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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9:52:42

정도전(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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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캐릭터 평가3. 기타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등장인물. 배우는 김흥기.

태조 이성계의 최측근이자 개국공신. 극 초반부의 또 다른 주역이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로서 이성계의 즉위 이전부터 정치공작을 도맡아 처리하였고 조선 개국 후에는 국왕인 이성계의 신임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재상으로서 전제(田制) 개혁과 유교 정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이방원이 어렸을 때부터 만나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었으나, 자신이 생각하는 재상 중심 정치에 걸맞은 세자감은 아니었기에[1][2][3] 신덕왕후의 부탁으로 새로 오른 세자 방석의 막강한 후견인이 된다.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 의해 왕사로 들어오자 불교를 잘라내지 않고서는 옛 고려와의 고리를 끊을수 없다며 불평을 했으며 대소공사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도 모를 일이라고 우려했다.

강력한 의정부서사제 지지자로 왕의 능력은 현명한 신하들의 보좌로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로 인해 왕권 강화를 주창하는 이방원과 정치적 갈등을 빚는다. 또한 조선의 국정 운영에 방해되는 고려의 잔재들에 대해 뒷날의 외척들에 대한 이방원 못지 않게 가차없는 모습을 보여, 왕씨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두문동에서 이성계에 대해 항거하던 유자들을 모조리 척살하는 일을 맡았다. 이에 대해 지나치지 않냐고 화를 내는 이성계에 대해 저들은 고려의 망령이라며 죽어야 될 자는 죽어야 된다고 일갈할 정도.

사병 혁파 이후로는 군권까지 장악, 진법을 새로 만들고 요동 정벌을 노리게 된다. 이방석의 듬직한 후견인이란 점 때문인지 죽음이 얼마 안 남은 신덕왕후로부터 방석을 부탁받는 가운데 방원이가 죽어야 한다는 절규도 함께 듣게 된다. 이 일 때문인지 이성계가 병석에 눕게 된 상황에서 후환을 잘라내기 위해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을 주살하려 하나[4] 이에 대한 역습으로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남은, 심효생 등과 잡히게 된다.

남은 심효생이 죽은 뒤 그는 이방원을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그토록 원하던 보위가 눈에 보이냐 묻고는, 자신의 눈에는 대조선제국으로의 꿈이 산산히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는 말로 패배를 인정한 뒤 부디 대업을 이루라고 한다.

이에 이방원은 왜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냐 묻고는 그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거부하고, 의연히 절명시를 남긴 뒤 이방원의 집사 정만쇠에게 살해당한다.[5] 이후 이성계가 임종 직전 꾼 꿈에서 그를 맞이하러 나오는 모습으로 한 번 더 등장한다. 문제는 그가 나온 뒤 이성계 때문에 죽은 이들의 원혼까지 줄줄이 나왔다는 거지만...

2. 캐릭터 평가

대중매체에서 정도전이란 인물에 대한 평가를 확립시킨 캐릭터. 이후 작품들에 등장하는 모든 정도전 캐릭터(심한 왜곡으로 아예 간신배로 만들어놓은 대풍수 정도를 제외하면)는 이 용의 눈물 정도전 캐릭터에 기반한다. 조선왕조의 주역으로 정도전을 부각시켰던 사학자 한영우의 연구에 이환경의 극적 재구성이 더해져 탄생한 캐릭터로[6]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이환경의 캐릭터 구성능력에 배우의 원숙한 연기력이 더해져 정치적으로는 물론 여러 면에서 상당히 완숙한 깊이를 보인다. 방해물의 제거에 있어서는 실로 가차없고 정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점에서도 그렇다.[7]

후일 방영된 대하사극 정도전 정도전과는 그 방향성이 다른데 둘 다 민본 위주의 개혁을 정치사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으나, 드라마 정도전에서의 정도전이 이성계를 주축으로 삼아 구왕조 고려를 무너뜨리려는 책사, 독선적인 성격의 아웃사이더 이미지가 강한 편이라면 용의 눈물에서의 정도전은 책사 역할도 하지만 그보다는 조선 개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완성형 정치가, 조선의 청사진을 그리고 구축하는 설계자로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물론 자신의 이상을 위해 칼 같이 냉정하게 한때나마 자신이 모시던 구왕조의 왕족과 유신들의 척살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모습도 철저히 보여준다.

