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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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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1e1f><colcolor=#c3ced8> 발매일 | 1991년 5월 28일 |
녹음 기간 | 1990년 12월 - 1991년 3월 |
장르 | 얼터너티브 록, 얼터너티브 메탈, 사이키델릭 록 |
재생 시간 | 45:45 |
곡 수 | 10곡 |
프로듀서 |
부치 빅 빌리 코건 |
스튜디오 | 스마트 스튜디오 |
레이블 | 케롤라인 레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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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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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타임 탑 1000 앨범
1998년 418위 ||
1998년 418위 ||
Q 매거진 선정 음악사를 바꾼 데뷔 명반 선정자: Niall Doherty |
1991년 5월 28일 발매된 스매싱 펌킨스의 데뷔 앨범.
2. 상세
스매싱 펌킨스는 1988년 10월 5일, 시카고의 메트로 클럽에서 데뷔 공연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시카고 인디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밴드는 인디 레이블 서브 팝 레코드(Sub Pop)와 계약을 채결, 1990년 데뷔 싱글 <I am One>으로 인디씬의 주목을 받고 두번째 싱글 <Tristessa>를 통해 인디씬의 기대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 결과 스매싱 펌킨스는 버진 레코드 산하의 케롤라인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2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받아 1990년 12월부터 1991년 3월까지 프로듀서 부치 빅의 지휘 아래 그들의 데뷔 앨범 Gish를 녹음하기 시작한다. 앨범의 제목은 "밴드의 리더 빌리 코건의 할머니가 살던 깡촌 마을에 탑 여배우 릴리안 기시가 여행 중 잠시 머물러서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라는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으로 당시 포화 상태였던 메탈 씬에 새로운 락 음악을 선사하여 일대 충격을 줄 것이라는 밴드의 포부가 담긴 제목이었다. (빌리 코건의 할머니가 살던 마을이 상당히 시골이라 여배우가 자신들의 마을에 잠시 머물렀던 것이 마을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한다.)
앨범 제작 당시 밴드의 리더 빌리 코건은 그 때 까지 이룩한 스매싱 펌킨스의 음악적 역량을 모조리 쏟아부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고 세션 당시 작업한 수 많은 곡들 중 단 10곡을 뽑아 앨범에 담았다.[1] 특히, 빌리 코건은 앨범의 두번째 싱글로 발매된 Rhinoceros라는 곡을 자신이 지향한 목표점에 가장 근접한 곡으로 꼽았다. 빌리 코건은 스매싱 펌킨스 5집이 발매되었을 때의 인터뷰에서 1집 Gish에 대해 "밴드가 가장 순수했던 시기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앨범이며 가사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하면서 만든 일종의 인스트루멘탈 앨범이었다."라고 설명했다.
Gish 녹음 당시 프로듀서 부치 빅은 당시 떠오르고 있던 신생 프로듀서였고 빌리 코건의 완벽주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치 빅은 앨범 제작 당시를 "빌리 코건은 밴드가 뽑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앨범에 담기를 원했다. 나에게 있어서 빌리 코건과의 작업은 신이 주신 선물과 같았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주로 인디 레이블에서 프로듀싱을 담당하면서 레코드사로부터 적은 비용과 작업 기한을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매싱 펌킨스와의 작업은 달랐다. 레코드사는 우리들에게 풍족한 시간과 비용을 제공해주었고 우리들은 단 한 곡을 녹음할 때도 우리가 원한 기타톤과 드럼 사운드가 녹음될 때 까지 몇 날 며칠을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회고했다.
앨범 녹음 기간 동안 빌리 코건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지향점에 완벽하게 도달하기 위해 밴드 멤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종 자신이 직접 기타 및 베이스 트랙을 재녹음하였고 이는 빌리 코건과 기타리스트 제임스 이하, 베이시스트 다아시 레츠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1991년 5월 28일 발매된 스매싱 펌킨스의 데뷔 앨범 <Gish>는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헤비 메탈,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록 , 드림 팝을 하나로 뒤섞은 얼터사운드를 선보여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당시 평론가들은 스매싱 펌킨스를 비슷한 방법론을 지닌 선배 밴드 제인스 어딕션과 비교했는데 스매싱 펌킨스가 제인스 어딕션과 뚜렷히 구별되는 차이점으로 이들이 가진 "서정성"을 꼽았다.
그러나 Gish는 평론가들의 이런 호평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 록씬을 평정했던 너바나의 Nevermind, 펄 잼의 Ten 등 그런지 밴드들에 밀리며 기대했던 것보다 미진한 판매를 보인다.
한편, 1집 Gish가 발매된 직후 스매싱 펌킨스는 15개월 간 Gish 월드 투어에 나섰고 9월에는 영국 Camden Underworld를 통해 유럽에 데뷔했다. 밴드는 수준급의 라이브를 통하여 나름의 명성을 얻었지만 밴드 멤버들의 상태는 최악에 이르고 있었다. 스매싱 펌킨스의 월드 투어 도중 빌리 코건은 약혼녀인 코트니 러브가 1992년 2월 24일에 혼전임신으로 커트 코베인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우울증에 걸렸고[2] 드러머인 지미 체임벌린은 헤로인을 하기 시작했으며, 연인 사이였던 제임스 이하와 다아시 레츠키는 파경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3. 트랙 리스트
3.1. I am One - 4:07
3.2. Siva - 4:21
3.3. Rhinoceros 6:33
- 빌리 코건이 1집 작업 당시 자신이 지향한 목표점에 가장 근접했던 곡으로 꼽은 곡. 앨범의 두번째 싱글로 발매되었다.
3.4. Bury Me 4:48
3.5. Crush 3:35
3.6. Suffer 5:11
3.7. Snail 5:11
3.8. Tristessa 3:34
3.9. Window Paine 5:52
3.10. Day Dream/I'm Going Crazy 3:16
- 밴드의 홍일점 베이시스트 다아시 레츠키가 보컬을 맡았다. 2분 9초부터 히든 트랙인 I'm Going Crazy가 나온다.
[1]
앨범에 수록되지 못한 일부 곡들은 1994년 발매된 <Pisces Iscariot> 앨범에 수록되어 공개되었다.
[2]
1집 녹음 직전, 빌리 코건은 코트니 러브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둘은 스매싱 펌킨스의 월드 투어와 홀의 전미 투어가 끝나면 결혼하기로 약속할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빌리 코건이 Gish 투어를 돌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자마자 코트니 러브는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과 양다리를 걸치기 시작했고 곧, 자신이 커트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자 빌리 코건과의 결혼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직후 1992년 2월 24일 커트 코베인과 결혼해버렸다. 그래도 코트니의 밴드였던
홀에서 베이스 멤버를 이적시키는 일종의 딜링으로 인연을 이어갔던데다 2010년 홀의 컴백앨범 제작에 참여 하는 등 웬수사이는 청산하고 어느 시점에선 화해한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