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랑전의 등장 기술2.
마신영웅전 와타루 시리즈의 등장인물3.
SHOW BY ROCK!! 시리즈의 등장인물4.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는 백제의 왕5. 《열선전》에 등장하는 부여의 왕
1. 아랑전의 등장 기술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아랑전 코믹스 86화 中 |
타케미야류 유술의 오의로, 상대에게 뛰어들어 상대의 목에 한쪽 다리를 걸어 올라타고, 그대로 다른 한쪽 무릎으로 상대의 턱을 강타[1]. 이후 어깨에 올라탈 때 쓴 다리로 쓰러지는 상대의 목을 누르며 팔을 뒤로 꺾는 기술이다. 아랑전 작중에 이종격투기를 "Fist or Twist, 타격기와 관절기 중 어느 쪽이 강한가"로 정의하고 있는 만큼, 무릎차기(타격기)와 팔꺾기( 관절기)를 연이어 실행하는 필살기인 호왕은 상당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일단 상대에게 뛰어드는 자세 자체에는 제약이 없지만,[2] 작중 최초로 시전에 성공한 '정자세로 서서 상대가 얼굴을 향해 휘두르는 주먹을 흘려낸 뒤, 내질러진 상대의 팔을 붙잡고 점프해 호왕'이 제일 유명하다.
원작 소설에서는 한쪽 다리를 하이킥하듯이 상대의 머리 위까지 차올린 뒤, 다른 한쪽 다리로 상대의 머리를 올려차면서 동시에 미리 차올렸던 다리로 상대의 머리를 내리찍는 식으로 상대의 머리를 상하 양쪽에서 타격하는 기술이었다. 원작에서 탄바가 츠츠미에게 시전한 호왕의 타격 부분도 이러한 형태였으며, 나중에 이타가키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현실적인 개량을 가한 것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니킥 버전 호왕이다. 소설판 호왕은 코믹스판 192화에서 히메카와 츠토무가 하타 코키치를 상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오며, 게임 Fist or Twist에서 '소설판 호왕'이라는 명칭이 붙은 채 히메카와의 오의로 나온다.
아랑전을 대표하는 필살기인 만큼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오마쥬나 패러디가 되며, 아랑전 코믹스판의 작가인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대표작 바키 시리즈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1부에서 한마 바키가 토쿠가와 미츠나리의 경호원 카노 슈메이를 상대로 사용했고, 3부에서 한마 바키와 한마 유지로의 부자 대결 도중에도 바키가 유지로를 상대로 사용했다.
후지마키 주조를 주인공으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랑전: 고독한 늑대의 길에서는 원작과 달리 후지마키가 히메카와를 상대로 사용하는데, 인물 디자인은 오리지널로 했으나 호왕은 이타가키판에 가깝게 묘사되었다. 원작의 호왕은 애니에서도 히메카와의 호왕으로 등장한다.
올라타는 시전자의 체중을 상대가 팔을 뻗어 버텨줘야 하기에 당연하게도 실제로는 거의 성립될 수가 없는 기술이다. 당장 상단의 이미지에서 탄바가 쓰는 모습을 봐도 공격을 맞는 츠츠미의 팔에 탄바의 체중이 쏠릴 수밖에 없는 모양새. 현실에서 비슷하게 시연하는 영상을 보면 꽤나 괴리감이 느껴진다. # 애니에서는 만화에서 마치 플라잉 암바 상태에서 턱에 니킥을 먹이는 것처럼 묘사된 것과 달리, 플라잉 니킥처럼 몸을 세운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상대 어깨 너머로 넘기고 다른 한쪽 무릎으로 타격을 먹인 후 그대로 엎어지는 방식으로 묘사되었다.
작품 자체와는 상관없지만 오마쥬로 보이는 타이거 팽이라는 기술이 타이거 마스크 W에서 나온다. 이쪽은 공중에서 발로 상대의 머리나 어깨를 찍어버리고 니킥으로 턱을 갈기는 기술. 첫 시전 시에는 호랑이의 턱이 무는 장면까지 나온다.
2. 마신영웅전 와타루 시리즈의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토라오 문서 참고하십시오.3. SHOW BY ROCK!! 시리즈의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호완 문서 참고하십시오.4.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는 백제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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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王
생몰년도 미상
9세기 편찬된 일본의 씨족지인 신찬성씨록에만 등장하는 인물. 고시촌주(古市村主: 후루치노스구리)[4][5]의 조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시씨에 해당하는 인물로 672년 일본서기 기록에 등장한 고시흑마려(古市黑麻呂), 대일본고문서 4-225에 등장한 고시촌주촌식(古市村主寸食)이 있다.
