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도 아는 거죠, 그 정도 저고도 비행은 미친 짓인 걸.”
― 영화 《
탑건: 매버릭》 중
빠른 속도를 가진 항공기들이 삐끗하는 순간 부딪힐 수 있는 좁은 골짜기 사이를 구불구불한 계곡을 따라서 날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매우 어려운 조종 실력을 요구하는 위험한 비행술이다. 회전익기인 헬기는 그나마 낫지만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고 속도도 더 빠른 고정익 항공기, 그 가운데 전투기들은 특히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이 장면이 나오는 창작물에서도 작중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매우 어렵고 위험한 미친 비행술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전투기들이 속도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높은 고도에서의 비행 장면과 달리 낮은 높이에서 가깝게, 빠르게 지나가는 지형지물 등의 배경과 함께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속도감과 박진감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기가 나오는 창작물에서 제법 자주 쓰이는 클리셰다.
전술했듯이 매우 위험한 행위라서 평소에는 굳이 할 일이 잘 없기 때문에 해야할 때는 보통 두 가지 이유로 나뉜다.
적의
레이더망 피하기
저공침투비행의 한 갈래로서 저공비행을 하면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기에 이를 피해 적진에 있는 공습 목표물에 접근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걸 방지하기 위해 저고도 레이더와 국지방공 레이더들을 깔아두는데 빈틈을 채운다는 의미에서 이를 '갭필러 레이더'라고도 한다. 그리고 작전 전에 전자전기가 떠서 주변 레이더 정보를 싹 긁어오는데 이를 엘린트(ELINT, Electronic Intelligence)라고 한다. 그런 뒤 방공망의 구멍을 찾아서 그쪽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물론 미군의 경우엔 전자전기가 엘린트 바탕으로 그냥 재밍해서 레이더 먹통 만들고 들어가는 간단한 선택을 하긴 하지만 이것도 창과 방패라 국방력이 쓸만한 나라에는 쉽게 되지 않는다.
도그파이트
두 대 이상의 전투기끼리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던 도중 두 쪽 다 협곡 사이에 들어와 그 좁은 공간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게 벌어지는 주된 전개는 어느 한쪽이 적에게
꼬리를 잡혀 쫓기고 있을 때 쫓기는 쪽이 적의 추격을 따돌리거나, 적기가 자신을 쫓아오다 협곡에 부딪히게 해서 역으로 간접 격추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적의 입장에서 조준과 사격을 어렵게 만들어 공격을 피하기 위해 협곡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도 위험한 환경에 뛰어드는 일인 만큼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야 시전하는 편.
협곡 비행은 창작물적 상상력만은 아니다. 위 영상에서 보듯 에어쇼 같은 곳에서 직접 시연한 사례들이 많으며,
저공침투비행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는 것을 피하려고 낮은 고도로 지형에 따라 날아가는 전술은 실존하며,
KAI 소속 테스트 파일럿은 영화 《
탑건: 매버릭》을 리뷰하는 영상
#에서 작전의 현실성 관련 질문에 대해 영화 속 지형이 비현실적이지만 계곡 사이로 저고도 침투하는 전술은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저고도 침투가 아닌 추격전 유형에서도 현실에서 전투기끼리 근접 협곡 전투를 벌인 사례가 있다.
1966년
11월 13일
앗사무 사건[7] 때
이스라엘 공군 소속
미라주 III 전투기의 조종사인 로넨이 자신을 따돌리기 위해 협곡으로 들어간
요르단군 소속
호커 헌터 전투기를 쫓아 들어간 것. 이 적의 헌터 조종사도 실력이 뛰어난 조종사였는지 협곡 사이를 능숙하게 날아다녀 로넨의 미라주가 한동안 자신을 쏠 수 없게 만들었고 실제로 로넨을 따돌릴 뻔한 때까지 갔으나 앞에 나타난 언덕 때문에 간발의 차로 격추되었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엄밀히 말하면 터널 '비행'은 아니다. 나치 파일럿이 비행기를 타고 인디와 그의 아버지 헨리를 뒤쫓는데, 인디와 헨리는 자동차를 타고 도망가고 있었기에 터널로 피신한다. 근데 이 파일럿이 이들을 따라 좁은 터널 안으로 날아들어가는 정신 나간 짓을 해서 날개가 부러지고 비행기는 불타는 채 땅에 추락해 미끄러져 간다. 이 와중에 인디 일행의 옆을 지나쳐가는데, 얼빠진 파일럿의 표정이 일품(…)이다. 결국 터널 밖으로 나오자마자 폭사한다.
인디펜던스 데이:
데이비드 레빈슨이 스티브와 함께 노획 외계 전투기를 몰고 외계 모함에서 보호막 해제 바이러스를 심은 뒤 핵미사일을 직격시키고 탈출하는 과정이 터널 비행이다.
그나마 현실성이 있는 협곡 비행과 다르게 현실에서의 터널 비행은 단 하나의 사례만 있으며, 그나마도 초경량 항공기에 직선 도로상에서 출발해서 그대로 직진으로만 비행했다. 창작물에서처럼 전투기가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예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전투기의 터널 비행이 나오는 작품들은 대부분 SF 작품이라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터널보다 훨씬 넓어서 전투기의 폭보다 몇 배 더 넓은 던전 같은 공간의 터널들인 것이 특징이라 현실에서는 그만한 넓이의 터널이 거의 없으며, 넓이가 되더라도 터널에 들어가는 순간 난기류 때문에 제대로 된 조종이 불가능하다.
[1]
마셜-길버트 공습 장면에서 리처드 딕 베스트와 제임스 머레이가 탄 SBD 돈틀리스가 폭격을 마친 직후 제로센에게 쫓길 때 비슷한 게 잠시 나오는데 사실 협곡 비행이라기 보다는 산맥 비행에 가깝다. 여담으로 실제 마셜-길버트 제도에 저런 산지는 없었다고 한다.
[2]
경로에 물길이 이어져 있기는 한데 협곡이 아니라 강이며, 그 강도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레이더망만 피하면 된다.
[3]
마찬가지로 협곡 비행이라기 보다는 산맥 비행에 가깝다.
[4]
이 장면에 들어간 음악의 제목도 'Canyon Dogfight'다.
[5]
영화 탑건을 베이스로 한 닌텐도 DS 게임.
[6]
에이스 컴뱃 시리즈를 오마주한
캠페인.
[7]
제3차 중동전쟁 직전 시기
[8]
정확히는 터널이 아니라 해상 플랫폼
[9]
Last Hope와 맵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