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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4 12:18:43

홍종례

파일:홍종례.png
1937년 3월 29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촬영된 사진.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홍화순(洪花順), 홍순옥(洪順玉)
출생 1919년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1] 세교리
(현 경기도 오산시 세교동 큰말마을)[2]
사망 미상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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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2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9년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현 오산시 세교동)의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수은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묘동)에 거주하면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녀는 1933년 8월 초 수원군 성호면(현 오산시)에서 김만석(金萬石)으로부터 "현재 사회제도로 인해 무산계급에 있는 농촌 청년들이 부당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모순된 사회제도는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는 내용의 교육을 받았다. 1934년 3월에는 김만석이 사회주의 사상과 이론을 요약한 교양자료를 건네받았다.

이에 감화된 그녀는 1934년 3월 경성부 남대문통3정목(현 중구 남대문로3가) 97번지에 있던 조선물산(朝鮮物産) 주식회사에 여성 노동자로 입사했고, 그해 5월에는 경성부에서 김희성(金熙星) 등의 주도하에 조선공산당 재건을 목표로 설립된 '콤그룹'에 홍종갑, 최경창 등과 함께 참여하여 활동했다. 이 콤그룹은 경성콤그룹이라고도 하는데 유명한 1939년 만들어진 경성콤그룹과는 다른 경성콤그룹이다.

그 뒤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 있던 종연방직(鍾淵紡織) 제사공장(製絲工場)으로 이직해 직공으로 근무하던 중 1936년 12월 경기도경찰부에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이후 1937년 5월 11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선고받고 출옥했다.

출옥 후의 행적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녀의 공훈을 기려 202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 성호면이 1941년 오산면으로 개칭되었고, 1949년 수원군이 화성군으로 개칭됨에 따라 화성군 오산면이 되었다. 1960년 오산면이 오산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 오산읍을 관할로 오산시가 설치되면서 수원에서 분리되었다. [2] 남양 홍씨 집성촌이다. 홍씨가 많이 살아 '큰말'을 '홍촌말'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독립유공자 홍종갑· 최경창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