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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5 09:55:18

한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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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나이티드 스카우트
한정국
韓鄭國 | Han Jung-Kook
<colbgcolor=#e1002a><colcolor=#fff> 출생 1971년 7월 19일 ([age(1971-07-19)]세)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청주 한씨
직업 축구선수 ( 미드필더 / 은퇴)
스카우트
학력 사하초 - 장평중 - 부산상고 - 한양대
소속 <colbgcolor=#e1002a><colcolor=#fff> 선수 천안 일화 천마 (1994~1999)
상무 축구단 (1997~1998 / 군 복무)
전남 드래곤즈 (1999~2000)
대전 시티즌 (2001~2004)
프런트 부산 아이파크 (2006 / 지역공헌팀장)
부산 아이파크 (2007~2009 / 전력강화실장)
부산 아이파크 (2009~2012 / 사무국장)
부산 아이파크 (2013~2016 / 전력강화실장)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9~ / 스카우트)
국가대표 11경기 ( 대한민국 / 1994~1996)

1. 개요2. 선수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프런트 경력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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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선수. 現 제주 유나이티드 스카우터다.

2. 선수 경력

파일:2016113000402_1.jpg

부산상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일화 천마에 1994 K리그 드래프트 1순위로 계약금 7000만원, 연봉 1500만원에 입단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일화 소속으로 70경기를 뛰며 4골 4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특히 1995년 포항 스틸러스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는 선취골을 기록해 일화의 K리그 3연패 달성에 기여하였다. 일화는 한정국의 골에 힘입어 1차전을 비긴 뒤 2차전까지 무승부로 끝내고, 안양시에서 치러진 3차전에서 이상윤의 골든골로 승리해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1997년 상무에 입대하면서 기량 하향곡선을 그렸다.

1999년 7월 전남 드래곤즈 김인완과 트레이드되어 전남으로 이적하였다.

2001년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으며, 5년간 측면 공격진에서 활약하였으며, 2004년 말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1년 한양대 선수단이 중심이 된 1991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표에 발탁되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에드빈 판데르사르가 버티는 네덜란드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이 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 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대표로도 발탁되었지만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에서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놓치면서 0:1 패배를 당한 뒤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되었고, 11경기 무득점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4. 프런트 경력

은퇴 후 고향팀 부산 아이파크의 지역공헌팀장으로 부임하였으며, 이후 전력강화실장을 거쳐 2009년 9월 22일 부산 아이파크의 사무국장으로 임명되어 프로 축구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사무국장이 되었으며, 선수 출신이라 선수단과 사무국의 연결고리 역할로 능력을 인정받았었다고 한다.

2013년 다시 보직을 전력강화실장으로 옮겼고, 김창수, 한상운, 박희도, 박종우, 이범영, 임상협, 주세종 등 우수한 선수를 영입해 국가대표급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6시즌을 끝으로 부산이 1부 리그 승격에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임하였다.

2019 시즌부터 연고지 밀착과 지역 인재 발굴을 위해 선수 강화부가 신설된 제주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로 선임되었다.

5.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