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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53:32

중공 군용기 불시착 사건


1. 개요2. 사고
2.1. 사고기
3. 기타

1. 개요

중공 해군 제3사단 제3항공대 소속 H-5[1]1대가 1985년 8월 24일 전라북도 이리시 신흥동[2]에 불시착 한 사건.

※ 일러두기: 당시 대한민국의 외교 상황에 따라 대만중화민국으로, 중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구분하여 표기합니다.

2. 사고

사고는 중공의 H-5 기체 번호 038[추정]이 다른 편대기들과 산둥반도의 해군 기지에서 이륙하는 것으로 시작된다.[4] 승무원은 조종사 소천윤, 후방사수 겸 통신사 유서희, 항법사 손부충이 있었다. 그 후 소천윤은 항법 장치가 고장 났다고 하여 항법사와 통신사를 속이고 대한민국 영공에 들어갔다. 그 후 중공 해군 소속 경폭격기는 귀순을 유도할 대한민국 공군기를 기다리며 선회하다 연료 부족으로 이리시 신흥동 제방 밑에 불시착, 폭격기 조종사 소천윤은 중상, 통신사 유서희는 무사했으며 항법사 손부충과 농약을 치던 주민 배봉환이 사망했다. #

이후 소천윤은 중화민국으로 귀순했고 유서희는 다시 중공으로 손부충의 시신과 함께 돌아갔다. H-5 기체는 공군사관학교 야외 전시장에 있다.

2.1. 사고기

사고기인 H-5는 산둥반도에서 훈련중이던 중공 해군 함대 소속 제3사단 3항공대 기체였다. 현재는 가상적기로 쓰이다 퇴역해서 공군군사제 제34호로 지정, 공군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있다.

3. 기타


* 당시 보도된 KTV 당시 보도된 신문

[1] IL-28의 중공 생산 명칭 [2] 현 전북특별자치도 농업기술센터 인근. [추정] [4] 물론 중공에서의 마지막 비행이다. [5]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연락하거나 메시지를 보내서 불러들이면 그만이지만, 당시는 1980년대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한참 전이었고 무선전화기 수화기와 구분 안 가는 무식한 크기의 당대의 휴대폰조차 최상류층도 접하기 어려운 신문물이었다. [6] 당시 원광대 한의대 한의예과 1년 재학. [7] 당시는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기에 괜히 중국을 자극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노태우 정권의 북방 정책 이전에 이미 전두환 정권 때부터 물밑에서 공산 국가지만 소련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중국, 폴란드, 유고 등과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던 터였다. [8] 이날은 일요일이라 소매점에 물품을 공급하는 영업점들이 대부분 휴무 중이었다. [9] 당시에는 동산동에 소재. 신흥동으로 이전된 이후 구 농촌진흥원 청사는 철거되지 않은 채 2024년 기준 36년째 폐건물로 방치 중이다. 폐건물/목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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