고 서술한다. 또한 전차 및 기계화부대 와의 연계를 통한 협동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훈련시켰고, 나중에 이것들은 아군의 주방어 전력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