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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첸 이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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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치첸이트사 선(先) 스페인 도시
영어 Pre-Hispanic City of Chichen-Itza
스페인어 Ciudad prehispánica de Chichén-Itzá
프랑스어 Ville préhispanique de Chichen - Itza
국가·위치 멕시코 유카탄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8년
등재기준 (i)[1], (ii)[2], (iii)[3]
지정번호 483
파일:Chichen-Itza.jpg
1. 개요2. 역사3. 유적4. 방문5. 창작물에서의 모습

[clearfix]

1. 개요

Chichen-Itza
치첸 이트사(Chichen Itza)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 북서부 도시 메리다에서 동쪽으로 약 110 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야 문명의 고대 도시이자 유적지이다. 한글로는 출처에 따라 치첸 이차 또는 치첸 이사로도 표기한다.[4]

이름은 본래 원주민들이 이 도시를 부르던 마야어 치첸 이차[tʃitʃʼen itsáʔ]를 스페인어로 음역[5]한 것으로, 각각 chi'(; 입, 입구)와 ch'e'en(; 우물), itza(이트사, 이차)의 합성어이다. 이트사(이차)는 유카탄 반도 일대에서 초기 마야 문명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씨족의 이름으로, 곧 '치첸 이트사'는 '이트사족(族)의 우물 입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가리키는 우물은 수직 동굴인 세노테로 유카탄 반도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마야인들에게는 제물을 바치는 용도로 이용되었던 신성한 곳이었다.

2. 역사


마야 문명은 크게 선고전기-고전기-후고전기로 시대가 나뉜다. 선고전기에는 초창기 마야 도시들이 등장하면서 문명의 기틀이 잡혔고, 고전기 티칼이나 칼라크물 등 여러 대도시들이 나오면서 문명의 최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고전기 말에 각종 자연 재해와 인구 감소로 문명이 쇠퇴하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던 유카탄 반도 북부 지방이나 멕시코 쪽으로 이주해 떠났고, 이 시기 이후를 고전기와 구분하여 후고전기라고 부른다. 치첸 이트사는 바로 이 후고전기 동안 번영을 누린 도시였다. 대략 750년과 900년 사이 즈음에 치첸 이트사의 토대가 잡힌 것으로 추정되며, 900년 이후 빠르게 발전하면서 10세기 경에는 유카탄 반도 중부부터 해안가까지를 다스리는 지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파일:Juego-de-Pelota-en-Chichen-Itza.jpg
전성기 시절의 치첸 이트사.

고전기가 종결됨에 따라 유카탄 반도 남부 지방의 대도시들이 연달아 몰락하면서 엄청난 수의 유민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도시 사회가 남아 있었던 북부로 올라왔다. 치첸 이트사는 이들을 흡수하면서 힘을 키워나갔다. 치첸 이트사는 인근의 도시들이었던 약스나코바 등을 복속시키면서 점차 영토를 넓혀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의 마야 도시들 대부분을 직•간접적으로 통치하면서 후고전기 시대 마야 세계의 최강대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번영했던 치첸 이트사 역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치첸 이트사는 1100년 경부터 이미 서서히 멸망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13세기 경 새롭게 떠오른 강대국 마야판이 치첸 이트사를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치첸 이트사를 정복한 마야판의 병사들은 치첸 이트사의 왕족들을 모두 세노테[6]에 던져 버린 후 보물들을 약탈하여 마야판으로 옮겨갔다. 다만 마야판의 침공 이후에도 치첸 이트사에는 일부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거주했고, 심지어는 스페인 탐험가들이 치첸 이트사 유적을 발견했을 때도 일부 원주민들이 도시 유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들이 치첸 이트사에 대대로 살아온 부족이었을 가능성은 적고, 아마도 정글을 떠돌아 다니다가 치첸 이트사의 폐허를 발견하고 터를 잡은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1526년에는 콩키스타도르인 프란시스코 데 몬테호(Francisco de Montejo)[7]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탄원을 넣어 유카탄 반도에 대한 탐험권과 발견한 보물들에 대한 권리를 얻어냈다. 몬테호는 1527년에 유카탄 반도로 첫 번째 원정을 떠났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현재의 칸쿤 지역 인근에 조그만 요새를 하나 세우는 데 그쳤다. 딱히 업적을 세우지 못한 몬테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531년에 다시 두 번째 원정을 떠났고, 캄페체 지역에 본부를 차린 후 탐험을 계속했다. 몬테호는 자신의 아들에게 탐험대를 나누어주면서 유카탄 반도 내부를 정복할 것을 명령했고, 이들의 목적은 깊은 정글 속에 있다는 치첸 이트사를 찾아서 그곳을 정복하고 새로운 수도로 삼는 것이었다.

