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 -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25%; min-height: 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5px; word-break: normal" {{{#555,#aaa |
<rowcolor=#cd9f51> 1901 | 1902 | 1903 | 1904 |
야코뷔스 헨리퀴스 판트호프 | 헤르만 에밀 피셔 | 스반테 아레니우스 | 윌리엄 램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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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폰 바이어 | 앙리 무아상 | 에두아르트 부흐너 | 어니스트 러더퍼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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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오스트발트 | 오토 발라흐 | 마리 퀴리 | 빅토르 그리냐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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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사바티에 | 알프레드 베르너 | 시어도어 윌리엄 리처즈 | 리하르트 빌슈테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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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하버 | 발터 네른스트 | 프레더릭 소디 |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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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프레글 | 리하르트 아돌프 지그몬디 | 테오도르 스베드베리 | 하인리히 오토 빌란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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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오토 라인홀트 빈다우스 | 아서 하든 | 한스 폰 오일러켈핀 | 한스 피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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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보슈 |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 | 어빙 랭뮤어 | 해럴드 클라이턴 유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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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졸리오퀴리 | 이렌 졸리오퀴리 | 피터 디바이 | 월터 호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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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카러 | 리하르트 쿤 | 아돌프 부테난트 | 레오폴드 루지치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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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드 헤베시 | 오토 한 | 아르투리 일마르 비르타넨 | 제임스 B. 섬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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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하워드 노스럽 | 웬들 매러디스 스탠리 | 로버트 로빈슨 | 아르네 티셀리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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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지오크 | 오토 딜스 | 쿠르트 알더 | 에드윈 맥밀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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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시보그 | 아처 마틴 | 리처드 싱 | 헤르만 슈타우딩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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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R. 토드 | 프레더릭 생어 | 야로슬라프 헤이로프스키 | 윌러드 리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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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릭 바턴 | 오드 하셀 | 루이스 페데리코 를루아르 | 게르하르트 헤르츠베르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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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윌킨슨 | 폴 플로리 | 존 콘포스 | 블라디미르 프렐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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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립스컴 | 일리야 프리고진 | 피터 데니스 미첼 | 허버트 찰스 브라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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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비티히 | 폴 버그 | 월터 길버트 | 프레더릭 생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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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 겐이치 | 로알드 호프만 | 에런 클루그 | 헨리 타우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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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브루스 메리필드 | 허버트 애런 하우프트먼 | 제롬 칼 | 더들리 로버트 허슈바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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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위안저 | 존 찰스 폴라니 | 장마리 렌 | 찰스 피더슨 | |
<rowcolor=#cd9f51> 1987 | 1988 | |||
도널드 J. 크램 | 요한 다이젠호퍼 | 로베르트 후버 | 하르트무트 미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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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올트먼 | 토머스 로버트 체크 | 일라이어스 제임스 코리 | 리하르트 로베르트 에른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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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마커스 | 캐리 멀리스 | 마이클 스미스 | 조지 앤드루 올라 | |
<rowcolor=#cd9f51> 1995 | 1996 | |||
파울 크뤼천 | 프랭크 셔우드 롤런드 | 마리오 호세 몰리나 | 로버트 컬 | |
<rowcolor=#cd9f51> 1996 | 1997 | |||
해럴드 크로토 | 리처드 스몰리 | 존 워커 | 폴 보이어 | |
<rowcolor=#cd9f51> 1997 | 1998 | 1999 | ||
옌스 스코우 | 월터 콘 | 존 포플 | 아메드 즈웨일 | |
<rowcolor=#cd9f51> 2000 | ||||
앨런 히거 | 앨런 맥더미드 | 시라카와 히데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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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프리츠 하버 Fritz Ha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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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 |
출생 | 1868년 12월 9일 |
북독일 연방
브레슬라우 (現 폴란드 브로츠와프) |
|
사망 | 1934년 1월 29일 (향년 65세) |
스위스 바젤 | |
국적 |
북독일 연방 (1868~1871) 독일 제국 (1871~1918) 바이마르 공화국 (1918~1933) 나치 독일 (1933~망명) |
학력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베를린 공과대학교 |
직업 | 화학자 |
분야 | 물리화학 |
업적 |
|
수상 |
철십자 훈장 (1915) 노벨화학상 (1918) 럼퍼드상 (1932) |
종교 | 유대교 → 개신교 ( 루터회) |
[clearfix]
1. 개요
독일의 화학자. 공기에서 빵과 죽음을 만든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하버는 질소 정제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인공 비료의 개발을 가능케 만들었다. 이는 인류의 오랜 염원이었던 식량 생산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이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다.[1] 그러나 하버는 독일을 위한 비뚤어진 애국심에 사로잡혀 1차 대전 당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독가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생전 그는 순전히 애국심으로 조국인 독일을 도울 발명에 힘썼지만, 1차대전 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반유대주의의 광풍이 몰아치자 연구소장직을 사임하고 독일을 떠났다. 하버의 가문은 유대인 공동체를 후원하며 유대인 전통을 지켜나가긴 했지만 회당을 잘 출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군복무자였기 때문에 추방령에 따르지 않아도 됐지만, 프리츠 하버는 '조국이 원한다면 따르겠다'라고 하면서 추방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추방된 다음 해 스위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버가 개발해놓은 독가스는 홀로코스트에 사용된 독가스의 기초가 되어 수많은 유대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연히 독일에 남아있던 하버의 친척들도 그렇게 죽었다.
