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삶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칠면조는 믿음의 수정을 강요받는다. 칠면조는 어제까지의 사건들에서 내일 있을 사건을
알아낼 수 있는가?[1] 아마도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아무튼 그것은 칠면조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적다. 그리고 이 '적은' 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Black Swan Theory. 번역에 따라 '검은 백조 이론'으로 칭하기도 한다. 이론의 핵심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면 큰 후폭풍이 생기며, 사후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필연'이었다는 과장이 일어난다는 내용이다.
사람은 기본 심리로 불확실했던 사건이 생기면 사후 원인 분석을 통해 끼워 맞추기식으로 확실한 전조가 있었음을 믿는다. 흑조 이론은 나아가 특정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사후 분석을 통해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고 이를 예측할 수도 있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2. 탈레브의 주장
레바논 출신의 경영학자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가 맨 처음에 제시한 단어이나, 사실 엄밀히 말해서 그 개념 자체는 엄청나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이 이론을 설명하는 탈레브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 미지의 영역[2]에 경제 기폭이 존재한다.
- 그 기폭은 한번 터지면 엄청난 후폭풍을 감수해야 하며, 대개 기존의 체제나 기업 등의 단체가 붕괴되며 질서가 재편되는 사건은 이러한 예측하지 못한 변동에 의해 야기된다.
- 그러면서도 후폭풍이 끝나고 나면 그 원인을 미리 명확하게 알 수가 있었다고 사후적으로 강변하지만, 다음 번의 또다른 블랙스완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또한 나심 탈레브는 '사람은 관념보다 이야기가 더 뇌리에 남는 법'이라며 이야기로도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다.
맨 처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흑조가 발견될 때 사람들은 백조만 알았지 흑조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일단 발견되고 나니 생물학계는 물론이고 전 유럽이 충격에 휩싸였죠. 그러나 과학적 연구를 통해 왜 흑조가 존재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이전까지 사람들은 백조는 하얀색만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막상 흑조가 발견되자 큰 패닉에 휩싸였고, 흑조가 발견되고 나서 다시 연구를 제대로 해보니 과학적으로 흑조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게 명확했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전'이나 '사건 발생 후'나 과학적 이론은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에 흑조가 발견되기 전에도 잘 생각해보면 흑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백조는 모두 하얗다'는 명제에 아무도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심은 본인의 저서 블랙 스완에서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쳤는데, 바로 현대의 경제학의 대부분이 이렇듯 협잡꾼의 개수작이라는 것. 경제학자들은 사후 분석에만 의존하는 ' 뒷북쟁이'들이며, 사전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도 복잡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플라톤주의적인 이상적인 세계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헛똑똑이라고 칭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는 현실이 개탄스럽고, 정규분포곡선을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사용한 결과 수많은 해악을 낳았다고 나심은 주장했다.
3. 사례
주식시장은 매일 수많은 흑조 이론의 실례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현장 중 하나이다. 주식이 일단 오르거나 내리고 나면 왜 올랐는지 혹은 왜 내렸는지 이유를 찾는 것은 쉽다. 이를 토대로 조금만 빠르게 행동했으면 크게 이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주식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다양한 요인들이 있게 마련이며, 카오스 이론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주식이기 때문에 아예 뚜렷한 이유없이 상승이나 하락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 뉴턴도 분석에 실패한 것이 바로 주식이다. 따라서 특정 요인이 발생하면 실제 주가변동이 실현된 경우도 있지만 비슷한 요인이 발생해도 실현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듯 주식시장은 사후 분석은 쉽지만 사전 예측은 어렵다는 대표적인 분야라고 볼 수 있다.비슷하게 미국발 금융위기 때 큰 주목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금융대란의 현실을 너무나도 잘 꼬집었기 때문이었다. 미국발 대침체를 위의 이론에 대입해보면,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그런데 앨런 그린스펀 시절에는 금융규제 완화가 불러 일으킬 이러한 무시무시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 일단 서브프라임이 터지고 난 후 안전하다던 파생상품들이 모조리 무너졌다. 그때 무너진 파생상품의 가치를 달러로 환산하면 1조 달러가 넘는다.[3]
- 막상 터지고나니 '안전'하다던 파생 상품들은 엄청난 위험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기초적인 경제학 지식으로도 이런 상황이 왜 닥쳐왔는지 너무나 명확한 분석이 가능했다. 하지만 터지기 전까지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이를 위험하니 상품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비우량자)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사태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퍼주다가 발생한 사건이다. 현실 금융과 경제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가 없더라도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대출을 퍼주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오히려 앞서 말한 식으로 현재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위험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 구닥다리 뒷방 늙은이로 낙인이 찍혔으며 눈부시게 발전한 금융 공학의 산물[4]이나 조용히 받아먹으라는 핀잔을 듣기 일수였다. 이게 뭐 은행, 증권사들의 비밀리에 이루어져 온 극비 프로젝트도 아니고 당대 미국은 지나가는 동네 개도 알만큼 주택담보대출이 열풍이었다. 사건 전까지는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는데 터지고 나니까 정말 당연히 문제가 있는 현상이었다는게 알려진 것. 대표적인 흑조 이론의 사례다.
이 이론으로 탈레브는 서브프라임 이후, 세계 경제학자들에게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는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사전 예측'이 어려운 분야에서 '사후 분석'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학계의 무의미함을 꼬집은 것. CNN이나 BBC 경제학 부분 인터뷰에서도 종종 등장, 더블딥의 위험요소를 설명할 때 위의 흑조 이야기를 종종 꺼내는 모습도 보였다.
