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의 자연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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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산 胎峰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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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121번지 일원 |
높이 | 52.9m |
면적 | 약 10,000㎡ |
1. 개요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121번지 일원에 있었던 조그만 산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산이 있던 곳을 지나가는 무등로에 '태봉산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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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설명1] | 1955년[설명2] |
2.1. 태봉산 설화
태봉산에는 아래와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시대 1624년(
인조 2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와 왕비는 피난을 가게 되었고, 피난 중에 왕자(
용성대군 이곤)를 얻었으나[3] 어린 왕자가 잔병이 많아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근심 끝에 왕비가 백일 불공을 드리자 꿈에 도사가 나타나 "왕자의 태를 묻은 곳은 땅 기운이 불순하여 태를 괴롭혔기 때문이니 광주 고을 복판에 있는
여의주(如意珠) 모양의 둥글고 작은 산에 태를 옮기고 금을 태와 함께 묻으라."라고 하여서 왕자의 태를 이곳에 이장하였더니 병이 나았고, 그래서 태봉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사실 이 설화는 아마추어 역사가 야마모토 데스타로(山本哲太郞)의 <광주군사(1934)>를 기반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1928년 태실과 지석이 발견되기까지 태의 주인은 밝혀져 있지 않았고, '왕족의 태가 묻혀 있다'고만 알려진 상태였다. 1872년 광주 지도에 '고려왕자태봉'이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용성대군이 어린 나이에 사망하여 인지도가 없었을뿐더러,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산 꼭대기에 비석이 세워져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마모되어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조광철,2015(1)][조광철,2015(2)]2.2. 태실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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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태실의 모습 |
皇明天啓四年九月初三日辰時 誕生王 王男大君阿只氏胎 天啓五年三月二十五日藏
천계 4년(1624년) 9월 3일 진시에 대군 아기씨(阿只氏)를 낳았고 그 태를 천계 5년(1625년) 3월 25일에 묻는다
- 지석(誌石)에 적힌 명문[서구문화원,2018]
1928년
7월, 광주에
가뭄이 심하게 들자 마을의 나이 많은 노인들은 태봉산에 누군가 몰래 무덤을 써서 재앙이 닥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7] 산 꼭대기를 파헤쳤다. 그러자 돌로 된 태실이 나왔고, 그 안에는 태가 담긴 항아리와 지석, 금박이 있었다. 지석에 적힌 내용으로 말미암아 태의 주인이
용성대군임이 밝혀졌다.[조광철,2020]천계 4년(1624년) 9월 3일 진시에 대군 아기씨(阿只氏)를 낳았고 그 태를 천계 5년(1625년) 3월 25일에 묻는다
- 지석(誌石)에 적힌 명문[서구문화원,2018]
[clearfix]
2.3.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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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태봉산과 경양지천 배수로 |
[설명1]
태봉산 남서쪽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멀리 보이는 언덕은 현
전남대 용봉캠퍼스(1955년 사진을 찍은 곳), 그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은
삼각산이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언덕은 옛 경양역촌(현
무등산자이&어울림), 앞쪽의 제방은 옛
동계천으로 추정된다.
[설명2]
전남대 사회과학대 언덕(1915년 사진 왼쪽 언덕)에서 남동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사진 오른쪽에 태봉산이 있고 그 왼쪽에 구
사레지오고(현 중흥동 모아타운) 건물이 건설 중이다. 그 뒤로
양림산, 분적산이 보인다. 언덕 바로 아래 마을은 전남대 대운동장 맞은편에 있었던 용주마을이다. 그 뒤로
서방천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왼쪽 멀리에
조선대 본관이 보인다.
무등산은 사진 왼쪽 밖에 있다.
[3]
실제로는 난이 진압된 후인 1624년(
인조 2년) 10월 24일
경덕궁에서 태어났다.
[조광철,2015(1)]
조광철. (2015.08.25).
사라진 태봉산, 진실은 어디로? 광주드림.
[조광철,2015(2)]
조광철. (2015.09.08).
태실의 주인, 전설과 기록 사이. 광주드림.
[서구문화원,2018]
서구문화원. (2018).
태봉산 태실
[7]
우리나라 시골 마을에서 꽤 흔하게 존재하는 전설이다. 마을의 진산에 어떤 명당이 있으나, 그 명당에 묘를 쓰면 묘를 쓴 집안은 복을 받되 마을에는 가뭄 등 재앙이 닥친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산에는 툭하면 누군가가 남몰래 관을 묻어, 마을 사람들이 청년들을 데리고 뒤져보면 발견되곤 했다. 운 좋게 안 들킬 수도 있는데, 마을 사람들 몰래 관을 쓰고 봉분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무덤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 줄도 모르고 드러내놓고 성묘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조광철,2020]
조광철. (2020.07.13).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네. 광주드림.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경양방죽과 태봉
[조광철,2017]
조광철. (2017.05.09).
경양방죽과 운명 함께 한 태봉산. 광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