2. 생애
2.1. 맬서스 트랩이 정설이던 시대
프리츠 하버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정설로 통하던 시대에 태어났다. 당시 인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생산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정설로 받아 들였으며 저소득층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현자로 통하던 시대였다. 영국이 이 주장을 받아들여 빈민구제국의 폐지를 논의했고 예산을 대폭 깎아버리기도 했다. 이것이 정설로 통한 이유는 당시 주요 식량공급원이 농업이고, 농업은 토양의 질소농도에 따라 수확량이 결정되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지구는 질소-산소 기반의 대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공기 중에 넘처나는 것이 질소인 행성이지만, 공기중의 질소는 삼중결합을 가진 분자이며, 이 삼중결합을 끊는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최대한 쥐어짜서 살아가고 있는 몇몇 박테리아 종류를 제외하면 스스로 삼중결합된 질소를 이중결합 질소 화합물로 바꾸어 토양에 고정 시키는 생물은 없다시피하다.
실질적으로 토양에 질소 화합물이 새로 공급되는 것은 무언가 격변 수준의 이유로 어디선가 유황 따위의 광천 질소 화합물이 생성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번개로 인해 대기 중의 삼중질소가 질소 화합물을 형성하여 토양에 공급되는 것 뿐이며, 인류가 활용한 비료들은 죄다 이미 존재하는 질소를 재활용하는 것에 가까울 뿐, 없던 질소 화합물을 새로 만들어 공급하는 것에는 굉장한 제약이 따랐다.
전통적으로 오줌이나, 초식 동물의 똥을 정제하여 비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고, 때문에 오줌과 화장실은 징발대상 물자였을 수준이며, 오줌을 모으는 것이 애국이니 지정된 화장실만 이용하자는 공익광고가 18세기 말 ~ 19세기 초에 돌았을 정도였다.
이렇게 획득한 비료의 효율을 끌여올리고, 비료의 원료가 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끝없이 이어져왔다.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화학이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지력의 근원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쌓이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비료의 품질과 생산 효율도 급격히 증가했다.
1800년대 초에 이미 암모니아 등 질소 화합물이 식물의 생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으며, 오줌에 질산 화합물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도 이미 밝혀졌다. 그에 따라, 질소 화합물이라면 대부분 비료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질소 화합물을 토양에 적합한 비료로 정제, 가공하는 기술도 급격히 발전하여, 빅토리아 시대에는 이미 흔히 생각하는 똥 비료와는 한참 거리가 먼, 현대적인 합성 비료에 가까운 물건들이 대량 생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에서 질소를 창조할 수는 없었으며, 질소 화합물 기반의 공장 생산 비료들은 결국 어딘가서 퍼온 질소 덩어리에 대부분을 의존해야만 했다. 게다가 질소 화합물은 화약의 핵심 재료였기 때문에,[2] 질소의 용도는 농업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폭약이 매우 중요한 광업에도 대규모로 필요하여 모든 산업의 병목 원인이 되었다.[3]
따라서, 서구 열강들은 언제나 질소 화합물 공급처 확보에 혈안이었으며, 구아노와 초석 같은 광천 질소 화합물 공급처는 처절한 전쟁을 벌여서라도 확보해야하는 전략자원이었다. 즉, 이 시기에는 이전처럼 오줌으로 비료랑 폭탄을 만드는 고생은 필요 없고 할 의미도 없었지만, 무에서 질소를 만든다는 표현보다는 "돌로 비료와 폭탄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탐험의 시대를 거쳐 발견한 지구의 모르던 장소들에서 대량의 초석이나 구아노 등 우수한 광천 질소 화합물 매장지가 발견되었고, 이 풍부한 질소 천국을 왕창 캐낸 덕분에 일시적으로나마 엄청난 풍작을 누린 시기가 찾아왔을 정도였다. 적어도, 질소 화합물의 노천 광산이 죄다 고갈되어 땅 깊이 파고들어갈 필요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비료 걱정도 폭탄 걱정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편리한" 질소 화합물 공급처는 빠르게 고갈되었고, 질소가 일시적으로 넘치던 시간은 금방 끝나고 점점 불어나는 질소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일시적인 질소 펌핑과 그에 의존한 산업화 덕에 불어난 인구는 얼마 못가 흉작의 위협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엄밀히 말하면 평작이다) 게다가, 광산 파고 전쟁할 폭탄 값까지 오르기 시작, 생산성 하락과 인구 부양력 미달이 동시에 다가왔고, 이에 사람들이 다시금 기아의 공포에 시달리며 멜서스 트랩 같은 무시무시한 논리가 창궐하던 유럽에, 독일 제국의 한 화학자가 놀라운 사실을 발표한다.