경제학 이론에서 나온 용어지만 의외로 역사학적으로 이런 이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 부정적인 후폭풍을 몰고온 인물이 있었고, 그 사람이 본격적으로 행동을 보이기 전에 여러 전조들이 있었는데 왜 그를 후계자로 임명했거나 권력을 주었냐는 식의 비판이 대부분 이런 식. 대부분 흑조 이론에 따라 전형적인 '사후 분석'을 통한 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떠한 역사적 인물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정의내릴 수 있는 요인은 매우 많다. 성격, 업적, 주변 인물, 능력, 가족관계, 국가 상황 등 무수한 요소들이 하나의 '인물'을 정의한다. 만약 그 인물이 통치를 엉망으로 하거나 모반을 일으켰다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사후 분석을 내리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어떠한 행동이 일어났을 때 그 결말과 관계된 요소들만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폭군이나 암군, 또는 역적으로 역사에 남았으니 그 인물이 왜 그런 군주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또는 반란을 일으켰는지 설명하는 요소들이 주목되어 보이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떠오르지 않는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런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 그 사람을 후계자로 임명했거나 요직에 앉혔는지 의아해하곤 하지만 역사에는 동일한 배경을 가지고도 성군이 되거나 충신으로 남은 인물들도 많다. 반대로 그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던 요인'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4. 기타
사회적으로 경험이 축적되고, 시스템이 대응 방식을 개선한다면 이러한 사건이 더 이상 완전히 예기치 못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처음에는 블랙 스완으로 보였던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며 그 위험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블랙 스완이라는 개념은 주관적임에도 더욱 희미해진다. 위의 서브 프라임 사태도 마찬가지다. 서브 프라임 이전에, 경제 대공황(1929년)을 겪었고 언제든 "예기치 못하게 경제가 망할 수 있다" 리스크를 가지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경험하다보니 아이러니하게 예기치 못한걸 예상한 것이다.또 블랙 스완 사건은 주로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인식되는 점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블랙 스완으로 규정하고, 그 전에 어떤 징후가 있었는지 논의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흑조 이론에 꼬집은 내용 '아무도 몰랐다가 사건이 일어나고 후논의'를 흑조 이론 자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론의 실질적 예측 능력을 약화시킨다.
블랙 스완 이론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지나치게 불확실성에만 초점을 맞추니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 공염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 대공황과 서브 프라임 사건의 시간 간격은 인간의 시간으론 긴 편이다. 모든 위험을 블랙 스완으로 간주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 혁신이나 발전에 대해 위험 감수를 지나치게 억제할 위험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게 된다.
5. 관련 용어
- 그레이 스완 (Grey Swan) - 발생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고 일반인들도 언젠가는 발생할 것을 알지만 일상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거의 무시하고 방심하고 살다가 갑자기 발생해서 큰 결과를 초래하는 사건이나 가능성을 말한다. 전염병의 유행, 전쟁, 지진, 항공기 추락사고 등등을 말한다.
- 회색 코뿔소 (Grey Rhino) - 분명히 눈앞에 달려오는 위험이지만 이를 보지 못하거나, 두려움에 아무것도 못하거나 눈앞에 두고도 이를 부정하거나 하여 맞는 위험.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이지만 알면서도 해결할 엄두가 안 나서 방치하다가 위기를 당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 거품이라든지 대규모 정부 부채, 부실 금융시장 등이 있다.
- White Swan - 위의 블랙 스완/그레이 스완의 파생된 개념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만간에 발생할 것을 거의 확신하는 종류의 사건을 말한다. 경기하락이나 재벌총수/정치인의 부정부패 사건이나 태풍이나 홍수 같은 늘 벌어지는 흔한 재해나 사건 등.
- 보이지 않는 고릴라 (Invisible Gorilla) - 분명히 존재하는데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심리학의 선택적 주의 실험에서 나온 용어.
- 방 안의 코끼리 (Elephant in the Room) - 누구에게나 보이고 모를 수가 없는데 사람들이 직접 언급을 꺼리고 마치 안 보이고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들. 양극화나 인종차별 같은 것들.
- 하얀 코끼리 (White Elephant)[5] - 매우 많은 비용과 정성을 들여 만들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쓸모나 이득은 적고 거액의 유지비만 계속 잡아먹는 것들. 예를 들어 경제성을 무시하고 지어진 거대 건축물이나 올림픽 개최 후 쓸모없이 유지비만 들어가는 유휴시설 같은 것.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나 개선문처럼 평양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체체선전용 건축물 등도 이 부류이다. 원래 독재자들은 자신의 위신과 허영 때문에 이런 쓰잘데기 없는 토목공사에 집착하다가 경제를 말아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6. 관련 문서
[1]
참고로 이 '칠면조와 먹이' 비유는, 매우 유명한 러셀의 비유를 인용한 것이다. 단, 러셀의 주장은 단지
귀납법 자체의 약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
[2]
이 미지란 것은 사회과학이나 역사와 같은 다른 학문에서 또한 존재하며 이러한 미지의 영역은 고도로 개연성이 부족한 필연적인 사건들을 평가절하함으로써 그 수가 더욱 증가하게 된다.
[3]
참고로 당시 기준(2007)으로 한국의 1년 GDP가 1조 달러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폭발적인 대란인 것이다.
[4]
훗날 밝혀졌지만 이는 위대한 금융 기술이 아니라 그저
공짜 점심일 뿐이었다.
[5]
과거 동남아시아 지역의 왕이 자기가 싫어하던 신하에게 흰색 코끼리를 선물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흰색 코끼리는 신성시되는 동물인데다가 왕이 하사한 동물이니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되고 먹이만 왕창 먹어대어 결국 주인을 파산하게 만드는 방식.
[6]
사실 상 흑조 이론에 기반한 내용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