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관현악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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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KNS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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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재단법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
영문 명칭 | Korean National Symphony Orchestra |
국가 | 대한민국 |
설립일 | 1985년 3월 30일 (사단법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
2001년 2월 1일 (재단법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 |
2022년 3월 17일 (재단법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 |
대표자 | 최정숙 |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 다비트 라일란트 |
주무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
주요 주주 | 해당사항 없음 |
기업 분류 | 공직유관단체 |
미션 | 음악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사회 조성 |
비전 | 장르와 계층을 넘어 소통하는 국민 대표 오케스트라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 예술의전당) |
관련 웹사이트 | |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식 홈페이지 | |
관련 전화번호 | |
대표전화: 02-523-6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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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를 거점으로 하는 국립 교향악단2. 연혁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시절의 로고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Korean Symphony Orchestra)'는 1985년 국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출신 홍연택이 전직 국립교향악단 단원 등 여러 음악인들을 모아 창단한 순수 민간 교향악단이었다. 창단 당시 43명의 단원으로 출발했다. 1985년 3월 창단 연주회를 겸한 첫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당시 시나 도 등 지방자치단체에 속하지 않은 민간 교향악단은 사실상 코리안 심포니가 유일했다. 순수 민간 교향악단이었기 때문에 첫 출발은 매우 열악했고,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정기연주회도 그리 자주 열리지 못했지만 이후 연 평균 6~9회 가량의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정기연주회 이외에 청소년 음악회, 발레나 오페라, 합창곡 반주 등을 가급적 많이 소화하면서 재정적인 문제를 만회하려 했다. 특히 1987년부터 국립극장 전속 오케스트라로 계약 맺어 국립극장 산하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의 반주 단체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국립극장에 상주하게 되며 악단 운영의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이후 민간 오페라 반주 참여도 점차 증가하게 되면서 사실상 발레, 오페라 전문 오케스트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레, 오페라 공연으로 재정적으로 안정화된 것은 훗날의 일이고, 1980년대 후반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코리안 심포니가 참여하던 발레, 오페라 공연 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코리안 심포니는 창단 5년이 가까워지도록 재정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1989년 초 쌍용그룹이 이 악단에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약속하면서 코리안 심포니는 일대 전화기를 맡게 되었다. 창단 4년째인 코리안 심포니는 여전히 재정난으로 골골대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같은 시기 쌍용그룹의 야심찬 젊은 회장 김석원이 그룹 창사 50주년을 기념할 사업으로 오케스트라 창단을 고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알아보니 오케스트라 창단, 운용 비용이 어마어마했고, 이에 그룹 실무진들은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대신 기존 오케스트라를 지원하며 그룹을 홍보하자는 쪽으로 김석원 회장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룹 실무진들이 이에 적합하다고 찾아낸 악단인 민간 교향악단을 대표하던 코리안 심포니였다.
이에 쌍용그룹과 코리안 심포니가 컨텍하게 되었고, 홍연택은 쌍용에게 연 3억씩 3년간 9억원을 지원해주면 악단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제시했고, 쌍용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지원이 결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1989년 코리안 심포니는 임의단체에서 사단법인으로 전환도 승인되었다.
