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4-11 10:35:11

정정공

파일:정 전서체.png
정 국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ce5b6,#49421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81818,#e5e5e5
<colcolor=#373a3c>
초대

환공
제2대

무공
제3대

장공
제4대

소공
제5대

여공
제6대

소공
제7대

제8대

제9대

여공
제10대

문공
제11대

목공
제12대

영공
제13대

양공
제14대

도공
제15대

성공
제16대

제17대

희공
제18대

성공
제19대

희공
제20대

간공
제21대

정공
제22대

헌공
제23대

성공
제24대

애공
제25대

공공
제26대

유공
제27대

수공
제28대

강공
삼황오제 · · ·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삼국시대 · 진(晉) · 오호십육국 · 북조 · 남조 · ·
오대십국 · · 서하 · · · · ·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정(鄭)나라 21대 국군
정공
定公
희(姬)
정(鄭)
녕(寧)
아버지 정간공(鄭簡公) 희가(姬嘉)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514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529년 ~ 기원전 514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의 제21대 군주. 정간공의 아들. 정헌공의 아버지. 이 때 만해도 아버지인 정 간공 때 상국인 자산(子産)이 살아 있어 중흥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2. 생애

정 정공 원년(기원전 529년), 초(楚)나라에서 공자 기질(公子 棄疾)이 초영왕(楚靈王)과 자오를 살해하고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초평왕(楚平王)이다. 초 평왕은 형 초 영왕이 정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1] 이때 진소공(晉昭公)의 명으로 진(晉)나라에 입조했다.

정 정공 6년(기원전 524년), 정나라에 화재가 발생해 그것을 끄게 했다. 그러자 자산이 말했다.

"불을 끄는 것보다 덕을 베푸는 것이 낫습니다."[2]

정 정공 8년(기원전 522년), 초나라의 태자 건(太子 建)이 정나라로 망명했다.

정 정공 10년(기원전 520년), 태자 건은 진(晉)나라와 짜고 정 정공을 살해하고 정나라를 차지하려 했다.[3] 그러나 이 일이 누설되는 바람에 정 정공은 크게 노해 태자 건을 죽이니[4] 건의 일행들 중 그 아들 왕손 승(勝)[5] 오자서가 오나라로 달아났다.

정 정공 11년(기원전 519년), 정 정공은 진(晉)나라에 가니 진(晉)나라가 정나라와 함께 주나라의 반란을 모의했던 신하를 죽이고 희조를 몰아낸 뒤 주경왕(周敬王)을 세웠다.

정 정공 16년(기원전 514년), 그 아들 희채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정 헌공이다.


[1] 탈법적으로 즉위했으니 이런 식으로 제후들을 달랜 것이다. [2] 일견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불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재의 원인을 제거하라는 의미를 가진 발언이다. [3] 그 이유는 비무기를 죽이고 태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할 거점으로 정나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4] 망명객이라고 받아줬더니 자신을 죽이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으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화를 안 내는게 이상하다. [5] 백공 승(白公 勝)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