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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05:58:01

주먹도끼

석기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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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등장시기3. 제작방법4. 용도5. 종류6. 시대적 의미7. 모비우스 설
7.1. 한반도의 주먹도끼

1. 개요

파일:연천 전곡리 유적 주먹도끼.jpg
<colbgcolor=#9f8054>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파일:외날찍개 주먹도끼.jpg
<colbgcolor=#9f8054> 외면 가공 첨두형 주먹도끼

Handaxe(영어), Biface(불어), Faustkeil(독일어), 手斧(중국어), Кулак Топор(러시아어)

주먹에 쥐고 쓸 수 있는 도끼 형태의 모양을 가지는 뗀석기. 전기 구석기시대의[1] 대표적인 석기다. 원시인들은 이것을 손에 들고 다용도 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2. 등장시기

주먹도끼와 같은 고도의 석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때는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서였다. 그 이전까지의 인류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600,000년 전쯤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들은 불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비로소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 아시아로까지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 출토 범위와 주먹도끼가 발견되는 지역의 범위는 대체로 일치한다. ‘직립보행 한 사람’이라는 원어(Homo erectus)의 뜻처럼 그들은 완벽하게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자유로워진 두 손은 더욱 정교한 도구를 만들도록 진화하였고, 그로 인해 석기 제작 기술도 그 이전의 어떤 인류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났다. 주먹도끼는 이러한 인류의 진화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도구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주먹도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설이 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주먹도끼가 발견되며 이 학설은 지금 파기되었다. 그 후 중국대륙 및 한반도의 임진-한탄강 유역에서 다수 발견되었으며 지금은 한반도 전역에서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한반도의 주먹도끼는 호모 에렉투스의 연대보다는 꽤 늦은 시기이므로 별개의 문화적 산물로 볼 수있다. 충남대 유용욱 교수의 연구 결과에 잘 나타나고 있다

3. 제작방법

유튜브 뗀석기 만드는 법 (9:20 구간을 보면 날카로운 돌칼이 떼어져 나온다.)

정교한 돌창 만드는 유튜브

주먹도끼의 재료는 주로 규암· 석영· 사암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현무암 같은 다른 종류의 돌도 이용하였다.

주먹도끼를 만들 때에는 이러한 석재로부터 일차적으로 큰 박편을 떼어낸 다음 박편의 아랫 부분과 윗 부분, 즉 박편의 양면을 주위로 돌아가면서 엇갈리게 타격을 가하여 작은 박편을 떼어내면서 처음부터 만들고자 하는 주먹도끼의 형태로 다듬어 나간다. 그러나 임진-한탄강 유역의 주먹도끼는 대부분 큰 박편 보다는 가공되지 않은 강돌, 즉 대형자갈을 그대로 활용하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두껍고 가공 부위가 넓지 않다.

4. 용도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에 사용된 대표적인 도구이다. 한 손에 쥐고 쓸 수 있어서 짐승을 사냥하고 가죽을 벗기며, 땅을 파서 풀이나 나무를 캐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즉 오늘날의 멀티툴과 같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긴 사용기간에 걸맞게 전세계에서 아주 많은 숫자가 발견되는데, 전혀 사용감이 없는 물건도 무수하게 발견되었다. 실용 도구였으면 분명히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말이다. 물론 사용하고 나서 다시 박편을 떼서 날카롭게 재가공해서 흔적이 없어졌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비사용품의 비중이 무시 못하게 컸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도구로서의 용도 이외에 마치 오늘날의 명품이나 외제차처럼 수컷으로서의 힘과 재력을 과시하며 많은 암컷과 교미해서 더 많은 번식에 성공하기 위한 성적 매력을 불러 일으키는 매개체였다거나, 물물거래의 매개체인 돈처럼 쓰였다는 급진적 주장도 진화 인류학계에서 등장하였다.

5. 종류

주먹도끼의 형태는 약 20종류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 각각 특징적인 것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형태로는 이런것들이 있다.