1989년부터 쌍용그룹 협력업체와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한 「사은음악회」를 열었으며, 1989년 연말부터는 쌍용그룹 송년음악회도 매년 열렸다. 1989년 여름부터는 쌍용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용평리조트에서 개최하는 용평뮤직캠프페스티벌의 상주 악단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쌍용그룹이 한국의 아스펜 페스티벌을 표방하며 젊은 음악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용평뮤직캠프는 코리안 심포니의 재정에도 특히 도움이 되었다. 코리안 심포니는 매년 용평뮤직캠프 주관 단체로 참여하면서 여기서만 연 2~3억원 이상의 수익과 후원을 얻었다. 또 계열사 쌍용정유의 후원으로 「젊음과꿈이 있는 사랑의 음악여행」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방중소도시를 순회하는 음악회를 열어 지방 음악애호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89년부터 예술의 전당 기획의 한국 관현악단 연속 연주회 시리즈인 교향악축제에 민간 악단으로는 유일하게 거의 매년 출연하기 시작했다. 1989년 12월에 잠실실내체육관에서 5000명의 합창단과 함께 안익태의 한국환상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공연해 화제가 되었고, 이 5000명 합창 음악회는 이듬해 10월에도 개최되었다. 5000명 합창 음악회 역시 쌍용그룹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쌍용그룹의 직접 지원액 3억원은 코리안 심포니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는 조건 없는 무상 지원이었다. 1995년 재계약 이후에는 연 4억원으로 증가했다. 1996년에는 5억5천만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코리안 심포니가 용평뮤직캠프에 참여하면서 매년 2~3억원을 별도 지원받았고 그 외에도 각종 쌍용그룹 행사 관련 음악회에 참여하면서 추가로 지원받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7년 쌍용그룹이 재정난에 처하며 2억원을 지원한 것을 끝으로 쌍용그룹은 코리안 심포니 지원 중단을 선언했고 얼마 후 쌍용그룹은 해체되었다.
코리안 심포니는 쌍용그룹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대부분 별도의 연주회비를 받았고 이것 또한 코리안 심포니의 재정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쌍용그룹의 지원으로 기사회생한 코리안 심포니는 90년대에 들어 쌍용그룹과의 협력 이외에도 찬송가 전집 녹음 등 여러 음반 제작에 참여하는 등 여러 경로로 재정을 확충했고, 또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이 결실을 맺은 1990년대 한국 클래식 공연이 붐을 이루며 오페라, 발레 반주 공연수가 크게 증가했다. 1993년에는 악단 관악기 주자들이 결성한 목관 5중주단과 금관 5중주단을 필두로 한 실내악 공연도 시작되었다.
특히 1996년 쌍용그룹 지원액이 5억5천만으로 증가하자 홍연택은 늘어난 1억5천만으로 카를로 팔레스키를 수석 객원지휘자로 영입했고, 모스크바국립교향악단 등에서 부악장과 호른 수석 등을 영입했다.[1] 1997년 IMF 직전 코리안 심포니는 단원수가 83명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쌍용그룹과의 관계가 항상 원만했던 것은 아니어서 지원 중단설이 여러차례 돌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쌍용그룹이 쌍용자동차의 누적 적자 심화로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쌍용과 코리안 심포니의 관계도 삐걱대기 시작했다. 1995년말 재계약이 3차례나 연장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쌍용그룹과 코리안 심포니 모두 서로를 원했기에 진통 끝에 재계약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결국 1997년 쌍용그룹이 외환위기로 해체 수순을 밟는 바람에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 쌍용그룹의 공중분해로 재정난에 처하며 창단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고, 해단까지 고려할 정도였다. 단원들은 연주회가 있을 때만 수당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실제로 몇몇 단원이 사표를 내고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정명훈을 필두로 한 국내 유명 음악인들이 무상으로 악단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에 출연하는 등의 노력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00년 5월 31일 코리안 심포니는 예술의 전당과 협의해 전당 측 기획 공연에 정규 출연하는 대가로 상주단체 자격을 따내어 운영비와 출연비를 지원받게 되며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예술의 전당은 국내를 대표하는 공연장이었지만 상주 오케스트라가 없어 공연의 질적 수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심지어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때문에 예술의 전당은 상주 오케스트라 창단을 추진했지만 역시나 돈이 문제였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예산을 승인하지 않았다. 때문에 예술의 전당 측은 상설 오케스트라가 창단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당 기획 공연을 전담할 오케스트라를 찾았고, 코리안 심포니와 상주계약을 맺기로 한 것이었다. 이로써 해체 위기를 겪던 코리안 심포니는 안정화되었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내에 사무실도 마련하였다. 현재는 예술의 전당 내 오페라 하우스 4층에 위치하고 있다.
