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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03:22:27

FC 바이에른 뮌헨/201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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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시즌
2009-10 시즌 2010-11시즌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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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2010-11 시즌
회장 울리 회네스 (Uli Hoeneß)
감독 루이 판할 (Louis van Gaal)[1]
안드리스 욘커 (감독 대행)
주장 필립 람 (Philipp Lahm)
부주장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결과
파일:분데스리가 로고.svg
3위
34전 19승 8무 7패 81득점 40실점
2011-12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
파일:DFB-포칼 앰블럼.svg 4강 탈락
(5전 4승 1패 15득점 6실점)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16강 탈락
(8전 6전 2패 19득점 9실점)
파일:DFL-슈퍼컵 로고.svg 우승
(1전 1승 0무 2득점)
최다 득점자[A] 마리오 고메즈 41골
1. 개요2. 당시 스쿼드3. 이적시장
3.1. 영입3.2. 방출
4. 전반기5. 후반기
5.1. 바이에른 수뇌부의 암투
6. 판 할 경질 후

1. 개요

분데스리가 클럽 FC 바이에른 뮌헨의 2010-11시즌에 관한 정보를 다루는 문서이다.

지난 시즌 젊은 선수들과 낙동강 오리알 신세의 노장들을 적절히 기용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루이 판 할의 두 번째 시즌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공격진의 파괴력은 여전하지만 수비진은 갈수록 가관이었고, 결국 이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관으로 끝마쳤다.

판 할은 차기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 티켓도 못 얻을 위기에 처하자 경질되었고, 수석코치 안드리스 욘커가 감독대행으로 부임해 남은 경기에서 4승 1무를 거두며 다행히 챔스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해 2006-07 시즌의 재판이 될 뻔한 건 면했다.

2. 당시 스쿼드

FC 바이에른 뮌헨 2010-11 시즌 스쿼드
번호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비고
1 한스-외르그 부트 Hans-Jörg Butt GK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3월 28일
2 브레누 Breno DF 파일:브라질 국기.svg 1989년 10월 13일
4 에드손 브라프하이트 Edson Braafheid D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1983년 4월 8일 [3]
5 다니엘 판 바위턴 Daniel Van Buyten DF 파일:벨기에 국기.svg 1978년 2월 7일
6 마르틴 데미첼리스 Martín Demichelis DF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80년 12월 20일 [4]
7 프랑크 리베리 Franck Ribéry MF 파일:프랑스 국기.svg 1983년 4월 7일
8 하밋 알틴톱 Hamit Altintop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1982년 12월 8일
10 아르연 로번 Arjen Robben M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1984년 1월 23일
11 이비차 올리치 Ivica Olić MF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1979년 9월 14일
16 안드레아스 오틀 Andreas Ottl MF 파일:독일 국기.svg 1985년 3월 1일
17 마르크 판 봄멜 Mark Van Bommel D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1977년 4월 22일 전 주장[5]
21 필립 람 Philipp Lahm DF 파일:독일 국기.svg 1983년 11월 11일 주장[6]
23 다니옐 프라니치 Danijel Pranjić MF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1982년 12월 2일
25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FW 파일:독일 국기.svg 1989년 9월 13일
26 디에고 콘텐토 Diego Contento DF 파일:독일 국기.svg 1990년 5월 1일
27 데이비드 알라바 David Alaba DF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1992년 6월 24일 [7]
28 홀거 바트슈투버 Holger Badstuber DF 파일:독일 국기.svg 1989년 3월 13일
30 루이스 구스타부 Luiz Gustavo MF 파일:브라질 국기.svg 1987년 7월 23일 [8]
31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MF 파일:독일 국기.svg 1984년 8월 1일 부주장
32 루벤 자텔마이어 Rouven Sattelmaier GK 파일:독일 국기.svg 1987년 8월 7일
33 마리오 고메즈 Mario Gómez FW 파일:독일 국기.svg 1985년 7월 10일
35 토마스 크라프트 Thomas Kraft GK 파일:독일 국기.svg 1988년 7월 22일
39 토니 크로스 Toni Kroos MF 파일:독일 국기.svg 1990년 1월 4일
44 아나톨리 티모슈크 Anatoliy Tymoshchuk MF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1979년 3월 30일

3. 이적시장

3.1. 영입


임대 보내놓은 선수들이 대거 복귀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변동이 없었다. 그나마 레버쿠젠에서 유프 하인케스 감독 하에서 급성장한 토니 크로스를 복귀시킨 것이 큰 변화. 어린 선수 성장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는 판 할은 이 시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마르크 판 보멀, 아나톨리 티모슈크, 토마스 뮐러, 안드레아스 오틀 사이에서 어떻게든 크로스에게 기회를 줬고, 판 보멀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AC 밀란과 단기계약을 맻고 겨울에 떠나게 된다.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을 거치며 희망이 없다고 판명난 렌징은 결국 쫓겨나듯 쾰른으로 이적했고, 3순위 골키퍼로 루벤 자텔마이어를 영입했다. 그 외에도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출전을 위해 출전 기회를 찾아 셀틱으로 임대를 갔던 브라프하이트가 복귀했으나 프리시즌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PK를 실축하며 여전히 좋지 않은 인상을 보이더니 전반기 거의 한 경기도 제대로 출전 못했고, 겨울에 호펜하임으로 떠났다.

