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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4:31

한(감정)

한의 정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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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향3. 한국인의 정서를 말하는 '한(恨)'
3.1. 반박론
3.1.1. 식민주의 혐의3.1.2. 곡선이 많은 이유3.1.3. 흥의 민족
3.2. 기타
4. 다른 언어
4.1. 일본어4.2. 중국어4.3. 베트남어4.4. 포르투갈어4.5. 산스크리트어
5. 기타

1. 개요

()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닌, 분노, 억울함, 서러움, 아쉬움, 안타까움, 또는 이들 모두가 한데 뒤섞여 묵은 감정을 말한다. 예컨대 이별하고 나서 곧장 찾아오는 울분은 '한'이라 할 수 없지만, 20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진 게 몹시 화나고 서러우면 '한'이라 할 수 있다.

' 응어리'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2. 경향

한은 보통 '못 해본 것'과 연관이 많이 되는데, 사람들이 '~안 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슬픔, 아쉬움 등의 묵은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이런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못 해준 것'에 대한 한도 있다. 주로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느끼는 것이다. 향가 중 하나인 제망매가 정지용의 '유리창1'에서 볼 수 있는 주제다. 결국 한이란 욕구불만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기술할 수 있다.

이러한 '한'의 정서가 비효율적인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사람마다 가치관이 모두 다르기에, 가령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늦은 나이에 N수생의 길을 가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사람에게는 그 한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한국인의 정서를 말하는 '한(恨)'

슬픔의 감정을 말하는 한자 '한(恨)'이 한국인의 성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 ~ 1961년)가 이를 말하면서 부터이다. 즉 '한국인의 한(恨)'이라는 개념 자체가 야나기 무네요시 이후 유명해지고 대중화된 개념. 야나기는 한국 문화의 특성을 한(恨)의 문화라고 정의했을 정도.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 예술의 특징을 곡선(線)의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조선의 처마와 도자기 등에서 보이는 굽은 곡선은 직선에 비해서 여성적이고 유약해 보인다. 이런 한국의 유약한 마음가짐은 그 당시 일제에 식민지배 당하는 조선의 현실과 결부시켜 '그들 조선인의 마음이 본래부터 약하고 슬프기 때문'이라는 데까지 미쳤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 곡선의 예술을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서 중국의 예술은 '의지(뜻)의 예술'로, 일본의 예술은 '정취의 예술'로, 한국의 예술을 '비애의 예술'로 표현하면서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문화적으로 이러한 '한(恨)의 정서'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고 보았던 것.

야나기 무네요시 개인으로서는 한국의 예술품을 사랑하고 조선문화재 보호를 주장했던 사람이었지만, 곡선이 많은 조선의 도자기를 슬픔(恨)이라는 감정에서부터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후 일본의 예술비평가들이 한국의 작품을 평가할 때에 '원한과 슬픔(恨)'의 감정을 기본으로 깔고 해석하게 되었으며, 일본매체로부터 동아시아의 뉴스를 전해받는 유럽과 미국의 예술비평가들 또한 이에 영향을 받아 한국의 예술을 설명할 때에 꼭 'Han'의 감정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한(恨) 정서론'은 해방 이후에 살아남아서 세도정치, 구한말, 일제강점기, 6.25 전쟁, 그리고 굶주리고 억눌려야 했던 개발독재 시기까지, 약 200년 동안 이어진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역사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많이 쓰였다. 특히 1970년대 말부터 경제 성장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문화소비 욕구가 생기면서 대중적으로 소비된 '한국인론', 즉 한국인의 원형에 대한 문화적 탐구에서 그 중심으로 자주 등장했으며, 1990년대에 중산층의 저변이 넓어지고 민족주의, 문화, 역사에 대한 대중적인 저술이 대거 등장하였을 때에도 서편제 영화, 각종 드라마에 남아있는 신파극적 요소, 한국형 발라드 음악 등의 문화작품을 통하여 다시 인지도를 높이게 된다. 2000년대 이전에 이민 간 1세대 해외동포들도 객지에서 무척 힘들고 어렵게 산 탓에,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로 '한(恨)'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정성일 : 〈 서편제〉를 찍을 당시 많은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정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恨)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셈인데, 지금 생각하시기에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예술의 정서 중의 하나는 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임권택 : 그러니까 '한'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하고 걸린 문제요. 시인 구상 씨처럼 체관(諦觀)으로만 딱 볼 것이냐, 그거를 통해서 뭐인가 생산적으로 활력을 찾아서 이러니저러니 했을 적에 그 쌓인 것들이 활력으로 작용해서 커질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와 걸리는 거죠. 나는 후자를 보고 있는 거지.