5. 《열선전》에 등장하는 부여의 왕
하구중(瑕邱仲)은 [상곡군] 보(甯) 사람이다. 보에서 백여 년 동안 약을 팔았는데, 사람들은 그 때문에 [그가] 장수한다고 여겼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고, 중과 마을의 수십가가 집이 물가에 있어 모두 부서졌다. 중이 죽자 사람들은 시신을 취해 물에 버리고, 그의 약을 거두어 그것을 팔았다. 중은 가죽옷(裘)을 입고 쫓아가, [사람들에게] 이르러 약을 취하니, 중[의 시신]을 버린 자들이 두려워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仲이 말하기를, “당신들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 한탄할 뿐이니, 나는 떠나겠다.”라고 하였다. 후에 부여호왕(夫餘胡王)의 역사(驛使)가 되어, 다시 보(甯)로 [돌아]왔다. 북방(北方)에서는 그를 ‘유배된 선인(謫仙人)’이라고 불렀다.
“瑕邱仲者, 甯人也. 賣藥於甯百餘年, 人以爲壽矣. 地動舍壊, 仲及里中數十家, 屋臨水, 皆敗. 仲死, 民人取仲尸棄水中, 收其藥賣之. 仲披裘而從, 詣之取藥, 棄仲者懼, 叩頭求哀. 仲曰, 恨汝使人知我耳, 吾去矣.
後爲夫餘胡王驛使, 復來至甯. 北方謂之謫仙人焉.”
《열선전》 하구중(瑕邱仲) 원문 출처
“瑕邱仲者, 甯人也. 賣藥於甯百餘年, 人以爲壽矣. 地動舍壊, 仲及里中數十家, 屋臨水, 皆敗. 仲死, 民人取仲尸棄水中, 收其藥賣之. 仲披裘而從, 詣之取藥, 棄仲者懼, 叩頭求哀. 仲曰, 恨汝使人知我耳, 吾去矣.
後爲夫餘胡王驛使, 復來至甯. 北方謂之謫仙人焉.”
《열선전》 하구중(瑕邱仲) 원문 출처
전한의 학자 유향(劉向, 기원전 77년 - 기원전 6년)이 쓴 신선설화집 《열선전》에 등장하는 부여의 왕. 부여(夫餘)의 오랑캐왕(胡王)이라는 의미기에 실제인명은 아니다.
신선전에 의하면 부여의 호왕은 약재상 하구중(瑕邱仲)을 역사(驛使)로 삼았는데, 이름대로 파발꾼으로 삼았거나 통역을 맡는 사역(使譯)을 시킨 걸로 보인다. 설화성 성격이 심한 기록이지만 전한 시기 부여와 한나라 간 외교 교섭이 있었다는 점을 알려주는데 의의가 있다.
[1]
기술명처럼
호랑이가 턱을 다무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작으로, 상대의 목에 걸린 다리가 윗턱 위쪽을 고정하고 있으므로 완충되지 않는 충격이 아랫턱에 그대로 꽂힌다. 호왕이 시전되는 장면은 대부분 아랫턱에 니킥을 직격당한 상대의 턱이 세게 다물리는 모습이나, 심지어 치아가 죄다 박살나는 클로즈 업이 따라붙을 정도.
[2]
타케미야류의 정식 제자인
후지마키 주조는 탄바나 히메카와가 쓴 반격기 형식의 호왕과 달리 능동적인 공격기 형식의 호왕을 시도하기도 했다. 상대가 하필 마츠오 쇼잔이라서 불발되긴 했지만.
[3]
다만 이 때는 '호왕'이라는 이름이 명시되진 않았고 전술했듯 (당시에는 아직 이미지화된 바가 없었던)원작 소설의 호왕은 형태가 달랐으므로 그 당시 바키가 카노에게 쓴 기술이 호왕이라고 의도됐을지는 불명. 다만 일단 같은 작가가 만화를 그린데다 '상대의 팔에 올라타 머리를 상하 양면 타격→넘어지는 상대의 팔을 잡아꺾기'라는 시퀀스도 똑같고, 만화에서 묘사되는 기술 전개 과정(
#바키 1부, 아랑전, 바키 3부의 호왕)을 비교해봐도 그 모션이 완전히 동일하므로 어느 쪽이 어느 쪽에 먼저 영향을 줬든 상호 영향은 있었을 듯하다.
[4]
씨족명의 유래는 카와치노쿠니(河內國)의 지명이었던 고시군(古市郡: 후루치고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5]
현재
오사카부 우예야군 고시정으로 비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