몬테호의 아들은 결국 치첸 이트사를 찾아냈고, '시우다드 레알'이라고 재명명했다. 처음에는 원주민들도 그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으나 그가 유적 인근의 토지들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휘하의 병사들에게 분배하기 시작하자 위협을 느낀 원주민들이 점차 적대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규모의 분쟁에서 그치던 것이 나중에는 대대적인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고, 몬테호의 아들과 휘하 병사들은 도시의 유적 속에 갇힌 채로 겨우겨우 지원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고, 결국 몬테호의 아들은 150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모두 잃어버린채 1534년 경, 치첸 이트사를 포함한 유카탄 반도 전역에서 쫓겨났다. 캄페체에 본진을 꾸리고 있었던 몬테호 역시 상황은 비슷했기에 스페인 병사들은 1535년 즈음에 유카탄 반도에서 후퇴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몬테호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대규모의 용병들과 병사들을 본국에서 끌어와 유카탄 반도 전체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파일:catherwood-chichen.jpg 파일:plate21lasmonjaschichenitza.jpg
초목에 뒤덮인 엘 카스티요. 덤불에 싸인 '라스 몬자스'의 모습.
치첸 이트사 유적은 한때 소 방목장 정도로 취급되면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1800년대에 들어서야 재조명받았다. 유명한 고고학자 존 로이드 스티븐스가 출판한 삽화가 포함된 여행기가 서양에 알려지면서 치첸 이트사를 포함한 마야 문명 전반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이후 여러 사진가들과 삽화가들이 치첸 이트사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그림들을 출판했다. 1875년에는 이곳에서 등 쪽으로 누워 무릎을 세우고 배 위에 그릇을 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조각상을 발굴하여 이름을 '차크물'이라고 붙였고, 이는 메소아메리카 지방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모든 조각상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1880년대에는 알프레드 모슬레이가 치첸 이트사 유적을 방문하기도 했다.
파일:치첸이트사 옛날.jpg [8]
1894년에는 유카탄 반도의 미국 고문인 에드워드 허버트 톰슨이 치첸 이트사 유적을 구입했고, 약 30여 년 동안 치첸 이트사 유적을 발굴했다. 톰슨은 치첸 이트사 내부의 고대 신전들을 발굴하고 무덤들을 개방했으며, 세노테의 바닥을 긁어서 물 속에 잠겨있었던 황금, 옥 유물들과 각종 유골들을 건져냈다. 또한 목재와 돌로 만들어진 무기와 제례 용품들을 다수 발굴하여 하버드 대학교의 피바디 박물관으로 실어보내기도 했다. 1913년부터는 미국의 카네기 재단이 멕시코 정부의 허락을 받아 10년 간 치첸 이트사 발굴을 진행했다. 카네기 재단의 후원을 받은 고고학자들은 수풀 속에 묻혀있었던 전사들의 신전, 그리고 카라콜을 복원했으며 동시에 엘 카스티요와 구기 경기장을 다시 복구하면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1926년에 멕시코 정부는 허버트 톰슨이 유물을 불법으로 미국에 반출한 죄를 물어 기소하고 치첸 이트사 유적을 그에게서 압수해 버렸다. 당시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던 허버트 톰슨은 변호사를 기용하여 멕시코 대법원에까지 상고를 넣었고, 결국 그가 죽은 후인 1944년에 멕시코 대법원은 톰슨의 행위에 위법성이 없었음을 밝히고 그의 상속인에게 치첸 이트사 유적을 돌려주었다. 이후 톰슨 가문은 치첸 이트사를 관광 사업가에게 팔았으며, 1961년과 1967년에 세노테 사그라도에서 두 차례 대규모 발굴을 진행했다. 그 이래로 치첸 이트사는 멕시코에서 제일가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대략 260만 명이 치첸 이트사를 다녀갔다고 한다.