그나마 루이스 구스타보를 호펜하임에서 사온 것이 유일한 좋은 영입이었다. 이 브라질 미드필더는 지금이야 분데스리가에서 잔뼈가 굵은데다 2012-13 시즌 트레블의 중요한 일원이었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는데, 호펜하임의 뜬금없는 상승세를 이끌던 하드워커였고, 구스타보의 이적을 결사반대하던 랄프 랑닉은 호펜하임 수뇌부에게 실망하여 사임, 마가트가 경질된 FC 샬케 04의 감독이 되어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을 이끌기도 하였다.

3.2. 방출


2000년대 중반기 스쿼드를 차지했던 선수들이 판 할 감독 부임 후 2년에 걸쳐 대거 물갈이되었는데, 이 시즌에 절정에 달했다.

가장 먼저, 감독과 불화로 말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루카 토니는 로마에서 임대 복귀하자마자 제노아로 방출되었다.[9] 그렇게 영광의 세월을 뒤로 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다. 성장이 정체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렐은 방출되듯 헤르타 베를린으로 떠났고, 올리버 칸의 후계자일 줄 알았으나 희대의 기름손이었던 미하엘 렌징도 드디어 물갈이되었다. 그 외에도 고향팀으로 임대 다녀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호세 소사, 이 선수가 매년 스쿼드에는 있지만 팬들 입장에선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는 선수인지조차 모르겠던, 바이에른 1군과 2군을 오가던 안드레아스 괴를리츠, 브레누에게조차 밀린 마르틴 데미첼리스, 또한 주장인 마르크 판 보멀 역시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AC 밀란으로 떠났다.

문제는 아무리 기량 떨어지거나 잘 안 쓰는 선수라 할지라도 스쿼드에 센터백이 없는데, 그 없는 센터백 재고에도 불구하고 주 포지션이 센터백인 데미첼리스를 그냥 팔아버리고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사온 게 센터백도 아니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구스타보였다. 전반기부터 땜빵 센터백을 보던 티모슈크가 후반기엔 아예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잡았지만 2월 말부터 수비불안 문제가 제대로 터져버리면서 더더욱 아스트랄한 수비진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4. 전반기

월드컵 후유증이라고 실드쳐주기엔 너무나도 처참한 전반기
7라운드까지 성적 : 2승 2무 3패

뮌헨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나 다른 국대로 뽑혀가는 선수가 워낙 많다보니 2년 주기로 메이저 대회만 있으면 그 다음 시즌 초반기에 똥을 싸던 건 이젠 연례행사였다. 2006 독일 월드컵 3위하고 마가트의 2006-07 시즌, 2008 유로 준우승하고 클린스만의 2008-09 시즌,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하고 챔스에서 대참사를 겪은 2002-03 시즌 등.

이번 시즌도 그 흑역사가 반복되었다. 아르연 로번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참고 월드컵 결승전까지 모두 소화했고, 결국 전반기를 통으로 쉬었다.[10][11] 토마스 뮐러가 그나마 꾸역꾸역 공격포인트를 쌓으며 분전했으나 나머지는... 지난 시즌 부진했던 마리오 고메즈 대신에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시즌 초반에 주로 기회가 부여되었으나 문제는 클로제가 심각한 득점력 난조를 보이며 기대를 이어가지 못했고, 공격에 방점을 찍지 못했다.

개막전 볼프스부르크에 극적인 승리 이후 곧바로 승격팀이었던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 2:0 완패를 당했고 안방에서 무기력하게 브레멘과 쾰른에 0-0으로 비겼다. 거기에 지난 시즌에도 수난을 겪은 마인츠에게도 이번에는 안방에서 또 발렸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도 패하며 7라운드 기준 2승2무3패로 리그 순위가 9위까지 떨어지며 사태는 더더욱 심각해졌다. 챔스에서는 그나마 선전하는 것 같았으나 그건 1차전 AS 로마전 뿐이었지 FC 바젤 원정은 경기력도 별로였는데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PK골에 결승골까지 꾸역꾸역 넣어서 승리한 것이었고, 클루이전은 상대 자책골 덕을 너무 많이 봤다. 포칼 16강 SV 베르더 브레멘전 승리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인생 중거리골을 쑤셔넣었기에 망정이지 경기력은 발렸고, 애매한 취소골에 골대 덕까지 보는 등 그야말로 천운으로 이겼다.

