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3 03: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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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
대령
2. 초기 행적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난 크노헨은 라이프치히 대학과 괴팅겐 대학에서 역사학과 영어를 공부하다가 괴팅겐에선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나치가 정권을 잡기 이전인
1932년에
나치당에 가입하여
1936년부터
슈츠슈타펠에 소속되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SD에 배속되어 2국 1부 2과(정치적전과) 과장으로 지냈다. 크노헨의 임무는 좌익활동의 감시였는데
1942년에 친위대 대령으로 승진했다. 프랑스 항복 후인
1940년
5월에 파리의 보안경찰 및 SD사령관으로 취임하여 부관이던 파리 친위대 지도자 및 경찰고급지도자인
쿠르트 리슈카,
카를 오베르크와 함께 프랑스 점령지역의 지배자로 있으면서 20만명 이상의 유대인 및 불온자를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4. 전후 재판과 행적
그러나 독일의 패전 후 연합군에게 체포된 크노헨은
1946년
6월에
영국의 군사재판에서 영국조종사 포로의 학살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은 집행되지 않고
1947년
7월 1일에 다시
프랑스로 이송되었다. 프랑스 법원은
1954년
10월 10일에 열린 파리 군사법정에서 다시 사형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1958년 재판에서 크노헨은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수감생활을 보내다가
1962년에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왔다. 크노헨은 당초
바덴바덴에 머무를 예정이었지만 그 후 클라우슈탈첼러펠트 근처의 하넨클레에서 살았다. 그 후 결혼하여 장남을 얻은 크노헨은 보험중개업에 종사하며 살았는데
1963년에 오펜바흐 암마인으로 이사했다.
1982년에 두 번째로 결혼한 크노헨은
2003년에 93세의 나이로
바덴바덴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