3. 유적

사진 설명
파일:MA_00228577_mnpyzr.jpg
엘 카스티요 (El Castillo)
치첸 이트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신전. 원래는 깃털 달린 뱀신[9] 쿠쿨칸을 섬기는 신전이었다. 이 신전을 처음 본 스페인 병사들이 마치 성채와 닮았다 하여 '성'이라는 뜻의 '엘 카스티요'라는 이름을 붙였다. 높이는 30m, 9층의 계단식 피라미드이며 꼭대기의 신전은 높이가 6m 정도이다. 꼭대기의 신전 내부에는 차크물[10] 석상과 재규어 형상의 옥좌가 놓여있다. 9세기에 완성했다고 추정하는데, 각 면에 있는 계단이 91개이므로 사면의 계단 총수는 91 x 4 = 364단, 여기에 정상의 1단을 더하면 365일이 되는 신비한 건축물이다. 또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 추분에 북쪽 계단에서 연출되는 독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매년 춘분과 추분의 일몰 무렵에는 북쪽면 계단 맨밑에 있는 깃털달린 뱀의 머리 조각 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그 형상이 꼭 거대한 뱀이 치첸 이트사에서 계단에 몸을 대어 땅으로 내려오는 듯하다고 알려져 있다.
파일:chichen-itza-ball-court-3-b.jpg
구기 경기장 (Great Ball Court)
치첸 이트사 내부에는 총 13개의 구기 경기장이 있다. 개중 길이가 무려 150m에 달해 가장 거대한 경기장을 대경기장이라고 따로 부른다. 마야인들의 공놀이 경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임하는 의식이었다. 승자는 온갖 영광을 누렸지만, 패배한 선수들은 목숨을 내놓아야했다.[11] 그래서 스포츠라기보단 마야의 신화 속에 나오는 공놀이 경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제례의식에 훨씬 가까웠다. 대경기장 양쪽에 세워진 벽들은 길이 95m, 높이 8m에 달하며 벽 위쪽에 공을 통과시켜 득점하는 석조 고리가 달려있다. 벽 하단에는 패배한 선수들이 목이 잘려나가는 모습이 새겨졌다. 메소아메리카 문명권에서 가장 잘 보존된 구기 경기장으로, 그 가치가 상당히 높다.
파일:chichen-itza-tzompantli-the-wall-of-skulls_79295-11345.jpg
촘판틀리 (Tzompantli)
해석하면 '해골 제단'이라는 뜻이다. 치첸 이트사가 당시 아즈텍 제국 테오티우아칸 등의 문화권과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로,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두개골을 그대로 묘사해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 베어낸 사람 머리를 막대기에 소시지 끼우듯이 끼워서 줄줄이 세워놓는 특이한 조형물을 '촘판틀리'라고 부르는데, 보통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 지방에서 유행했다.[12] 이 제단은 그 촘판틀리의 모습을 돌에 정교하게 새겨서 남겨놓은 모습이다. 그 잔혹성과 독특함 덕분에 치첸 이트사의 명물이기도 하다.
파일:the-sacred-cenote-chichen-itza.jpg
성스러운 우물 (Sacred Cenote)
마야 문명이 위치했던 유카탄 반도는 전체가 거대한 석회암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덕분에 석회암의 침식 작용으로 군데군데 거대한 싱크홀들이 생겨나는데, 이 싱크홀에 물이 고인 것을 세노테라고 부른다. 개중에서 치첸 이트사에 위치한 세노테는 직경 60m, 지면에서 수면까지의 깊이가 27m에 달하는 대형 세노테에 해당한다. 마야인들은 이 세노테를 숭배하여 수많은 제물들을 이 곳에 바쳤는데, 호수 아래를 샅샅이 뒤져본 결과 수많은 , 보석, 도자기, 황금, 흑요석, 조개 껍데기[13], 옷, 그리고 수많은 유골들이 발견되었다.[14] 인간을 이 곳에 던져넣어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는 뜻이다.[15]
파일:attachment/치첸 이트사/janssingun.png
전사들의 신전 (Temple of the Warriors)
