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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3:44:18

프리드리히 메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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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요아힘프리드리히 마르틴 요제프 메르츠
Joachim-Friedrich Martin Josef Merz
파일:Joachim-Friedrich_Martin_Josef_Merz.jpg
<colbgcolor=#52B7C1> 출생 1955년 11월 11일 ([age(1955-11-11)]세)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브릴론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학력 본 대학교 / 마르부르크 대학교 ( 법학)
종교 가톨릭
가족 배우자 샤를로테 메르츠 (1981년~)
자녀 3명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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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5 (하원)
지역구 호흐자우어란트
약력 CDU/CSU 원내대표 (2000-2002)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2022- 현직)
SNS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
2.1. 학창시절과 정계입문 초기2.2. 메르켈과의 갈등, 그리고 정계 은퇴2.3. 정계 복귀와 2018년 기민련 대표 선거2.4. 2021년 1월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선거2.5. 제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2.6. 2021년 12월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선거2.7.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시절
3. 정치 성향4. 논란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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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정치인. 제10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당대표.

전임 당대표인 앙겔라 메르켈이나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아르민 라셰트와는 달리 당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유럽의회 의원, 기독교민주연합 부의장을 거쳐 2000년부터 2002년까지 CDU/CSU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의 당내 권력 투쟁에서 패해 2009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후 한동안 민간 기업에서 활동하다가 2018년, 메르켈의 후계자를 뽑는 기민련 대표 선거를 앞두고 난민 사태가 촉발시킨 반이민 여론에 힘입어 정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2018년 당대표 경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에게 패했고, 그녀가 퇴임하면서 치러진 2021년 1월 당대표 경선에 다시 도전했으나 메르켈의 지원을 받은 아르민 라셰트와 '당내 온건 vs. 강경' 구도로 대결한 끝에 결국 패했다.

이후 제20대 연방 총선에서 기민련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원내에 복귀하였다. 자당이 사민당에게 패하고 연립정부 구성도 하지 못하며 야당으로 밀려나면서 아르민 라셰트 대표가 사임했고, 그 후임을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 도전하여 마침내 당대표의 자리에 올랐다.

당대표 취임 이후 제1야당의 선명성을 내세우며 정부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의 3당 연정이 내부 갈등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겪으면서 자당을 지지율 1위 정당으로 이끌고 있다. 다만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지율을 높이며 추격해오면서 극우의 득세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중. 일단은 AfD와 그 어떤 협력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다.

2. 생애

2.1. 학창시절과 정계입문 초기

1955년 11월 11일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브릴론(Brilon)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2007년 탈당할 때까지 판사이자 기독교민주연합 당원이었고, 모친은 위그노 조상을 둔 브릴론의 저명한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1975년 아비투르 시험을 마친 후 육군에 입대해 복무했고, 본 대학교와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72년 기독교민주연합의 청년 조직에 가입했고[1],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판사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89년에 유럽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4년에는 호흐자우어란트 선거구[2]에 기민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연방의회에 등원했고, 금융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금융 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에는 기민련 부대표로 선출되었고, 볼프강 쇼이블레 대표 체제에서 그림자 내각에 입각하는 등 쇼이블레의 총애를 받았다. 2000년에는 원내대표에 선출되었으나, 2002년 라이벌이자 당 대표인 앙겔라 메르켈에게 원내대표직을 넘겨준 후에 별다른 요직을 맡지 못하다가 2009년 선거에서는 불출마하고 정계를 떠나 민간 경제·금융 분야에서 활동하며 여러 기업의 이사회 구성원을 지냈다.[3]

2.2. 메르켈과의 갈등, 그리고 정계 은퇴

헬무트 콜을 정계에서 은퇴시키고 볼프강 쇼이블레 대표를 물러나게 한 기부금 스캔들 이후 앙겔라 메르켈이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원내대표로 각각 선출되었다. 앙겔라 메르켈은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16년간 장기 집권에 성공한 지금과는 달리 당시만 해도 그저 얼굴마담 정도로 여겨졌고, 2002년 선거를 앞두고 메르츠가 소속된 안데스 그룹은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의 에드문트 슈토이버를 총리후보로 밀도록 메르켈을 압박했다.[4] 하지만 그렇게 나선 2002년 선거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에게 접전 끝에 다시 한번 패하면서 입지가 위축되었다.

