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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08:09:16

쿠릭타 공방전

카이사르의 내전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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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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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49년, 가이우스 안토니우스가 이끄는 카이사르군이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마르쿠스 옥타비우스 휘하의 옵티마테스 함대에 의해 쿠릭타 섬에 포위된 뒤 항복한 전투.

2. 상세

기원전 49년, 폼페이우스는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에 돌아오지 않으면 반역으로 간주하겠다"라는 원로원 최종 권고를 묵살하고 로마로 진격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피해 브룬디시움으로 후퇴했다. 카이사르는 내전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 브룬디시움 공방전을 벌였지만, 폼페이우스가 발칸 반도로 이동하는 걸 막지 못했다.

그 후 카이사르는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에게 40척의 함대를 맡겨 이탈리아 해안선을 지키게 하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동생 가이우스 안토니우스는 일리리쿰 총독으로 임명되어 새로 모집된 24군단과 신편 28군단의 절반을 맡아 일리리쿰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대규모 옵티마테스 함대를 이끌고 있던 마르쿠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가 이를 저지했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는 쿠릭타 섬으로 피신했고, 옵티마테스 함대는 이 섬을 포위 공격했다.

돌라벨라는 쿠릭타 섬에 고립된 아군을 구하고자 진격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큰 타격을 입고 퇴각했다. 이후 옥타비우스와 리보는 쿠리타 주변에 해상 봉쇄를 실시해 가이우스 안토니우스의 부하들을 굶주리게 만들었다. 부관 루키우스 미누키우스 바실루스가 뗏목을 이용해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 했지만, 적이 킬리키아식 그물을 걸어뒀기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조석을 이용하여 뗏목 중 2척이 그물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중 한 척은 근처의 얕은 여울에 좌초되었다. 이 배에는 오피테르기움에서 온 1,000명의 갈리아 보조군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하루종일 저항했으나, 결국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항복을 거부하고 서로를 찔러 죽었다.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가 쿠릭타 섬에 고립된 아군을 구하고자 수송선을 보냈지만 적 함대에 가로막혀 돌아가야 했고, 가이우스 안토니우스는 모든 희망을 버리고 15개 코호트들과 함께 항복했다. 항복한 장병 중 많은 이가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했다. 수에토니우스는 아프리카 원정을 떠났다가 처참하게 패하고 죽은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와 함께 이 패배를 카이사르파의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거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