전사의 부조가 새겨진 돌기둥에 둘러싸인 신전. 현재 관람객은 입장이 통제되어 올라갈 수 없다. 위에는 마야의 우신(雨神) 차크몰이 누운 모습을 새긴 석상이 있는데, 이 석상 위에 사람의 심장을 내려놓고 제물의식을 행하였다. 또한 누운 석상의 시선은 하지 때 일몰 지점을 향한다고 한다. 신전 입구에 세워진 사각 기둥과 동쪽으로 이어진 엄청나게 많은 둥근 기둥에는 짚으로 만든 지붕을 덮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기둥만 남았다. 신전 입구에 있는 정사각형 기둥 60개에는 톨텍 전사 복장을 한 전사 조각을 새겼는데, 이때문에 '전사들의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워낙 앞에 기둥들이 많아 '천 개 기둥들의 신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파일:el_mercado_chichen.jpg
엘 메르카도 (El Mercado)
처음에 이 유적을 발견한 탐험가들은 기둥들이 공터 주위를 쭉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시장의 가판대와 비슷하다 여겨 시장이라는 뜻의 '엘 메르카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현재 고고학자들은 이 곳이 단순한 시장판이라기보단 일종의 예식을 치르는 제례용 장소일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파일:la-pyramide-d-osario-dans-le-complexe-de-ville-de-chichen-itza-yucatan-mexique-91380273.jpg
오사리오 (Osario)
'오사리오'란 스페인어로 '묘지'라는 뜻이다. 위의 엘 카스티요와 비슷하게 신을 모시는 사원이지만 그 규모는 엘 카스티요보다 훨씬 작다. 엘 카스티요와 마찬가지로 네 경사면에 모두 계단이 만들어져 있고 꼭대기엔 신전이 있었다. 다만 엘 카스티요와는 달리 오사리오 꼭대기에는 지면 12m 아래에 있는 자연 생성된 동굴로 내려갈 수 있는데, 19세기 후반 이 동굴을 탐사한 에드워드 톰슨은 동굴 내에서 유골들을 발견하고 이 곳이 신관들을 위한 무덤일 것이라 생각해 '오사리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는 이 곳이 무덤이 아니라고 보고 있으며 발견된 유골들이 신관들의 것이라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파일:Templo_del_Xtoloc,_Chichén_Itzá_04.jpg
츠톨록 신전 (Temple of Xtoloc)
앞에 소개한 오사리오 건물군에 속하는 작은 건물로, 오사리오 인근에 세워져 있던 작은 신전이다. 최근에 고고학자들이 돌로 된 파편들을 주워모아 다시 복원한 신전으로, 치첸 이트사에 있는 여러 세노테들 중 하나를 굽어보는 위치에 세워졌다. '츠톨록'이라는 이름은 마야어로 이구아나를 뜻하는 단어 '츠톨록'에서 따왔다. 신전을 이루는 돌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마야 신화 속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꽃, 새, 나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Mexico-Chichen-Itza-Red-House-Front-Facade-1440x961.jpg
카사 콜로라다 (Casa Colorada)
치첸 이트사 전체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물들 중 하나로 이름은 '붉은 집'이라는 뜻이다. 마야어로는 '작은 구멍들'이란 뜻의 '치찬크홉'이라고 불렀다. 내부의 방들 중 하나에는 복잡한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데, 학자들이 확인해본 결과 역대 치첸 이트사의 군주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건물 한귀퉁이에 869년의 기록이 적혀있는데 이는 치첸 이트사에서 발견된 연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참고로 카사 콜로라다 건물 자체는 굉장히 보존이 양호한 상태에 속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근의 건물군들은 싸그리 돌무더기로 변해버렸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인근 유적은 '사슴의 제단' 밖에 없다.[16]
파일:attachment/치첸 이트사/chunmondae.png
엘 카라콜 (El Caracol)
