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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21:04:39

필리프 4세(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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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4세
Philippe IV
파일:언니내왕 필리프.jpg
소설 웹툰
프로필
<colbgcolor=#F3DC8E><colcolor=#6699cc> 왕호 필리프 4세
국적 갈리코 왕국
나이 30대 후반[1]
가족관계 샤를 7세 (아버지)
루이 왕자 (남동생)
오귀스트 공주 (여동생)[2]
(사생아 겸 조카)[3]
마르그리트 왕비 (고모)
알폰소 데 카를로 (고종사촌 동생)
루이 드 브리앙 (조카)[4]
신분 왕족(군주)
직위 갈리코의 국왕
유료분 스포일러
파문 및 폐위[5]
충성스러운 예삽교 군주 → 박탈[6]
머리색 금색
홍채 청회색[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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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3DC8E><colcolor=#6699CC,#000000> 가족관계 이름 불명의 왕비 (아내)[8] }}}}}}}}}

1. 개요2. 소개3. 작중 행적4. 평가
4.1. 순애보4.2. 행운아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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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의 등장인물. 갈리코 왕국의 현 국왕.

2. 소개

에트루스칸 왕비인 마르그리트의 큰조카이자, 알폰소의 외사촌 형이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에 여동생과 꼭 닮은 백금발을 가진 잘생긴 젊은[9]왕으로 묘사된다. 이마와 콧대가 높고 눈이 움푹 들어가 있는데, 알폰소와 닮은 점이라고는 청회색 눈동자 색 뿐이라고. 여기에 큰 뱀처럼 의뭉스러운 인상이라고 한다.

아버지인 샤를 7세가 승하한 후 남동생 루이 왕자와 그 지지자들을 대거 숙청하고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10] 참고로 마르그리트 왕비 또한 왕위계승전 때 장남 필리프가 아닌 차남 루이의 편을 들었는데, 인망이 높았던 루이와 달리 왕세자 필리프는 성격이 변덕스럽고 냉혹해 훌륭한 통치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타국의 왕비로서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는데도, 필리프 4세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고모를 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한편 남동생 루이 왕자와 왕위를 두고 싸운 것과 달리, 여동생 오귀스트 공주와는 단순히 우애가 좋은 것을 넘어 연인관계다.[11] 왕궁의 안주인 노릇을 오귀스트에게 맡긴다거나 외빈 만찬이나 회담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여동생을 자기 옆에 끼고 있는 것은 물론 둘 사이에서 사생아 쟝까지 태어나는 등, 실질적으로는 사실혼 관계의 부부나 다름없는 상황. 덕분에 독자들에게서는 근친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중이다(…). 또한 3차 십자군의 금전적 후원자이기도 하며, 이 덕분에 갈리코 왕국은 십자군이 정복한 발리안티 항구의 지배권을 얻었다.

3. 작중 행적

라리에사와 알폰소의 혼담과 관련해 간간이 언급되다가, 마르그리트 왕비의 사망 전후로 비중이 커지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마르그리트 왕비의 독살을 사주한 장본인. 에트루스칸 왕궁에 잠입한 첩자와 카를라 부인을 통해 고모를 독살하고는,[12] 마르그리트 왕비가 루비나 백작부인에게 독살당했다는 명분으로 국상 중에 가에타 지방에 군대를 파병하는 패륜을 저지른다. 이에 알폰소가 외교 사절로 갈리코에 도착하자 왕자를 잡아두고 대놓고 협박을 하며 창피를 주는 것은 물론, 미레이유 공작 살해 혐의가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은 엘코를 고문하여 한쪽 팔과 눈을 잃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군사를 물리는 조건으로 50만 두카토[13]를 배상하던가, 타란토의 비앙카 공녀를 자신의 왕비로 보내라는 제안까지 한다. 비앙카는 알폰소에 이어 왕위계승서열 2위에 해당하므로[14], 계승서열 1위인 알폰소가 죽는다면 필리프가 비앙카의 남편 자격으로 에트루스칸 왕국의 왕까지 겸임할 수 있기 때문. 이를 위해 인질로 잡아둔 알폰소는 음식에 비소를 타 서서히 중독시켜 죽일 작정이었다. 필리프의 속셈을 간파한 아리아드네는 결국 레오 3세가 이를 받아들이는 바보짓을 막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충언[15]을 하게 되고, 불안해진 레오 3세는 감옥에 갇힌 루비나와 술이나 퍼마시던 체자레를 불러서 그들이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동생의 아내와 자신의 조카라고 발표하며 체자레에게 북부의 피사노 공작위와 영지, 비앙카보다 앞선 왕위계승권을 주는 막장 드라마급의 폭탄선언을 한다.