정성일 : 이게 한편으로는 감독님의 또 다른 영화 〈 태백산맥( 여순 사건 6.25 전쟁을 다룬 영화)과 같이 맞물려 들어가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임권택 : 이 '한'이라는 거는 도무지 정의할 수가 없어요, 워낙 넓고. 가령 이런 것 아니에요. 외세의 침략을 당해서 어떤 피해를 본 것도, 강대국에 의해서 강제로 살아가야 할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라 전체의 백성들에게 맺힌 것도 '한'이라고 그럴 수 있고, 제 새끼를 잘 키우고 있는데, 어느 날 뜻밖에 잃을 수도, 돈이 없어 치료비를 댈 수 없어 죽어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도 '한'으로 남는 거란 말이에요. 이거를 어떤 단위로 묶어서 어떻게 규명해야 할지, 지금도 이미 학자들이 딱 말 못하고 있을 거요. 죽은 사람은 '한'이 있는지 뭐인지 모르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이 그 대상 때문에 쌓아가는 거요.

정성일 : 결국 감독님께 '한'이라는 것은 꼭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임권택 : 그런데 우리는 유난히, 유난히 가질 수밖에 없는 거요, 역사 속에서. 일본에서는 그게 바로 복수라는 개념으로 드러나는 거 아니오. 그런데 여기서는, 한국인에게는 머물러 있는 거요, 앙금처럼.
임권택 정성일의 대담 中 [1]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에는 문화결정론이 사그라들면서 '한의 문화'에 대한 언급이 많이 사라졌다. 우리는 '흥'의 민족 요즘 20~30대들은 이러한 '한(恨) 정서론'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즉 21세기에 진입하며 더 이상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나 정체성으로 '한'을 거론할 순 없다는 것이다. K-pop 등으로 한국의 인지도가 높아진 2010~2020년 대 이후로,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언론에서는 '한(恨)' 정서를 '슬픔을 승화시켜 예술로 표현'하는 고차원적인 감정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준다고해서 마냥 좋아할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해석은 일본인 야나기의 일방적이고 잘못된 해석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임을 유념하자. 일본에서 '한(恨)'을 '원망'으로 해석하고 있고,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해방 후 식민사관을 가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한국인 대표 정서를 '한(恨)'으로 규정지어 이를 작품을 통해 다시 '체념'으로 재해석했다는 사실 등을 인지한다면, 한국인의 대표정서가 '한(恨) 정서'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인은 쿨(cool)하지 못하다'는 일본의 전형적인 레파토리에 당하거나,[2] 또는 '한국인은 잘 포기한다'는 자포자기의 체념 의식을 부추기는 꼴이 되므로, 이에 대한 세심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3]

