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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05:47:50

친정

친정사랑에서 넘어옴
1. 親庭
1.1. 운동선수의 과거 소속 단체
2. 親政3. 親征
3.1. 사례

1. 親庭

결혼 여자 본가. 즉, 여자의 부모와 분가하지 않은 형제자매가 살고 있는 집을 말한다. 남편 입장에서는 처가라는 표현을 쓴다.

아내가 (보통 자식과 같이) 친정에 갔다온다고 하면 남편은 속으로 매우 좋아하는 것이 매체에서 클리셰로 자주 등장한다. 결혼한 가장이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1.1. 운동선수의 과거 소속 단체

현대에는 위의 의미가 확장되어 운동선수가 FA 트레이드, 이적 등으로 인해 떠난, 자신의 전 소속팀을 친정 또는 친정팀이라 부른다.

고향팀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고향팀은 '선수 입장에서 자신의 고향 연고지로 삼고 있는 팀'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둘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유는 당연히 겹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선수 입장에서 아무래도 자신의 집과 가까우니까 또는 고향에 위치하고 있으니 애착이 많이 가니까[1],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고 많이 접해본 팀이니까[2] 프로 경력의 시작을 고향팀으로 원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3]

또한 팀의 프런트에서도 고향이 연고지인 선수를 뽑고 잘하기까지 하면 인기가 늘어나니[4] 그런 선수들을 뽑는 경우가 많다.

축구에서는 타 구단으로 이적한 선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득점을 했을 시 세리머니를 자제하는 편이다. 물론 몇몇 예외는 있는데 당연히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반대로 FA, 트레이드, 방출 등으로 소속팀을 옮긴 선수가 전 소속팀과의 경기 도중 실책 등으로 친정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5]를 하거나, 오히려 친정팀 상대로 맹활약을 할 때[6]에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 친정 사랑이라고 부른다.

2. 親政

친히 정치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나라를 직접 다스리는 것.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임금이 나라를 직접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친정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나, 주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거나 허수아비로 즉위하여 한동안 태후 권신 섭정을 행하다가, 임금이 성년이 되어 권력을 돌려받거나 정변 등으로 권력을 되찾아와서 직접 정치를 하게 되면 친정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대통령이 장차관이나 여당의 의견을 따르기보다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여 운영하는 것을 친정 체제라고 하기도 한다.

3. 親征

친히 정벌한다는 뜻으로, 군주 국가원수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서는 것.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리처드 1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영락제, 광개토대왕, 왕건 등이 대표적 사례.

근대 이전에는 군주의 친정이 흔히 있는 일이었다. 특히 창업군주나 정복 군주들은 친정이, 즉 내정보다는 전쟁이 본업이나 마찬가지라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내는 군주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사에서도 전쟁이 잦았던 삼국시대까지는 친정 능력 임금의 기본 덕목이었다. 유능한 장수에 지휘를 맡기는 일도 많았지만, 왕이 굳이 나가서 지휘한 기록도 상당히 많고 고국원왕이나 성왕(백제)은 결국 그러다 전사했다. 신라에서 유독 3명 여왕의 재위기간에 주변국의 공격이나 내부 반란에 크게 시달린 것도 친정을 할 수 없는[7] 여자가 임금에 올랐으니 신라를 흔들기 좋은 시기라고 봐서라는 설도 있을 정도.

한국사에서는 조선 개국 초기인 1402년 발생한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태종 이방원이 친정한 사례가 마지막이다. 조선만으로 따지면 처음이자 마지막 국왕의 친정이다. 이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킨 조사의 배후에 건국자이자 부왕인 태조 이성계가 있었기 때문에, 친정을 하지 않고 그냥 신하들만 보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서도 있다. 세자 시절 광해군 임진왜란 때 직접 군을 이끈 적이 있기는 하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친정은 군주의 덕목이자 왕권 강화의 일환이기도 하였으며,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끈다는 것은 병사들에게 사기면에서도 큰 영향을 줬다.

언뜻 생각하기엔 '그냥 유능한 장수에게 맡기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선택이다. 패전해도 문제지만, 이겨서 공훈을 세운 총사령관은 기존 권력에게 잠재적 위험요소이기 때문이고, 극단적으로는 전쟁 시작도 전에 아예 사령부 전체가 반란군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반란을 경계한답시고 군대를 쪼개 수도 방위에 남겨두면, 당연히 작전의 성공률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반면 군주가 친정을 하면 군공을 독점할 수 있고, 수도 방위는 최소한으로 남긴 채 온 나라를 긁어모아 대외원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군주의 친정은 국가의 총력을 기울인 전쟁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양진영이 모두 친정일 경우 그 무게감은 더욱 엄청나져서 말 그대로 양국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전투가 되곤 한다. 아래 사례들을 보면, 패전한 쪽은 정말로 나라가 망하거나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앞서 예시된 인물들 처럼 군주 본인이 최고의 장수, 지휘관이어서 직접 군을 전투를 지휘 하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정치적 의미까지 염두에 두고 군주가 참전하되 실제 작전 입안이나 전투 지휘는 직업군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더 많다.