한편 피사노 공작에 겸해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체자레가 아리아드네의 조언[16]에 따라 갈리코 군을 유린하자, 분노한 필리프는 선전포고도 없이 전면전 명령을 내린다. 이에 아리아드네는 그레타의 도움으로 에트루스칸 국내에 창궐 중인 흑사병을 갈리코 군에 퍼뜨렸고, 결국 전염된 군대가 귀국하자 갈리코 왕국 또한 흑사병으로 쑥대밭이 된다. 이때 왕실에까지 병이 퍼져 오귀스트 공주가 사망한 것은 덤. 사랑하는 여동생이 죽자 필리프 4세는 절망한 나머지 국사를 내던지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칩거했다고.[17]
알폰소가 예사크에서 돌아온 뒤에는 간간이 근황이 드러난다. 오귀스트 공주가 죽고 광증을 앓았는데, 몇 해가 지났는데도 낫기는커녕 증세가 심해졌다. 때문에 갈리코 왕국의 후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당시까지도 필리프는 미혼이라 적통 후계자가 없었고, 동생인 루이 왕자와 오귀스트 공주 둘 다 사망해 갈리코 국내에는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왕족이 남지 않았던 것.[18] 이에 갈리코 왕실의 외손인 알폰소가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가 된다.

이후 잠시 제정신을 되찾고 트레베로로 찾아가 루도비코 법황과 독대, 사생아의 작위/왕위 계승을 막는 알레망 법을 대사면할 것을 제안한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필리프에게는 '쟝'이라는 이름의 사생아 아들이 있었던 것. 알레망 법 대사면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듣게 된 아리는 전생에서는 1132년에서야 처음 대사면을 건의했던 필리프가 건이 왜 현생에서는 이토록 서두르는 것인지 의아해했지만, 곧 전생 때의 기억을 토대로 오귀스트 공주가 지난 생에서보다 일찍 사망한 탓에 필리프가 서두르는 것이라고 추측해 낸다.[19] 문제는 아이의 친모였는데, 사생아 쟝은 필리프가 친여동생 오귀스트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20]이었다. 아들을 조카라고 우기는 레오 3세와 진짜로 아들 겸 조카를 얻은 필리프

참고로 전생에서는 현생 때와 마찬가지로 비앙카와의 결혼을 시도했는데, 데 마레 추기경의 중재로 실패하자 대신 그레도 왕국 선왕의 딸과 결혼했다고 한다.[21] 이 그레도 공주는 지참금을 막대하게 가지고 왔지만 필리프보다 연상에 이미 사별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고 있었다고. 그러나 왕비가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왕비 대행 자리를 탐낸 오귀스트 공주에게 독살당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만찬을 위해 외빈들이 모두 모이는 때를 틈타 알폰소가 외드 대공의 반역 시도를 폭로하자, 외드를 체포한 뒤 발로아 대공가에게 재산 몰수 및 평민으로 강등시키는 처벌을 내린다.

루도비코와의 독대 이후 열린 산 카를로 공의회에서 알레망 법 대사면이 통과된 것에 기뻐하지만 곧 바로 문서 주의 강화안[22]이 함께 통과되고 만다. 관계가 관계인지라 필리프와 오귀스트는 떳떳하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고 그 덕에 쟝은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조차 않는 상태였던 것. 이 때문에 아들을 당당한 적자로 만들어주려던 시도가 좌절되자 다시 광증이 발동하고 만다.[23] 게다가 대사면의 조건으로 피사리노 항구를 법황청에 증여하기로 한 상황에서 라리에사마저 심장 마비로 사망했기 때문에, 갈리코와 트레베로의 외교 관계도 험악해질 예정이다.

유료분 스포일러 접기/펼치기
원하는 바도 이루지 못했는데 피사리노 항구만 내줘야 할 판이 되자, 격분한 필리프는 몽펠리에 중장기사단을 보내 갈리코와 트레베로 사이의 물류 이동을 막아버린다. 덕분에 트레베로의 유스티아누스 8세와 휘하 성직자들은 시몬 데 마레의 후임 추기경도 보내지 못한 채 갈리코 군대에게 반쯤 포위당하게 된다. 게다가 갈리코 군이 공성추를 이동시켰다는 정황이 포착된데다, 그도 모자라 아예 본인이 직접 근위대 300기를 이끌고 트레베로로 간다. 이로써 트레베로는 이교도도 아니고 예삽교 군주에게 침공당할지도 모르는 초유의 사태를 앞두게 됐다.

결국 585화부터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에타로 남하하여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려고 하며, 에트루스칸의 영토인 가에타에 침입했기 때문에 알폰소와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또한 이 무렵 트레베로에 선전포고를 하는데, 법황의 타락을 비난하면서 유스티아누스 8세가 누이와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흑색선전을 퍼뜨린다. 진짜로 누이와 근친해서 자식까지 낳은 필리프가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필리프 휘하의 군대가 예삽교의 수장인 법황을 공격한다는 것과, 타국인 에트루스칸 영토에 들어왔다는 부담감, 지휘관들이 필리프의 기분을 거슬렀다고 잉크병에 맞는 공포 분위기에 사기가 저하된 상태라 상당히 불리한 처지이다. 게다가 사령관인 르비앵 백작이 검은 투구 기사단에게 인질로 잡혔고 작중 중앙대륙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알폰소가 친히 필리프와 맞붙으려 하고 있어 파멸이 가까워지는 중.

