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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7:26:27

마르쿠스 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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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바이에른주 제11대 주총리
마르쿠스 토마스 테오도르 죄더
Markus Thomas Theodor Söder
파일:Markus_Söder_2019_1.jpg
<colbgcolor=#0099d5> 출생 1967년 1월 5일 ([age(1967-01-05)]세)
서독 바이에른 뉘른베르크
국적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학력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 에를랑겐-뉘른베르크 ( 법학)
재임기간 제11대 바이에른 주총리
2018년 3월 16일 ~ 현직
정당

배우자 카린 바우뮐러
자녀 4명
종교 기독교 ( 개신교, 루터회)
경력 제11대 바이에른 주총리
제9대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대표

1. 개요2. 생애3. 논란4. 여담

[clearfix]

1. 개요

독일의 정치인이자, 현직 바이에른 주총리 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의 대표다.

2. 생애

1994년부터 바이에른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계속해 지역 정계에서 활동했는데 2005년 연방하원 선거 직후에는 CDU/CSU의 연정협상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대연정을 통해 앙겔라 메르켈 내각을 출범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중앙 정계에도 존재감을 보였다.

이후에는 다시 지역 정계에서 호르스트 제호퍼 주총리 아래 무려 7년간 주 재무장관 직을 지내면서 체급을 계속 키웠고 결국 2018년 3월, 제호퍼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의 11대 주총리로 선출되었다.

취임 직후 열린 주의회 선거에서 전후 최저 성적인 37.2% 득표에 그치면서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해 정치적 위기에 몰렸으나, 자유 유권자의 도움으로 연정을 출범시키면서 자리를 유지했다.

2.1. 제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독일 내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자 강력한 방역으로 전국적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20년 5월까지만해도 독일 국민들의 53%가 죄더를 메르켈의 후임 총리로 선호하는 등 유력한 차기 독일 총리 후보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3개월 후인 8월 1일, 자신이 머무를 곳은 바이에른이라며 사실상 연방총리직 도전의 뜻을 접은듯 했다. #

그런데 2021년 1월, 기민련에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인 아르민 라셰트가 신임 총재로 선출되면서 마음이 바뀌었는지 기사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일부 기민련의 지방 세력과 손을 잡고 라셰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히 한때 기민련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라셰트보다 죄더의 지지도가 높아지면서 대망론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

두 후보가 지속적으로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한 합의를 시도했지만 무산되면서 결국 중앙위에서 표결을 통해 총리 후보를 결정하게 됐고 결국 4월 19일 기민련 중앙위가 표결을 통해 라셰트를 CDU/CSU의 최종 총리 후보로 지명하면서 이에 승복하고 최종 사퇴했다.

라셰트가 후보로 선출된 이후, 재난 현장에서의 폭소 논란 등 연이은 자폭으로 CDU/CSU의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해 기어이 사민당에 역전당하는 결과까지 나오자 후보를 앙겔라 메르켈 총리나 죄더로 다시 교체해야한다는 얘기도 나왔으나, 선거까지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당시 총리 후보로서의 지지도가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부총리와 비슷하게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후보 교체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또 선거가 어떻게 흘러갔을지는 모를 일.

한편 총선을 앞둔 9월 10일, 87.6% 득표율로 기사련 당대표 재선에 성공했다. #

이후 바이에른 주에서 아르민 라셰트 후보자와 CDU/CSU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면서 유세를 지속했지만 선거 결과 바이에른 주의 지역구 하나(뮌헨 남부)를 녹색당에게 빼앗기면서 46석 전석 석권에 실패하는 나름대로는 굴욕을 당했다. 기사련이 바이에른 전 지역구를 석권하지 못한건 2005년 이후 16년만에 처음이다. 득표율도 31.7%로 지난 총선 대비 7.19%p나 감소했는데, 이는 1949년 이후 72년만에 기록한 가장 나쁜 성적이다.

개표가 끝난 후, 죄더 역시 인터뷰에서 CDU/CSU가 패했고, 연정 구성 권한이 사민당과 숄츠 부총리에게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여전히 신호등 연정이 실패했을 때 재집권할 수 있는 작은 틈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

결국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이 연정 협상을 완료하고 올라프 숄츠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CDU/CSU는 야당으로 전락했다.

3. 논란

죄더 주총리는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과는 다르게 이민자, 이슬람, 기독교 등에 대해서는 단순 우익적, 또는 극우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 논란이 되었다.

2018년, ZDF와의 인터뷰에서 죄더는 이슬람이 독일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하지만 독일에 거주하면서 세금을 내고, 일하고, 참여하고, 독일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무슬림들은 사회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6월, 죄더는 망명 관광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난민들의 이민을 관광으로 묘사하여 비난받았다. 이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연방대통령은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하라고 경고했으며 죄더는 '망명 관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24일, 바이에른 주정부는 바이에른 모든 사무실 건물에 십자가를 부착해야 한다고 결정했는데, 죄더가 십자가는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바이에른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독일 개신교회, 가톨릭 등 기독교계 지도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자유민주당 대표인 크리스티안 린트너 또한 죄더가 십자가를 문화적 상징으로 선언하여 십자가를 기독교적 의미와 분리시켰다고 비판했다.

4.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