3.1. 반박론

3.1.1. 식민주의 혐의

조선은 오래된 유교국가로서 유교 경전인 『 맹자』에서는 대장부의 마음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중시하고, 『 중용』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인 '성실'(誠)을 강조한다. 이는 '원한'이나 '체념'에 반대되는 개념이므로, 한(恨)을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감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에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감정인 ' 동정' 혹은 연민으로 불리는 감정(측은지심)을 살펴보더라도, 그건 해당 인물에 대한 사랑 혹은 인류애에서 비롯된 감정이므로 슬픔에 해당하는 '한(恨)'의 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恨)이라는 감정이라는게 식민지 시대의 고달픈 삶이 만들어낸 우리의 '일부' 감정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마치 우리 민족의 '원형'처럼 이해하거나 한국예술의 '근본' 감정이라고 설명하는 건, 한국의 정신을 너무나 일본의 입장에서 해석했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비록 야나기가 조선에 우호적인 사람이긴 했으나 그는 당시 조선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슬픔, 선(線: 곡선을 의미)을 제시하며 조선을 역사적으로 피해를 당한 '슬픔의 민족'으로 인식했으므로, 그 역시 열강인 일본의 입장에서 식민지인 조선을 바라보는 '식민주의적 시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피지배계급의 정서에 '한(恨)'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제국주의에 고통받는 세상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피지배 계급의 것은 더더욱. 이런 비참한 감정은 지구상 어느 민족 어느 사회에나 존재해왔다. 그런데 '한 정서론'은 그것을 특정한 민족( 식민지였던 조선)의 '고유'정서로 정의하면서 이용되어왔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몇천년 이어져온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만을 따다가 그것을 '대표적인 고유 정서'라고 포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정의일까?

3.1.2. 곡선이 많은 이유

동아시아 다른 민족에 비해 곡선이 많은 예술품을 만들어왔다는 것이 '슬픔'의 정서와 연관된다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일방적인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다만 중국과 일본의 예술품보다 한국 예술품에 곡선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움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예술품에 곡선이 많은 이유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해왔던 민족역사적 맥락의 연장선에서 찾아야 한다. 자연에는 직선이 드물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한국 예술품에 유독 곡선이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건축물은 크고 화려하고 일본의 건축물은 작고 정돈되어 있지만, 이 두 나라의 건축물은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반면 한국의 건축물은 자연물의 배치를 우선 염두에 두고 그 자연물의 배치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짓는다. 그래서 '인위적'인 느낌이 덜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보인다. 도자기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여러 색깔을 쓰고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놓고, 일본도 여러 색을 쓰지만 정돈되어 엄격한 절도가 느껴지는 반면에, 한국의 도자기는 단순한 단색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하기 때문에 튀지 않는다. 방 안에 가져다 놓으면 주변과 금방 어우러진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에서는 '한(恨)의 정서'를 찾아볼 수 없다. 자연스럽다는 것에서 '친근함', '어리숙함', '반가움', '어울림' 등은 생각해볼 수는 있어도, 여기에서 '슬픔'의 감정만을 콕 집어 이끌어 낸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 것이다.

3.1.3. 흥의 민족

식민지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민족은 노래을 옛부터 즐겼던 민족으로 기록되어 왔다. 즉, 풍류를 즐기는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이를 가르켜 '흥(興)'이라고도 한다. 한국인은 그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 전통적으로나 현대에 이르러서나 유쾌한 면이 많이 있다. 국문학에서 슬픔이 강조되는 아름다움을 비장미, 익살이 강조되는 아름다움을 골계미라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설화에서 골계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전통 극문학에서는 거의 해학과 풍자로 도배하다시피 해놓았다. 물론 슬픈 결말을 보이는 민담이나 설화도 적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훨씬 많다. 정철의 가사 작품에서도 한과 슬픔을 드러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 이건 선조에 대한 아부를 돌려 표현한 것 뿐이라서 보편적인 정서라고 보기 힘들고, 정철 본인도 장진주사 같은 유쾌한 작품을 많이 썼다.

현대에 와서도 담담한 정서보다는 잘 노는 정서가 더 활발하다.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의 거리응원 등을 봐도 별로 우울한 민족은 아니다.