2.2. 질소고정법의 발명: 인류의 풍요를 가져오다
Veritasium | 지식해적단 |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를 인공적으로 농축해 암모니아로 합성하는 공중질소합성법을 발명함으로써 인공 질소 비료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안정적인 질소 공급이 가능해지자 더 이상 휴경지나 콩농사, 감자농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고, 드디어 인류는 원하는 만큼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질소비료의 공급 3년만에 식량 생산량은 인구증가량의 2배를 기록, 사실상 맬서스 트랩을 폐기시켰다.[4] 그의 발명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식인, 영아살해, 노인/장애인의 유기 등 비윤리적인 전통이 사라졌고, 세계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1900년대에 16억에서 2000년대에 80억을 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프리츠 하버를 유럽의 구세주로 만들었고, '공기로 빵을 만드는 과학자'라는 명예가 그에게 붙었다. 사실상 현대인들의 태반이 그의 발견이 없었으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고,[5] 독성 증가나 토양 유실이 아니라 아예 지력 자체가 쇠해서 사막화가 훨씬 빨리 진행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근본적인 생산력 부족으로 인해, 19세기 초부터 심각했던 산업으로 인한 공해를 감축할 만한 여유가 생길 정도로 경제 규모가 커질 수도 없었을 테니[6], 오히려 지구 환경이 더 빨리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 되었지[7], 지금처럼 환경 오염,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류가 망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를 꺼낼 여력이 생길 일 따위조차 없었을지 모른다.[8] 질소 비료가 없으면 가축의 사료로 이용할 옥수수나 콩을 마구잡이로 기를 수 있을리 없으니 지금처럼 고기가 펑펑 쏟아지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질소 비료는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래에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기생충으로부터 상당 부분 해방시켰다.[9]
또한 공중질소고정법으로 생산된 암모니아를 백금촉매로 산화시키는 오스트발트법으로 질산을 만들고 질산은 TNT 등 각종 화약의 원료가 된다. 대부분의 폭약은 질소성분이 포함되어있어 공중질소고정법은 구아노 등 제한된 천연질소광물로 만들던 화약을 값싸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덕분에 광업에 필요한 폭약 제조 비용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광업 산출도 대폭 증가하게 된다. 그야말로 공기에서 화약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혁신으로 인해 기존은 꿈도 못 꾸었던 크고 아름다운 토목, 건축 사업이 가능해진 것은 덤이다.
또한 이렇게 펑펑 찍어낼 수 있게된 질소 비료와 폭약은 곧 전쟁 수행력의 폭발적인 증가와 직결되었다. 인류는 이전과 비교되는 풍요와 넘처나는 식량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한 생산력은 부국강병의 근원이 되었다. 생산력이 늘어났으니 더 많은 비용을 군사력에 투입 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답이 안 나오게 비싸던 폭약이 펑펑 쏟아지니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고화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인류는 무한히 성장하는 산업 역량, 무한히 증가하는 군사력[10] 등이 보장되는 시대를 누리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하버-보슈법 등장 이전엔 누릴 수 없던 풍요였다.
프리츠 하버가 여기에서 멈췄다면, 그는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수십만 년 동안이나 시달려 온 기근이라는 공포를 없앤[11]웬만한 최빈국들도 평상시에는 평균적으로 하루 두 끼만큼은 챙겨 먹으며 굶지는 않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버 이전에 가장 빈곤한 국가도 하루 두 끼를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는데 하버가 이 비현실적이던 일을 현실로 만든 셈이다. 자세한 것은 기근 문서 참조.] 인류 역사상 최고의 화학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는 독가스 발명이란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2.3. 어둠의 발명: 독가스
인류, 그리고 그 인류를 대표하는 자국의 승천에는 끝이 없어보였고, 밝고 활기차고 영광스러운 미래가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인류는 전근대적 사고 방식을 온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편협하고 경직된 전통적 국가관을 고수했다.하지만 제 아무리 하버-보슈 법이 무한한 생산력 증대를 보장해도, 열강들에게 대판 깨진 소위 "비문명국"들이 그러했듯 전근대적 사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한정 증가하고 있는 생산력이 성장하는 속도보다 인류가 생산력을 소모하는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이다. 무한히 확장될 것 같았던 식민지들도 최후의 미개척지, 어둠의 대륙 아프리카의 분할이 끝나고 나서는 물리적 한계에 도달했고, 기존 식민지 또한 유지비가 산출량을 초과한지 오래였다. 경제, 문화, 사회, 정치적 문제점이 누적되고 누적된 결과, 인류는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을 향해 달려갔다.
프리츠 하버는 이러한 시대상의 전형적인 유럽 국가 시민이었다. 즉, 그는 강경한 주전주의자 겸 국수주의자로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면모를 보였다.
결국 하버는 공기에서 빵과 폭탄과 총탄뿐만 아니라, 조금 다른 폭탄도 만들어 내었다. 새 시대의 새 전쟁에 걸맞은 새로운 무기, 곧 독가스가 등장한 것이다.