2001년 초까지 예술의 전당으로 완전 이전 입주를 마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2001년 3월 문화관광부의 인가를 받아 재단법인화 되며 예술의 전당 상주 오케스트라로 새롭게 출발했다. 초대 이사장과 단장에 각각 작곡가 이영조와 이운환이 부임했다. 같은 해 창단자였던 홍연택이 타계하면서 상임 지휘자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이후 몇 년 동안 객원 지휘에 의존해야 했다.
2004년 예술의 전당은 문화관광부와 협의 하에 코리안 심포니와의 협력을 강화하여, 예술의 전당 상주 단체로서의 지위를 보다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이에 예술의 전당 김용배 사장이 코리안 심포니 이사장을 겸직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2003년부터 이사장을 맡아오던 김민이 퇴임했다. 예술의 전당과의 협력관계 강화에 따라 이듬해인 2005년부터 '11시 콘서트', '심포닉 시리즈' 등 예술의 전당 기획 프로그램의 연주를 맡게 되었다.
2006년 박태영이 단기 계약을 통해 전임지휘자로 악단을 이끌었고, 이듬해에는 박은성이 3대 음악감독 겸 2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2010년에는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첫 해외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0년 박은성이 퇴임하였고, 이듬해 최희준이 자리를 이어받아 2014년 1월 28일까지 재임했고, 후임으로는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장기 재임했던 임헌정이 2017년 1월까지 재임했다. 이후 인천시향의 상임지휘자 정치용이 2017년 9월에 선임되었다. 2022년 1월에 프랑스 메츠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다비트 라일란트가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1년 6월부터 코리안 심포니는 “코리안심포니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하고 국립예술단체로의 역할 수행이란 의미를 내포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내걸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KBS교향악단 측이 '국립' 명칭 사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2년 3월 17일자로 오케스트라 명칭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로 변경하였다.
3. 임원
3.1. 이사장
- 전봉초 (1989~)
- 이세중 (1995~)
- 이영조 (2001~)
- 김민 (2003~)
- 김용배 (2005~)
- 신현택 (2007~2008)
- 신홍순 (2008)
- 김장실 (2009)
- 김희근 (2010~)
- 승명호
- 김일호 (2023~현재)
3.2. 대표이사
- 이원철 (2015~2018)
- 박선희 (2019~2022)
- 최정숙 (2022~현재)
3.3. 상임지휘자
- 홍연택 (1985~2001)[음악감독]
- 박태영 (2006)[전임]
- 박은성 (2007~2010)[음악감독]
- 최희준 (2011~2014)[예술감독]
- 임헌정 (2014~2017)[예술감독]
- 정치용 (2017~2019)[예술감독]
- 다비드 라일란트 David Reiland (2022~현재)[예술감독]
박태영 전임지휘자 당시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이 음악감독을 맡았었다.(2003~2007)
4. 특징
한국에서 활동하는 민간 교향악단으로 명성을 날렸다. 관립 오케스트라인 KBS 교향악단과 서울시향 다음 가는 위상을 가진 오케스트라로 성장했으며 대한민국에서 민간 교향악단의 지존으로 군림해 온 악단이다. 민간 단체로서 재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악단 자체 기획의 정기 연주회 같은 공연보다 오페라나 발레 등 무대 작품의 반주나 국내외 유명 성악가들의 가곡의 밤 혹은 리사이틀 무대 같은 외부 공연을 훤씬 더 많이 개최했었다. 코리안 심포니 역시 자신들을 발레, 오페라 전문 오케스트라로 홍보하곤 했다.민간 악단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3월 17일 국립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예술의 전당 상주 악단이 된 후 예술의 전당 행사를 도맡아 하며 국가 예산 지원 받고 있었는데, 2020년에는 국고보조금으로 46억 7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실상을 보자면 코심에 '국립' 감투를 씌워 '민간' 악단이라는 굴레를 벗겨내어 완전한 수족으로 부려먹고 싶어하는 문체부 및 예술의 전당과 '국립' 감투를 써서 급도 높이고 예산도 더 타먹고 싶어하는 코심 서로의 욕망이 결합되어 결국 이름을 국립으로 바꾸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최근 문체부가 코리안 심포니에 여러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이에 대한 보상 및 문체부의 코심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코심의 이름을 아예 국립심포니로 바꾼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 당시 문체부 장관이었던 도종환은 정권 초기부터 코리안 심포니와 여러 국립 예술단체에 자기 사람 혹은 자신에게 아부하는 사람을 계속해서 낙하산 인사로 임명하는 등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여러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누가 도종환 장관의 눈과 귀가 되고, 막고 있는가? 도종환 퇴임 이후에도 정권 교체기까지 문재인 정부는 코리안 심포니에 자기사람을 대표로 임명하는 낙하산 인사를 거듭해서 논란이 되었고, 여러 언론에서도 이를 비판하며 코리안 심포니의 명칭을 국립심포니로 바꾸려는 정부의 시도를 비판하였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잇딴 구설수...낙하산 의혹에 '국립' 명칭 개정 논란