이는 포은 정몽주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는데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은 정몽주를 끝까지 살리려하고 새나라의 첫재상으로 세울 생각까지 했으며 정몽주가 자신의 출생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자 자신 때문에 타락한 그를 보고 비탄에 잠기는 등 정몽주 없이 나라 세운다는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정몽주와 정도전을 역사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로 엮으면서 브로맨스 코드가 강하게 나타나고 굉장히 질척질척한 전개를 보였다.[8] 반면 용의 눈물의 정도전은 새왕조에 참여할 것을 권하며 정몽주를 설득하면서도 "우리가 배운 경전 어디에 어미의 출신이 천하다 하여 박대하란 말이 있던가!"라고 한 나라를 세울 정치가로서 정몽주와 단호하게 맞서고 있다.[9] 조선 개국 이후 정몽주를 복권하려는 권근의 시도에 '정몽주는 전하(이성계)를 음해하던 간적'이라며 딱 잘라 반대한다. 정도전에서의 정도전이 정몽주와의 이른바 브로맨스라 불리는 관계를 더욱 묘사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에 따르자면 정몽주를 대하는 태도는 용의 눈물의 정도전이 훨씬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방원과의 대립도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었다기 보단 향후 조선이 나가아가 할 방향을 서로 달리 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충돌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는 무인정사 직전 이방원과 정도전의 독대장면 대사와[10] 정도전이 무인정사 당시 이방원에게 남기는 마지막 대사[11]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 둘은 두 드라마가 극의 주인공도, '정도전'이라는 캐릭터의 해석과 다루는 방식도, 극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의 주제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나을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이다. 여담으로 KBS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 신병주 교수는 용의 눈물의 김흥기의 정도전이 선동열 같은 이미지라면 정도전의 조재현의 정도전은 박찬호 같은 이미지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다만, 정도전을 재평가했다는 점은 분명 인정할 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화가 지나쳤다는 비판도 있다.

정도전은 태조가 집권한 이후 줄곧 조선이 대제국을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중국을 때려잡고 서역까지 영토을 넓히는 것이다. 실용적 사상을 극에서도 줄곧 보여주는 정도전인지라, 이러한 야망이 혼자 툭 튀어나와 이질적으로 보인다. 민본주의와 정벌전쟁이 어떻게 양립하는지도 특별한 설명이 없다.

정도전이 1차 왕자의 난에서 패하며 죽기 직전 이방원과 나눈 담화에서 정도전은 요동정벌이 조선을 대제국으로 만드는 발판이라고 언급하는데 정작 정도전은 실제로 조선을 황제국으로 만들려 한 적이 없다. 훗날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제작된 드라마 정도전 제작진들도 대조선제국 운운은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여기에서는 정도전이 단 한 번도(정안대군에게 죽임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대조선제국' 같은 단어는 전혀 운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동정벌로 '당당한 사대'를 할 수 있다고 하여 일단 조선의 자주성을 더 강화는 해도 형식적으로는 명나라 중심의 사대 질서 자체는 인정하였다. 사실 이게 실제 역사에 더 맞다. 또한 작중에서 정도전 사후 하륜과 이숙번의 대화에서 고려의 자주적 역사를 그대로 남겨준 정도전을 추켜세우지만, 《고려국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고려가 사용한 황제국 용어들을 제후국 것으로 고친 장본인은 정도전이다. 나중에 세종이 그걸 원래대로 돌렸다. 그리고 정도전 개인이 편찬한 《조선경국전》에 감탄하는 에피소드를 넣느라 《경제육전》이 묻혔다. 경제육전은 여말선초의 인물이자 조선 건국의 공신 중 한 명인 조준이 만든 조선 최초의 성문법전이다.