그나마 10월부터 상황이 호전되어 하노버 96과의 홈경기에서 마리오 고메즈가 해트트릭을 한 것을 기점으로 고메즈가 각성하여 골을 마구마구 삽입하기 시작했고, 클루이 원정에서도 슈바인슈타이거-고메즈의 환상 듀오로 4:0 승리, 리그 원정에서는 계속 무재배를 거듭했으나 홈에서만큼은 3~4골씩 퍼부으며 순위를 회복해갔으나 FC 샬케 04 원정에서 이날 인생경기를 찍은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쇼에 막힌데다 라울과 회베데스의 골에 2:0으로 패하며 상승세가 꺾이고 말았고, 챔스 5차전 AS 로마전에서는 2:0으로 앞서다 3:2로 역전당하는 웃픈 경기까지 보이고 말았다. 그래도 슈투트가르트와 2010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리그 17라운드-포칼 8강 원정 2경기에서 5:3, 6:3 완승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둔 채로 윈터브레이크에 돌입했다.

5. 후반기

로번이 돌아오니 리베리가 눕고.. 리베리 돌아오면 로번이 눕고..
내부에서의 분열, 순위 경쟁 중인 팀들에게 연이은 패배
굿바이, 판 할

챔스 16강 상대가 지난 시즌 결승에서 패했던 인테르로 결정되었고, 뮌헨 팬들은 복수의 기회라며 전의에 불탔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원정 1차전에서 크라프트의 선방쇼와 경기 막바지에 터진 마리오 고메즈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순항할 것으로 보였던 팀은 2월 말부터 나락으로 추락한다. 쾰른 원정에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더니 선두를 달리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전반기 패배에 이어 홈에서 또 1:3의 완패를 당했고, 하노버 원정에서 또 1:3 패배를 했다. 그 사이에 DFB-포칼 4강 경기를 치렀는데, 전반기 리그 경기에서 패했던 샬케에게 이번에도 비슷한 래퍼토리로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쇼와 라울 곤살레스의 출혈 투혼을 불사한 결승골에 0:1으로 패했다.

이 3연패로 팀 분위기는 나락으로 추락했으며, 보드진은 이번 시즌 종료 후 판 할과 계약이 종료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함부르크전 6:0 대승으로 분위기 반전에 나서나 했는데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인테르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홈 2차전에서 2:1로 앞서다가 후반전에 베슬리 스네이더르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경기 막바지에 고란 판데프에게 결승골을 내주면서 말도 안되는 2:3 대역전패를 했고,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탈락했다. 전반전에만 4:1, 5:1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였지만 온갖 불운이 겹치며 추가골에 실패했고, 인테르의 베테랑들은 한 번씩 찾아온 찬스를 놓치지 않고 극적인 동점골과 역전골로 넣었다. 이 패배는 AFC 아약스 이후 최초로 원정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홈 2차전에서 패해 떨어진 사례로 기록되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챔스마저 패하자 팬들은 "이 시즌은 포기다" 분위기로 돌아갔다. 남은 목표는 이제 다음 시즌 챔스권 뿐. 이 당시만 하더라도 분데스리가 UEFA 리그순위가 세리에 A에 뒤져 4위였기에 3위까지만 챔스에 나갈 수 있었고, 뮌헨은 계속 4위 자리에서 3위권 싸움을 힘겹게 하고 있었다. 챔스에서의 불행한 패배 이후 프라이부르크 원정 승리,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전에서도 로베리 합작골로 1:0으로 이겨 승점을 쌓나 했으나 더비 라이벌인 중위권 1.FC 뉘른베르크에게 무승부를 거두자 보드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당장 판 할의 모가지를 치기로 결정했다. 결국 다음 날인 4월 10일자로 경질되었다.