하버가 독가스의 제조이론을 완성할 즈음, 같은 화학자이자 부인이던 클라라 임머바르[12]는 남편이 완성한 독가스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더이상 연구하면 안된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하버는 이를 무시했고 클라라 임머바르는 비탄에 빠져 자살해버렸다. 아내의 자살은 오히려 독가스의 개발을 억제하는 사람이 없어진 프리츠 하버의 연구를 진척시키는 촉매가 되었고 하버는 독가스의 실험검증을 마치게 된다. 실험검증을 통해 유효성을 확인한 하버는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독가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을 군상층부에 뿌리고 다녔다.
하버가 독가스 사용을 주장한 시대엔 대량살상무기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지만 살상목적의 독극물사용은 1899년 국제법으로 금지[13]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화포류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버는 독가스( 염소 가스)를 통나무에 넣어 묻어놓고 적들이 근처에 오면 병사들이 가서 터뜨리는 방법을 제안했고 독일 제국군은 이 방법을 통해 교묘히 국제법을 피해갈 수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군도 독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한 전적이 있기에 명분도 있어 신나게 공격을 하곤 했다.
국제법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반인륜적이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었고, 후에 하버 스스로도 이를 반성했다. 게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시작되었으므로 하버는 조국인 독일이 국제법을 위반해야 한다는 강요를 하고 다닌 것이다. 하버가 대놓고 국제법을 위반하자는 제안을 하고 다닐 수 있었던 건 그의 업적으로 독일의 모든 체제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하버가 확립한 공중질소고정법은 화약을 만드는 데도 필요했고, 농업에 필수적인 비료를 만드는 데도 필요했다. 독일은 식량과 무기, 비밀병기를 모두 하버의 화학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셈. 게다가 1차 대전 당시 독일 본토는 영국 해군에 가로막혀 해상으로 물자 보급이 막힌 상태였으니 하버의 업적이 없었다면 독일은 전선유지는 커녕 빠르게 고사했을지도 모른다.
독가스를 사용하자는 하버의 제안을 확인한 독일군 상층부는 종전 후 국제법 위반을 한 것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것이라 예측, 하버의 제안을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했고 최종적으론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내세워 하버의 독가스 사용 제안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하지만 하버는 군대의 상층부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수 있는 업적을 쌓아 올린 인물이고 전선고착이 장기화되자 상층부에서도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건 못하겠는가?" 라는 강경론자들의 주도로 독가스가 전쟁터에 투입된다.
그리고 엄청난 효과[14]를 거두며 하버의 뜻대로 독가스는 고착된 전선[15]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주요 전술이던 참호전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버린 독가스의 유용성은 독일과 대치중이던 연합군도 인정해 최초의 독가스 투입 후 6개월 뒤 연합군도 독일군의 참호에 독가스를 뿌려댔다.[16] 결국 독가스로 인해 양측은 엄청난 인명피해가 나왔고 오죽하면 1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한 초탄 중 30%는 가스탄[17]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하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 살상병기의 제작과 국제법 위반으로 인해 전범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종전 즈음 찾아온 유럽의 식량위기를 질소비료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 유럽이 인정해 주었고 독가스의 제작과 투입에 대한 책임문제는 연합군도 똑같이 독가스를 사용한 전적이 있어 독가스 발명자인 하버를 재판에 넘기게 된다면 독가스를 사용한 연합군이 재판에서 하버를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소리치는 웃기지도 않는 내로남불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가 전범이 되는 일은 없었다.
독가스 개발이라는 원죄가 있음에도 이러한 상황과 질소비료 개발이라는 업적을 바탕으로 하버는 1차 대전이 종전한 해인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한다.
2.4. 전후: 초라한 말년
조국을 위해 일한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 독일 상층부의 움직임에도 하버의 애국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부과된 독일의 패전배상금을 해결할 방도를 찾아내기 위해 바다에서 금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론을 완성시킨다. 이를 위해 발트해, 미국 연안까지 다 찾아보지만 막상 쏟아부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와버렸다. 그가 채산성을 계산하는 근거가 되었던 과거 논문과 자료에 있는 양보다 훨씬 작은 양의 금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한 하버는 채산성 문제[18]를 검토하여 적자가 확실시되자, 연구를 포기했다. 열성적으로 임하던 금 추출연구를 갑자기 관둬버리자 주변에선 “ 죽은 마누라가 말렸냐?”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고 한다.2.5. 나치당 집권 시기
나치당이 집권하던 때, 그에게 위험이 닥친다. 1933년까지 카이저빌헬름 물리화학·전기화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임하며 독일 화학의 발달을 주도하였던 그는 나치가 유대인[19] 공직 추방 명령을 발동하며 인생이 꼬인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말도 안 되는 요구라며 거절했고, 하버도 처음에는 거절하며 시간을 끌어 자기 휘하 유대인들을 미국이나 영국같은 나라로 탈출시키는 걸 도와준다. 이 때 하버는 1차대전 당시 독가스를 이용하게 만든 경력을 인정받아[20] 나가지 않아도 됐으나 대부분의 훌륭한 과학자가 유대인이었던 독일인 만큼 연구소는 망했다고 판단, 조국의 명령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말과 함께 자기 연구실을 뒤집어 엎고 연구소장직을 떠난다. 그의 하야 소식을 접한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그를 교수로 초빙했고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애국심이 동난 건지 하버는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참고로 나치가 집권한 것은 1933년 1월 30일, 사임 의사를 개인적인 편지에서 처음으로 밝힌 것은 그로부터 3달 후인 1933년 4월 30일이었으며, 독일을 떠난 것은 1933년 8월이었다.하지만 하필 출퇴근하는 곳 주변이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동네라 심신이 시달렸고 대학 내에서도 혹평을 받았다. 시달림을 참지 못하고 연구직에서 물러날 것을 생각하던 하버는 같은 화학자이자 이후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하임 바이츠만[21]에게서 새로 창립되는 다니엘 시프 연구소[22]의 소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아 영국을 떠난다.