22.5 m 높이인 치첸 이트사 천문대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돔을 올린 중앙 탑의 원형 디자인과 나선형 계단을 보고 '달팽이'라는 뜻으로 '엘 카라콜(El Caracol)'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별을 보고 추수와 제의의 시기를 정했다고 하는데, 가령 햇살의 각도가 출입문에 부딪혀서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고 동지 하지를 아는 식이다. 건물의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그릇 모양의 돌이 있는데, 돌 안에 물을 채워 수면에 비친 별을 관찰하여 달력을 정했다고 추정한다. 출입구 네 곳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내었는데, 문의 상인방에는 우신 차크몰의 가면을 부조하였다. 천문대 안에는 작은 창 몇 곳을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별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하였으므로 천체 관측용 시설이라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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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이글레시아 (La Iglesia)
치첸 이트사를 왔다간 초기의 탐험가들은 창문이 좁고 건물이 낮고 길쭉한 모습이 마치 수녀원을 연상시킨다 해서 '라스 몬자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그 옆에 있던 작은 건물에는 교회라는 의미의 '라 이글레시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실제로는 정부 청사이거나 사원일 가능성이 훨씬 그다고 한다. 후고전기 마야 문명 예술의 정수가 집약된 곳으로도 유명하며 건물 외관을 꾸미는 아름다운 스투코 장식들이 잘 알려져 있어 인기가 많다. 특히 사진 왼쪽의 라 이글레시아 건물은 상단에 붙어있는 수많은 석회 마스크들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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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캅 드집 (Akab Dzib)
마야어로 '신비로운 글의 집'이라는 뜻으로, '수많은 방들의 평평한 집'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치첸 이트사의 왕이자 최고 사제였던 야하왈 초 칵이 이 곳에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의 건물은 2007년에 복원 작업이 완료된 것으로 높이 6m, 길이 50m, 너비 15m에 달하는 꽤나 큰 건물이다. 서쪽 벽에는 7개의 문이 나있고 동쪽에는 4개의 벽이 나있다. 내부의 방들에는 복잡한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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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치첸 (Old Chichen)
스페인어로는 'Chichen Viejo'라고 부른다. 치첸 이트사 유적군 남쪽에 위치한 수많은 건물들을 모아놓은 건물군으로, 대부분의 푹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이 곳에 있다. 치첸 이트사의 초기 건축물들도 이 곳에 집중되어 있으며 팔릭 신전, 거대한 거북 제단, 부엉이들의 신전, 원숭이들의 신전 등 다양한 사원들이 이 곳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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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칸체 동굴 (Caves of Balankanche)
치첸 이트사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4km 가량 떨어진 거대한 석회동굴군이다. 최소한 선고전기 시대부터 마야인들이 이 곳에 살았다고 추정된다. 고대 마야인들은 이 곳을 신이 거하는 곳으로 여겨 대단히 신성시했고, 이 곳에서 제물을 바치는 등 여러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1900년대부터 이미 그 존재가 알려져 여러 학자들이 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며 수많은 도자기와 신상들, 그리고 제례용품들을 발굴해냈다. 특히 1959년 9월에 동굴을 막고 있던 가벽이 부서지면서 그 뒤에 있던 복잡한 동굴 구조가 추가적으로 드러났고 이곳에서 석조 신상, 보석류들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현재는 발견되었던 상태 그대로 복원하여 관광객들에게 공개하는 중이다.

