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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 부룬디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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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eb53a><colcolor=#fff> 출생 | 1964년 12월 18일 |
부룬디 부줌부라 | |
사망 | 2020년 6월 8일 (향년 55세) |
부룬디 카룬지 | |
국적 |
[[부룬디| ]][[틀:국기| ]][[틀:국기| ]] |
재임 기간 | 5대 대통령 |
2005년 4월 22일 ~ 2020년 6월 8일 | |
학력 | 부룬디 대학교 |
정당 | 민주방위국민회의-민주방위군 |
직업 | 교사, 운동선수, 정치인 |
가족 |
배우자: 데니즈 부추미 자녀 6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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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룬디의 독재자. 부업은 목사 겸 축구선수.[1]원래 직업은 축구를 좋아하던 체육교사였는데,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부룬디 내전 이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2004년의 대통령 선거에 단독 출마해 간접 선거로 당선되었고, 두 번의 직접 선거에서 추가로 당선되어 3선을 역임하였다. 2020년, 7년 중임제로 개헌한 대선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신 "애국심의 최고 지도자(Supreme Guide for Patriotism)"에 등극할 예정이었으나,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2. 생애
2.1. 성장배경
1964년 12월 18일생, 부룬디는 1962년 벨기에의 식민지에서 독립했으며, 은쿠룬지자의 아버지 외스타슈 응가비샤(Eustache Ngabisha)는 후투족 정치인이었고, 어머니는 투치족이었다. 수도인 부줌부라에서 출생했으며, 응고지 지방에서 성장했다. 8살 때이던 1972년, 후투족 집단학살의 와중에 아버지를 잃었다. 축구에 관심이 많아 1990년 부룬디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정치 입문 이전까지 체육교사로 활동했다.2.2. 정치입문
1993년 부룬디 내전이 발발하고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995년, 부룬디 대학교 내 후투족을 대상으로 공격이 발생했고 200명의 학생이 살해당했다. 이후 은쿠룬지자는 후투반군( CNDD-FDD)에 가담한다. 2000년 CNDD-FDD의 대표가 되었고 2003년에는 CNDD-FDD를 정식 정당으로 인정받는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2.3. 독재
2005년 7월 4일의 총선에서 CNDD-FDD는 압도적으로 상원 하원을 모두 차지했다. 2005년 8월 19일, 간접선거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은쿠룬지자는 단독으로 출마, 94.4%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동년 8월 26일 대통령에 취임했다.처음에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나, 국민들이 장기집권에 반발하여 시위를 벌이자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경제 상황 개선도 어렵다는 걸 깨닫자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처럼 그 뒤 통치보다는 개인치부와 권력유지에 더 열을 올리고, 반발하는 국민들을 힘으로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부룬디에서 가장 잘사는 부자인데, 2010년경 그의 재산은 55억 원(550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2] 물론 큰 돈은 아니지만 1인당 소득 300달러 국민들을 쥐어짜 번 돈이라고 생각하면 우습게 볼 액수가 아니다.
2.4. 사망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다음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대신 애국심의 최고 지도자라는 지위를 만들어 취임하기로 했다. 권력유지가 불가능하더라도 자문역을 핑계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행위로 추정되지만, 2020년 6월 8일, 정작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도 전에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돌연사했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후 2위 부자인 피에르 부요야가 코로나19로 사망했다.한편 물러난 뒤에도 연금 6억에 호화빌라를 받도록 법을 만들어 놓았는데, 1인당 소득이 300달러밖에 안 되는 심히 가난한 나라에서 과한 처사였지만, 다행히도 받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부룬디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나마 부담이 줄어들게 되었다.[3]
[1]
젊은 시절 실제로 축구선수였고, 독재자가 된 뒤에는 아예 대놓고
축구단을 만들고 그 축구단의 스트라이커로 들어갔다고 한다.
[2]
2위도 전
부룬디 대통령
피에르 부요야.
[3]
딱히 돈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은쿠룬지자가 자기가 죽은 뒤 연금을 자식들에게 그대로 주는 법까지 만들지는 않은 듯 하다. 사망 당시 55세였고,
아프리카에서도 영아사망률과 에이즈감염률을 고려해서
평균 수명이 50대이지, 나머지 사람들은 최소 60대를 넘어가기 때문에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해도 10년은 남았으니 굳이 그런 것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