알폰소의 검은 투구 기사단을 보고 '갑옷이 무거워 오줌싸면 어떡하냐', '남자답게 군대를 데리고 왔다'라고 허세를 부리면서 과거 알폰소의 목숨을 쥐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며 가까스로 비웃지만 알폰소한테 강도 높은 도발나이도 많은데 집에 가서 애나 키워라을 듣고 심적으로 궁지에 몰린다. 알폰소의 1대 1 결투 신청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며 대전사로 나서 줄 엉제 백작을 찾지만 이미 포로로 잡혀있어 보이지 않자 연륜 운운하며 거절하고 전투 나팔조차 불지 않고 자신이 직접 육성으로 명령하며 트레베로를 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다가 예상치 못한 궁병을 맞닥뜨린다. 경보병을 갈아넣어 주 전력인 대포를 발사하고 화살비가 멈추자 먹혔다 생각하여 기뻐하지만 정작 알폰소가 몇 수를 더 내다보며 갈리코 측을 농락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결국 그토록 자랑하던 몽펠리에 중장기병단은 검은 투구 기사단에게 제대로 패배하여 무질서하게 후퇴하고 후방에 위치한 투석기와 대포는 만프레디 경이 이끄는 군대에게 깨지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597화에서는 부하들의 탈출 권유에 마지못해 수긍하며[24] 갈리코 왕국으로 탈출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한 탓인지 탈출 직전 알폰소와 맞닥뜨린다. 알폰소에게 처음으로 라탄어로 '길만 빌리려 했다', '배상금을 지불할 거고 우리도 잘못 있다'면서 트레베로를 칠 생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채 뻔뻔하게 군다. 구불구불한 칼날을 본 알폰소가 아헨바흐 백국 출신의 자객과 닮았다는 걸 알고 예사크에 있는 알폰소에게 자객을 보냈다는 사실을 들키자 뜨끔하고 알폰소에게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말을 듣고 얼마 전에 자신이 연륜 운운하며 거절한 것은 잊었는지 남자라면 나오라고 하면서 1대 1 대장전을 신청한다. 진짜로 결투를 벌일 생각은 없었고 알폰소에게 1대 1을 피한 비겁자라는 오명을 씌우려 한 거지만 이미 자기가 연륜 드립치고 얻은 비웃음이다 그동안 필리프에게 칼을 갈아온 알폰소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알폰소는 '너희들처럼 포로를 고문할 순 없지만, 포로가 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며 엘코의 일을 언급하면서 필리프를 멀쩡하게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피력하자 창백해진다. 백기투항을 잠깐 생각하다가 그동안 몽펠리에 궁전에서 2인자 따위는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몸값 내줄 사람이 없다는 걸 기억하고 자기는 사절을 인질로 잡고 독살시키면서 몸값 받으려고 한 거 잊었는지 알폰소를 이기고 인질로 잡아서 트레베로를 점령하는 처음의 계획을 진행하려고 한다. 알폰소가 빼낸 칼레드부흐의 파르라운 검신에 매료당해 넋을 뺏기다 일격에 죽을 뻔하지만 필리프의 회색말이 알아서 피한다. 다음 2격은 알폰소를 낙마시키는 것을 목표로 칼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상대는 창에 가까운 성검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맹장이라 자신의 손목과 검만 망가진다. 알폰소에게 '박대해서 미안하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면서 애원하나 양쪽 손목 모두 망가지고 말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가 알폰소의 공격에 그대로 낙마한다.

그제서야 항복을 선언하려 했으나 알폰소의 마무리이자 사전에 경고했던대로 엘코 때처럼 오른쪽 어깨를 찍어서 평생 그 팔을 못쓰게 만들고 금속군화를 얼굴에 비벼 눈알을 터트려서 불구가 되고 왕으로서의 위엄도 상실한 채 목숨만 겨우 붙은 신세가 된다.[25] 포로로 사로잡힌 후에는 트레베로의 첨탑 꼭대기에 다른 귀족 포로들과 함께 감금된다. 르비엥 백작이 옆방에 필리프 4세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 이후의 일에 대해 의논하지만 알폰소에게 입은 심각한 부상에 낙담하여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후에 마르케즈 백작이 레오 3세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피해규모는 경보병 2000명, 중기병 300기, 대포 6문과 화약이라고 한다.[26]

수감된 후 이단심문관이 오귀스트와의 근친상간에 대한 심문을 진행할 때 의외로 순순히 수긍한다.[27] 하지만 이단심문관이 누가 누구를 먼저 유혹했냐고 물어보면서 오귀스트를 '뱀'에 비유하며, 친형제를 유혹한 더러운 여자라고 모욕하자 우리는 부정하지 않고 오귀스트를 그 따위로 부르지 말라고 발끈한다. 바로 비늘 달린 채찍에 맞지만 '우리만이 깨끗하고 우리만이 고결했다'면서 이단심문관의 더러운 입에 오귀스트를 올리지 말라며 계속 반항해서 분노한 이단심문관이 지칠 정도로 채찍에 맞는다. 그 다음부터 간수가 고문을 진행하는데 알폰소와 유스티아누스 8세가 아니었다면 죽을 정도로 맞았다.