이 일종의 쿠데타 시도에서 메르켈에게 안데스 그룹의 존재가 알려졌고, 선거 직후 메르켈은 메르츠를 원내부대표로 밀어내고 직접 원내대표직을 겸임하면서 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메르츠의 자리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로부터 3년 뒤인 2005년 선거에서 7년만에 승리를 거두고 사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면서 총리직에 오른 메르켈은 메르츠를 아예 평의원으로 좌천시켰고, 메르츠는 결국 2009년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를 떠났다. 이후에도 메르켈과 지속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2018년 대표 선거 당시에는 그들이 함께 일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메르츠가 주장했음에도 메르츠가 대표가 되면 메르켈이 물러날 수밖에 없으리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을 정도. #

2.3. 정계 복귀와 2018년 기민련 대표 선거

2018년 기민련 대표 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정계 복귀를 선언한 메르츠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원하는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당 사무총장(이후 국방장관), 옌스 슈판 보건장관과 대결하게 되었다.

장기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볼프강 쇼이블레 연방의회 의장 등의 지원을 받으며 1차 투표에서 392표를 획득해 2위로 2차 투표에 진출했지만, 2차 투표에서 482:517로 접전 끝에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사무총장에게 패하면서 다시 한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9년만의 정계복귀에도 메르켈의 후계자와 혈전을 펼치면서 존재감을 재확인한 점은 소득.

2.4. 2021년 1월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선거

2018년 대표 선거에서 승리했던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는 2019년에 들어서면서 지도력 부족으로 당내 입지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튀링겐 주총리 선출 논란에 휩싸이며 2020년 2월 사의를 표명하게 되었다.

2018년 선거에 이어 두번째로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메르츠는 크람프-카렌바우어 재임 시절부터 총리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의회 외교위원장과 3파전으로 대표 선거를 치르게 된다.

여론조사에서 대체적으로 1위를 고수하던 메르츠는 2021년 1월 15일의 1차 투표에서 5표차로 아르민 라셰트를 꺾고 2차 투표에 진출했으나, 당초 목표로 했던 400명대의 대의원 확보에 실패한데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뢰트겐 위원장 지지표를 흡수하는 데 실패하면서 521:466로 패배하고 만다.

2.5. 제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제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원래 자신의 지역구였던 호흐자우어란트(Hochsauerlandkreis) 선거구에 출마, 지역구 현역 의원이었던 파트리크 젠스부르크(Patrick Sensburg)를 밀어내고 기민련의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 #

본선에서도 무난히 당선되어 12년만에 연방의회에 재입성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전반의 기민련 득표율 감소는 메르츠 역시 피해가지 못했고, 2017년 선거 대비 지역구 득표율이 7.5%, 정당투표율은 8.2%나 감소[5]하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2.6. 2021년 12월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선거

선거 패배로 아르민 라셰트 대표가 당 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가운데 당의 개편(당원의 선거 참여 등)을 주장하며 대표 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당원 투표가 도입된 후 최종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자신과 함께 2021년 1월 대표 선거에도 도전했던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의회 외교위원장, 4차 메르켈 내각의 연방총리청 청장이었던 헬게 브라운과 경쟁하게 된 상황.