2.6. 사망
영국을 떠난 하버는 다니엘 시프 연구소의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한 여정 도중 스위스의 바젤에 있는 호텔에서 자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고 유골은 바젤 근교에 있는 회른리(Hörnli) 공동묘지에 봉안되어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무리한다.3. 평가
전시에 학자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국에 속하고, 평시에는 인류에 속한다[23]. - 프리츠 하버
(Der Gelehrte gehört im Kriege wie jedermann seinem Vaterland, im Frieden gehört er der Menschheit)
1차 출처(비공개), 2차 출처(2번 각주)
맬서스 트랩에서 인류를 구원한 과학자이며 결과적으로 수십억의 생명을 인류에게 선물하였지만 동시에 대량살상 병기를 만들어내고 1차대전기 독일의 반인륜적 행위를 조장했다. 보는 시점에 따라서는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나 결국 조국에게 배신당한 비운의
과학자이기도 하며, 광적인 군국주의와 국수주의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가르친 상징적인 사례로 속한다.(Der Gelehrte gehört im Kriege wie jedermann seinem Vaterland, im Frieden gehört er der Menschheit)
1차 출처(비공개), 2차 출처(2번 각주)
조국인 독일에게 엄청난 애국심이 있었고, 독일의 발전과 번영, 위상을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노력과 걸맞은 성과도 거두었지만 주변국들로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반인륜적 대량살상병기를 만들었다고 평생 비판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국 중 가스병기를 사용하지 않은 진영은 없었지만 사용이 금지된 살상용 독가스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독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소비료 개발이라는 업적은 독가스 개발이라는 죄를 '위대한 과학자의 실책' 수준으로 덮어 버릴 수도 있을지 모를 정도로 엄청난 업적이긴 했다. 대다수 인류의 꿈이나 다름 없던 지속적인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면서 기아 퇴치의 해답을 만든 하버의 업적은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에도 인정받는 것이었으며,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적국이었던 영국에서도 러브콜을 보낼 정도의 과학자였다. 이런 공로로 독가스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독가스 피해자들이 멀쩡하게 살아 있던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고 이후 럼퍼드상까지 수상한다.
4. 기타
- 나치가 하버를 내쫓으려고 할 때, 막스 플랑크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유대인이라도 유능한 사람들은 인정해주어야 한다"며 하버를 비롯한 과학자들을 추방시키지 말라고 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유대인은 뭘 해도 유대인일 뿐"이라며 플랑크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는 자신이 사실상 추방시킨 것이랑 다를 바 없는 하버가 공동 연구자로 참여한 치클론 B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하버의 친척들이 이 독가스로 학살당한다. 그야말로 사실상 토사구팽한 것이랑 다를 바 없는 대상이 남긴 단물만큼은 남김없이 빨아먹은 셈이니 나치가 얼마나 파렴치하고 비양심적인 조직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24]
- 과학사에서는 앙투안 라부아지에와 함께 과학자의 윤리를 설명할 때 단골로 나온다. 다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버는 전쟁범죄에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업적을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이용하였고, 라부아지에는 가혹한 수탈자이되 그의 학문적 성취는 이러한 수탈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 1924년에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조선을 방문한 적이 있다.( #1924.12.25. 조선일보 기사)
- 하버의 유해가 묻힌 봉안묘에는 19년 전 독가스 개발에 반대하다 끝내 막지 못하자 이를 비관하며 먼저 세상을 등진 아내 클라라 임머바르의 유해도 같이 묻혀있다.( #)
- 미국의 역사학자로 미국 국제관계사를 연구해온 대니얼 임머바르 노스웨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부교수는 클라라 임머바르의 사촌인 막스 임머바르의 증손자다. 그는 자신의 저서 '미국, 제국의 연대기(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에서 이를 직접 언급했다. 클라라가 자살한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대계였던 임머바르 가문 사람들은 거의 초토화되었지만, 일부가 살아남아 대를 이었다는 것이다. 대니얼은 책에서 "다행히 모두가 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은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 그의 업적과 오명을 가리켜 인구 증가라는 난제 속에서 '식량을 늘린다'와 '인구를 줄여버린다'라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 천재과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5. 미디어에서
- 서프라이즈 2013년 1월 6일 방영분에서 다뤘다.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의 설정에서 하버가 배상금을 갚기 위해 바닷물에서 금을 추출하던 시도가 실패하고 이후 남은 데이터를 정리하다 나노 마테리얼이 발견되었다고 언급된다.