전쟁터에서 험한 꼴 다 본 알폰소도 놀랄 정도로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살아남은 것에 감탄사를 날리자 그만 죽여달라고 하지만 알폰소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며 사절로 온 자신을 인질로 잡고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필리프를 우마차에 실고 피사리노로 향한다. 이 와중에 자신에게 치를 떠는 트레베로 시민들한테서 온갖 모욕을 당하지만, 그 어떤 반응도 없을정도로 삶의 의지와 미래 모두를 상실했다. 자신의 직할령인 피사리노 앞에서는 고개를 들고 최대한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장애와 고문 때문에 자세를 바로잡는 것도 힘들고 고개와 허리를 떨구고 알폰소가 자신이 자랑하던 대포로 피사리노를 협박하고 무혈입성 하는 것을 바라본다.

이후 열린 종교재판에서는 죄를 인정하냐는 일갈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아르칸델레 추기경이 오귀스트를 암캐에 비유하자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로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아르칸델레 추기경은 취조실에서 필리프가 법황과 약속했던 협의를 상기시키는데 그 내용은 오귀스트를 죄인이 아닌 자신에게 억지로 범해진 피해자로 만들고 쟝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고 발표해 공식상으로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알폰소가 쟝을 숙청할 이유를 없애는 것이었다. 이에 어떻게든 오귀스트의 사후 명예와 쟝의 안위만이라도 지키기 위해[28] 자신이 씻을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배교자임을 인정하면서 파문 및 폐위가 확정된다. 그나마 십자군 전쟁을 지원한 공을 감안해 예삽교의 수호자라는 호칭과 특권을 회수하는 대신 목숨만을 부지시켜, 트레베로의 첨탑에 영구 감금시키는 유폐형이 내려졌으나 꼭대기에 도착하기 직전 일부러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자살한다. 파문당했기 때문에 트레베로 묘지에 묻히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데다 왕실 묘지에 묻히기도 갖다 버리기도 애매하여 그의 시신은 돈 주고 처리해야 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한다.

친여동생과의 더러운 근친 관계부터 친고모를 암살하고 그 고모의 아들인 사촌까지 독살하려 들면서 패륜을 연이어 저지른데다 급기야 그 사촌의 충실한 부하마저 확실치도 않은 혐의로 고문하고 사촌의 조국을 유린하고 침략하려한 대가로 애인인 여동생은 병사하고, 그녀와의 사생아를 적자로 공표하는 것부터 트레베로와 에트루스칸 침략까지 모조리 실패한데다 자신도 알폰소와의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해 불구로 전락하여 온갖 모욕을 당하다가 예삽교에서 죄악으로 치는 자살로 사망하면서 그동안의 죗값을 몇백 배로 돌려받게 되었다.

자살한 이후, 662화에서 몬테펠트로 노후작에 의해 언급된다. 그의 언급에 의하면 자신과 오귀스트의 부정을 눈치챈 아버지 샤를 7세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고.

전생에서는 아들이자 조카인 쟝을 기어이 다음 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29]

4. 평가

에트루스칸 왕국을 위기에 몰아붙일 정도로 정치나 모략에서 능력이 뛰어난 것과는 별개로 고모 마르그리트 왕비의 평가대로 지나치게 변덕스럽고 독선적인 성격인데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캐릭터.[30] 여기에 작중 최고의 선인에 가까운 마르그리트 왕비를 독살하고는 그 아들인 알폰소까지 모욕하고 비겁한 방식으로 죽이려 든 행보에 여동생과의 근친상간 관계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는 근친왕이라는 멸칭으로 불릴 정도로 평가가 나쁘다. 군사적 식견도 권모술수에 비하면 처지는 편.

철저한 '무력만능주의자'로 남동생을 죽이고 여동생과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만들고 사절로 온 이웃나라 왕자를 인질로 잡아도 자신이 믿는 몽펠리에 중기병대와 화포가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폭력적이면서도 유아적인 인물. 정작 몽펠리에 중기병대의 위력만 믿고 매번 안하무인으로 날뛰어대는 바람에 바로 자신의 최고 강점인 무력을 깎아먹는다. 흑사병이 창궐한 에트루스칸의 국경 근처에 주둔한 자기 군대가 게릴라 전술에 당한다고 하자 화를 못참고 오귀스트까지 말렸음에도 '지휘관이 재량껏 조심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전면전을 시도한 몽펠리에 중기병대는 역병에 걸리고 오귀스트도 죽고만다. 이후 트레베로 침략 때 알폰소가 신청한 1대 1 결투를 연륜 운운하며 회피해버릴 땐 언제고 패전하여 퇴로가 막히자 알폰소에게 1대1을 피한다는 오명을 씌우기 위해 남자면 나오라는 식으로 신청하는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준다.처음에 1대 1 신청한 지휘관이 본인이 패전하고 나서 포로 되기 직전에 신청한 지휘관인데 본인만 찌질해진다. 그렇게 시작한 결투에서 상대방 무기가 멋져서 넋을 빼다가 일격에 죽을 뻔한 모습은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다.