5.1. 바이에른 수뇌부의 암투

이 당시 수뇌부는 마누엘 노이어의 영입 문제를 두고 갈려있었다. 노이어파는 독일 최고의 골키퍼 노이어를 영입해야한다는 파였다. 비록 노이어가 2008-09 시즌 선두 경쟁 당시 찬물을 끼얹은 패배를 안기고, 여기에 올리버 칸 세레머니를 흉내내며 뮌헨 팬들의 속을 뒤집어놓으며 크게 자극을 한 전력이 있다지만 프로 세계에서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해야 하며, 또한 뮌헨의 전통에 따르면 뮌헨의 골문에는 항상 독일 최고의 골키퍼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이어를 뮌헨이 영입하지 않으면 결국 맨유에게 빼앗길 판이었다. 워낙 올리버 칸 은퇴 이후 골키퍼 수난사가 길었기에 노이어를 영입하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그러나 반 노이어파들은 울트라 팬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노이어 영입에 강성 반대론을 펼쳤으며, 유스 출신 토마스 크라프트를 지지했다. 울트라 팬들은 샬케 울트라스에 가입한 전력이 있는 노이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DFB-포칼 4강에서는 노이어가 지키는 골문 뒤로 대놓고 KOAN NEUER (노이어 반대) 종이를 수 천명이 들고 시위를 했다. 2008-09 시즌 올리버 칸 세레머니 사건 역시 울트라스들에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판 할은 이 수뇌부 암투에서 반 노이어파에 동조했고, 결국 한스-외르그 부트를 후보로 밀어내고 토마스 크라프트를 주전으로 썼다. 아무리 부트가 지난 시즌에 비해 기량이 떨어졌다지만 부트의 탓으로 몰기에는 그냥 수비진이 구멍이었고,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크라프트는 주전 승격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후반기에는 알레마니아 아헨을 상대로 믿을 수 없는 반사신경으로 상대 헤딩슛을 막는 장면이라던가[12], 인테르 원정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1:0 승리를 지켰기에 노이어 반대 운동은 더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노이어는 챔스 4강에 포칼 결승까지 가면서 선방쇼로 승승장구하는 마당에 2월 말부터 크라프트는 기복이 심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하노버 96전 1:3 패배 당시 치명적인 실책을 범했고, 인테르과의 16강 2차전 패배 당시에는 단 하나의 유효슈팅도 막지 못하며 3골을 허용하면서 팀의 탈락에 일조하고 말았다. 결국 수뇌부 암투는 급격하에 노이어파의 우세로 흘러갔고, 성적 부진과 맞물려 반 할의 모가지를 자를 명분은 충분했고, 반 할이 경질되지마자 안드리스 욘커 감독대행은 한스외르그 부트를 다시 주전으로 승격시켰다. 부트는 자신이 왜 원래 주전이었어야 하는지를 증명하듯 좋은 활약으로 시즌을 마쳤고, 결국 마누엘 노이어의 뮌헨행은 확정되었고, 크라프트는 권력 암투의 희생양으로 쫓겨나듯 헤르타 BSC로 이적해야 했다.

6. 판 할 경질 후

안드리스 욘커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부임한 후 빠르게 수습한 팀은 잔여경기에서 4승 1무를 기록했다. 특히 위에 서술되었듯 권력 암투의 희생양이었던 한스-외르그 부트가 복귀하여 펄펄 날았고, 특히 돌아오자마자 챔스권 경쟁 중이던 레버쿠젠을 그야말로 두들겨 패버리듯 5:1로 꺾으며 팬들의 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는 무재배를 거뒀으나 다음 라운드 샬케 04전에서는 포칼의 복수로 4:1 승리를 거뒀으며, 장크트파울리 원정에서 상대를 가지고 놀듯 8:1 대승을 거뒀고, 여기서 고메즈가 다시 한 번 해트트릭을 쏘며 득점왕을 거의 확정했다.

마지막 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전은 오랜만에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기회가 부여되었으나 결정적인 기회를 하늘로 날리고 말았고(...) 오카자키 신지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던 뮌헨은 고메즈가 동점골을 넣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헤더로 결승골을 넣으며 결국 자력으로 3위를 확정, 차기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1] 2011년 4월 10일 성적부진으로 경질 [A] 프리시즌 기록은 합산하지 않음. [3] 겨울 이적시장에서 TSG 1899 호펜하임으로 이적 [4] 겨울 이적시장에서 말라가 CF로 이적 [5] 겨울 이적시장에서 AC 밀란으로 이적 [6] 겨울 이적시장에서 반 봄멜의 이적으로 새 주장으로 선임 [7] 겨울 이적시장에서 TSG 1899 호펜하임으로 6개월간 임대 [8] 겨울 이적시장에서 TSG 1899 호펜하임으로부터 합류 [9] 정확히는 임대 복귀를 앞두고 계약 파기 상태에서 자유계약 신분으로 제노아 이적. [10] 네덜란드 국대가 로번의 몸상태를 알고도 무리하게 출전시키자 뮌헨 보드진은 분노했고, 결국 2011-12 시즌 종료 후 친선전을 열어 수익을 모두 뮌헨에게 전달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11] 문제는 이 친선전 직전에 아르연 로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리그 우승 다툼 경기와 첼시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PK 실축으로 역적이 된 상태에서 치러진 것이였고, 로번을 위한 경기에서 로번에게 야유가 나오는 슬픈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경기는 뮌헨이 3:2 승리. [12] 게다가 뮌헨이 아헨에게 하부 리그 팀임에도 불구하고 포칼에서 워낙 고초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아헨전에서 선방이 나왔다는 것은 울트라스의 지지를 더 한몸에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