군주의 친정은 장점 못지 않게 단점도 크다. 전세가 불리해져 왕이 도망가거나( 다리우스 3세) 살해당할( 성왕)경우 충분히 버틸 수 있었던 상황이라도 병사들이 모두 무너지는 양날의 검과 같았다. 더군다나 전쟁 와중에 왕이 전사하거나( 해럴드 2세, 리처드 3세, 세바스티앙 1세) 사로잡히는 일( 장 2세, 정통제, 무함마드 샤)이라도 벌어진다면 왕조가 망하거나 흔들릴 판이니 근대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다. 군주들 중에는 지휘관으로서 능력이 우수한 군주도 있지만 전쟁과는 맞지 않는 군주들도 있으며, 친정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국가존속 수단이 아니고서야 기본적으로 군주의 덕목은 국가를 견실하게 운영하는 능력이 우선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유럽에서는 18~19세기 근대 시대까지도 군주가 전장에 직접 친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18세기에 벌어진 대북방전쟁에서는 스웨덴 국왕 칼 12세와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1세가 친히 스웨덴군과 러시아군을 이끌고 친정을 하여 서로 맞붙었고,[8] 특히 칼 12세는 대북방전쟁 이후에도 노르웨이 정벌을 직접 친정하다가 무려 국왕이 전장에서 총에 맞아 전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세 전제군주도 아니고 엄연히 근대의 입헌군주였던 영국 국왕 조지 2세도 1743년 데팅겐 전투에서 전장에 친히 영국군을 이끌고 친정했다가 프랑스군에 사로잡힐 뻔하기도 했다. 1805년에 벌어진 아우스터리츠 전투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1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가 친정해서 세명의 황제가 전장에서 만나 싸웠다는 의미로 삼제회전(三帝會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프랑스 제2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직접 친정해서 스당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에 패배했을때 친정하던 황제가 포로로 잡혀 제국이 붕괴하는 사태까지 일어난 사례도 있다.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전장에서 친정을 한 군주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와 세르비아 국왕 페타르 1세이다. 알베르 1세는 1차대전 당시 최전선에 머무르면서 벨기에군의 총사령관으로서 벨기에군을 직접 지휘하고 국왕이 친히 참호에 들어가 병사들을 독려했으며 전쟁 막판 벨기에 해방을 위한 공세를 지휘하기도 했다. # 알베르 1세는 당시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혈통적으로 친척관계였는데 그 때문인지 일설에는 독일군이 알베르 1세가 있는 곳으로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베르 1세의 왕비인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또한 전장에서 종군 간호사로 활약했다. 세르비아 국왕 페타르 1세는 한술 더 떠서 1차대전 당시 7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국왕이 직접 참호에서 적군에게 총을 발사했다고 하며 1915년 독일 제국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침략으로 세르비아가 점령당하자 산악지대로 들어가서 국왕이 친히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항전을 했다고 한다. 물론 벨기에, 세르비아 말고도 다른 참전국들의 군주들 역시 사기 진작 차원에서 전선 시찰을 종종 했다.

재미있게도 미국 대통령도 친정을 한 적이 있다. 조지 워싱턴이 그 주인공으로 독립전쟁을 끝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임기를 수행할 때 벌어진 위스키 반란에 친히 토벌군을 이끌고 반란을 진압한 적이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국가의 체계가 고도화 되면서부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가원수의 친정, 즉 전체 전쟁의 지도를 넘어서 개별 전투에 까지 참여한다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국가원수가 전쟁을 직접 지도하는 경우도 20세기 이후로는 극히 드문데, 2차 대전에서 히틀러 독일군 지휘, 2차대전과 국공내전에서 장제스 국민당군 지휘, 마오쩌둥 홍군 지휘 등의 예를 들 수 있고, 21세기에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압둘라 2세 요르단군 지휘가 있다.

21세기 현재는 국가원수가 직접 전장에 나서 친정하는 사례는 거의 보기 힘들고 실제로 안정된 선진국에서는 국가원수가 전투에 직접 친정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전무하지만, 아직도 내전 등으로 정세가 불안정한 개발도상국 등지에서는 가끔 국가원수가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다. 일례로 2021년에는 차드 대통령 이드리스 데비 보코하람 반군과 전투하다 전사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3.1. 사례

한 쪽만이 친정이었던 사례는 매우 많아서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렵기에, 양진영이 모두 친정이었던 사례만 기록한다.


[1] 애착에서는 한대화의 경우가 딱 알맞다. 고향팀의 감독까지 지냈으니까 다만 한대화의 친정팀은 한화 이글스가 아니다. 대전 연고 시절의 OB 베어스에서 데뷔해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를 거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다. [2] 양준혁이 매우 좋은 예시다. [3] 하지만 KBO 리그의 경우 2023년 이후로는 전면 드래프트의 재도입으로 프로 경력의 시작을 고향팀에서 시작하기가 어려워졌다. [4] 이대호, 원태인, 김도영 등이 대표적인 예시. [5] 병살타, 수비실책 , 자책골 등. [6] 홈런이나 호수비, 결승골 등. [7] 실제로 여왕들은 친정 기록이 전혀 없다. 반면 전후로 진평왕은 친정을 했고, 김춘추도 젊을 때는 전장을 김유신에 맡겼지만 오히려 나이들어 왕에 오른 뒤에는 친정을 여러 번 했다. [8] 러시아 영토 내에서 친히 스웨덴군을 이끌던 칼 12세는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서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갈 퇴로가 막히자 국왕이 직접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해서 오스만과 동맹을 맺고 오스만군까지 같이 데리고 와서 러시아를 공격하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9] 이후 모로코 술탄은 같이 참전한 마르완의 동생인 아흐마드 알 만수르가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