4.1. 순애보

그러나 최근에는 브리앙 왕가와 대척점에 선 카를로 왕가의 상황이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와중[31], 필리프 4세는 의외로 오귀스트 공주만 사랑하는 순애보적인 면모를 보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오귀스트가 죽자 미쳐서 칩거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하루의 대부분을 여동생의 오래된 드레스를 입힌 베개를 끌어안고 울다 웃다 혼잣말을 중얼대며 보냈다고. 454화에서는 '갈리코 국왕이 왕비도 정부도 들이지 않고 사람들을 모두 피하고 있다'는 소문이 언급되며 591화에서는 자신의 목숨에도 별 관심이 없다는 서술이 나온다.[32] 오히려 죽는다면 누이의 곁에 갈 수 있어 기쁠 것이고, 윤회하지 못하고 오귀스트와 함께 끝없이 지옥불에서 불타도 괜찮다며 독백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중이다. 알폰소에게 불구가 되고 이단심문관에게 채찍질을 당할때도 묵묵히 버텼지만 오귀스트가 모욕 당할때는 반박했고 오직 그녀와 나만 고결했고 넌 더럽다는 말까지 해서 이단심문관에게 매를 벌 정도다. 전생의 필리프 4세도 여자관계가 무척 깨끗했다 하니 아무래도 전·현생 모두 여동생만 사랑했던 모양. 또한 누이에게 정신적으로 크게 의존했는지 오귀스트 공주 사후에는 이전보다도 더욱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막나가는 행보를 보인다.[33]

한편 오귀스트와의 사생아 아들 쟝도 오귀스트의 유일한 흔적이라는 이유로 애지중지하는 듯 하다. 쟝을 몹시 보고싶어하면서도 죽은 오귀스트를 닮아 괴로운 나머지 차마 들여다보지도 못했다고. 쟝을 후계자로 삼으려 고군분투하는 이유마저 그것이 누이의 마지막 소원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누이를 잃은 후에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아들이라고 한다. 덕분에 현재에 와서는 여동생만 바라보는 근친순정남 또는 작중의 수많은 막장 부모들[34]과 달리 자식을 아끼고 책임지려 하는 아버지라는 재평가까지 나오는 중(...). 실제로 일국의 국왕이라는 신분과 잘생긴 외모, 잔혹한 폭군이지만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순정남인 동시에 연인이 낳아준 자기 자식에게도 부성애가 극진한 아버지라는 캐릭터성은 피폐물 로판의 남자 주인공으로 제격인 요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필리프가 등장할 때마다 댓글에는 순애인 것까진 좋은데 상대가 꼭 친여동생이어야 했냐는 한심함 반 안타까움 반의 여론이 속출한다(…). 근친만 아니었다면 탑티어 순애

다만 오귀스트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심이더라도 애초에 친여동생과의 근친상간 자체가 명백히 부적절한 짓이다. 특히 오귀스트는 중앙대륙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인 갈리코의 적통 공주, 즉 타국의 왕비가 되고도 남았을 신분이었다. 그런 누이를 정실 왕비도 아니고 한낱 정부로 삼은 것도 모자라 사생아를 낳은 미혼모로 전락시킨 것은 부정할 수 없이 이기적인 행동이다. 사촌동생인 알폰소가 사랑하는 여자를 정부로 만들 수 없다고 반발한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행보.[35] 비록 필리프 4세와 오귀스트의 관계가 쌍방 애정에 기반하기는 하나 적어도 세 남매 중 장남이자 국왕인 필리프가 막내 여동생인 오귀스트를 좋은 혼처에 시집 보내야 하는 의무는 저버렸다고 볼 수 있는 셈.[36][37] 만일 오귀스트가 다른 나라의 왕비로 시집갔었다면 갈리코의 국왕이 아끼는 여동생이니 젊었을 때 팔려가듯 시집갔다 수십년을 고생한 마르그리트 왕비와 달리 남편이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오귀스트는 자의로 오빠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애인이 된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의 어린 아들 쟝은 순전히 부모의 잘못으로 존재 자체가 죄악으로 취급받아서 독자들의 동정을 받고 있다. 실제로 부모의 존재가 드러내서는 안되는 사생아와 귀천상혼에서 태어난 자녀의 대우는 천지차이라는 언급이 나오며, 알폰소와 아리아드네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는 왕위 계승권을 받지 못할 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을 백작 신분은 보장된다. 하다못해 똑같이 왕의 사생아인 체자레조차 신분 조작이 있을지언정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나름대로 왕가 혈통으로 인정을 받았다. 반면 쟝은 태어난 지 몇 년이 지나고도 왕의 친자로 인정받기는 커녕 타국은 물론 자국인 갈리코에서도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는 신세다. 이 부분에서 필리프의 타협없는 고집이 더욱 비판받는 편. 부성애가 강한 것과는 별개로 본인이 심적으로 힘들다는 이유로 한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별궁에 처박아 둔 채 자주 보러가지도 않았고 결국 자신의 유폐형이 결정되자 어린 쟝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38] 극단적으로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심보를 사랑으로 포장하여 여동생과 아들의 인생을 망친 것은 물론 나라까지 말아먹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4.2. 행운아

능력과는 별개로 일생동안 어마어마한 행운을 누렸다. 한 마디로 일생동안 찾아온 어마어마한 행운들을 본인의 난폭함 때문에 죄다 재앙으로 만들었다.