3. 기타

정도전을 본격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한 거의 첫 사극이라 그런지 배우인 김흥기가 용의 눈물 방영 이후 봉화 정씨 문중으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정도전 역을 맡았던 김흥기는 《 개국》에서도 정도전 역을 맡았던 바 있었는데, 단순히 배역만 자주 맡은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정도전과 그의 사상에 대해 전문가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용의 눈물》이 방영되었던 1997년에 국민대학교에서 정도전의 정치 사상을 주제로 강연을 했을 정도. 경희대학교에서도 '정도전 나도 할 말 있다'라는 특강을 진행했다. #

용의 눈물 정도전 캐릭터는 원로사학자 한영우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사학계에서 그 이후로도 오랜 연구와 논의가 이어지며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모습(재상 중심 신권주의, 전제개혁, 요동정벌)은 2000년대에 부터 진즉 다 부정되고 있다. 문제는 용의 눈물의 정도전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고 대중에 미친 영향력이 커서 후속 사극들이 전혀 최신연구를 반영하지 않아 대중에 피드백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거다.[12] 초한지의 유방이나 삼국지 연의의 유비와 유사한 사례다.

최후 장면은 무지하게 NG가 났다고 한다.(...) 이는 주변의 소음 공해 때문이다. 분위기 잡고 방원을 부를 때 염소가 울어대지 않나, 한창 대사에 몰입하던 중 파리가 날아다니지 않나, 삼봉이 죽고 있는데 파리가 날았습니다! 또 염소가 울어대지 않나, 절명시 외우던 중 우렁차게 비행기가 날아다니지 않나... 참다 못해 김흥기마저 "저 염소 X끼!!!"라 짜증을 내다 못해 참으로 죽기 힘들다고 웃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이만 편히 쉬게 해달라는 대사가 연기가 아니라 김흥기 본인의 진심으로 들릴 지경. 워낙 대박이라 그런지 용의 눈물 특집 방송에서 공개된 NG 장면에서도 마지막을 차지했다.

재밌게도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역할을 맡은 김흥기는 1980년 파천무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맡았고 정도전을 죽이는 정안대군 역할을 맡은 유동근은 1990년 파천무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수양대군을 죽였다는 배우개그가 성립한다. 김흥기는 각종 사극에서 태종의 후손들을 여럿 연기했는데 태종에게 죽임당한 정도전이 태종의 후손들로 환생했다는 배우개그도 성립. 또한 김흥기는 이전에 흥선대원군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데 흥선대원군이 수백년간 역적 취급 받은 정도전을 복권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왠지 묘하다.