- 스웨덴의 메탈 밴드 Sabaton의 노래 'Father'의 주제가 프리츠 하버와 그의 독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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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Father
(1절)
A long ago in eastern Prussia
오래전 동프로이센에서
Young men with great ambitions rise
한 젊은이가 야망을 키웠지.
So who can tell me who can say for sure
누가 말할 수 있는가
Which one will win the Nobel Prize?
그가 노벨상을 탈지 말이지?
It was a golden age for science
과학의 황금기였지
The kaiserreich would hold the key
제국은 그 황금기의 키를 가졌지
And as the conflict came and tensions rose
그리고 분 쟁이 일어나고 긴장이 오르자
The menifest of the 93
93명이 서명을 했지 (독일제국에 대한 충성맹세)
Haber-Bosch, the great alliance
하버-보슈, 위대한 동맹
Where's the contradiction?
누가 여기서 부인을 하는가?
Fed the world by ways of science
과학으로 세계를 먹인
Sinner or a saint?
죄인인가? 성자인가?
Father of toxic gas, and chemical warfare
유독가스, 그리고 화학전의 아버지
His dark creation has been revealed
그가 만든 어둠의 물건이 드러났네
Flow over no man's land, a poisonous nightmare
무인지대에 퍼지고, 유독한 악몽과
A deadly mist on the battlefield.
전장엔 죽음의 안개가 펼쳐졌지.
(2절)
"Perversions of ideals of science."
"과학의 이상에 대한 악몽이에요."
Lost words of alienated wife
소외된 아내의 단발마
And in the trenches of the western front
그리고 서부 전선의 참호에선
Unknowing soldiers pay the price.
알려지지 않은 병사들의 목숨값이 치러졌지.
And on the battlefield they're dying
그리고 전장에선 사람이 죽어가고
And on the fields the crops are grown
그리고 들녂엔 곡물이 자라고 있지
So who can tell us what is right or wrong
그래서 누가 우리에게 공과 과를 물을 수 있는가?
Maths or morality alone?
수학 아님 도덕에 필적할만한 것?
Haber-Bosch, the great alliance
하버-보슈, 위대한 동맹
Where's the contradiction?
누가 여기서 부인을 하는가?
Fed the world by ways of science
과학으로 세계를 먹인
Sinner or a saint?
죄인인가? 성자인가?
(2번)
Father of toxic gas, and chemical warfare
유독가스, 그리고 화학전의 아버지
His dark creation has been revealed
그가 만든 어둠의 물건이 드러났네
Flow over no man's land, a poisonous nightmare
무인지대에 퍼지고, 유독한 악몽과
A deadly mist on the battlefield.
전장엔 죽음의 안개가 펼쳐졌지.
During times when there's peace he belonged to the world
평화로울때 그는 세상에 속했고
During times when there's war he belonged to his place of birth.
전쟁에서 그는 고향에 속했지.
Where, will this lead? What's coming next?
어디로 이게 이 어질건가? 다음은 무엇인가?
From your inventions?
발 명 품에서 말이지?
We wonder where, where does it end?
이게 어디서 끝날지 예측할 수 있을까?
Who can foresee, see what will be?
과연 누 가 이를 예측할 수 있을까?
Haber-Bosch, the great alliance
하버-보슈, 위대한 동맹
Where's the contradiction?
누가 여기서 부인을 하는가?
Fed the world by ways of science
과학으로 세계를 먹인
Sinner or a saint?
죄인인가? 성자인가?
(2번)
Father of toxic gas, and chemical warfare
유독가스, 그리고 화학전의 아버지
His dark creation has been revealed
그가 만든 어둠의 물건이 드러났네
Flow over no man's land, a poisonous nightmare
무인지대에 퍼지고, 유독한 악몽과
A deadly mist on the battlefield.
전장엔 죽음의 안개가 펼쳐졌지.
(1절)
A long ago in eastern Prussia
오래전 동프로이센에서
Young men with great ambitions rise
한 젊은이가 야망을 키웠지.
So who can tell me who can say for sure
누가 말할 수 있는가
Which one will win the Nobel Prize?
그가 노벨상을 탈지 말이지?
It was a golden age for science
과학의 황금기였지
The kaiserreich would hold the key
제국은 그 황금기의 키를 가졌지
And as the conflict came and tensions rose
그리고 분 쟁이 일어나고 긴장이 오르자
The menifest of the 93
93명이 서명을 했지 (독일제국에 대한 충성맹세)
Haber-Bosch, the great alliance
하버-보슈, 위대한 동맹
Where's the contradiction?
누가 여기서 부인을 하는가?
Fed the world by ways of science
과학으로 세계를 먹인
Sinner or a saint?
죄인인가? 성자인가?
Father of toxic gas, and chemical warfare
유독가스, 그리고 화학전의 아버지
His dark creation has been revealed
그가 만든 어둠의 물건이 드러났네
Flow over no man's land, a poisonous nightmare
무인지대에 퍼지고, 유독한 악몽과
A deadly mist on the battlefield.
