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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13:25:45

평양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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凱旋門

Arch of Triumph in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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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평양 개선문.png
▲ 개선문의 모습
<colbgcolor=#e40001,#222222><colcolor=white> 준공 1982년 4월 15일
규격 높이 60m
길이 50m
재료 화강암
주소

개선문
( 평양시 모란봉구역 관문3동)
1. 개요2. 역사 및 특징3. 통일시 전망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북한 개선문.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문 광장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건설한 개선문이다.

광복 이전 일제강점기 김일성의 독립운동 행적을 선전하고 '그가 지휘한 무장독립투쟁이 승리하여 한반도 전체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라는 역사왜곡을 바탕으로 '그런 연유로 그는 민족 전체의 영웅이고 수령이다'라는 주체사상을 홍보하기 위한 건설물이다.

2. 역사 및 특징

1982년 4월 14일 김일성 독립운동 업적을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평양 입성 후 개선연설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김일성경기장 옆에 세운 기념물이다. 나폴레옹이 건설한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투알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았다.

화강석으로 축조되었으며 기둥 남북쪽 면 위부분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가 적혀 있고, 동서쪽 기둥에는 백두산이 조각되어 있다. 남쪽 면엔 ' 1925'와 ' 1945'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1925'는 '김일성이 조국 독립을 위해 고향집을 떠난 해', '1945'는 '조국이 독립한 해'를 각각 의미한다. 북쪽 면에 있는 부각상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는 개선연설을 하는 김일성에게 환호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남쪽 면에 있는 부각상 '장군님을 우러러', '새 조국 건설에로'는 김일성이 제시한 건당, 건국, 건군 노선에 따라 새 조국 건설에 앞장서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북한 오백원 지폐 앞면의 도안이다.

3. 통일시 전망

이 건축물은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김일성 덕분에 한반도 전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는 허위정보를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세뇌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라,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나마 '세계 최대 규모의 개선문 건축물'이라는 측면, 그리고 '1970년대 후반 북한 건축사를 살펴보는 차원'에서는 약간의 의미는 있을 수 있다.

만약 통일이 남북간의 대결 후 북진통일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국군이 평양에 입성하며 개선 행진을 이곳에서 치를 수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국가안전보장 목적의 유일한 무력집단인 국군[1]이 개선문을 통과했다는 걸로 '대한민국의 종국적 승리'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유사한 예로 사용된 것이 프랑스의 에투알 개선문인데, 1940년 독일군은 프랑스 점령 기념으로 이 에투알 개선문에서 승전행사를 했고, 당시 그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그것은 불황 속에서 홀로 전쟁피해를 복구하고 고도성장하던 독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구체화된 것이기도 했다. 거꾸로 1945년 샤를 드 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군은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굳이 몇 개 대대를 떼내어 연합군측에게 "프랑스 수도로의 개선은 프랑스군이 꼭 참여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드골의 요구를 수용했고 자유 프랑스군은 미군, 영국군과 함께 에투알 개선문으로 행진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굳어져 가는 것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1995년에는 프랑스가 독일 군악대를 초청하여 승전일 개선행사에 함께 행진하게 함으로써 당시 갓 출범한 유럽연합의 통합 목적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군이 개선문을 통과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이슈화한다면 한때 북한의 수도였던 곳을 완전히 지배하고, 남한 주도로 통일을 이룩했다는 의의를 세계에 천명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1925'같은 기존 김일성 체제를 의미하는 문구들과 부조를 전부 제거한 뒤 다른 내용을 넣는 식으로 리모델링하고 다른 이름으로 개칭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로마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처럼 될 것이다. 원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원판은 하드리아누스의 개선문이었으나, 트라야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념물에서 부조와 조각상 등을 떼와서 붙이는 식으로 개조하였고 콘스탄티누스 시대 오리지날 부분을 덧붙여 만든 개선문이다. 참고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적국을 막은 공로가 아니라 경쟁자 막센티우스 밀비우스 다리에서 쓰러트리고 그걸 기념한 개선문이다.

남한이 북진통일을 하지 않고 남북이 단계적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하더라도 1925 같은 문구나 조형물들은 어느 정도 제거되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의 러시아 내 공산주의 시절 조형물들이 처한 운명을 보면 짐작 가능하다. 본디 저런 구호나 조형물은 적대하는 세력에 대하여 내부결집 수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기능성 목적이 짙은데, 남북이 평화통일을 실현한 상태라면 명목상으로라도 서로를 적대하기 위한 체제선전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놓아 둘 가능성은 낮다.

완전 철거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데, 기술적으로도 평양 개선문이 워낙 거대한 탓에 전쟁으로 폭파되지 않는 한 철거비용이 만만치 않다. 물론 돈이 들어가면 못 하는 토목은 없다. 다만 문구만 변경하면 되는데 굳이 큰 돈을 들여서 철거까지 해야 하나?라는 경제적 논리가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경제효과적으로도 랜드마크 관광지, 전망대로서의 가치도 있다. 앞서 언급한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의 경우도 건립은 나폴레옹이 시작했지만 나폴레옹 정권은 나폴레옹 전쟁 끝에 망했고, 이후 유럽의 판세는 나폴레옹 집권 이전으로 리셋되다시피 하며 나폴레옹의 제1제정을 흑역사화했지만 그렇다고 그 거대한 개선문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관광지로 잘 쓰이고 있다.

다만 평양 개선문의 경우는 남겨놓더라도 상당기간 존치 여부를 두고 진통과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출신, 특히 탈북민이라면 김씨일가 체제에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양 개선문이 완전철거되는 시점은 역설적으로 평양이 대도시화 된 그 이후 경제논리에 의해서일 것으로 전망된다. 평양 개선문이 위치한 구역은 평양성(내성)의 서쪽으로, 보통강과 대동강 사이 폭이 가장 좁아지는 지점이다. 즉 조선시대 평양 구 시가 부분과 해방 이후 확장된 평양 북쪽 시가지가 만나는 곳이며 주요 도로가 만나는 곳이다. 따라서 흡수통일이든 평화통일이든 통일이 되면 필연적으로 기존 평양 도심 재개발 + 평양 메갈로폴리스의 확장[2]이 이루어지면 평양 구도심으로 진입한은 목 중의 목이 되는 곳이다. 게다가 그 옆에는 김일성경기장이란 거대 시설도 들어서 있다. 이런 곳에 거대한 건축물이 버티고 서서 교통 흐름을 방해하면 울산의 신복로터리처럼 철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과거 서울의 신촌로타리나 전농동 로타리가 그랬듯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구조물로 개발압력을 못 이길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것도 등록문화재가 된다면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주변 도로를 확장하여 교통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보 숭례문이 도로 한복판에 있다고 철거하지 않듯이 평양 개선문도 통일 후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여 존치할 가능성도 높다.

4. 관련 문서


[1] 대한민국헌법 제5조 2항. 참고로 경찰은 국토방위가 아니라 내무를 대상으로 하는 조직이며 국제법상 교전집단이 아니다. 6.25때 경찰조직이 조선인민군이나 빨치산과 싸운 적은 있지만 이는 상대가 대한민국 헌법체계상 북한이 '명목상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2] 이 경우 평양은 약 4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급 광역시 규모가 된다. 남포/평성 방면 배후지역까지 더 확장할 경우는 6백만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