5. 기타


[1] 출처는 415화. [2] 필리프 4세에게 배우자가 없어 몽펠리에 궁전의 왕비 노릇을 대행한다. 그러나 말만 대행이지 사실상 정부 내지는 아내나 다름없는 상황. [3] 친여동생 오귀스트에게서 얻은 자식으로, 필리프에게는 친자인 동시에 생질(甥姪)이 된다. [4] 남동생 루이 왕자의 유복자이지만 프랑수아에 의해 '루이지 라지오네'라는 이름의 에트루스칸 소년으로 자랐다. [5] 트레베로를 침공했다가 알폰소에게 패배한 후 근친상간 및 온갖 폭정 행위가 드러나 종교재판에서 파문이 확정되었다. [6] 이 호칭은 피사리노의 아리아드네가 가져가게 된다. [7] 이 청회색 눈은 브리앙 왕가 일원들의 특징으로, 알폰소와 마르그리트 왕비 또한 눈이 청회색이다. [8] 그레도 왕국 선왕의 딸. [9] 첫 등장인 1123년에 20대 후반이었으며, 1127년 기준으로는 30대 후반이라는 언급이 있다. 다만 4년 사이에 10살이나 벌어졌으니 설정오류로 볼 수 있다. 굳이 끼워맞추자면 전성기에는 정정하던 왕이 후술할 일련의 사건으로 심신이 폭삭 늙었다는 표현이라고 보면 될 듯. 실제로 170화(문서 상단의 삽화)•175화의 삽화에서는 멀끔한 인상으로 나온 것과 달리, 심적으로 크게 의지하던 누이 오귀스트가 죽은 후인 389화•390화 삽화에서는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매우 피폐한 몰골로 나온다. [10] 마르그리트 왕비의 시녀 카를라 부인이 작위가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카를라 부인의 가문인 디외도네 백작가는 루이 왕자의 편을 들었다가 작위를 박탈당했고, 살아남은 일원들은 르사르트 요새에 수감됐다. [11] 오귀스트 공주는 필리프와 루이가 왕위를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때, 가장 먼저 나서서 작은오빠 루이를 쳐내고는 큰오빠 필리프에게 무한한 충성을 바쳤다고 언급된다. [12] 마르그리트 왕비가 건강을 위해 시트론 향료를 탄 물을 자주 마시는 묘사가 나왔는데, 사실 이 시트론 향료에는 비소가 섞여 있었다. [13] 약 5천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1109년 그레도 왕국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한 살라만타 왕국도 배상금으로 25만 두카토를 요구하는 데 그쳤다고. [14] 체자레는 레오 3세의 사생아이므로 계승권이 없다. [15] '설마 예삽교 군주인 필리프가 사촌인 알폰소를 죽이겠냐'며 안이한 발언을 하는 레오 3세에게, '필리프 4세는 친동생도 죽인 자인데 사촌이라고 살려 두겠느냐'며 탄원한다. [16] 피사노 영지의 군사력은 중무장한 기사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니 게릴라 전법을 쓰라고 조언했다. [17] 아이러니하게도 필리프의 전면전 명령에 반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오귀스트 공주였다. 오귀스트는 '현재 에트루스칸에는 흑사병이 창궐하는 중이므로 아군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오빠를 말렸지만, 필리프는 여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대로 전면전을 밀어붙였고 결국 여동생이 우려하던 바로 그 흑사병으로 오귀스트를 잃고 만다. [18] 방계 왕족인 발로아 대공가는 시조가 계승권을 포기해서 왕위를 이을 수 없다. [19] 전생에서는 필리프가 체자레 즉위 시점(1137년 초)까지 건재했다는 묘사로 보아 전생의 오귀스트 공주도 그때까지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 전생의 경험으로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아리아드네가 상인들 간에 흘러들어온 정보라는 구실을 대며 알폰소와 라파엘에게 알려주었고, 진실을 들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21] 살라만타와 그레도가 전생에서도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갈리코의 강력한 군사력을 필요로 하던 그레도가 일부러 막대한 지참금을 내주며 공주를 필리프와 결혼시킨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22] 교회에 등록된 문서만 효력을 인정하는 제도. [23] 아리아드네는 대사면이 통과될 시 필리프가 다른 여자를 아들의 생모로 내세워 출생 신고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필리프는 아예 생모의 이름이 기입되는 칸을 공백으로 남기고(...) 장을 입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오귀스트가 아닌 다른 여자가 아들의 생모로 알려지는 것조차 싫었던 듯. [24] 이 시점에서 포병은 에트루스칸 측에 넘어가고 경보병은 전멸했으며 기병대도 호위로 남긴 세력 외에는 싹 다 날아가 더 이상 진격은 무리였다. 패배는 이미 확정되었으니 이제 비난을 받더라도 남은 인력만이라도 보존해서 본국으로 돌아갔어야 했으나 이때 필리프는 쟝을 마지막으로 본 과거나 회상하고 있었다. [25] 해당 599화 제목이 '왕이 죽을 때'다. 