명칭이 바뀌었다고 해서 민간 오케스트라로 분류되던 시절과 운영, 예산 등에 있어서 바뀐 것은 사실상 거의 전혀 없다. 여러모로 애매한 상황이긴 한데 예전부터도 준국립, 반국립이 아니냐는 평은 있어 왔다. 지금도 명칭이 국립으로 바뀌긴 했지만 완전한 국립이라 하기에 아직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은 상황이다.
준국립이라고 표현한 언론 평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 코심 혹은 국심의 위상은 여로모로 애매한 상황이다. 분명히 나라의 예산을 받고 있고, 이 액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려 200억원대의 예산을 타 먹는 서울시향에 비하면 50억원대의 국고 지원을 받는 코심이 국립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은 참으로 애매한 상황. 물론 서울시향이 선진국 기준으로 봐도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받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코심이받는 예산 50억원도 결코 작은 돈도 아니다. 이 국비 지원이 코심 전체 예산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국립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뭐라하기도 어렵다.
코심이 민간 오케스트라라 하더라도 국가 예산 지원을 받는 사실이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사실 해외의 유명 민간 오케스트라들도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베를린 필[9], 런던 심포니, 런던 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 따라서 이 역시 보조금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건 민간 단체에게 주는 보조금이 아니라 국가 예산에 운영비라고 별도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일반 민간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은 공연 및 전통예술활성화 사업 등의 이름을 통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모를 받은 뒤 심사를 통과하면 지원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 악단이 지원받는 운영비의 경우 문광부 예산에 "예술의전당 상주 교향악단 운영"이라는 항목으로 "문화예술단체 지원" 항목에 직접 편성되어 있었다. 이 항목에 의해 지원되는 단체에 민간 단체는 하나도 없으며 국립오페라단, 국립극단, 한국공연예술센터 등 국립예술단체들만 들어 있다. 또한 이사진에도 당연직 이사로 문광부 담당과장이 들어가고, 문광부의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고, 심지어 국정감사의 피감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하는 등, 운영체제만 보면 국립발레단이나 오페라단 같이 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국립예술단체와 거의 같았다.
그 때문인지, 2013년에는 음악분수 윗쪽 부지에 새로 지어진 국립 예술단체 전용 공연연습장으로 거점을 옮겼다.[10]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나 올림픽 폐회식 공연 반주 음악 녹음,[11] 문화 소외지역 공연 등 문체부가 주관하는 각종 국가 행사에도 다른 국립 예술단체와 같이 참가해 연주하고 있다. 실제로 공연 때 판매하는 프로그램 노트나 악단 홈페이지 등에 실려있는 악단 소개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민간 교향악단이라는 말이 슬쩍 빠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2014년 임헌정이 신임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취임할 때도 문광부 장관 명의로 임명한다는 보도자료를 문광부에서 직접 배포하였다. 즉, 실제로는 국립 교향악단이라고 붙여도 무방했었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국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늘어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코리안 심포니 전체 예산의 70% 이상을 국비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무렵부터 슬슬 국립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대 급부로 정부, 구체적으로 주무 부처인 문체부의 간섭이 심해졌는데, 당시 예술의 전당, 국립국장 등 산하 단체의 낙하산 인사를 꽂는다고 여러차례 비판받았던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코리아 심포니 지휘자 선정에도 관여한다는 기사가 언론에 떴다. 도종환 장관은 정권 말기에 코심의 국립화를 갑자기 밀어붙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권이 끝나기 직전에 오케스트라 비전문가인 최정숙을 낙하산 인사로 꽂아넣었다.