사실 간접 선거로 진행된 1월의 대표 선거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을 정도로 원래부터 기민련 내에서 메르츠의 지지 기반이 존재하고 있었던 데다가 2021년 총선에서 친메르켈 성향의 중도파 대표 아르민 라셰트가 선거를 말아먹고 그야말로 몰락하면서 반메르켈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메르츠의 기민련 당내 입지가 매우 커졌다. 현재 기민련 당원 대상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대표 선거는 지난번과 달리 대의원의 간접 선거가 아니라 기민련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대로 메르츠의 승리가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1차 선거에서 바로 과반을 획득하느냐, 아니면 간발의 차로 실패해 결선 투표로 가느냐 정도의 문제만 남아있는 셈.

결국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훌쩍 넘는 62.13%의 득표율로 압승해 결선 투표 없이 차기 대표로 내정되었고, 2022년 1월 22일 열릴 제34차 전당대회를 통해 공식 선출됐다. # 공교롭게도 자신을 정치적으로 몰락시킨 메르켈이 사라지자마자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셈.

2.7.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시절

2022년 1월 22일, 전당대회를 통해 아르민 라셰트의 뒤를 이어 공식적으로 당 대표로 취임했다. #

대표 취임 이후 5일이 지난 27일, 현재 CDU/CSU 연방의회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랄프 브링크하우스가 직을 포기하기로 하면서 원내대표 직까지 겸임할 예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전 메르켈 당시 대표가 메르츠를 원내대표에서 밀어낼 때랑 비슷한 모습이라는 분석. #

극우 정당인 AfD와 지방정부 차원에선 연정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크게 논란이 되자 트위터를 통해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건대 CDU는 AfD와 지방정부 수준에서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발언을 철회했다. #

2025년까지 기민련 지지율이 1위로 유지되고 집권 연정의 지지세가 지지부진할 경우 차기 독일 총리로 등극할 가능성이 꽤 있는 인물이긴 하나 정책적으로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자주 보이고 우파 색채가 진하기 때문에 내외부 견제가 강한 편이기도 하다. 또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인 헨드릭 뷔스트나 마르쿠스 죄더 기사련 대표도 유력한 경쟁자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거의 70세인 고령인지라 마이너스 요인이다.[6]

실제로 2024년 3월 22일 진행된 ZDF 여론조사에서 기사련 지지층뿐만 아니라 기민련 지지층에서조차 죄더 기사련 대표가 34%로 1등, 헨드릭 뷔스트 주총리가 29%로 2위였고 메르츠 현 대표는 20%로 3위에 그쳤다.

2024년 5월 7일 전당대회에서 89.8%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 당대표직을 연임하게 되었다.

2024년 9월 17일, 기독교민주연합 기독교사회연합의 공동 발표에 따라 내년으로 예정된 연방의회 선거의 CDU/CSU 총리 후보자로 결정되었다.

3. 정치 성향


4. 논란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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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 의원직 사퇴하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미하엘 자허가 비례대표로 의원직 승계. [2] 2022년 사망. 비례대표로 다니엘 링커트가 의원직 승계 [3] 2023년 의원직 사퇴하고 러시아 외교관으로 파견감. 카타리나 빌콤이 의원직 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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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민련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던 중인 1979년에는 기민련 청년 조직의 남성 정치인 전용 비밀 조직인 안데스 그룹(기민련 청년 조직의 구성원들이 칠레 방문에서 귀국하는 중 결성한 것에서 유래)의 일원이 되었다. [2]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해있다. [3] 대표적인 경력으로는 2016년에 맡은 블랙록의 독일 법인장이 있다. [4] CDU/CSU 역사 내내 기사련이 총리후보를 낸 선거는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총리후보로 나선 1980년 선거와 이 선거가 전부였다. [5] 당시에는 파트리크 젠스부르크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섰다. [6] 이는 다음 총리 재선 또는 3선할 때, 80세를 눈앞에 두기 때문이다. [7] 정작 본인은 2020년 3월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바 있다(...) [8] 아르민 라셰트는 11%(...)로 슈판과 뢰트겐에게도 밀렸다. 반대로 정계 엘리트들 중에서는 메르츠가 18%로 3위를 기록하고 라셰트가 35%로 1위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