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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30 08:19:18

진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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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 27대 국군
성공
成公
희(姬)
진(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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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진문공(晉文公) 희중이(姬重耳)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00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06년 ~ 기원전 600년

1. 개요2. 즉위와 치세

[clearfix]

1. 개요

진(晉)나라의 27대 국군. 춘추오패로 유명한 진문공(晉文公)의 아들이며, 진양공의 아우이고, 폭군인 진영공의 숙부이자 진경공 아버지이다. 어머니 주나라 여자다.

2. 즉위와 치세

진영공 14년( 기원전 607년), 조돈(趙盾)의 종제인 조천(趙穿)이 진영공을 시해한 뒤 조돈이 그를 진(晉)나라의 군주로 모시면서 그 시기에 정치가 바르게 되었다.[1]

진성공 원년(기원전 606년), 조씨들을 대부에 봉했다. 진(晉)나라는 정나라를 쳤는데, 그 이유는 진나라를 등지고 초나라를 섬기려 한 탓이었다.

진성공 3년(기원전 604년), 정백이 정변을 통해 즉위하고서 정나라가 초나라를 버리고, 초나라를 치는데, 당시 초나라 왕은 바로 춘추오패중에 한 명이었던 초장왕(楚莊王)이었다. 천하의 대인배인 그도 화가 나서 정을 치니 진(晉)에게 구원을 청했다. 물론 상대가 상대니 만큼 진나라가 탈탈 털렸다.

진성공 4년(기원전 603년), 진성공은 봄에 위(衛)나라와 함께 진(陳)나라를 공격했다. 주장은 조돈이었고, 위나라의 주장은 손면(孫免)이었다. 같은 해 가을 적적이 진나라를 침입해 형구 땅을 포위했다.

진성공 5년(기원전 602년), 적적이 진나라를 침입해 향음의 곡자 땅을 취했다. 같은 해 정나라가 진나라에 강화를 요청했다. 공자 송이 정나라 군주가 회맹에 참여하도록 유도한 덕이었다. 겨울에 흑양 땅에서 회맹했다.

진성공 6년(기원전 601년), 진성공은 진(秦)나라를 쳐서 그 장수 공자 적을 사로잡았다. 그 해에 조돈이 사망했다.

진성공 7년(기원전 600년), 진성공은 초장왕과 패권을 다투었다. 호원에서 회맹했는데, 진(秦)나라가 초장왕을 두려워 하여 따르지 않자 진(晉)나라에서 중항행자로 하여금 진(秦)나라를 치고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초나라와 교전을 벌였으나 크게 발렸다. 결국 진성공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 그 아들 희거가 뒤를 이어 진경공으로 즉위했다.


[1] 참고로 진성공이라는 시호 때문에 헷갈릴 수 있지만 사실은 작위가 공작이 아닌 후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