이미 2001년부터 국비 지원을 받는 처지였지만 완전한 국립 관현악단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국가에서 받는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국가의 운영비로만 운영 되지는 않기 때문에 국립도 아니고 민간도 아닌 반국립(半國立)의 어정쩡한 상태였었다. [12]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민간이니 국립이니 이런 말 다 빼고 앞에 그냥 재단법인이라는 말만 덩그러니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정도부터는 악단 소개문에 "민·관 문화예술의 거버넌스 모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 등장중이다.
그 액수가 점점 증액되었고, 국비 지원이 50억이 넘고 코심 예산의 70% 이상이 된 시점에서 국립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서울시향과는 지원금 액수가 비교도 안되고, 다른 시립 교향악단들과 비교해도 예산이 그다지 많지 않으며, 다른 장르의 국립예술단체와 비교해도 금액이 적은 편이다.[13]
2021년 1월 보도에 따르면 문체부에서는 국립 관현악단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지도 상승 등을 목적으로 2021년 2월 중으로 ‘국립 교향악단’,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후보 중에서 악단 명칭을 선정할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과거 국립교향악단 이었던 KBS교향악단 노조에서 명칭사용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듯 했는데, 결국 최종적으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로 낙찰됐고, 영문명도 중간에 national을 추가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KBS와의 관계도 그렇고, 악단이 30년 넘게 써왔던 이름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측면도 고려해 타협한 결과로 해석된다.
국고지원이 부족해서 만성적인 예산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1년 내내 엄청나게 빡빡한 연주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다 보니, 단원 충원이나 정기 연주회 스케줄 확대가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연간 100여회 연주를 한다는건 연주전 3회연습(통상3일)를 감안하면 300일 이상 연주든 연습이든 간에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때문인지, 임헌정도 취임 직후 월간 예술 잡지 '객석' 과 가진 인터뷰에서 단원들의 기본급이 인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다망한 활동을 한 덕택에 한국 관현악단으로서는 꽤 화려한 협연 경력을 자랑하는데, 국립발레단과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3대 국립 예술단의 전속 협연 악단으로 뛰고 있어서 오페라와 발레 등의 무대 작품 반주와 합창 협연 스킬은 국내 넘사벽이다.
한 때 세계 3대 테너로 불렸던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모두 협연한 경력이 있는 유일한 한국 관현악단이고, 특히 1995년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도밍고의 내한 공연은 CD와 DVD로도 제작된 바 있다. 이외에도 히사이시 조나 스팅 같은 비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 때도 협연한 바 있다.
IMF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음반 녹음도 꽤 활발하게 진행했는데, 창단자였던 홍연택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관계로 찬송가를 비롯한 종교음악[14]이나 가곡 반주 음반을 많이 내놓았다. 다만 본격적인 클래식 레퍼토리를 녹음한 사례는 매우 적고, 그 중에 정규 판매용으로 발매된 것은 새발의 피 수준이다.
2012년 1월에는 비록 국립발레단 명의의 발레 DVD이기는 하지만, 전임 지휘자를 역임했던 박태영이 지휘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과 글라주노프의 '라이몬다' 의 공연 실황을 블루키노에서 정규 상업 영상물로 내놓았다. 원래 구자범이 지휘한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까지 세 종류를 발매하기로 했지만, 백조의 호수는 발매 직후 발레단 사정으로 인해 일시 판매 중지되어 재고가 전량 회수되었다고 한다. 재발매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
그리고 발매된 품목들도 영상 자체는 매우 깨끗하고 편집 상태도 양호한 편이지만, 음성의 경우 무대와 객석의 소음이 지나치게 커서 그 사이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잡아먹는 경우가 허다하고, 관현악단에 마이크를 너무 가까이 갖다대고 녹음한 터라 음질이 좋지 않다.