사망한 후에도 한동안 계속 오프닝 화면에 등장해서[13] 유튜브 스트리밍에서는 본의 아니게 삼봉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 세자 문제로 고심하던 태조에게 찬란한 문치(文治)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분(정안군)의 손에서는 피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며 직언했다. [2] 이때 정도전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국가에 대한 신념 때문임이 분명하게 묘사된다. 이후의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같은 후대의 사극들의 경우 정몽주와의 우정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를 죽인 이방원을 정도전이 책망하는 장면이 나와 마치 친우를 죽인 것에 대한 사감으로 그를 배척한 것으로 보여 시청자들에게 목숨 구해준 은혜도 모르는 소인배라는 비판을 들은 것과 비교되는 부분. 심지어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은 "새 나라의 세자로 정안군을 생각했지만 선죽교 위에서 모두 깨졌다"라는 대사를 쳐서 이를 스스로 자인하다시피 했다. [3] 정몽주 정도전을 죽마고우처럼 묘사하는 현대 드라마와 달리 두 사람은 사이좋은 학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실제로 정도전과 죽마고우였던 사람은 이숭인이고 이쪽은 정도전이 집행관을 사주하여 곤장을 세로로 세워 등을 쳐서 때려죽였다. 따라서 정도전이 이방원을 승계에서 배척한 까닭은 용의 눈물 쪽이 더 가능성이 높다. [4] 정확히는 정도전은 정안군을 비롯한 왕자들을 해하는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였으며(오히려 요동 정벌에 성공하고 난 뒤에는 정안군에게 요동 통치를 맡기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까지 있을 정도다) 남은이나 심효생 등에게 이런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둘은 "삼봉 선생의 높으신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그 분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고 판단하고 멋대로 대군들을 척살할 계획을 세운 다음에 그걸 정도전에게 알린다. 정도전은 경악하며 그런 짓을 하고 어찌 전하의 용안을 뵐 수 있냐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미 일을 돌이키기엔 늦었으니 같이 송현방에 가서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는 것. [5] 극중에서 정도전이 요동 정벌을 위해 진법훈련을 실시할 적에 이방원이 여기에 응하지 않자 군령을 위반한 죄를 물으려고 했는데, 이 때 이방원의 집사인 정만쇠(정일모 분)가 대신 곤장을 맞았다. 그 원한 때문에 정만쇠는 주인 이방원에게 삼봉의 목은 자신이 벨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이방원이 이를 승낙하였다. 여담으로, 정만쇠는 정도전이 제거된 이후 원한이 다 풀렸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고향으로 내려가게 해줄 것을 청하지만, 이방원이 그의 곁에 그대로 두었고 결국 내금위장이 되어 태종의 마지막 가는 길(드라마 마지막화의 기우제 장면)까지 곁에 머물러 모셨다. [6]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1960년대까진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3년 한영우의 연구 <정도전 사상의 연구>에서 처음 역사적, 사상적 의미가 재조명되고 이에 영향을 받은 박원호가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며 주목받았다. 용의 눈물 이후 대중들에게 조선의 장자방으로 정도전을 확실히 각인시킨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은 전술한 한영우의 <정도전 사상의 연구>의 개정판이다. [7] 왕위 세습 부분에서도 그런 부분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진안대군을 대하는 부분에서 무려 왕족임에도 행보가 고려의 충신이며 유신이라고 말하며, 이성계가 이방우를 찾는 행보를 헛수고로 여기며, 왕족이라도 말이 안 되면 그대로 거부하는 면모를 보여줬다. [8] 삼봉은 민본을 위해 다른 것은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런데 드라마 정도전에선 막역지우였으나 이제는 완전히 적으로 돌아선 강력한 반대세력인 포은에게 너무 매달리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종종 보인다. 물론 용의 눈물에서도 정도전은 한사코 정몽주를 설득하려하고 이성계 역시 정몽주를 아껴 자신의 편으로 끌여들이기 위해 자신의 부상을 가장한 무리수까지 쓰지만 드라마 정도전의 이성계-정도전-정몽주 관계처럼 질척하진 않았다. [9] 작중에서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에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고자 왕궁에 군사를 배치시키고, 왕궁으로 들어가려는 정도전을 막아서면서 죄인이라며 들어갈 수 없다고 막는다. "내 죄가 뭔가"라고 묻는 정도전에게 "미천한 신분이면서 임금을 기망하고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힌 죄"라고 대답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정몽주 앞에서 여유가 있었던 정도전이 대번에 표정이 바뀌고 주먹까지 움켜쥐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나한테 그렇게 '미천한 신분'이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는 투로 "정말 지금의 네가 나와 동문수학한 그 정몽주가 맞냐?"는 반응을 보이는데, "네가 네 이상을 위해서 나라와 스승을 저버리려고 하니까 나도 나라를 위해서 널 버리기로 했다"고 싸늘하게 대답한다. [10] 이방원 : "이 나라는 봉화 정씨의 나라가 아니라 이씨의 나라임을 기억하시오!" 정도전 : "아니지요,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도 아닌, 바로 백성의 나라입니다." [11] "이만 편히 쉬게 해 주시게, 조카...".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방원은 정도전을 '아저씨' 라 부르며 존경했고, 정도전도 이방원을 조카처럼 대했었다. 이 외에도 극중에 이방원이나 이숙번 등이 정도전을 제거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12] 2022년 태종 이방원에서는 이것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요동정벌은 (어쨌든 진짜 정벌을 목적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정도전이 사병을 혁파하는 동시에 명나라에 가지 않으려는 수작의 일환으로 묘사되었고, 재상 중심의 신권정치보다는 이원집정부제 내지 권력분립을 주창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13] 1화의 오프닝에는 태조, 태종, 신덕왕후, 원경왕후, 정도전이 나왔는데, 신덕왕후는 극에서 하차하면서 오프닝에서도 사라진 반면 정도전은 태조가 승하하고 오프닝 자체가 새로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나왔다.