전장엔 죽음의 안개가 펼쳐졌지.
(2절)
"Perversions of ideals of science."
"과학의 이상에 대한 악몽이에요."
Lost words of alienated wife
소외된 아내의 단발마
And in the trenches of the western front
그리고 서부 전선의 참호에선
Unknowing soldiers pay the price.
알려지지 않은 병사들의 목숨값이 치러졌지.
And on the battlefield they're dying
그리고 전장에선 사람이 죽어가고
And on the fields the crops are grown
그리고 들녂엔 곡물이 자라고 있지
So who can tell us what is right or wrong
그래서 누가 우리에게 공과 과를 물을 수 있는가?
Maths or morality alone?
수학 아님 도덕에 필적할만한 것?
Haber-Bosch, the great alliance
하버-보슈, 위대한 동맹
Where's the contradiction?
누가 여기서 부인을 하는가?
Fed the world by ways of science
과학으로 세계를 먹인
Sinner or a saint?
죄인인가? 성자인가?
(2번)
Father of toxic gas, and chemical warfare
유독가스, 그리고 화학전의 아버지
His dark creation has been revealed
그가 만든 어둠의 물건이 드러났네
Flow over no man's land, a poisonous nightmare
무인지대에 퍼지고, 유독한 악몽과
A deadly mist on the battlefield.
전장엔 죽음의 안개가 펼쳐졌지.
During times when there's peace he belonged to the world
평화로울때 그는 세상에 속했고
During times when there's war he belonged to his place of birth.
전쟁에서 그는 고향에 속했지.
Where, will this lead? What's coming next?
어디로 이게 이 어질건가? 다음은 무엇인가?
From your inventions?
발 명 품에서 말이지?
We wonder where, where does it end?
이게 어디서 끝날지 예측할 수 있을까?
Who can foresee, see what will be?
과연 누 가 이를 예측할 수 있을까?
Haber-Bosch, the great alliance
하버-보슈, 위대한 동맹
Where's the contradiction?
누가 여기서 부인을 하는가?
Fed the world by ways of science
과학으로 세계를 먹인
Sinner or a saint?
죄인인가? 성자인가?
(2번)
Father of toxic gas, and chemical warfare
유독가스, 그리고 화학전의 아버지
His dark creation has been revealed
그가 만든 어둠의 물건이 드러났네
Flow over no man's land, a poisonous nightmare
무인지대에 퍼지고, 유독한 악몽과
A deadly mist on the battlefield.
전장엔 죽음의 안개가 펼쳐졌지.
[1]
21세기인 지금도 기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미 지구 전체의 식량의 생산량은 소비량을 한참 웃돈지가 오래다. 그럼에도 굶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후진국의 낙후된 인프라로 인한 유통 문제, 부패된 정치, 사회 불안, 결정적으로 남아도는 식량을 공짜로 뿌리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에 차라리 폐기하는게 더 낫다는 경제적 문제 등에서 기인한다.
[2]
실제로 비료 연구를 하다가 엉뚱하게 신화약을 발견한 사례들이 당시에 여럿 있으며,
니트로글리세린도 그 중 하나다.
[3]
니트로글리세린과 그에 기반한 다양한 화약들의 발전이 진행된 19세기 말에는 이미 오줌을 이용해서 비료를 만들기에는 화약이 너무나 많이 필요하였으므로 대부분의 질소가 초석에서 공급되게 된다.
[4]
원래 질소고정법은 하버 이전에도 연구되고 있던 분야였고, 1903년
노르웨이에서도
크리스티안 비르켈란이란 이름의 공학자가 질소고정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비르켈란 방식은
수력발전소 하나를 새로 세워야 할 만큼 비효율적이었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하버 방식에 밀려 도태되었다.
[5]
절대 과장이 아닌게 화학비료의 대중화 전 1800년대의 인류의 인구는 고작 10억 안팎이었으나 화학비료의 발명과 대중화로 200년도 안 돼서 2022년 인구는 80억이 되었다.
윌리스 캐리어의 공조 장치의 개발로 인한 냉장고, 에어컨 발명 및 의학 발전도 인구 증가의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지속적인 식량 생산이 없었으면 의미가 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6]
또한 통념적으로 공해 및 환경오염의 증가 원인을 산업 발전에서 찾지만, 반대로 효율성 낮은 기술의 사용 등으로 인하여 생산물의 양이 같아도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식의 환경오염도 상당하다. 일례로 원자력 발전과 화력 발전으로 생산되는 전기와 공기중에 배출하는 탄소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공중질소합성법이 없었다면 식량 생산의 효율이 떨어져서 인구부양력은 지금보다 낮으면서도 다른 자원을 더 심하게 낭비했을 것이다.