알폰소의 독백으로는 왕은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명령이 먹히지 않을 때 죽는다고. 필리프 4세는 공적으로 보면 자신의 무력만 믿고 사절로 온 이웃나라 왕자를 인질로 사로잡고 그 이웃나라에 약속한 보상을 지불하는 대신 50만 두카토 아니면 계승서열 2위의 혼인을 요구하는 희대의 막장외교를 저지르면서 세간의 경악을 샀다. 거기다 예삽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의 국왕임에도 여동생과의 사생아를 적자화시켜주지 않았다는 사적인 원한으로, 예삽교 법황을 힘으로 침략하려 했고 그 연장선상으로 선전포고도 안하고 이웃나라에 군대를 들였다가 자국의 고위귀족들까지 대거 포로로 잡힐 정도로 처절하게 패배했다. 게다가 사적으로는 연륜 운운하며 알폰소의 결투 신청을 피한 주제에 포로가 되는 게 확정되자 남자 운운하면서 결투를 신청하는 내로남불적인 추태를 부렸으며, 그 결투에서 칼과 손목이 망가지자 바로 사과하고 사정 좀 봐달라고 애걸하면서 갈리코의 위신을 진창으로 처박고 목숨 걸고 자신을 탈출시키려 했던 갈리코 기사들도 정떨어지게 만들었다. [26] 레오 3세는 질투하는 아들이 거둔 승리를 '대승'이라고 표현한 마르케즈 백작에게 알폰소 쪽이 4800명인데 뭐가 대승이냐고 평가절하 하다가 알폰소의 병력중 창병이 4000명이란 소리를 듣고 검은 투구 기사단에 창병이 있냐고 경악하다가 징집병이란 소리를 듣고 누가 보냈냐고 노발대발 했다. 나레이션에 따르면 필리프 쪽에 포병 같은 고급 유닛이 있고 시민병은 일회용 화살받이 수준이라 실제로는 1000대 3500이니 대승이 맞다고 한다. [27] 여기서 필리프의 회상을 통해 남동생 루이 왕자는 생전에 필리프와 오귀스트의 근친상간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28] 쟝이 아무리 친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사생아라고 해도 엄연히 갈리코의 국왕과 직계 공주의 하나뿐인 자식인만큼 그 혈통의 가치에 눈독들이는 자들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다분하고 여기에 필리프의 사생아라는 악명까지 더해진다면 쟝의 미래는 완전히 풍파 뿐이기 때문. 이쯤되면 필리프 말대로 차라리 죽었다고 하는 게 훨씬 나은 삶이고 어린 루이지 라지오네의 섭정으로 갈리코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알폰소에게 죽은 것처럼 살게 할테니 쟝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필리프의 애원이나 다름없었다. [29] 현생에서는 오귀스트 공주가 일찍 죽은 덕분에 전개가 빨라졌다. 현생의 필리프 4세가 알레망 법 대사면을 요구한 시점은 1127년이지만, 전생의 필리프 4세는 1132년에 알레망 법 대사면을 법황에게 건의해 1137년에야 대사면령을 받아냈다. 이때 전생의 체자레 또한 레오 3세의 적자로 신분이 상승되어 합법적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30] 카를라 부인과 스트로치를 움직여 마르그리트 왕비를 독살했고, 이 때문에 최고의 책사로 묘사되는 아리아드네마저 왕비 독살사건의 진범을 루비나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이 외에도 화약을 미끼로 알폰소를 갈리코 내부에 억류하고, 다시 군사를 물리는 조건으로 비앙카를 갈리코 왕비로 요구해 거의 성공할 뻔 한다. 다만 본인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선전포고도 없이 흑사병이 창궐하는 에트루스칸에 군대를 진입시켰다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는 그토록 사랑하는 누이까지 잃고 만다. '필리프는 변덕스럽고 냉혹한 성격이라 왕위에 걸맞지 않는다'던 고모의 평가가 정확했던 셈. [31] 귀천상혼한 알폰소는 그렇다 치더라도 체자레는 동생과 약혼한 상태에서 약혼녀의 생일날 그 언니와 관계를 가졌다가 들켜서 파혼당했고, 레오 3세는 작은 아들 연인을 계비로 들이려 했다가 큰 아들에게 저지당했고 현재는 그 큰 아들과 관계한 여자이자 자신이 계비로 들이려 했던 여자의 이복 언니를 정부로 삼은 주제에 아리아드네에게 거부당한 것에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다. 심지어 남편과 딸을 버리고 국왕의 공식 정부가 된 이사벨라는 레오 3세의 친아들인 체자레에게, 체자레는 동생의 아내가 된 아리아드네에게 미련을 못 버린 상태다. [32] 국왕이 직접 검을 들고 싸워야 하는 것은 상황이 극단적으로 몰렸다는 뜻인데,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실전용 검을 차고 나왔다. 소지한 검이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검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플랑베르주로 추정된다. [33] 필리프는 '흑사병이 몽펠리에 중장기병대에 옮을까 우려된다'는 오귀스트의 반대를 무시하고 에트루스칸 침공을 강행했다가 갈리코까지 퍼진 흑사병으로 오귀스트를 잃었다. 오귀스트의 사인이 전염병인만큼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을 확률이 높고 생전에 쓰던 물건도 전부 폐기처분 되었을 것이니 필리프에게 남은 오귀스트의 흔적은 오래된 드레스와 사생아 아들밖에 없다. 