즉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로 이야기 되었던 '한'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이라는 혹독하고 부조리한 수십년 세월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에게 뿌리박힌 트라우마일 뿐, 한국인의 고유 정서라고 할 수는 없다. 못 해본 게 많았을 때는 한도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미 해보고 싶던 것들을 많이 해내고 성과도 이뤄낸 지금에 이르러서는 말 그대로 '한이 풀린'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한이라는 감정에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3.2. 기타

4. 다른 언어

4.1. 일본어

한국의 귀신은 생전의 문제가 해결되면 깨끗이 성불하지만 일본 귀신은 지박령이 되어 다 때려부순다.
원주민 공포만화 62話 中[6]
일본어로 恨이라는 글자를 '우라미(恨み)'라고 훈독하는데, 우라미는 원한, 분개와 증오의 의미가 강해 한국어의 '한'과는 어감이 사뭇 다르다. 한국어에서는 슬픔, 분노, 안타까움, 원망, 후회 등이 뒤섞인 복잡한 뜻을 가지는 것과 다르게 일본어에선 훨씬 원초적인 수준에서의 '원한, 복수심'을 의미한다.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두고 한국에서 '민족의 한' 같은 말을 하면 한국인들은 '민족의 슬픈 역사' 같은 의미로 이해하지만, 일본에서는 언젠가 일본에게 복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

사실 우라미는 서양권의 퓨드(feud)나 벤데타와 더 유사한 개념인데 일본은 한국, 중국과 달리 근대 이전까지 중앙 권력의 힘이 허약했고 각 지방이 하나의 나라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과 우라미의 차이를 양국의 전래설화인 장화홍련전 추신구라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한국 고전 장화홍련전은 억울하게 죽은 자매의 '한'을 관리가 그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한을 푸는 이야기인데, 일본의 추신구라 사건은 영주가 홧김에 칼을 휘두른 것으로 처벌 받자 부하들이 영주의 '우라미'를 풀기 위해 복수 대상의 집에 있던 사람들을 죄다 몰살했다. # 장화홍련전에서 장화, 홍련 자매의 한이 풀리는 계기는 살인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들의 죽음에 배후가 있으며, 언니인 장화가 배후인 허씨와 장쇠에 의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죽었으며, 이로인해 홍련까지 자살했다.' 라는 사건의 전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전말이 밝혀지고 허씨와 장쇠가 처벌을 받는 것은 차후의 문제였다. 그러나 추신구라에 나오는 부하들의 한이 풀리는 것은 영주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키라의 집안 자체가 영주와 똑같이 모두 죽는 것이었다.

우라미는 이지메의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어떤 집단의 권위자나 사회 분위기가 개인들을 불합리하게 억누르면, 개인은 심리적으로 예민해지고 원한을 품게 되지만, 이에 저항하면 제재를 당할 것이 두려워 원한을 함부로 풀지 못한다. 이 경우, 원한을 품은 개인은 권위자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원한을 해소할 배출구를 찾게 된다. 이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나 공동체가 정한 기준보다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에게 원한을 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인지, 일본산 창작물에서 등장인물이 우라미를 푸는 대상은 대개 자신을 괴롭힌 개인이나 또래/어른 집단, 지방 유지, 혹은 가공의 정부일 수는 있으나, 일본 사회나 일본 정부, 혹은 일본의 국가원수를 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단, 만약 원한을 풀 대상이 애매하거나, 가해자 외의 사람들에게마저 실망하게 되는 모종의 계기가 생긴다면, 괴물이나 지박령이 되어 주변의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

일본 문화에서 한국의 한과 가장 유사한 개념은 다름아닌 모노노아와레이다. 이는 "흘러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처연한 슬픔"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한'을 그냥 우라미로 해석하고 서술한 듯 하다. 이는 현대 일본 극우사관에서 흔히 보이는 인식이므로, 일본어 위키백과과가 실상 일본 극우사관 이데올로그의 회선상 정수중 하나[7]인것을 감안하면 놀랍지도 않다.

4.2. 중국어

본 한자어가 유래된 언어인 중국어에서, 恨(hèn)은 (일상어에서) '미워함' 혹은 (문어체에서) '후회'의 의미와 대응한다. 홍콩에서 쓰이는 광동어에서는 '바라다', '기대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러모로 한국어의 '한'이 지닌 복합적인 의미들이 분산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4.3. 베트남어

베트남어에서는 hận으로 차용되어 사용된다. '원한'이라는 뜻으로만 쓰이며,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hận thù(원한을 품다) 혹은 uất hận(깊은 원한) 등의 합성어 형태로 사용된다.