[7]
다만 인구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인류가 멸망했다면 인구 폭발이 일어난 이후 다른 문제들로 고통 받는 세대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의 숫자 자체는 훨씬 적어지니 이것도
비동일성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8]
다만 질소 화합물 사용은 필연적으로 약간의
아산화 질소를 부산물로 유발하는데, 이 물질은
이산화 탄소보다 200~300배나 강력한
온실가스다. 극소량만이 대기에 유출되었음에도 이산화탄소의 30% 만큼 온실효과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아산화 질소 발생의 79% 가량이 비료에서 나오지안 질소 비료 없이 인류가 굶어 죽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기후 변화를 직격으로 맞는게 낫다.
[9]
인분
퇴비 농업으로 인한 기생충 문제는
고대 로마의 화장실에서도 기생충 알이 발견될 정도로 인류와의 지독한 악연이었다. 이러한 기생충 문제는 19세기 질소 비료의 등장으로 많이 해소되었다. 한국 역시도 불과
1960년대만 해도 전국민 대다수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지만, 화학공업의 발달과 함께 화학비료가 한국에 대량 공급되면서 불과 10여년 만인
1980년대부터 기생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되었다. 현대 국가들 중에서 적어도 깨끗한 식수가 보장되는
제1세계 국가들은 농산물로 인한 기생충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이
대남도발의 일환으로
똥풍선을 날렸지만 남한에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는 고사하고(물론 차량 및 재물 파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물 속
기생충 알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지면서 비웃음 및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0]
비단 한국만 해도
조선 시대 당시에는 농사에 필요한 일손 때문에 군사력을 크게 늘리기 어려웠지만 1960년대 전후로 화학공업의 발달과 함께 화학비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각종 군사력 증강에 자원을 마음 껏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11]
물론 현대에도 빈곤국에서 아이들이 굶어죽는게 심심찮게 발생하지만 이는 식량과 부의 불균형한 분배 때문이지 식량의 절댓값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근이 비상사태인 나라는 있어도 기근이 일상인 나라는 전멸했다. 식량 자체가 모자라 굶어죽는 것은 프리츠 하버의 질소 고정법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12]
하버와 마찬가지로 유대계였고,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었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13]
1899년 헤이그 조약 제3장 제2조 23항
#. Besides the prohibitions provided by special Conventions, it is especially prohibited: To employ poison or poisoned arms; To kill or wound treacherously individuals belonging to the hostile nation or army; To kill or wound an enemy who, having laid down arms, or having no longer means of defence, has surrendered at discretion; To declare that no quarter will be given; To employ arms, projectiles, or material of a nature to cause superfluous injury; To make improper use of a flag of truce, the national flag, or military ensigns and the enemy's uniform, as well as the distinctive badges of the Geneva Convention; To destroy or seize the enemy's property, unless such destruction or seizure be imperatively demanded by the necessities of war.
[14]
살상 능력 이전에 당시 막 보급되던 연막탄을 독가스인양 자신만만하게 쏴대면 상대측이 쫄아서 도망치는 일종의 공포효과가 나왔다.
[15]
당시 주요 전술은
참호전이었는데 독가스를 참호에 뿌리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버린다. 독가스가 오면 좋건 싫건 참호전을 더 이어갈 수 없는 셈이다.
[16]
이때 연합군의 가스전을 주도한 사람이 191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빅토르 그리냐르(Victor Grignard)다.
유기화학에서 지겹도록 접할 수 있는 환원제 그리냐르 시약의 그 그리냐르.
[17]
물론 모두 독가스탄은 아니다. 연막이나 신호연막등도 이에 포함된다.
[18]
독일의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진행하니 무조건 흑자가 나야한다.
[19]
프리츠 하버는 유대인이었으나 이미 어린 시절에
개신교로 개종해서 유대인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었다.
[20]
나치 초기에는 1차 대전 때 군인으로 참전했던 유대인은 건드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런 거 없었지만 말이다.
[21]
바이츠만은 영국 태생 유대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화약 제조에 필수적인
아세톤 생산법을 개선한 공로가 있었다. 진영은 반대였지만 같은 유대인인데다가 하버와 똑같은 일을 한 것이라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22]
Daniel Sieff Research Institute, 현재 이스라엘의 Weizmann Institute of Science.
[23]
후술하겠지만 정말 극한의
언행일치를 보여주었다.
[24]
그런데 이걸 나치가 '쫓아냈다'고 보기는 애매한 게, 원래 나치는 하버는 독일에 그대로 두려고 했으나 하버가 스스로 나간 것이며, 심지어 '토사구팽'이라 하는 것조차 애매한 게 나치는 하버가 독일에서 현역이던 동안 하버를 제대로 써먹은 적이 없었고, 치클론 B는 나치의 등장 이전인 1920년대 초에 만들어졌기에 나치가 하버를 등용해 유대인을 학살한 독가스를 만들라 해놓고는 다 만들자 그 즉시 유대인이라는 핑계로 쫓아낸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토사구팽 후 자신에게 필요하다며 그 대상이 남긴 것을 다시 써먹은 것까지는 아니고, 나치가 집권한 지 얼마 안 되어 하버가 망명을 떠나 하버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채 시간이 지난 후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최적'의 독가스를 찾았더니 알고 보니 유대인 하버가 만든 것이었다는 운명의 아이러니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