필리프 입장에서는 자신이 좀 더 신중했으면 오귀스트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후회해도 이상하지 않다. [34] 아들 체자레를 권력 암투의 수단으로만 보는 루비나, 딸 펠리시테의 혼처를 찾지 못하자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수녀원에 보낸 엘바 자작, 그리고 이 분야 끝판왕인 레오 3세 등. [35] 알폰소는 라리에사는 법적 부인으로 두고 실제 결혼생활은 아리아드네와 하라는 외드 대공의 제안을 거절했다. 외드의 제안을 따른다면 아리아드네는 정식 아내가 아닌 첩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필리프는 오귀스트에게서 아들을 얻고도 비앙카와의 혼인을 추진했다. 이 점을 감안하면 필리프와 비앙카의 국혼 논의가 오갔을 때 오귀스트 공주가 언짢게 생각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언뜻 보면 비앙카를 질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정부로 만든 오빠가 통치 가문의 여식과 당당히 혼인하는 상황에 부조리를 느꼈다고 볼 여지도 있다. [36] 또한 일부 독자는 필리프와 오귀스트의 나이차가 꽤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중이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필리프는 한참 어린 여동생을 좋은 곳에 시집 보내는 게 아니라 애인으로 삼아서 임신까지 시킨 셈(…). 거기에 웹툰판에서 오귀스트가 원작 삽화보다 더 예쁘게 그려진데 반해 필리프는 뱀상 기질이 더 강화되자, 사정을 알고 있는 독자들의 필리프를 향한 비난이 더 거세졌다. [37] 이후 네이버 카페에서 공개된 설정집을 통해 필리프가 오귀스트를 8살일 때부터 노렸고 결국 정부로 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8] 거기에 아르칸델레 추기경에게 심문받을 때, 그가 자신에 대해서는 네 여동생에게 음행을 강요한 악인이냐고 하고 쟝에 대해서는 네 여동생과 붙어먹어 낳은 저주받은 자식이냐고 했을 때는 별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면서 오귀스트를 너를 꾀어낸 뱀이냐고 하자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이를 보면 필리프는 쟝을 오귀스트가 낳은 자식이라 사랑해준 것이지, 진심으로 사랑해준 것이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39] 이외에도 아리아드네는 메데이아, 알폰소는 헥토르, 체자레는 이아손과 닮은 면이 있다. 이사벨라와 이폴리토도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공통점이 있다. [40] 아트레우스는 자신의 아내 아에로페와 불륜을 저지르고 왕좌를 넘본 티에스테스에게 분노해 그의 아들들을 죽여서 그 시체들을 동생에게 먹였고 아에로페도 죽였다. 필리프는 루이 왕자를 죽이고 고모 마르그리트 왕비의 독살을 사주했다. [41] 필리프는 오귀스트를 타국의 왕족과 결혼시키지 않고 자기 정부로 삼았다. 아트레우스는 펠로페이아의 형제들을 죽여서 티에스테스에게 먹였다. 그 여파로 펠로페이아는 아트레우스에게 복수해줄 아들을 얻으려 한 티에스테스에게 겁탈당해 아이기스토스를 낳았다. [42] 차이점이라면 오귀스트는 흑사병에 걸려서 요절했지만 펠로페이아는 자신을 겁탈한 자의 정체가 친부라는 걸 깨닫자마자 자살했다. 그리고 쟝은 필리프의 친자가 맞지만 아이기스토스의 친부는 아트레우스가 아닌 티에스테스다. [43] 아이기스토스가 친부 티에스테스와 이복 형들에 대한 복수로 아트레우스를 죽였듯이, 알폰소도 친모 마르그리트 왕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필리프를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로 만들었다. [44] 중앙대륙 사회에서는 여성이 20대 초반만 되어도 노처녀로 여겨지며, 특히 일국을 다스리는 통치가문의 딸들은 어린 나이에 약혼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묘사된다. 마르그리트 왕비 또한 16살에 레오 3세와 혼담이 오갔다고 한다. [45] 그리고 644화에서 샤를 7세 생전부터 오귀스트와 근친상간을 저지르다가 들키자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와 동생 루이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며 심지어 거사가 실패하면 오귀스트와 탑에서 함께 뛰어내리기로 약속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사실임이 드러났다. [46] 이후 109화에서 정식으로 등장했을 때는 확실하게 눈 색을 제외하면 알폰소와 전혀 닮지 않은 모습임이 확정되었다. 거기에 원작 삽화에서 멀끔한 미남이라는 게 강조된 것과는 상반되게 잔혹한 뱀상이라는 게 강조되었다. [47] 직접적으로 '오귀스트를 닮아 예쁘고 미성인 목소리'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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