4. 방문

멕시코의 최대 관광지인 칸쿤에서 차량으로 180D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197 km(편도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보통은 칸쿤 관광에서 하루 일정을 빼서 이 곳을 둘러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멕시코 시티에서 육로로 출발한다면 메리다 CAME 터미널에서, 케레타로 이북 혹은 톨루카 이서 지역에서 출발한다면 푸에블라 CAPU에서[17] 환승한 뒤 메리다 CAME 터미널에서 다시 환승해야 한다. 다만 그야말로 유적 외에는 별다른 박물관이나 어트랙션이 없기 때문에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에 따라 호불호가 다소 갈린다.

가이드투어는 사실상 필요치 않다. 미국에 가깝기 때문인지 미국인 가이드투어 팀이 많아 귀동냥으로만 다녀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스페인어가 된다면 인근 상인에게 물어봐도 꽤나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스페인어로 말을 걸면 굉장히 친숙하게 대해주니 참고하자.

치첸 이트사 유적의 중심지인 엘 카스티요 유적에서는 적당한 위치에서 박수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박수 소리가 신전의 꼭대기에서 반사되며 마치 새 소리를 연상시키는 메아리가 생기기 때문. 소리가 잘 나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을 벗어나면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다른 관광객들이나 현지인이 박수치는 것을 잘 참고해서 위치를 잡은 다음 시도해 보자.

음료는 필수로 들고 가야 한다. 물을 마시고 싶은 타이밍에 노점상 찾기가 어렵기 때문. 또 노점상들이 음식물보다는 대체로 기념품에 치중했기 때문에 물을 사기 힘들다. 더구나 건축물들 주변에는 나무가 없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므로 얼음물을 챙겨가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5. 창작물에서의 모습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4] '치첸이라'라고 표기하는 곳도 있는 듯 하다. [5] 스페인어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바스크어, 나와틀어 등의 외래어 유래 단어에만 쓰이는 이중문자 tz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이 t와 z를 별개 음소로 취급하며, 이에 따라 '치첸 이트사'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6] 물이 차있는 깊은 구덩이 [7] 에르난 코르테스의 원정에도 참여한 베테랑 모험가이자 콩키스타도르였다. [8] 위 사진이 1892년의 치첸 이트사 유적 [9] 아즈텍 제국 케찰코아틀과 유사한 마야의 신이다. [10] 등을 대고 누워 배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있는 모습의 석상 [11] 일각에서는 패자들은 그냥 살아남고 승자들이 신의 곁으로 간다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12] 코르테스와 스페인 병사들이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이 촘판틀리를 보고 경악했다는 말이 있다. [13] 마야 문명권에서는 조개 껍데기를 화폐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14] 1909년에 처음으로 이 곳을 잠수사들이 잠수해서 탐사했는데, 워낙 진흙이 많고 나무뿌리 등이 산재해서 물 속에서 거의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15] 참고로 유골의 나이대는 굉장히 다양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죽여서 제물로 바쳤고, 심지어 아기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16]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앞에 세워져있던 사슴 모양의 스투코 석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17] 멕시코 시티에서 환승할 수도 있지만, 케레타로에서 출발했다면 빠른 멕시코 아르코 노르테 고속도로를 놔두고 빙 둘러가는 꼴이 되고, 톨루카에서 출발했다면 수도고속도로를 놔두고 멕시코시티 시내를 도시철도 등 시내교통수단을 타고 관통해야 해서 문제이다. 그래서 푸에블라에서 환승하면 Arco Norte 혹은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그나마 빨리 갈 수 있다. [18] 소닉이 살고 있는 시점에서의 미스틱 루인은 과거 너클즈 부족이 번영하던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