* 그 밖에 보트형(naviform), 피크론형(ficron; 솜므강 유역 뱃사공이 쓰는 막대기의 끄트머리), 라겐형(lageniform; 라겐은 지중해 지역의 물주전자를 말함), 삼각형(triangular)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주먹도끼는 프랑스 북부를 비롯한 유럽이나 아프리카에만 있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는 아주 두껍고 거칠게 만들다 만 형태만 발견된다.

6. 시대적 의미

7. 모비우스 설

뗀석기 중 주먹도끼류,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형태인 아슐리안형 뗀석기는 북아프리카, 유럽, 중동, 인도 등지에서는 널기 발견되어 왔으나, 꽤 오랫동안 히말라야 산맥 너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리적 이유로 문화가 갈린 것으로 여겨젔으며, 이에 따라 아슐리안형 뗀석기 문화와 찍개형 뗀석기 문화를 나눠 구분한 설이 미국의 고고학자인 H.모비우스가 제창한 모비우스 설이다. 이렇게 두 문화를 가르는 경계를 주창자의 이름을 따 모비우스 라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78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뗀석기(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모비우스 설은 존재 가치를 상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본래 그저 지리적 영향에 따른 문화 구분 학설이었지만, 결국 유라시아 전역에서 아슐리안 형 석기가 발견됨에 따라, 지금은 거의 안 쓰는 구닥다리 견해가 되었다. 다만 전곡리 유적을 포함한 동아시아 유적에서는 주먹도끼의 가공 수준이 높지 않고 그 수효도 많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서반구의 아슐리안과는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7.1. 한반도의 주먹도끼

경도가 높고 입자가 거친 변성암 계통 암석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아슐리안 형 뗀석기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그나마 만들기 쉬운 찍개형 뗀석기들이 훨씬 더 흔하다. 이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아슐리안 형 석기가 히말라야 너머에서 잘 발견되지 않았고, 한반도에서는 아예 발견되지 못했었다.

그런데 1978년, 주한미군 공군 기상 관측병이자 고고학도였던 ' 그렉 보웬'이 우연히 경기도 연천군에서 한국인 여자친구 이상미[2] 한탄강을 산책하던 중, 이상미씨가 특이한 모양의 돌을 하나 발견하여 조사한 결과, 그것이 바로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주먹도끼와 유사한 구석기였음이 밝혀졌다. 연천 전곡리 유적 참조.

이 발견으로 인해 이미 타당성을 의심받고 있던 모비우스 학설은 완전 폐기되었다. 에렉투스 시절에도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험준한 지형을 잘만 뚫고 교류했고,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어딜 가든 다 비슷해서 뗀석기들이 결국 아슐리안 형 뗀석기로 수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현재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몇 십만년까지 올라가는 수준으로 연대가 측정되지는 않지만, 한반도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거주하기 이전에 독자적으로 개발된 고유한 석기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아슐리안과는 별개의 지역 자체 발전 기술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유용욱 교수의 코리아헤럴드 영문기사 참조. .[3]]

여담으로 그렉 보웬의 주먹도끼 발굴 이후 전곡리 강가에서는 그야말로 주먹도끼 유물이 발에 채일 정도로 쏟아져나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실 잎 공간에도 주먹도끼 유물 진품이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연천군에서 기증한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주먹도끼는 고대 유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 연대가 구석기시대까지 올라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 조선시대 사람들은 끽해야 삼국시대 전 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민간 요법으로 "고대 유물을 갈아서 달여 마시거나 하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로 인해 병자는 병자대로 애꿎은 돌가루를 달여 마셨고 주먹도끼 유물은 또 유물대로 훼손되었다는 것(,...)[4]


[1] 주먹도끼는 양면 뗀석기로 뗀석기 중에서도 상당히 발전한 단계이다. 나타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구석기 시대가 매우 길기에 전기 구석기 단계에 해당된다. [2] 훗날 그렉 보웬과 결혼해 '상미 보웬'이 되었다. 보웬 부부는 1녀를 낳았다. [3] 2022년 2월 12 [4] 상나라 갑골 문자가 새겨진 중국의 거북이 등딱지 유물도 이런 식으로 한약방에서 엄청나게 많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