하지만 2012년 4월에 개설된 예술의 전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 2012 교향악축제에서 연주한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과 181회 이래의 정기연주회, 예술의 전당 자체 기획 공연인 11시 콘서트 등의 전체 혹은 일부 실황 동영상들이 무료 제공되고 있어서, 영상물과 음반 발매의 미진함을 보충하고 있다. 또 2014년 3월 무렵에는 악단에서도 자체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이 곳을 통해서도 정기연주회들과 몇몇 기획 공연들의 실황을 감상할 수 있다.
2017년 3월에는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에서 2014~16년 동안 진행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1~9번 연속 공연에서 제작된 실황녹음으로 10장짜리 CD 세트가 발매되었고, 악단 최초의 본격 클래식 음반이자 한국 최초의 브루크너 교향곡 시판반 세트라는 기록을 세웠다.[15] 다만 이 세트는 다소 급하게 제작되었는 지, 9번 교향곡의 연주가 담긴 열 번째 CD에서 편집 오류가 발견되어 일시 품절 조치된 뒤 4월 초순에 재발매되었다. 기존 세트 구입자들에게는 문제의 열 번째 CD만을 리콜해주고 있다.
2020년대 이후 국내 유일한 국립 오케스트라 이다.
[1]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재정난으로 러시아 유수 오케스트라의 우수한 단원들이 서방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당시 우리나라 교향악단도 고려인 후손들을 중심으로 러시아 명문 악단 단원들을 영입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KBS 교향악단의 경우 러시아 키로프 오케스트라 트럼펫 수석인 고려인 3세 바실리 강, 그리고 벨라루스 출신의 알렉산더 아키모프 등을 영입했다. 코리안 심포니 역시 1996년 쌍용그룹의 지원금 증액으로 모스크바국립교항악단의 고려인 2세 빅토르 천을 부악장으로 영입했다.
[음악감독]
음악감독 겸임
[전임]
전임지휘자
[음악감독]
음악감독 겸임
[예술감독]
예술감독 겸임
[예술감독]
예술감독 겸임
[예술감독]
예술감독 겸임
[예술감독]
예술감독 겸임
[9]
베를린 필은 몇해 전 재단을 설립하여 정부 보조금없이 자립을 시도하였다
[10]
다만 이 시점에서 다른 국립예술단체(오페라단,발레단,현대무용단,합창단)와 같이 사무국은 서예관으로 입주하였다.
[11]
원래 올림픽 폐회식때는 다음 올림픽 개최지를 소개하기 위한 공연 시간을 할애해 준다.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평창 동계올림픽을 소개하려는 공연을 국립현대무용단 등 국립 예술단체가 준비했는데, 이 공연의 반주 음악을 연주/녹음한 것도 이 악단이었다.
[12]
한국에서는 국가가 예술단을 소유/운영하는 것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미온적인 상태다. 물론 일부 보수 성향 음악인들이나 평론가들이 계속 국립 관현악단 창단 여론을 밀고 있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 장기화되고 있는 불경기 때문에 예산을 계속 긴축 편성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립 관현악단 창단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비쳐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1981년에 국립교향악단이 KBS 교향악단으로 환원된 이후에 수립된 모든 정권들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국립 관현악단 설립 주장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코리안심포니가 실질적으로는 국립오케스트라 역할도 하고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13]
2016년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코심은 34억이다. 참고로 국립발레단 85억, 국립오페라단 80억, 국립합창단 38억, 현대무용단 38억의 예산을 받았다.
[14]
대표적으로 1992년 10월에 발매한 <한국 찬송가 대전집>
[15]
이미 이전에
00번과
0번까지 포함한 전 11곡을 완주한 이동호 지휘의
제주도립교향악단이 당시 실황녹음들로 음반들을 만든 바 있지만, 모두 비매품 한정반으로 제작되어 시중에 유통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