4.4. 포르투갈어

서양권에선 오히려 포르투갈이야말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한'으로 번역될수 있는 '사우다드(saudade)'[8] 정서가 그 나라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핵심적인 나라로 꼽힌다. 사우다디의 정확한 정의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으나 잃어버린 물건 또는 사람(넓게는 관념, 상황 등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통을 말한다. 이 정도의 정의로도 한국인이라면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감이 올 것이며, 이는 생활의 다른 모든 부분과 결부되어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과 무력함, 억울함과 가슴 아픔의 정서를 낳는다.[9]

페르난두 페소아 같은 문인이나 이를 대표하는 파두 가요 가사들을 봐도 태생적 한계, 구조적인 사회적 부조리, 세상의 불가항력적인 힘 때문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설움, 슬픔을 예술적 절정을 통해 승화시키려는 성향 등 구체적인 슬픔의 형태가 우리네 한의 정서와 놀랄만큼 유사하다. 가장 전형적인 내용은 전설적인 파두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노래들이 얘기하듯 주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뱃사람 남편을 생각하는 미망인 마음, 고향산천에 두고온 어머니와 젊은 색시 그리워하며 죽음을 무릅쓰는 뱃사람 마음 등이 일반적인 주제이다.

4.5. 산스크리트어

한역된 불교 경전에서는 팔리어로 '우파나하(upanāha)'라고 하는 마음작용에 대한 번역어로써 恨을 사용하고 있다.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우파나하를 '마음[10]이 분노의 대상을 여러 번에 걸쳐 자주 생각하게 하여 그 대상에 원한을 품은 채로 그 원한을 버리지 않는 마음작용'으로 정의한다.

5. 기타

참고로 한자 은 간(艮)의 음을 취한  형성자다. 일부 한자 강좌에서는 이를 회의자로 보고 '미워하는 사람끼리 눈을 부릅뜨고 노려볼(艮) 때의 마음(心)'과 같은 식으로 뜻풀이를 하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민간어원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있다.

요즘 노래 가사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민요나 옛날 유행가에서는 따위에서 종종 "한 많은 이 세상"라는 말을 볼 수 있다.

퓨처 워커에서는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자이펀어로 hjan이라고 하며, 작중에서 이런 한을 가진채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는 현상이 연이어 벌어졌다. 하지만 자이펀에게는 그런 개념이 있으나, 바이서스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기에 솔로처가 그걸 가르쳐줄때까지는 바이서스는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1]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 임권택·정성일 대담, 현실문화연구, 2003, p.309~310 / 가독성을 고려해 윤문됨. [2] 상식적으로 가해자가 잘못을 쿨하게 인정 안 하고 반대로 합리화, 정당화를 하고 있는데 피해자한테 왜 쿨하게 넘어가지 못하냐고 적반하장으로 비난하는 것이 잘못된 태도이다. 가해자 쪽에서 먼저 쿨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야 피해자 쪽에서 그것을 받아줄 수 있는 것이다. [3] 여기에 후술할 '우라미'로 퉁치는 현대 일본 우익사관의 해석론까지 합치면 쿨하지 못 하고 응어리만 남은 상태로 원망만 하는 식으로 더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된다. [4]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으로 추정. [5] 어떤 지식이나 의견 따위가 받아들여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짐. 또는 그렇게 만듦. [6] 이거 작중에서 일본의 "승려"가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7] 나머지는 5ch 동아뉴스+판 [8] /sɐwˈðaðɨ/.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로, 실제 발음은 '사우다디'에 가깝게 들린다. 포르투갈식 포르투갈어 기준 발음이다. 브라질에서는 '사우다지(/sawˈdad(ʒ)i/)'에 가깝게 발음한다. [9] 결국 우리 삶의 모든 슬픔은 거스를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에서 오기 때문이다. [10] 제6식(의식) 또는 제8식(아뢰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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